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담은 공간과 문학관이 지녀야 할 현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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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문학관 제1전시장 입구 [사진 = 김보관 기자]

오오, 그대는 알 수 있을까. 어디서든 내가 그대 곁에 있었고 지금도 그대 곁에 있으며 다시 내가 그대 곁에 없음을. 그리하여 우리의 원초의 고독이 우리의 얼굴을 가시 돋은 얼굴로 쓸어내리는 그 입맞춤을!

-기형도문학관 기증자료전 “도로시를 위하여”에서 새로 공개된 육필편지 중에서.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1989년 봄, 종로의 한 극장의 불이 켜지고 서른께의 시인은 돌연 숨을 멈춘 채로 발견된다. 안개 낀 세상 속 참혹함을 생생한 언어로 그려낸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 장면이다. 시인이 멈춘 숨은 그의 시를 타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몇 해 전 경기도 광명시에 조성된 기형도 문학공원 앞에 자리한 기형도문학관은 몇 편의 책을 넘어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청춘’을 화두로 마련된 전시 구역은 ‘유년의 윗목’부터 ‘저녁 정거장’까지, 시인의 유년기와 청년기 전반을 다채로운 색채로 물들이고 있다.

문학관 입구부터 전시실 곳곳에 진열된 그의 유품은 구태여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대신 기형도를 살아있는 인간으로 바라보게끔 한다. 이는 타자기, 수첩, 서재 등 문학 창작과 관련한 유품에 국한해 전시한 김수영 문학관과 차이를 보인다. 기형도문학관을 찾은 관객들은 시인이 즐겨듣던 카세트테이프와 손때묻은 자명종을 비롯해 초등학교 시절 상장부터 기자 시절의 양복까지, 소소한 삶의 일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연스레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 발길을 머물게 한다. 

기형도문학관 ‘유년의 윗목’ 전시물 [사진 = 김보관 기자]

기형도의 삶을 따라 복도를 지나오면 기형도를 기억하는 이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꺼내 들고 소소한 일화를 전한다. 다방에서 건빵과 별사탕을 나누어 먹던 일, 신문사 데스크와 논쟁을 벌이고 힘들어하던 시절, 선후배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던 기억이 모여 40년 전의 기형도 시인을 텍스트 밖으로 끄집어낸다. 영상물은 막연하게 묘사되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로서의 기형도를 더욱 구체화한다.

기형도 개인을 조명하는 것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시인으로 대표되는 그는 7, 80년대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 가난과 고통을 목도한 자신의 사적 경험을 글 속에 녹여낸 한편 일면의 희망과 따뜻함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유년기나 청년기의 에피소드는 시적 언어를 삶의 언어로 해석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기형도문학관에서 볼 수 있는 영상 [사진 = 김보관 기자]
기형도문학관 ‘우리 곁의 시’ 일부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처럼 또 하나의 생명이 부여된 기형도 시인의 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목소리로 재현되고 나아가 관객의 목소리로 재탄생한다. 기형도 문학관은 독해와 필사에 그치지 않고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생동감을 띤다. 해당 구역은 ‘우리 곁의 시’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함께하는 기형도 시를 부각한다. 이는 시인이 살아온 엄혹한 역사와 시적 계보도에 집중하며 과거에 머물러 있는 타 문학관과는 결이 다르다.

기형도 시 ‘안개’를 다룬 작업 [사진 = 김보관 기자]

 

기형도 시 ‘빈집’을 공간화한 작업 [사진 = 김보관 기자]

특히, 시 ‘안개’는 낱개의 단어로 해체되어 어두운 전시장 벽면을 떠돌며 기형도문학관을 찾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 구역 ‘안개의 강’에 마련된 텍스트 애니메이션과 영상물은 한 편의 시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시 ‘빈집’ 역시 실재하는 빈집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관객들은 직접 어두운 방 안에 드나들고 시에 등장한 장면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생전 기형도가 남긴 편지와 그림 [사진 = 김보관 기자]

전시장 끝에 마련된 기획 전시실에는 기형도 시인이 벗에게 쓴 편지와 메모, 직접 그린 캐리커처 등이 새로 공개되었다. 기형도문학관 기증자료전 ‘도로시를 위하여’와 더불어 공개된 대학 시절 사진 속 기형도 시인은 편안한 모습으로 문우들과 부대끼고 있다.

일련의 전시를 통해 기형도문학관은 죽은 자를 엄숙하게 기리는 공간이 아닌 책 속에서 만난 시인의 실제 모습과 삶을 흥미롭게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업적보다는 시가 창작된 배경과 과정을 드러내며 관객의 삶 속에서 문학을 생각해보게끔 하는 것이다.

기형도문학관 외부 전경 [사진 = 김보관 기자]

한편, 기형도문학관은 작년 ‘찾아가는 기형도문학관’을 운영하며 인근의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중고등학교와 대학 등에서 문학 동아리를 꾸려가는 등 활발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련의 프로그램은 뚜렷한 방향으로 현재의 청춘과 문학을 가리킨다.

문학관을 나설 무렵, 뒤편에 기형도 시길이 조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문학관을 둘러 기형도 문화공원에 발을 들인 나는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듬성듬성한 조형물과 쉽사리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공간 배치는 의문을 자아낼 뿐, 별다른 의미를 생성하지도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지도 못했다. 빈집에서 생동하던 기형도는 황망한 공원 어디에도 없었다. 

기형도 문화공원 [사진 = 김보관 기자]

뒤돌아 나오던 길 나는 전국 곳곳에 있는 수많은 문학관이 떠올랐다. 텅 빈 전시장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책자, 어딜 가나 비슷하게 놓여있는 어두운 빛의 작가 흉상. 때로 섬뜩하기까지 한 일부 문학관에는 생전 작가를 떠올릴 수 있는 상상의 여지 없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그친다. 이러한 과정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도 다소간 어려움을 낳는다.

작가의 생애를 단순히 나열해둔 연표와 알 듯 말 듯한 교과서적 설명만으로는 문학관을 찾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현대에 ‘문학’이 지닌 가치를 부여하고 사람들의 삶 속에 문학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문학관을 찾은 독자와 관객에게 ‘문학’과 ‘작가’를 얼마나 생동감 있게 표현할지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성을 확보하지 못한 문학관은 거대한 무덤 그 이상이 되기 힘들다. 문학적 자료와 유품을 나열하는 일은 2020년의 ‘문학’을 고민하게 할 수 없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기형도 시인이 다시금 살아날 수 있었던 기형도문학관이 보여준 고민의 흔적은 문학에 한 줌 숨결을 불어넣는 문학관을 향한 하나의 실마리다.

기형도문학관을 찾은 관람객이 남긴 엽서 [사진 = 김보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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