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의사, 교수, 기자 등의 패널과 함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기

제16회 서울와북페스티벌 개막 토크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제16회 서울와북페스티벌 개막 토크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지난 9일 제16회 서울와북페스티벌 개막식이 온라인 생중계로 개최됐다. 비대면 사회에 맞추어 온라인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개막식에서는 네 명의 패널들이 참석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고 코로나 시대의 상황과 각자의 역할에 대해 고찰했다.

사회를 맡은 김만권 정치철학자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전염병이 순식간에 멈춤 버튼을 눌렀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규모,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상을 덮치고 있다.”며 “불안하고 잘 알지 못하는 시간, 희망이 멈춘 시간을 건너가는 방법을 책 속에서 찾고자 한다.”는 말로 카뮈의 “페스트”와 코로나19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사진 출처 = 민음사]
[사진 출처 = 민음사]

카뮈의 “페스트”는 질병과 바이러스의 공포를 대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여러 방식으로 표출되는 인간의 본성을 그려낸 소설이다. 주요 인물로는 의사인 리우, 신문기자인 랑베르, 신부인 파늘루, 시청직원인 그랑, 자율보건대를 조직하는 타루 등이 있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그 어떤 인물도 영웅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막 토크에 참석한 이들은 각각의 일선에 일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며 전염병 시대의 의료, 종교, 행정, 시민 등을 생각해보았다.

김만권 정치철학자와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사진 = 김보관 기자]
김만권 정치철학자와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사진 = 김보관 기자]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개막 토크의 패널로 참여한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는 작중 의사로 등장하는 리우를 분석하기에 앞서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인류는 의학 역사에서 많은 팬데믹 만나왔고 이에 맞서 싸운 기록들이 있다.”며 “코로나19라는 의외의 바이러스에 직면한 현재, 우리는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담은 소설 “페스트”에서 보다 정확한 거울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리우는 평범한 보통의 인물”이라고 운을 뗀 남궁인 의사는 “별다르지 않은 계기로 의사가 되어 어떠한 헌신적 모습도 보이지 않는” 리우가 “서술자이자 의사로서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에 집중했다. 그는 “페스트는 끝없는 패배를 암시하지만, 계속 무언가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평범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던 리우가 영웅주의에를 경계하며 변화하는 모습에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 진정한 휴머니즘을 발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작중 리우는 무심하고 건조한 캐릭터에서 분노, 우정, 슬픔 등을 표현하는 인물로 거듭나고 점차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변화한다. 이를 두고 남궁인 의사는 “의사의 입장이 현실적으로 반영되어있어 놀랐다. 우리는 영웅이라서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보니 이 일을 맡았을 뿐이고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이 된 것뿐이다. 리우가 아닌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담담한 직업의식을 드러냈다. 이는 ‘의사’를 ‘영웅’이나 대단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대신 ‘평범한 개인’으로 묘사한 카뮈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허윤정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허윤정 교수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어 전 국회의원 허윤정 교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주목을 받는 검사관과 방역 담당자 등의 인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백신’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았다. 허윤정 교수는 “백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백신을 독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하지만 치료제는 빨라야 내년에 나오고, 그때의 코로나는 또 다른 모양을 가질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앞으로 영원히 ‘쫓기고 쫓는 관계’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회 비상경제대책본부 의료기관지원TF 팀장 등을 역임한 그는 “이렇게 급하게 만드는 백신에서 어린아이 임상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백신이 나와도 어린아이에게 쓸 수 없다.”며 “젠더, 소수자, 노인, 아동 등 코로나19로 재확립된 이슈도 무시하지 않고 꼼꼼히 챙기면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윤정 교수는 더불어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라는 표현과 함께 “안타까운 말이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없다. 계속해서 달라지는 코로나의 얼굴에 대응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의 전망과 같이 코로나 시대가 이어진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각각의 자리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개막 토크의 주제 도서인 “페스트”는 이에 대한 몇 가지 실마리를 내포하고 있다.

김혜경 기자 [사진 = 김보관 기자]
김혜경 기자 [사진 = 김보관 기자]

김혜경 기자는 언론인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랑베르라는 인물을 통해 재난 상황 속 언론의 역할을 떠올렸다. 김혜경 기자는 “보통의 기자라면 새로운 상황에 신속히 적응해 최대한 빠르게 정확한 정보 전달하려고 애써야 하지만, 랑베르는 되레 ‘가장 기자 같지 않은 기자’의 전형을 보여준다.”며 “페스트” 속 언론에 대한 불신과 비판 의식을 짚어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한 코로나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 초기 우리 사회 역시 각종 가짜뉴스와 자극적인 보도로 혼란을 빚었다. 김혜경 기자는 “잘못된 보도 중 제일 대처하기 힘든 게 가짜뉴스”라며 점점 교묘해지고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가짜뉴스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또한,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국가 재난 사태 속 가짜뉴스를 경계하기 위해서 “스스로 정보를 공유할 때 ‘동의’해서 하는 건지, ‘사실’임을 알고 있어서 하는 건지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검증된 기관의 정보를 거듭 확인해보거나 의심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혜경 기자는 해외의 사례를 떠올리며 “특히 권위 있는 주체가 가짜뉴스를 퍼트렸을 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의 힘이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올바른 언론의 역할은 랑베르가 아닌 서술자 리우에서 찾을 수 있다. “페스트” 본문에서 리우는 “객관적인 증인의 어조로 기록하고자 했”으며 “시민들의 대부분을 직접 만나봤”고 “수집한 내용을 되도록 신중한 태도로 전달하고자 했다”는 등의 내용을 전한다. 김혜경 기자는 해당 대목이 “감염병 시대의 기자들이 특히나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김응교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김응교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신학을 공부한 김응교 시인은 랑베르 신부를 통해 종교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그는 “랑베르의 증세는 한국 기독교와 유사하다. 원죄와 공포감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그러나 예수는 원죄가 아닌 원복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비판했다. 김응교 시인은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하며 “땅과 현실에 밀접해 있지 않은 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첨언했다.

그에 따르면, 초기 징벌적인 설교를 했던 랑베르 신부는 네 번의 큰 변화를 맞는다. 신부는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공동체를 깨닫고 ‘당신들’과 ‘나’를 구분하던 태도에서 ‘우리’로 나아간다. 가장 마지막 변화는 ‘실천’으로 가장 힘든 곳에서 봉사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김응교 시인은 이를 두고 “대단히 성서적인 지점”이라며 재난 상황에서의 대처법은 ‘연대’와 ‘공동선’임을 직시했다.

“고전이어서, 베스트셀러여서가 아닌 카뮈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했나”를 궁금해하며 읽길 바란다.”는 김응교 시인은 소설에 등장하는 의료계 종사자, 언론계, 학계, 공무원, 브루주아, 서민, 사기꾼 등의 인물이 어떻게 연대해 세상을 변화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과서”와 같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연대는 “페스트”의 타루가 모집한 자원보건대에 각각의 인물들이 모두 참여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남궁인 의사는 이를 ‘인류애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건강한 개개인이 마스크와 손 씻기 등 방역에 일조하는 점을 예시로 들었다. 이러한 인류애적 태도와 시선은 인간 본성에 내재 되어 있다는 관점이다. 허윤정 교수 역시 “감염병이 시민들의 연대의식을 만들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로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제16회 서울와북페스티벌 개막 토크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제16회 서울와북페스티벌 개막 토크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개막 토크 말미 사회자가 던진 ‘우리에게 코로나 시대란?’이라는 질문에는 ‘일상’이 주요 키워드였다. 김혜경 기자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라고 답했으며 김응교 시인 역시 “일상을 건강히 살면 그것이 성실”이라는 말로 코로나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짚어보게 했다.

한편, 코로나 시대가 남긴 과제도 적지 않다. 남궁인 의사가 인용한 “페스트” 속 문장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처럼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가 일, 사랑,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나아가 한 도시를 꾸려나가는 방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페스트”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서 그 방향을 찾을 수도, 과거의 역사 속에서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이 사태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상호 신뢰와 연대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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