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의 소통을 염두에 둔 시가 좋은 시에 가까워”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시와 희곡, 동화와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삶의 내밀한 모습들을 그려내는 박상률 시인의 시집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가 발간됐다. 때로는 눈물을,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는 추석 연휴 따듯한 위로와 기쁨은 물론 풍자와 해학의 통쾌함 역시 담뿍 안겨준다.

시집 “진도아리랑”, “하늘산 땅골 이야기”, 소설 “봄바람” 등 유수한 작품을 남긴 박상률 시인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언어 대신 위트있는 장면 묘사와 친근감 있는 언어 사용 등을 통해 생생한 삶의 찰나들을 포착했다. 뉴스페이퍼는 무겁고 우울한 소식이 몰려오는 지금, 예리한 통찰과 뭉근한 표현력으로 독자들 곁을 찾은 박상률 시인을 만나보았다.

(선생님 영상)

Q. 시집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로 독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의 제목과 내용이 인상 깊은데요. 선정 계기나 관련한 일화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개새끼’라는 말은 욕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개의 처지에서 보면 ‘사람 새끼’가 욕 아닐까요? 개보다 못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니까요. 사람 자리에서 보면 개보다 못한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개의 자리에서 보면 사람보다 못한 개가 많겠지요! 

시에 쓴 대로 좌회전하려고 서 있는데 내 차 옆으로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야, 이 개새끼야!’ 그래요. 60대인 내가 개새끼이면 40대로 보이는 그는 마땅히 개손자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불러주었더니, 그 운전자도 머쓱했는지 차창을 올리고 말더군요. 그는 적당히 유턴하고 싶었는데 내 차가 앞에서 어정거려 못 했대요. 그 차로는 유턴하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고향 진도에서 어린 시절 같이 지내던 개 이야기를 요즘 소설이나 동화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제 식으로 말하자면 ‘개장수’를 하고 있지요. 마침 길에서 개새끼가 개손자를 만났어요! 그래서 시집 제목으로까지 썼지요.

Q. 목차별로 엮인 시들의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목차를 구성하실 때 특히 유념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떠한 기준으로 나누게 되셨나요?

내 가슴 속에 있는 느낌이나 서정성, 타인을 만나면서 겪은 일, 세상 속에 살면서 부조리하게 여겨지는 일, 그리고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일어나는 내 감정이나 어머니의 말씀 등을 큰 덩어리로 해서 나누었습니다.

시집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사진 = 김보관 기자]

Q. 구체어와 구어, 지역어를 사용한 시편들이 특히 눈에 띕니다. 추상어와 문어, 표준어 등의 언어보다 일상의 언어를 지향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나만 해도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표준어 교육을 받아서, 그걸 바탕으로 한 문어와 추상어가 구사하기엔 더 쉽습니다. 하지만 문학에서는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말이 ‘표준어’이지요. 그래서 등장인물의 사투리, 입말, 독특한 말투, 내가 어려서부터 익힌 진도 말 등을 기회 되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시든 소설이는 희곡이든 추상적인 언어보다도 구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쓸법한 말을 쓰는 게 독자들에게 더 잘 와닿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글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언어를 쓰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요. 이 부분에서는 서울말만 쓸 수 있는 경우보다는 조금 더 유리한 입장인 것 같기도 합니다.

Q. 어머니와 고향에 관한 시도 즐겨 등장합니다. 시인님께 어머니 그리고 고향은 어떤 존재인가요?

출판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우스갯소리로 고향 팔아먹고 산다고 합니다. 진도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쩌면 작가나 시인 아닌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만큼 고향은 내 문학의 원천이지요. 진도의 자연환경을 비롯해, 진도아리랑, 강강수월래, 판소리, 남도 들노래, 뱃노래, 씻김굿 등을 비롯해 충제, 당산제, 장례풍습, 기우제 등 우리 또래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겪지 못한 것을 어려서부터 몸에 밸 정도로 겪었지요. 그러니 자연스레 내뱉을 수 있지요. 

최근에 노모를 간병하느라 가까이하고 있어서 어머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사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만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 심지어는 개에게도 가닿습니다.

Q. ‘똥간과 천당’, ‘저승에서 받은 전화’, ‘지하철에서 생긴 일’ 등 풍자와 해학의 미를 살려 소소한 웃음을 짓게 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한 대화체도 인상 깊은데요. 주로 시적 영감을 어디에서 받으시나요?

세상 천지에 이야기가 널려 있습니다. 귀를 열고 눈을 열어놓으면 온통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걸 잘 수습하여 알맞은 그릇에(문학 장르) 담아 내놓을 뿐입니다. 이번 시집엔 소설의 대화체, 희곡의 괄호 지문 등을 적극 활용했지요.

완도교육지원청 관내 2개 학교에 강연 있어 아침 일찍 완도읍 버스 차부에 도착하여 화장실에 들렀더니 옆 칸 사람의 전화기에서 전화 건 사람 목소리가 내 칸으로 넘어왔다.

“어딘가?”
“똥간이시, 아니 천당이시!”
“일 다 보고 나믄 전화하게.”
“그냥 말하게. 천당이란꼐 그라네. 말해 다 듣고 있은께.”
“똥 누는 데다만 힘 써. 내 말까지 들을라고 신경 쓰지 말고.”
“시방 똥 잘 누고 있단께. 워매 시원한 거! 천당 간 것 같어.”
“자네가 언제 천당 가봤다고 시원하다 한가?”
“똥 잘 누면 고것이 천당이제! 자네 아적도 고걸 모르는가?”
“모르기는…… 나도 아네. 똥 잘 누는 것이 천당 간 것하고 막상막하일 것이네!”

두 사람은 정작 용건은 나뉘 않고 똥 이야기만, 아니 천당 이야기만 했다. 나는 그새 볼일을 다 보고 나와버려서 뒷이야기를 더 듣지 못한 게 아쉬웠다.

-박상률 시인의 ‘똥간과 천당’ 전문.

Q. 유쾌한 언어지만,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날카로운 시도 돋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는 웃음 속에 눈물이나 칼을 감추기도 하고,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동만 하거나 지적만 해서는 문학이 아니지요. 그런 건 거의 칼럼 글이나 도덕 교과서가 되고 맙니다.

박상률 시인 [사진 = 이민우 기자]

Q. 그렇다면 시인님께 ‘시’와 ‘문학’은 어떤 것인가요? 글을 쓰게 된 계기와 문학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시인의 촉수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예민합니다. 잠수함의 토끼나 갱 속의 카나리아 같은 것이지요. 그런 촉수가 나와 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쓴 자신도 모르고, 읽는 독자도 모르는 시는 연구 자료이긴 해도 문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뭐니 뭐니 해도 소통이지요. 흔히 쉬운 시 어려운 시가 있는 게 아니고, 좋은 시 나쁜 시가 있다고 얘기하지만,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시는 나쁜 시일 가능성이 크지요!

Q. 여러 작품 중에서 다가오는 연휴에 추천하고 싶은 한 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선인장’이라는 시를 음미하면서 어려움에 빠진 자기 자신에 대해 지금보다 더 깊은 성찰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온몸이 가렵다
땀구멍마다 뿔이 나고 있다
선인장 가시 같은 뿔이 옷을 뚫고 나온다
내가 선인장이 되고 있나 보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온몸이 처진다
발밑엔 온통 모래가 날아와 쌓이고
비는 통 오지 않는다
―목이 탄다
나는 얼마나 더 납작하고
가늘어져야 하는가

-박상률 시인의 ‘선인장’ 전문.

Q. 이번 시집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를 통해 ‘이것 하나만은 전하고 싶다’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는 시시해서 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시가 웃음도 주고, 새로운 안목도 갖추게 하고, 나아가 자신을 성찰하게까지 하니 시가 결코 시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Q. 이외에 추석 인사와 함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편히 남겨주세요.

시방 코로나라는 역병이 포도시 잡혀가고 있는 중이지라우. 정치적 견해가 같든 다르든 지발이지 방역당국의 말 좀 들으믄 오죽 좋을까! 무덤 속의 조상들도 이해허실 건께 고향에 가들 말고 방구석지에서 밀린 잠이나 실컷 자불쇼! 근디 꼭 못난 종자들 있단 말이요. 고향에는 안 간다 해놓구서 얼씨구나 놀러 간디야. 베락 맞을 종자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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