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청의 사과와 마로니에 공연장 사용미승인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현장 [ 사진 = 배용진 기자]
종로구청의 사과와 마로니에 공연장 사용미승인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현장 [ 사진 = 배용진 기자]

 

1960년대 한국 문단은 ‘순수참여논쟁’으로 치열했다. 1963년 김우종·이병걸·이형기의 논쟁부터 1968년 김수영·이어령의 논쟁까지 “문학이 특정 사상과 정치적 입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순수예술론과 예술은 “현실 사회에 호흥해야 한다”는 참여예술론은 서로 대립했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예술만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는 일은 문학계에서 자연스럽게 줄었다. 순수예술론이 검열 담론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특히 2015년, 블랙리스트 사태와 더불어 당시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순수문학”만을 우수문학도서(세종도서)로 선정하겠다고 해 크게 논란이 되었다. 이후 문인들의 일탈과, 일탈한 문인 다수가 순수예술론을 주장했다는 지적 등이 나오며 파편적으로 순수참여논쟁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최근 순수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행사가 검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는 김용균재단이 주최하는 ‘김용균 추모문화제’가 ‘정치적’ 행사라는 이유로 마로니에공원 야외 공연장 대관을 허가하지 않았다. 주관 단체 중 하나인 한국작가회의는 대관을 불허한 판단 근거를 요구하고 재검토를 요청했다.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자는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며 다음 달 재신청하라고 답변했다. 다음 심의위원회는 추모제 날짜보다 늦게 열린다.

故 김용균 씨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2인 1조로 해야 하는 일에 그 혼자 투입되었다가 사고가 났다. 당시 그는 스물네 살이었고, 하청 업체에 입사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다음 달 10일은 그의 사망 2주기다.

 

발언하는 송경동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사진 = 배용진 기자]
발언하는 송경동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사진 = 배용진 기자]

 

25일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청년비정규직노동자 고 김용균 2주기 추모위원회(아래 김용균2주기추모위)’ 등 3개 단체가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로구청을 비판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송경동 시인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인을 사찰하고 문화예술작품을 검열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가범죄였다. 문재인 정부도 적폐청산 1호 과제로 블랙리스트 없는 세상을 이야기했다”라며 “종로구청이 이번에 대관을 불허한 일은 블랙리스트 사건처럼 문화기본법 4조 등을 위반한 국가범죄다”라고 주장했다.

문화기본법 제4조는 정치적 견해나 성별, 종교 등과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한다. 2018년 1월 23일 서울고등법원은 블랙리스트 사건 가해자들을 판결하며 “피고인들은 문화예술계의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였거나, 특정 이념적·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명단을 문체부를 거쳐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에 하달함으로써 정부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하였음. 이러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위와 같은 헌법과 관련 법률의 규정 등에 비추어 볼 때 위헌·위법·부단한 행위에 해당함”이라고 선고했다.

정윤희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은 “민주주의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의사 표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내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장해야 할 표현이지 배제할 표현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故 김용균 추모문화제를 ‘정치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종로구청이 군사독재 시절 노동과 인권 관련 사건을 공안 사건으로 보던 과거의 권위적 문화 행정을 계속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발언하는 '인권운동공간 활’ 랑희 활동가 [사진 = 배용진 기자]
발언하는 '인권운동공간 활’ 랑희 활동가 [사진 = 배용진 기자]

 

김용균2주기추모위 참가단체인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 활동가는 “어떤 죽음은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기억해야 한다. 죽은 이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 사회를 만들지 못한 책임감 때문이다”라며 “김용균 추모제는 김용균을 기억하려는 애도이자 집회이고, 표현이자 소통이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이어서 “왜 이런 행동이 누군가의 허락을 필요로 하나. 정치적인 것은 왜 공원에 입장할 수 없나”라고 물으며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권리다. 정치 행위를 막는 것이야말로 반민주적 행위다”라고 일갈했다.

역시 김용균2주기추모위에 참가하는 철도코레일네트웍스지부 서재유 지부장은 “매일 노동자 일곱 명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매년 수년 명이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세상을 바꾸려는 것은 정치다. 정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나. 우리 삶이 정치인 것은 당연하다”라며 “그러나 종로구청은 이전 대통령이 그랬듯, 특정 정당과 정치 세력을 위해 행하지 않는 일을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막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마로니에 공원 대관을 담당하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과는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관례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없는 순수 예술행사만을 대관해 왔다”라며 “추모제에서 시위성 구호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있어 심의부서에서 불허가 나온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오늘 기자회견에 대해 공식 답변을 하기 위해 검토 중이며 현재 결정된 것은 없다”라고 전했다.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자는 “정치적인 이유로 부결되었다고 말한 것에서 오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며 “재발 방치 대책을 요청했기에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예술이 사회적 문제를 말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검열이다. 순수예술론이 정치적 검열 담론으로 사용되는 일이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고 난 2020년에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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