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선한 자의 눈빛이자 약한 자의 말벗이 되어야”

‘혼밥’은 더이상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혼밥’에 이은 혼술, 혼영, 혼행까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는 모습은 1인 가구가 훌쩍 늘어난 지금의 흔한 일상이다. 

하지만 혼자서 척척 많은 일들을 해내는이들도 문득 ‘우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반대로 매일같이 부대끼는 사람들 속에 지내다 하루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지는 날이 있다. 이처럼 혼자와 우리의 개념은 바늘과 실처럼 함께 움직이곤 한다.

여기, ‘혼자’이고 싶지만, 때로 ‘우리’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시집이 있다. 지역의 문화기획자로도 활동 중인 정훈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은 여리고 약한 존재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바탕으로 한다. 덥고 어수선한 요즘, 시인의 담담한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위안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훈교 시집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

1. 시집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데요. 표제작을 정한 계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간단히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네, 문장 그대로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로 읽을 수 있는데요. 혼자라는 건 결국 상대적인 것 같아요. 상대가 있으니 ‘혼자’라는 개념도 성립될 수 있는 거겠죠. 최근 몇 년 사이 사회 구조적 변화로 혼밥족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혼밥족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주로 2030인데요. 대개가 혼밥이 좋아서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불가피한 혼밥족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타인과 타인 사이에서, 나와 나 사이에서 결국은 모두가 혼자인 셈이죠.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시집에서 ‘혼밥’은 밥의 개념을 넘어, 생명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자취 생활을 했는데요. 대학교 그리고 이후 직장 다닐 때까지 지겹도록 혼밥을 한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인 밥은 앞으로도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거예요. 시인에게 있어 밥은 시가 될 테고요. 음악인에게 있어 밥은 음악이 되겠지요. 또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혼밥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요. 시집 제목을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표제작은 시집 인쇄 넘기기 불과 며칠 전에 정했습니다. 이전까지 여러 개의 표제작을 고민했는데, 최종적으로 뒤늦게 합류한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만이 살아남았습니다.

2.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는 두 번째 시집인데요. 선생님이 시를 쓰게 된 계기나 이에 얽힌 사연이 궁금합니다.

☞ 개인적으로는 2016년 가을 무렵 펴낸 시에세이집 『당신의 감성일기』 이후에 펴낸 세 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첫 시집 『또 하나의 입술』부터 계속 詩를 부여잡고 있는데, 늘 마주하고 있지만 늘 어렵네요.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장에 시 형식을 빌려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일기 검사를 하던 선생님이 제대로 써오라며 뭐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저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요. 나중에는 선생님께서 이해를 해주셔서 시 형식 일기를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가서도, 고등학교 가서도 계속 썼고요. 대학교 때도 그렇고 군대에 있을 때도 육군수첩에 시를 적곤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즈음에 처음으로 시를 제대로 써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학부 전공은 관광경영학인데, 부전공으로 문예창작학을 택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3. 시집은 크게 세 부로 나뉩니다. 시집 구성에 있어 특히 신경을 쓰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 제1부는 이미 낡은 것이 되고만 대상에 대한 연민과 서정을 노래했고요. 제2부는 현실에 대한 고민과 풍자를 담았습니다. 제3부는 존재론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필력이 부족해서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보여주기보다, 가급적 스치듯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내용이나 주제 의식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숨은 뜻이 너무 드러나면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겠다 싶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가 시를 가르칠 때 수강생들한테 우스갯소리로 “하고 싶은 말 세 번을 참으면, 詩를 구한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대놓고 했을 때, 시의 맛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시집은 따뜻한 서정을 추구하되, 아프고 슬픈 시대적 고민을 담담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던 듯합니다. 아마도 시인보호구역을 오랫동안 운영하다 보니 그런 생각들이 반영된 듯합니다. 우리의 生 뒤편에서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여리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제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의 시를 쓰고자 했습니다. 아래 허연 시인의 졸시집 표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부족한 마음을 대신 전하겠습니다.

“눈을 떠보면 어느새 묘한 지점에 와 있었다. 정훈교의 시를 읽는다는 건, 물결을 따라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흘러가는 일과 흡사하다. 넓게 퍼져있는 슬픔, 숨쉬 듯 내뱉는 독백, 태생적으로 몸에 장착된 듯한 외로움, 유리 조각 같은 삶의 액면들. 이런 것들이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의 서정에 올라타 그만의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일은 따뜻하고 충만하다. 정훈교의 서정은 끝없는 물결이다. 읽는 내내 그를 따라 떠내려갔다.”

4. 형식과 구성이 독특한 시들도 눈에 띕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와 시 세계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 아직 ‘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시’가 뭔지 알았다면 감히 더 이상은 쓰지 못했겠죠. 형식이든 구성이든 하고 싶은 대로 놀아 봤습니다. 텍스트 안에 있는 시와 텍스트 밖에 있는 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요. 아무튼 마음대로 휘적휘적하였습니다. 감히 ‘시’를 뭐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시에 대한 느낌은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시는 선한 자의 눈빛이어야 하고, 약한 자의 말벗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상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구도자의 자세도 필요하고요.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늘 선하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선한 눈빛으로 일상을 대하려고 하고요. 시인의 눈은 약하고, 슬프고, 여린 것들에 닿아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약한 자들이 건네는 말을 받아 적는 정도, 시인 스스로 화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말하는 바를 기록하고 받아 적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싶어요. 그저 열심히 세상을 읽고 질문하고, 반성하고, 함께 하는 마음. 시는 이런 지점인 것 같습니다.

정훈교 시인

5. 창작 활동과 더불어 시인보호구역을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문화공간을 꾸리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 지역에서 만나는 젊은 작가는 간혹 타지역에서 초대되는 작가를 만나는 정도입니다.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청년작가를 보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대로 가면 지역문학은 죽겠구나, 멸종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시인보호구역’으로 지었고요.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지켜야 하니까요. 역시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학적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경은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시인보호구역’이 지역문학의 마지막 보루라는 심정으로 열심히 버티는 것 밖에는 별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다만 버틸 때, 혼자가 아니라 더 많은 독자와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6. 시인보호구역에서 출간하는 ‘시보 시인선’의 두 번째 책인데요. 사전에 텀블벅 프로젝트를 올려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직접 편집이나 출판일을 맡기도 하시나요?

☞ 말씀처럼 시인보호구역은 책방이기도 하면서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보 시인선’은 개인적으로도 두 번째 시집이고요. ‘시보 시인선’으로도 두 번째 출간 도서라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시집은 김사람 시인의 ‘나는 당신과 아름다운 궁에서 살고 싶었을 뿐이다’입니다. 그리고 제가 두 번째이고요. 마침 다행스럽게도 텀블벅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을 주셨고, 이후에 대구문화재단 2020 예술가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출판비의 일부를 지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고도 고마운 일이지요. 

평소에는 제가 편집과 출판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출판 매니저분들과 출판 회의를 하고, 큰 틀에서 조언해주는 정도입니다. 물론 시인의 책을 낼 때는 제가 좀 더 개입해, 세세한 부분까지 논의하기도 하고요. 출판 매니저(한글, 이진리)분들이 너무 잘하시니 제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시인보호구역에서 펴내는 독립문학예술잡지 ≪시인 보호 구역≫ 또한 이 두 분의 매니저께서 잘해주고 계시고요. 그렇지만 이번 시집은 제 시집이기도 해서, 표지디자인은 물론 본문 디자인, 편집 등 많은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참여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지금은 저자이면서, 동시에 출판사 관계자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요즘 들어 이것저것 많은 것을 배우고 있네요.

7. 시인 정훈교와 문화기획자 정훈교 사이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시고 계실 듯합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 아, 처음에는 제가 문화기획자인지도 몰랐습니다. 2017년 대구문화재단 생활문화제 준비 단계에서 당시 문화기획자를 맡아 주시면 안 되겠냐고 찾아왔었는데, 그때 알았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제가 문화운동가, 문화기획자가 되어 있었던 거죠. 저의 신념과 행동을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문화운동가가 되었나 봅니다. 지자체 축제나 행사 때 총괄기획이나 감독을 맡기도 했고요. 

7월에는 두 번째 시집 북콘서트를 지역 책방 세 곳에서 열었더니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그리고 예전부터 매주 1회 시창작 수업과 소설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라디오 시인보호구역>도 있고요. 독립문학예술잡지 ≪시인 보호 구역≫ 다음 호 준비로 원고 청탁 중에 있습니다. 신작시로는 이병철, 최금진, 박지웅, 류성훈, 박은영, 기혁, 이소연, 박세미, 조율, 오은 시인 등의 시를 만날 것 같아요. 작가 인터뷰는 소설가 조해진, 시인 이현호의 활동을 담기로 했습니다. 또 일반 투고 및 장르문학 투고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잡지 활동 외에도 시청에 ‘협동조합 시인보호구역’으로 설립 허가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고요. 아마 기사가 나올 때쯤이면 허가증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을 겸한 시인보호구역 공식홈페이지가 8월 중에 새롭게 단장되어 소개될 예정입니다. 또한 지난 8월13일에는 “시인보호구역 문화살롱”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시인보호구역을 여러모로 도와주셨던 독자와 시민분들이 공식으로 단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시인보호구역은 이제 덜 외로울 것 같아요. 그리고 9월 초에는 1박2일로 문학여행이 잡혀 있고요. 개인적으로 도서관에 수업을 매주 나가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정신없는 하루가 바람처럼 스치는 중입니다. 늘 관심주셔서 감사합니다.

8. 이외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편하게 남겨주세요.

☞ 시인보호구역이 펴내는 독립문학예술잡지 《시인 보호 구역》이 벌써 통권 21호를 맞고 있습니다. 2016년에 시작해서 5년이 지난 2020년까지 무사히 살아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21호부터는 판형도 일반 문예지 규격이 아닌 일반 잡지 규격으로 바뀌고요. 전체 컬러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등단 작가의 작품도 싣고 있지만, 비등단 작가의 작품도 투고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필진으로 함께 했던 시인은 류근, 박준, 강성은, 박소란, 윤석정, 손택수, 김태형, 황종권, 김재근, 이현호, 손미, 권기덕, 길상호, 김사람, 김윤이, 허연, 박은정, 김준현, 문보영, 유용주, 신철규 등 많은 문인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번 10월에 출간될 통권 21호에는 장르문학이 새롭게 추가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시인보호구역 블로그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관심 있는 분들의 귀한 원고를 기다리겠습니다. 많은 응모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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