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쓰기’의 강수로 불리는 김네잎 시인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그의 시집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는 독특한 감각과 사유, 생생한 언어 구사로 실존적 원리를 탐색하며 삶의 진정성을 새롭게 그려냈다.

2016년 영주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2019년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을 수상한 김네잎 시인은 현재 열린시학의 편집 차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49가지에 증후군에 관한 시편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는 김네잎 시인의 첫 번째 시집으로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다시 개인으로 이어지며 개별 자아와 인간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한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길어낸 장면을 통해 존재의 내면과 외면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김네잎 시인 =사진 제공

Q.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로 독자들을 찾으셨습니다. 감회가 어떠신가요?

시집을 받아들고 ‘김네잎’이라는 저자 이름을 보는 순간,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몇 번을 넘어져서 다친 생채기가 아직 무릎에 남아 있거든요.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보살펴준 분들에게 책을 보내드리며 “저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Q. 처음 글을 쓰시게 된 계기나 관련한 추억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기억의 오류가 있겠지만 1998년으로 기억해요. 독자들이 투고한 시를 신달자 선생님이 선별하여 읽어주고 간단한 코멘트를 해 주던 라디오 심야방송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날도 일기를 쓰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나도 한 번 보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장 일기 대신 詩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나름대로 써서 투고했는데, 신달자 선생님이 제가 보낸 글을 읽어 셨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시를 읽기만 했지만요. 그게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Q. 시집의 목차 구성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진 것인가요?

1부 ‘나를 어디에 앉혀야 할지 쩔쩔맬 때’에서는 21세기 오늘을 살고 있는 나(화자)의 존재성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구성했습니다. 나아가 2부 ‘마주하는 동시에 낯설어지는’은 사람과 사람간의 미묘한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구요.
 
3부 ‘달팽이의 족적처럼 외로운 것을 본 적 있니?’에서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재를 살고 있는 개별자들을 미시적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한 후, 관련한 문제 의식을 갖고 쓴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싶었다고 할까요. 그 속에 저도 속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4부 ‘뒷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다정해지는 우리가’는 일상으로서의 현실이나 자연을 그대로 덤덤하게 묘사하는 대신 활유법이나 환유와 같은 수사적 장치 등을 통해 한 번 비틀어 표현하여 형상화한 작품들을 담았습니다.

사진제공=천년의 시작

시집 구성을 설명하는 그의 답변처럼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의 첫 장은 복싱과 텀블링, 뫼비우스 증후군과 비문증 등의 대상에서 시작한 인간 감정과 사유를 그려낸다. 김네잎 시인의 시편 속 화자는 벼랑 끝에서도 멈추지 않고 ‘허기의 무게를 견디’는 고독한 존재로 나타난다.

이러한 한 개인은 2부에서 ‘돌아오지 않’는 당신, ‘매번 떠나가’는 당신을 응시한다. 시인에게 관계란 만남과 이별의 양가감정을 함축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화자는 쉽게 좌절하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속 인물과 대상들은 ‘우리’로 존재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곤 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관계의 모순과 지속성을 함께 품고 있다.

그렇다면 김네잎 시인이 이번 시집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무엇일까? 뉴스페이퍼는 김네잎 시인에게 ‘문학’과 ‘시’가 가지는 의미를 묻고자 했다. 

Q. 이번 책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가 자유롭기를 바랐습니다. 말뚝에 매인 염소처럼 시가 같은 자리를 맴돌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구심력을 가진 시가 아니라 원심력을 가진 시가 되길 간구했어요. 튕겨 나가는 방향은 저조차도 몰라요. 그렇지만 반드시 감각적이고 생생한 언술을 통해서 튕겨 나가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관습적인 사유와 식상한 접근 방법에서 벗어나 저만의 시작법을 활용해 ‘낯설게 하기’를 구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시집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입니다.

정물화 속에 손을 집어넣고 사과 한 알을 꺼내 오려는데
손금을 들킨다
빨강으로부터
나의 구도는 자꾸 흔들리고

무언가를 깎을 때마다 간격이 생긴다는 말
흘러내리는 안부로
멀어지는 원근법으로 읽는다

-‘사과 한 알의 아침’ 중에서. 

Q. 선생님의 문학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시인님이 생각하시는 ‘문학’이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협화음적인, 동상이몽적인 현실을 다층적으로 표출해 낼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시는 사람의 감정과 본질을 형상화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에요. 저에게 있어서 시는 언어로 소통하는 미적 대화입니다.

Q.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란 어떤 것일까요?

알베르 카뮈가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 이렇게 쓰죠.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저는 빵만큼이나 詩가 필요했습니다. 바게트는 빵 중에서 가장 단순한 재료로 만들지만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군요. 소량의 이스트만 넣고 오랜 시간 천천히 발효시켜야만 밀가루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바게트는 어떤 빵보다도 밀가루의 재질, 정확하고 일관된 온도와 습도로 발효할 수 있는 장비, 완벽하게 수분을 날려 구울 수 있는 오븐 등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엔 심플한 장르 같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와 부합하는 가장 적절한 정황과 시어와 어법 등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시가 매력적인 것 같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담백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풍미가 듬뿍 묻어나는 깊은 맛을 전달해 주니까요. 

제가 지향하는 시세계는 바게트처럼 겉으로는 담백하고 건조해 보이지만 안쪽엔 정서적 풍미를 가득 품고 있는 그런 시에요. 처음 읽었을 땐 딱딱한 느낌이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시를 지향하고 있는 셈이죠.

김네잎 시인
김네잎 시인 =사진제공

우리는 ‘시를 무진장 좋아한다’는 김네잎 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시’가 수행해온 오랜 역할과 기능에 대해 다시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이를 풍미있게 그려내는 일.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야기이다.

Q.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에서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달라’라고 말할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시집에서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론적 몸짓과 미묘한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포지션과 ‘머뭇거림’이었어요.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은 늘 험난했지만, 기쁘게 시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진정성을 구현하려고 했는데 잘 드러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착지를 뒤적이다 마지막 편지를 쓴다 마지막이 마지막으로 남을 때까지 쓴다 나를 전혀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는 너에게

삼 일 전에 보낸 안부가 어제 도착한다 너는 나를 뜯지 않는다 흔한 통보도 없이 너는 멀어졌고 난 네가 떠난 지점으로부터 무작정 흘러왔다 너의 안부는 고체처럼 딱딱하고 나의 안부는 젤리처럼 물컹하다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기미조차 미약하여 난 비행非行이 너무나 쉽다

-‘맹목’ 중에서.

Q. 독자들이 이번 시집을 통해 느끼거나 얻어갔으면 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독자에게 지금 결핍덩어리인 나와 부딪치고 있는 이 모순덩어리의 현실이 혼자만이 겪는 혼란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 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공허하고 추운 사람이 제 시를 읽는다면 ‘아, 나 말고 다른 누군가도 공허하고 춥구나! 그런데 용기를 내고 있구나!’하고 알아봐 준다면 좋겠습니다. 

Q. 이외에 추가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건네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편히 남겨주세요.

저도 모르게 언어미학을 향한 갈증과 결핍이 제 안에 도사리고 있더라고요. 뒤늦게 공부를 한 것도, 시에 푹 빠진 것도 다 제 안에서 꿈틀거리는 고독한 자아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자아의 힘으로 뒤늦게 데뷔를 하고 치열하게 시를 썼습니다. 

앞으로 저의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당장 내년쯤에는 ‘걸어 다니는 시체 증후군Walking Corpse syndrome’, ‘고슴도치 딜레마 증후군 Hedgehog's Dilemma Syndrome’ 등 49가지의 흥미로운 증후군과 그와 연계된 詩 49편을 실은 『현대인의 마음에 깃든 49가지의 문양』이라는 심리탐구서를 낼 예정입니다. 이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하나하나 이루어가고 싶습니다. 

무명시인이지만 ‘김네잎’이란 이름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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