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이웃의 마음으로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이별과 사회적 재난을 목도했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와 엄습한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아픔 속에 지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시대에 소설은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긴밀히 가닿을 수 있는 문학 장르 중 하나다. 뉴스페이퍼는 문학의 계절 가을을 맞아 꾸준히 사회적 아픔과 약자들의 삶에 손을 뻗어 온 서성란 소설집을 펼쳐보았다. 모든 것이 영글어 가는 동시에 저물어 가는 시간. 우리는 잠시 멈추어 무심코 스쳐 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영상)

Q. 소설집 “유채” 발간 이후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소회를 들려주세요.

저는 소설을 쓰는 서성란입니다. 199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서 스무 해가 넘도록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올여름 두 달 동안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출간할 장편을 마무리 짓고 산문집 원고를 정리하고 단편을 썼습니다. 9월에 집으로 돌아와서 밀린 집안일을 하고 퇴고 작업을 시작했고요.

책이 나오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읽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나는 기어이 소설을 쓰고 책을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마 한두 달은 어둠 속에서 지내게 될 것 같습니다. 

Q.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학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세월호나 국가적 재난(코로나) 이후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인간의 삶은 재난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벌거벗은 채 세상에 던져졌던 날부터 고통의 시작이니까요. 저는 저를 고통에 빠져들게 했던 할머니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데뷔했지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청소년기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문학을 모르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집니다.

문학은 저에게 견뎌낼 수 있는 힘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아파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문학에 관한 담론이 실제 작품 창작으로 충분히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많은 작가들이 고민하면서 창작에 열중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장은 상대적으로 적었지 않나 싶어요. 더 만나서 얘기할 그런 기회가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물론 416 이후로 젊은 작가들이 계속 낭독회를 열고 있어요. 저도 한번 참여했고요. 여기에서 나아가 토론회든 조금 더 발전시켰으면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 모임이나 집단들이 더 많이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서성란 소설가 [사진 = 이민우 기자]
서성란 소설가 [사진 = 이민우 기자]

Q. 누군가와의 이별이란 건 죽은 이의 몫이 아니라 산자의 몫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남은 사람의 삶이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여러 명의 작가들과 함께 416 단원고 약전 작업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의 짧은 생을 담은 약전을 쓰고 원고를 넘기고 책이 나왔는데 어쩐 일인지 그 학생의 목소리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에 붙들려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사진을 보았거든요. 갓난아기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모습을 앨범으로 보았거든요.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고요.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몇 날 며칠을 내 곁에 머물러 있던 아이가 어디론가 떠나버렸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단편 <유채>와 장편을 썼습니다. 3년 가까이 그 장편에 매달렸습니다.

Q. 선생님의 소설 속에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이 다루어지곤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란 격리되어 숨겨진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전달하고 싶은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을 전달하고 싶으셨나요?

제가 첫 장편소설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에서 자폐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썼어요. 그 이야기를 쓴 계기는 제 친구와 그의 아들이에요. 옆집에 사는 세 살짜리 아이를 제가 굉장히 이뻐 했어요. 그 애를 좋아하다 보니까 좀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어떤 발달장애 어머니들의 모임에서 나가고 그랬거든요. 아이도 없었는데 말예요. 그분들하고 친해지며 바자회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냥 놀지만 말고 써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 소설을 썼어요.

그리고 “풍년식당 레시피”는 다운증후군에 관한 이야기죠. 그 이야기를 쓸 때도 그때 제가 친하게 지냈던 그 어머니들이 영감을 많이 주셨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써왔는데, 다 지나와서 보니까 ‘내가 이렇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게 저는 어떤 특별한 의식을 가지고 쓴 게 아니라 ‘그들을 좀 가까이 보고 싶다’라는 그런 생각 때문에 시작이 된 거예요.

소설집 “유채” [사진 = 김보관 기자]

Q. ‘좋은 어머니들’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을 둔 어머니의 캐릭터가 눈에 띕니다. 소설 속 ‘어머니’의 모습을 그림에 있어 어떤 생각을 염두에 두셨나요?

‘좋은 어머니들’에서는 남편의 실종된 후 원치 않았던 임신(폭력으로 인한 임신이고 낙태를 시도하지만 실패)을 한 어머가 나와요. 그는 장애를 갖게 된 둘째 아들에게 무심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모성은 결코 무조건적이지 않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모습 이면에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본성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섬이라는 공간 역시 자식을 양육해야 하는 의무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외롭고 고독한 나이든 어머니의 모습을 부각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무성’으로 느끼곤 합니다. 많은 사람이 어머니가 하나의 ‘여성’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고 있는 듯해요. 저도 이제 어머니로 살고 있지만, 그 어머니라는 것이 어떤 무서움을 막 내뿜는 존재도 아니고요. 저는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어머니임과 동시에 갖고 있는 한 개인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계속 쓰려고 준비를 중인 게 있는데요. 최근에 언론에서 영아 살해나 아동학대가 자주 보도되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무작정 여성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왜 그러는 것인지’에 대해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그 여성들에 대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의 독자들이 원하는 그런 따뜻한 엄마보다는 그런 여성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Q. 이외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편히 남겨주세요. 

저는 집에서 원고를 고치고 책을 읽으면서 추석 연휴를 보낼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처럼 집에서 조용히 추석을 보낼 것 같습니다. 

지치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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