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발표하는 김춘규 발제자 [사진제공 = 장우원 시인]
10월 31일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발표하는 김춘규 발제자 [사진제공 = 장우원 시인]

 

1. 일제 협력에 대한 변명의 논리

해방 후 김동인이 발표한 단편소설 '학병수첩'(<태양>, 1946)에는 “조선의 해방은 미국이 준 바도 아니요, 중국이 준 바도 아니요, 또는 소련이 준 바도 아니요, 하늘의 선물이다.”1)라는 해방에 대한 서술자의 평이 달려있다. 당시 전쟁의 흐름이나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관계 등을 전혀 고려치 않고, 혹은 무시해버린 채 해방의 공을 ‘하늘의 덕’으로 돌려버리는 진술은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희생과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에게 조선의 해방은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며, 세계사 속에 조선은 주연도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로, “조선은 가만 앉아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것”2)일 뿐이다.

해방에 대한 김동인의 이러한 인식은 상당히 독특하다. 대개 이 시기 창작된 작품들은 해방에 대한 기쁨, 해방 이후 체제에 대한 우려 혹은 나라를 빼앗겼던 민족사에 대한 반성으로 나뉜다. 혹은 친일의 이력이 있는 문인들의 경우, 자기변명이나 반성, 당혹감 등을 표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조선의 해방이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닌 본인들의 일이라는 공통감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조선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하더라도 조선인,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 아래에서 해방은 ‘우리’라는 공동체의 해방이며, 사건에 대한 주체로서의 관점과 가치 평가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김동인의 태도는 '감자'의 서술자가 복녀의 삶을 묘사하는 태도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소설 '반역자'(<백민>, 1946.10)의 주인공인 ‘오이배(吳而陪)’는 소설가 이광수의 삶을 모티프로 한 인물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상황에서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아왔으며 민족의 이익을 위해 일제에 협력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 작품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을 민족을 위한 행위로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문제는 ‘대리 변명’을 해주고 있는 김동인 역시 명백한 친일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친일의 혐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김동인이 누군가의 상황을 ‘동정’하고 ‘변명’까지 해주는 것은 친일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김동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즉, ‘오이배’를 바라보는 서술자의 태도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공감’이 아닌 자신과 관계없는 어려움에 놓인 사람에 대한 ‘동정’의 표출인 것이다.

이러한 ‘거리두기’, 혹은 자신의 과거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회피’의 태도는 이어지는 작품 '망국인기'(<백민>, 1947.3)와 '속망국인기'(<백민>, 1948.3)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스스로의 위치를 ‘한낱 가난한 소설가’로 축소시킴으로써 민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전략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소설가적 업적에 대해 “조선문학을 건설한다든가, 문학도를 위해서도 아니었소. 그저 하고 싶은 일이니 하였을 뿐, 무슨 다른 욕구라든가 의도 혹은 목표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었”3)다고 회고함으로써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민족적 책임뿐만 아니라, 조선 문학의 선구자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마땅히 가졌을 책임마저 벗어버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속망국인기'와 같은 시기에 발표했던 '춘원의 '나''(<신천지>, 1948.3)라는 글에서는 '반역자'에서 보여줬던 태도와 달리 이광수의 친일과 해방 이후의 행보를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춘원의 필치에 진실미가 없”으며 “춘원의 무조건 사죄”만이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할 방법이라 말한다.4) 이광수의 ‘민족의 지도자’적 면모를 강조함으로써 민족의 기대를 저버린 책임을 요구하고 본인은 그 책임으로부터 멀어지는 김동인의 태도5)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광수에 대한 비판의 논리는 그대로 김동인 자신에게 돌아오는 자가당착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광수에게 ‘무조건 사죄’를 요구한 김동인은 정작 자신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가 없다. 이를 미루어 판단했을 때, 김동인은 자신이 친일 행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자신은 시대의 흐름과 강요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집을 구하지 못해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는 ‘가난한 소설가’로 자신의 신세를 여러 차례 묘사한 바 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과 같은 ‘약자’의 친일은 자발적 친일이 아니요, 그렇기에 책임을 질 수도, 책임을 질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자/약자’라는 키워드는 김동인의 소설 초기부터 꾸준히 이어져 오던 주제 의식이다. 첫 소설인 '약한 자의 슬픔'(<창조>, 1919.2-3) 역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 하는 인물의 심리를 그린 작품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창작론에 있어서 ‘강자’의 논리를 펼치기도 했는데, 이른바 ‘인형조종술’이라 불리는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지배가 그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김동인에게 있어서 ‘강자’와 ‘약자’가 갖는 의미를 추적하고 김동인이 스스로를 강자라 여기던 시기부터 약자로 규정하기까지의 변모 과정을 다루도록 하겠다. 이에 따라 일제에 대한 협력은 불가피한 것이 되는데, 그것은 강자(일제)의 지배 아래에 있는 약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약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논할 수 없다는 일종의 면책권을 가지고 해방 후 일제 협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가 된다.


2. ‘강자-약자’의 세계관과 소설적 반영

널리 알려졌다시피 김동인은 부유한 집안의 차남으로, 그의 오만한 성격은 여러 자전적 일화 뿐 아니라 그를 직접 겪었던 문인들의 후기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난다. 타 작가들에 대한 김동인의 소설평에는 언제나 스스로를 이광수와 동렬에 놓는 동시에 자신만한 작가가 조선에 나타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할 정도로 문학에 대한 자부심 또한 높았다. “인재가 결핍한 이 땅은 소설도(小說道) 생긴지 30년, 여와 동렬까지 이른 사람은 혹 있겠지만 여를 압두(壓頭)하고 올라선 사람은 아직 기억에 없다”6)는 다소 오만한 자부심은 김동인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여일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기질을 가진 김동인은 역사 속의 인물 중에서 중국의 진시황을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며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큰 사람’으로 꼽는다.7) 이와 함께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교하며 “톨스토이는, 자기가 창조한 자기의 세계를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기가 조종하며, 그것이 가짜든 진짜든 거기에 만족”8)했다는 점에서 더 위대한 예술가라 규정한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물론 개인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톨스토이는 비록 소설이라는 허구적 세계를 지배했으나, 그 세계가 ‘가짜든 진짜든’ 김동인에게는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예술지상주의자인 김동인에게 있어서 예술의 세계 역시 진짜 세계나 마찬가지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지배를 강자의 척도로 삼고 있는 김동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에서 강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일이 드물다. '마음이 약한 자여', '배따라기', '눈을 겨우 뜰 때', '감자' 등은 모두 ‘약자’라 여겨지는 인물들을 다루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세계에 의해, 혹은 운명에 의해 휘둘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약한 자의 슬픔'에서 주인공인 강엘리자베트는 성관계를 요구하는 K남작을 분명하게 거절하지 못 할 뿐 아니라 이후로도 상황에 끌려 다니며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재판을 걸어보지만 이 역시 권력자들의 논리에 의해 좌절된다.

'배따라기'와 '감자'에서 주인공들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 ‘운명’에 의해 약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여기서 운명은 K남작과 달리 선도 악도 아니며 그렇기에 어떠한 가치를 가진 권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어떠한 힘’이라는 점에서 강자의 지위를 갖는다. 김동인의 소설들에서 선악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데, '감자'의 ‘복녀’는 사실상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蓄財)를 했기 때문에 도덕적 처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약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약자의 운명적 결말에 이른 것이다. 이는 물론 계급적 한계를 드러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맥락으로 읽을 수도 없다.

한편, 강자의 유형이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유서'(<영대>, 1924.8~1925.1)를 들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나’)이 후원해주는 화가 O가 부인의 외도로 인해 괴로워하자 ‘나’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해결 방법이란 것이 O의 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외도가 화가 O의 오해였으며 자신은 결백을 밝히기 위해 자살한다는 유서를 쓰게 만든 후 실제로 부인을 살해해버리는 방식이다. 상당히 경쾌한 어조로 서술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행위는 김동인의 창작방법론인 ‘인형조종술’을 방불케 한다. 후에 김동인은 “나는 어떤 때에 우연히 그 '유서' 가운데서 강렬한 동인미를 발견하였다.”9)고 회고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웨인 부스는 텍스트를 통해서 밝혀낼 수 있는 최상급의 권력 주체로서 ‘암시된 저자’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그것은 명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서술자와 구분되며, 현실 세계의 창작자인 작가와도 구분된다. 또한 이 ‘암시된 저자’는 필연적으로 윤리적일 수밖에 없는데, 수많은 텍스트는 결과적으로 독자에게 윤리적인 교훈을 제공10)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동인의 여러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암시된 저자’는 이러한 윤리적 교훈과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유서'의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에게 갖는 태도는 작가 김동인이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즉, 김동인은 소설 속에서 사건의 배후에 있는 어떤 것, 예컨대 '배따라기'의 ‘운명’, '감자'의 ‘가난’과 같이 인간의 삶을 조건 짓고 결정하는 신적인 존재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목숨'(<창조>, 1921.1)이라는 작품은 불치병에 걸린 ‘M’이란 인물의 좌절을 다루다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 병이 사실은 오진이었으며, 그의 건강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말로 끝난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한 인간이 ‘우연(실수)’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생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처럼 김동인이 약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은 사실상 독자로 하여금 인물의 삶을 부각시키기보다 그 배후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 주로 운명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작품들의 진정한 주인공은 인물들의 삶을 조종하는 어떤 존재다. 그것은 운명을 비롯하여 우연, 착각, 배후 세력, 환경 등 여러 방식으로 소설 속에서 구체화된다. 이들은 독자들에게 윤리적 교훈을 제공한다고 보기 어려운데, 텍스트를 통해 떠오르는 암시된 저자의 의도는 윤리적인 가치의 추구가 아닌 인물들의 삶을 조종하는 존재의 ‘확인’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드러나는 암시된 저자가 반드시 작가인 김동인과 동일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속단하긴 어렵다. 텍스트에 드러나는 욕망과 작가의 욕망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암시된 저자는 김동인이 추구하는 ‘강자’로서의 인생관, 창작관, 기질에 비교해보았을 때 상동성이 있다고 주장할 만하다. 그리고 '유서'의 주인공 ‘K’(‘나’의 이름은 K다)는 김동인의 욕망이자 창작방법론이며 암시된 저자, 암시된 저자의 의도, 운명, 환경, 우연, 제도 그리고 이른바 ‘동인미(美)’가 육화된 존재다.

강자에 의한 세계의 지배, 그리고 그 지배에 따를 수밖에 없는 약자의 삶은 김동인의 소설 전반에 걸쳐 결코 뒤집을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인 구조에 놓여있다. 이것은 리얼리즘 소설에서 개인이 사회 제도를 개혁하기 어려운 것과는 다른 방식의 폐쇄성으로, 그 논리적 기준을 ‘현실’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지배라는 지극히 자의적인 기준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김윤식이 김동인의 소설을 두고 ‘반역사주의’라 칭하며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부정11)한 것처럼, 김동인의 소설 속 인물들의 패배가 현실의 법칙을 반영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3. ‘강자’에서 ‘약자’로의 변모

초기 김동인의 소설 속에서 표면적으로 인물과 세계의 갈등은 나타나고 있으나, 사실상 그 갈등은 작가적 차원에서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태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세계에 대한 지배욕에 근거하고 있다. 조동일의 장르론12)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김동인의 초기 소설들은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이라기보다 ‘세계의 자아화’, 즉 서정 장르에 어울린다 하겠다. 한편으로는 라깡의 ‘상상계’에 빗댈 수도 있겠는데, 김동인은 ‘자기가 창조한 세계’를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며 그 세계가 비추어주고 있는 자신의 욕망을 자신과 동일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강자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작품에 반영하던 김동인의 경향은 1927에서 1929년 사이를 기점으로 하여 급변한다. 당시 김동인은 사업의 실패로 인해 경제적, 가정적 파탄을 맞이했다. 이 시기 김동인은 “삶의 현실이 자기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생활력에서 무능력자라는 점을 깨닫게“13) 된다.

이전까지 ‘문학적 소설’과 ‘통속 소설’14), ‘창작된 소설’과 ‘제조된 소설’15)을 엄격히 구분하고, 전자에 단연 높은 가치를 두던 김동인은 1929년부터 시작하여 예술이 아니라 주장하던 신문연재소설을 ‘제조’한다. 고집스럽게 예술을 위한 순수한 문학을 주장하던 김동인 역시 생활의 어려움 앞에서는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은 '광염소나타'(1929)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던 '유서'의 주인공 ‘K’와 마찬가지로, '광염소나타'의 음악비평가 ‘K’ 역시 작가인 김동인의 사상과 예술관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예술지상주의자로서 김동인의 면모가 극단적으로 부각된다고 평가되어 왔다. 김동인은 한 인물의 예술적 욕망을 광기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사회, 도덕, 법, 질서를 초월하는 천재의 유형을 만들어두었다.

이러한 해석은 백성수라는 인물과 그를 옹호하는 또 다른 예술지상주의자인 음악비평가 ‘K씨’에만 온전히 주목한 결과다. 소설에서 이들과 함께 주목해야할 인물이 사회교화자다. 표면적으로는 음악비평가와 사회교화자의 대화인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서 사회교화자의 역할은 그저 음악비평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그친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죄를 벌해야 한다’는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할 뿐이다. 서술자는 시종일관 대화의 분량이나 주장을 이끌어가는 주도권을 음악비평가에게 내어줌으로써 사실상 예술가의 광기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악비평가가 어떤 방식으로 예술의 광기를 옹호하든 그러한 광기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는 없다. 그것은 정신병원에 갇혀버린 백성수의 상황이 증명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교화자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이 자신의 입장을 쉼 없이 늘어놓는 음악비평가 자신이 증명하고 있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는 대심문관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예수의 일화와도 유사한 이 상황은 오히려 백성수의 광기를 옹호하는 음악비평가의 변명처럼 보인다. 사실상 백성수를 옹호하는 그의 말에는 논리적인 근거가 거의 없다. 예술에 대한, 광신에 가까운 강한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강한 주장은 오히려 침묵하는 사회교화자를 부각시킨다. 상대가 두려울수록 더 크게 짖어대는 개처럼 말이다. 따라서 '광염소나타'는 예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라기보다 음악비평가 개인의 예술론과 그가 속해있는 세계의 충돌16)로 읽어야만 한다.

한편, 이전 시기의 '배따라기', '감자', '목숨' 등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작가의 욕망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물과 사건에 대한 서술자의 태도, 혹은 암시된 저자의 욕망을 통해 세계에 대한 김동인의 인식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작품들로 '송동이'(1929), '죽음'(1930), '구두'(1930), '거지'(1931) 등이 있다. 이전 시기의 작품들이 단편소설의 정형화된 형식에 따라 시작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잘 짜여진 소설’이었다면, 즉 이미 정해진 인물들의 ‘운명’을 소설적으로 구현해나가는 방식이었다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시종일관 운명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송동이'는 주인공 ‘송동이’가 오랜 세월 동안 황씨 집안의 하인 노릇을 하다가 결국 겪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다. 송동이는 본래 충직할 뿐만 아니라 그가 모셔온 주인어른들과 의 관계가 돈독하여 평안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병, 방탕으로 인해 집안은 점차 몰락하고 집안의 당주는 겨우 열 살 된 칠성이가 맡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어 송동이가 격투 끝에 잡고 경찰에 보냈더니,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도둑의 동료가 그 보복으로 칠성이를 살해하고 도망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송동이는 충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으나 아내의 죽음, 칠성이의 사고, 칠성이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극적 사건의 직·간접적인 가해자로 죄책감을 갖는다. 자신이 옳다고 여긴 가치, 상식이라 여긴 삶의 방식들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모두 부정당하고 만다. 반복되는 송동이의 질문 “강도를 잡으면, 놓아주는 것이 옳은가. 선생님의 말도, 경찰서로 보내는 것이 옳다고는 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이라 다 바를까.”17)는 영구불변하고 절대적이라 여겨졌던 세계의 법칙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

'죽음', '구두', '거지' 역시 모두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운명의 한계에 부딪혀 인간과 운명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다. '죽음'의 서술자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한다. “그러면 그 어느 것이 죽음의 진실한 ‘면’인가? 혹은 사랑보다도 무겁고 혹은 체제보다도 가벼운 면을 가지고 있는 ‘죽음’의, 생활에 대한 진정한 가치는 어느 것인가.”18) '구두'는 한낱 물건일 뿐인 구두가 주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장소를 옮겨가며 그의 손을 벗어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이야기에서 인물은 더 이상 주체성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소유물조차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 '거지'는 주인공 ‘나’가 의도치 않은 우연으로 양식을 구걸한 거지를 독살했다는 내용이다. ‘나’는 거지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제공했으나 그 음식 속에는 쥐를 잡기 위한 쥐약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생애와 죽음('죽음)', 인간의 소유물('구두'), 인간의 의도('거지'), 이 모든 것들은 더 이상 인간에게 속해있지 않은 것이다.

이전 시기의 '감자'에서는 ‘환경’이, '배따라기'에서는 ‘성격’이, '목숨'에서는 ‘실수(오진)’가 작품의 결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작가가 창조한 세계의 법칙 아래 엄격히 통제되어 서술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들은 사건과 결말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결여되어 있다. 이야기의 “서술자는 세계와 진리를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인물과 함께 사건과 그 결과에 의문을 제기”19)한다.

주지하듯이, 김동인에게 ‘강자’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세계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지배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진시황이나 나폴레옹과 같이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이 된다. 김동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속한 (상대적으로 제한된) 세계 속에서 최고의 자유를 얻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예술에 있어서는 세계의 창조주가 되며, 인물들의 인생을 지배하는 절대자의 지위를 갖는다. 그러나 김동인은 경제적 파탄으로 인해 생활의 곤란을 겪으며 그 역시 세상 앞에서 초라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와 함께 자신이 창조한 세계 또한 알 수 없는 세계로 구현되며, 그 세계 속 인물들과 함께 운명의 폭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4. ‘약자’의 일제 협력

1929년 무렵 이후로부터 발표된 김동인의 작품들은 “성숙되고 시야가 확대된 김동인을 볼 수 있”으며 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20)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곤 한다. 이는 조동일의 관점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아와 세계의 갈등이 형상화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으며,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는 상상계에서 상징계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이러한 변모는 작품과 작가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세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경험하면서 인간은 그 경험을 의미화하고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시기 김동인의 작품들의 진정한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논자들이 높이 평하는 것처럼 작품들 속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은 작가에게, 인물에게, 독자에게 어떤 의미감을 제공하는가?

앞 장에서 다뤘던 작품들의 주요한 특징은 인물과 서술자가 한 목소리로 세계의 질서에 대해, 인간의 운명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송동이', '죽음', '구두', '거지'를 비롯하여 1930년대 초중반에 창작된 수많은 작품들이 인간을 초월하는 아득하고 거대한 세계, 또는 운명, 흐름 등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먼지처럼 쇄말한 인간 존재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를 칸트적 숭고미와 반대되는 어떠한 미적 감각으로 이끈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허무할 뿐 아니라, 세계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이 갖는 역동적 에너지를 흩어버리는 감각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에게 결말 이후의 삶은 없다. 그들은 죽거나 점차 사라져간다.

작품의 서술자와 인물은 질문을 던지지만 답을 구하지 않는다. '구두'에서 주인공이 찾는 구두는 사라지고 이야기는 끝난다. 우리들은 이 작품에서 사물로부터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을 통해 어떠한 질문을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지만, 이야기로부터 그 답의 실마리나 답을 찾으려는 의지조차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마음 한구석에 분명치 않은 의문만을 간직한 채 점점 작아지고 소멸해간다. 이 모습은 바로 1920년대 초기 김동인이 그토록 경멸하던 ‘약한 자’의 삶과 무척 닮았다.

인물, 서술자, 암시된 저자 등 작품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모든 층위의 주체들은 모두 ‘약한 자’가 되어 주체성을 상실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의문을 간직한 채 의지 없이 살아간다. 김동인을 김동인답게 만들어주던 특유의 오만함과 이에 기인한 ‘창조’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점차 그의 작품들 속에서 사라져간다. 1929년을 전후한 김동인 인생의 전환과 이후의 삶은 작가로서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평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김동인은, 세계와의 ‘격투’를 통해 진정한 주체성을 가진 ‘성인(成人)’이 되었다기보다 오히려 연속되는 패배로 말미암아 주체성을 상실한 ‘약자’로의 변모 과정이었던 것이다.

밝혀져 있는 김동인의 생애로 보아, 그가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자세로 일제에 협력하기 시작한 것은 1938년 이른바 ‘천황모독죄’로 옥살이를 하고 난 이후다. 이 무렵 김동인은 생활의 곤란과 건강상의 문제가 겹쳐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자진해서, 실로 <자진해서> 일제에 협력하고자 총독부 관리를 찾아”21)간다. 김윤식은 이러한 김동인의 선택을 “그가 역사에서 인형조종술을 감행”22)한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비록 김동인이 주장하는 인형조종술은 ‘가짜 신의 세계’이며 ‘공상적인 것’일 뿐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그가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은 오히려 민족적 정체성을 잃고, 예술가로서의 창조적 의지를 잃고, “법률상 천황의 권한은 개인인 천황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황이란 국가기관에 속하는 것”23)이라 말할 수 있던 일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반항의 정신마저 모두 잃어버린, 주체성 상실의 순간이다.

점차 약자로 변모해가던 1930년 초중반에서 진정으로 약자가 되어버린 이 순간, 그가 자신을 의탁하기 위해 달려간 장소가 조선총독부라는 것은 일제에 대한 그의 인식 변화를 극단적으로 반영한다. 당시 김동인이 여러모로 궁지에 몰렸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가 도움을 청하고 의탁할 수 있는 장소가 일본 정부 밖에 없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그의 선택은 ‘강자-약자’라는 이분법적 세계의 질서 속에서 과거 자신이 추구하던 강자의 모습을 당시의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동인은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의 대제국을 건설하자는 일제의 이상으로부터 한때 자신이 꿈꾸던 강자의 환영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김동인의 일제 협력은 노골적일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진행된다. 그에게 있어 강자의 지배를 받는 약자의 삶은 당연한 것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친일은 이른바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없는데, 김동인 자신이 이광수의 친일과 거리를 두면서 그를 비판할 수 있는 심리적 원인이기도 하다. 그는 1930년대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세계의 폭력과 갑작스러운 변덕을 그저 받아들이며 더 이상 새로운 답, 창조적 의지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 ‘약자’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5. 결론을 대신하여

한 작가에 대한 작가론은 대상이 되는 인물의 전체적인 상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그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선인일 수도 있고 악인일 수도 있다.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는가 하면 숨기거나 폭로해야만 하는 일면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시간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고, 동시간대에 공존하는 여러 일면들이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 혹은 무의식적 이면일 수도 있다.

한국 문학사에서 김동인의 영향은 빈 공간으로 남겨두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가 주도했던 잡지 <창조>는 한국 최초의 순문예 잡지였으며, 그의 작품들 역시 한국 소설의 발전, 혹은 확장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의 오만한 기질은 누군가를 쉽게 폄하하고 결과적으로 상처를 주는 성격적 결함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 연구자는 작가와 작품의 다양한 면모를 밝히고, 때로는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 방향의 해석을 내놓는다. 김동인을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하든, 자질이 부족한 작가로 평가하든, 혹은 그러한 가치 평가를 보류한 채 사실 관계만을 조사하든, 그것은 연구자의 분명한 관점과 해석의 논리적 일관성, 타당성을 통해서 증명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에 있어서 누구를 ‘위인’으로 ‘공인(公認)’하는가는 이와 다른 문제라 생각된다.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에 겪었던 치욕과 수모의 역사는 반백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오랜 기억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오랜 기간 우리가 기억하게 될 역사적 고통이다. 김동인이 자신의 민족적, 역사적, 문학사적 위치를 버리고 스스로를 ‘일개 소설가’로, ‘약한 인간’으로 평하며 일제 협력의 책임과 죄책감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문학사 속에 김동인이 차지하는 공간은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그가 갖는 문학사적 위치만큼이나 그가 가져야 할, 가져야만 했을 죄책감과 책임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김동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인정하고자 한다면, 그가 가진 무거운 책임 역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각주

1) 김동인, '학병수첩', <김동인전집> 4, 조선일보사, 1988, 288면.
2) 김동인, '학병수첩', <김동인전집> 4, 조선일보사, 1988, 288면.
3) 김동인, '망국인기'(<백민>, 1947.3), <김동인전집> 4, 조선일보사, 1988, 301면.
4) 김동인, '춘원의 '나''(<신천지>, 1948.3), <김동인전집> 16, 조선일보사, 1988, 438-441면.
5) 박수빈, '일제말기 친일문학의 내적논리와 회고의 전략',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181-188 참고.
6) 김동인, '여의 문학도 30년'(<백민> 16, 1948.10), <김동인전집> 16, 조선일보사, 1988, 443면.
7) 김동인, '배따라기', <창조>, 1921.5.
8) 김동인, '자기의 창조한 세계', <창조>, 1920.7.
9) 김동인, '朝鮮近代小說考', <조선일보>, 1929.7.28.~8.16, <김동인전집> 16, 조선일보사, 1988, 33-34면.
10) 웨인 부스, '암시된 저자의 부활', 제임스 펠란, 피터 라비노비츠 편, 최라영 역, <서술이론 1>, 소명출판, 2015.
11) 김윤식, '반역사주의 지향의 과오', <문학사상>, 1972.11
12) 조동일,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관한 시론(試論)', <한국소설의 이론>, 지식산업사, 1977.
13) 윤명구, '김동인의 생애와 문학', <한국학연구> 2,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0, 109면.
14) 김동인, '소설에 대한 조선 사람의 사상을', <학지광> 17, 1919.1
15) 김동인, '불우한 문단 그 타개책은?', <매일신보>, 1932.4.2.~12.
16) 신범순 역시 '탐미적 경향의 극복과 비극적 현실인식'(<김동인전집>2, 1988)이라는 글에서 '배따라기'와 '광염소나타'에 드러나는 ‘운명’을 비교한 바 있다. 전자의 작품은 ‘운명의 발견’이 문제였다면, 후자는 ‘운명과의 대결’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17) 김동인, '송동이'(<동아일보>, 1929.12.25.~1930.1.11.), <김동인전집>2, 조선일보사, 1988, 104면.
18) 김동인, '죽음'(<매일신보>, 1930.6.9.~6.19), <김동인전집>2, 조선일보사, 1988, 207면.
19) 김춘규, '김동인 단편소설의 서사적 변화 양상',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102면.
20) 윤명구, '김동인의 생애와 문학', <한국학연구> 2,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0, 109면.
21) 김윤식, <김동인 연구>, 민음사, 2000, 337면.
22) 김윤식, <김동인 연구>, 민음사, 2000, 338면.
23) '판결 소화 17년 형 제 226호', <독립운동사자료집12:문화투쟁사자료집>,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7, 1053면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