협치의 구조 아래 만들어진 법안이라는 데에 큰 의미... 앞으로의 과정이 더욱 중요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박선영 팀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제20대 국회에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하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법사위 통과가 불발되며 제21대 국회에서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뉴스페이퍼는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논의 과정에 함께한 주요 문화예술 단체 몇 곳을 만나보고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과거와 현재, 나아갈 길에 대해 조명해보았다.

첫 순서로 만나본 문화연대는 1999년에 창립된 문화운동단체로 문화예술 분야 표현의 자유, 예술인의 노동권리 확보, 문화예술계 불공정 사례 개선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박선영 팀장은 ‘예술인 권리보장법’ 발의 이전의 문화예술 정책과 법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했다. 

예술계 법령 전반에 결여된 정합성과 통일성

문화연대 박선영 팀장은 “19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은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가적 역량을 알리는 홍보수단으로서의 문화예술을 지원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산업진흥을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삼으며 문화콘텐츠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갖고 경제적 효과를 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간 ‘문화예술’에 대한 일관된 정의와 더불어 예술인들의 권리나 처우에 대한 고민,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 등은 논의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계는 법이 총체적 문제”라고 말하며 “법에서 정합성과 통일성이 중요한데, 문화예술진흥법 이후 쏟아진 문화예술 관련 법 사이의 체계성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선영 팀장은 문화예술진흥법의 보완으로서 발의된 문화기본법 역시 박근혜 정부 때 공약 달성을 위해 중요한 고민 없이 통과되며 기본적 구조가 재정비되지 않았다고 첨언했다. 두 법안 사이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는 물론이고 목적성 또한 상이하다. 이에 문화예술 관련 법 제도의 체계성이나 통일성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게 박선영 팀장의 분석이다.

현대 문화기본법은 상에서의 문화란 “문화예술, 생활 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 체계, 전통 및 신념 등을 포함하는 사회나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를 말한다. 반면 문화예술진흥법에서의 문화예술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에 그쳐 포함되지 않는 영역도 다분하다.

문화예술 관련 법의 남발도 지적됐다. 박선영 팀장은 “특정 장르에 지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각각의 장르나 영역의 이권으로서 통과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비전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초 개최된 블랙리스트 관련 토론회 [사진 출처 = 블랙리스트 책임자 송수근 계원예대 총장 퇴진 공동행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성폭력 문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문화연대 박선영 팀장은 이어 “블랙리스트나 성폭력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방관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문제들이 연이어 터진 것”임을 직시했다. 새롭게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가해자 처벌을 하려고 해도 처벌 근거가 없었다. 헌법상 명시된 ‘표현의 자유’ 항목이 있기는 하나 이것을 어떻게 규제하고 처벌할지에 대한 법적 근거나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박선영 팀장은 “대부분 직권남용으로 처벌되고 표현의 자유, 사상 침해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실제로 블랙리스트 처벌은 대부분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계원예대 송수근 총장의 경우 논란이 된 바 있다. 박선영 팀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예술과 관련된 기본적 권리보장에 관한 법 제정의 필요성 이야기가 대두되었고 현장과 행정,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협의 구조를 통해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마련됐다는 데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덧붙였다.

갈 길이 멀지만, 일각에서는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피로감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화연대 박선영 팀장은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의 사회적 복귀를 놓고 ‘몇 년이나 자숙해야 하냐’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태도의 문제다.”라며 “어떻게 반성하고 성찰했으며 개선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를 통해 피해 예술인을 설득해야 한다. ‘이 정도 했으면 됐지.’ 하는 태도로는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최소한의 브레이크 장치’라는 설명이다. 그는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은 폭력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처벌조항이 없다면 계속해서 일어나고 반복될 것이다.”는 말과 함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 막혀있음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예술인공동행동 카드뉴스 중 일부 [사진 출처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난항을 겪고 있는 예술인 권리보장법, 앞으로 가야 할 길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예술인이 가지는 정당한 권리와 성폭력 문제 해결 방안을 담은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유은혜 의원, 우상호 의원에서 김영주 의원으로 대표발의자가 바뀌는 곡절을 거쳐 2019년 4월 19일 발의되었다. 

이후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추진된 예술인 권리 보장법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소 지지부진한 과정을 겪고 있다. 박선영 팀장은 제21대 국회에서 김영주 1호 법안으로 제출되기 전 현장과 소통 부재를 이야기하며 “제21대 국회 때 통과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같지만, 과정은 다시 밟아야 한다.”는 말로 시민단체나 문화예술단체들, 입법부의 지속적인 논의 과정을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20대 국회 막바지 통과를 위해 초기 예술인 권리보장법에서 수정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문화연대 박선영 팀장은 “당시 정치적 판단으로 통과시키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 쟁점이 될 사안을 빼고 넘어갔지만, 그대로 발의하는 게 적절한지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전했다.

법안 통과를 목적으로 삭제, 변동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로 처벌조항이 사라졌다. 박선영 팀장은 “처벌조항을 담은 법안의 통과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조항이 없으면 상징적 법안에 그치고 실질적 작동은 안 될 여지가 크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문화연대 박선영 팀장에 따르면, 당초 독립적 위원회를 구성해 주요 결정권을 갖고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감시자의 역할을 이행하는 ‘예술보안관제도’를 운영한다는 내용이 삭제되어 수행 과정에 필요한 제도가 없어졌다. 이는 문체부 산하 위원회로 수정되었으나 블랙리스트 사건의 수행자가 문체부였다는 측면에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끝으로 ‘예술인’에 관한 범위가 ‘현업 직업 예술인’으로 축소되었다. 원안은 예술 대학생과 경력 단절 예술인을 포괄했다. 박선영 팀장은 “예술인 고용보험법 또는 관력 복지의 적용 대상은 사회적 자원이 지출되는 만큼 직업적으로 한정하는 게 옳다. 하지만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인권과 가치 차원의 법안이므로 예술가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말로 예술인에 대한 낡은 시선을 개선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여러 난항에도 불구하고 현재 문화연대는 예술인 권리보장법과 관련해 현재 새로 구성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과 현장 간 소통이 가능한 거버넌스 구조 만들기 위해 정책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다. 현장 개인 문화예술인을 포함해서 단체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현장 수렴 설문지가 제작되고 있다. 

박선영 팀장은 “향후 정책 제안 보고서를 만들어 토론회 또는 간담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라며 “매번 선거 때마다 문화정책 제안을 해왔지만, 그보다 어떻게 반영되고 어떤 가치를 녹여낼 것인지에 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안도 중요하지만, 협치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시선이다. 제21대 국회에서는 너무 늦지 않은 시일 내 본격적인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 과제로 당면해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만들어진 과정에는 사건 발생 이후의 현장 요구 그리고 정치권과이 협업 구조가 존재한다. 문화연대 박선영 팀장은 이를 ‘바텀업(Bottom-up)’ 방식의 방향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법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동시에 과정이나 사례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띈다고 해석했다. 그는 “법 통과가 안 된 것도 큰 문제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통과가 안 되더라도 그 이후 어떻게 목소리와 힘을 모아 정책까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냐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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