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시인(왼)과 주영헌 시인(오) [사진 = 배용진 기자]

지난 27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김승일, 주영헌 시인이 열다섯 번째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를 열었다. 이날 낭독회에는 특별히 박주원 기타리스트가 참여해 ‘caruso’와 ‘over the rainbow’를 연주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승일, 주영헌 시인은 올 1월 서울 니은서점에서 처음 낭독회를 시작해 경기도와 충청도 등 여러 지역의 동네서점을 직접 찾아다니며 낭독회를 열어왔다. ‘시집(CGV)이 오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열다섯 번째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는 이색적으로 극장에서 진행됐다. 거리를 두고 앉은 청중 40여 명이 스크린 대신 두 시인을 바라보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낭독회 이름처럼 두 시인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는 이웃사촌이다. 김승일 시인은 “이곳에 온 독자도 우리와 이웃사촌이 될 수 있다”라며 “시 낭독회를 통해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고 내면적으로 연결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인사말을 전했다.

 

흐르는 것의 속성은 흐르고 흘러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온다는 것

첫아이를 잃었을 때 십 년 만 견디자 생각했다.
앞서 떠나보낸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가슴에서 지우는 일은 딱 십 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당신은,
사랑이 그리 쉽게 떠나가는가?

- 주영헌, ‘첫,’ 중 일부

주영헌 시인은 2009년 계간 “시인시각”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는 “마음속 슬픔과 아픔을 치유받기 위해 시인이 된 것 같다”라며 “낭독한 시는 자전적 이야기다. 지금 딸이 셋인데, 딸 하나가 이전에 더 있었다. 첫째 딸을 2003년 의료사고로 잃었다”라고 밝혔다. 주영헌 시인은 “사람들이 가슴속 사연을 잘 못 말하지만, 꼭꼭 감춘다고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숨기면 숨길수록 가슴은 더 아파진다. 말해야 한다”라고 아픔을 공유할 것을 권유했다.
 
주영헌 시인이 아이를 잃은 아픔을 시로 공유했다면 김승일 시인은 학창 시절 폭행당한 경험을 시로 고백했다.

얼굴을 쳐다봐 새끼야 그림자 속에서
너의 목소리 주먹 날아올 때
나는 담장을 넘는 공을 보았다
수풀 속으로 들어간 공을 상상했다.

심장 소리가
날 때린 너에게 들렸을 거라 생각했다
심장 소리가
날 때리는 너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눈물이 되었다 아교가 되었다
곁눈질로 자목련을 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개나리꽃들이 있었다

- 김승일, ‘화사한 폭력’ 중 일부

“교실에서 운동장 끝 어둠 속에 있는 벤치까지 끌려갔다. 나는 무서워서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내 귀에 내 심장 소리가 애원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가 나를 폭행한 친구에게 들린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웠다. 30분 정도 구타당했다. 내 인생은 그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나는 다시는 맞기 전 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낭독을 마친 김승일 시인이 시에 얽힌 자기 경험을 이야기했다.
 
2007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한 김승일 시인은 어린 시절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는 폭력에 저항하고자, 또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시를 썼다.
 
김승일, 주영헌 시인에게는 각자의 아픔, 상처가 시를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고 두 시인이 아픔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픔을 승화시켜 앞으로 나아가고자 시를 쓴다. 주영헌 시인은 “시인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라며 청중에게 시 쓰기를 권유했다.

날이 좋아서

아픔과 슬픔, 아쉬움까지 툭툭 털어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채 털어 내지 못한 감정들이
눈물처럼 바닥에 떨어져 어두운 얼룩을 남기지만

괜찮습니다,
금세 마를 테니까요

날이 좋아서
이번에는

한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주영헌 ‘빨래하기 좋은 날’

주영헌 시인은 지난 11일 두 번째 시집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독자에게 위로를 전하려는 시로 가득하다. 주 시인은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대중에게 더욱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쓰겠다”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김승일 시인은 주영헌 시인의 시가 “힘들 때 생각난다는 장점이 있다”라며 “실제로 아내가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괜찮습니다, 금세 마를 테니까요’라는 구절이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두 시인은 낭독회 틈틈이 아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승일 시인은 “아내는 너무 소중한 존재이고, 매일 안아줘도 모자를 존재”라고 말했고, 주영헌 시인 또한 “아내는 내가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말했다. 두 시인은 자신들이 애처가 시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말한 뒤 멋쩍은지 남성 관객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며 말을 줄였다.

손톱보다 큰 빨판을 수도 없이
매달고 죽어 있는
바다의 슬픈 종들

가문어 이름을 읊조릴수록 서글퍼져 신기롭고
가문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김승일, ‘푸른 밤의 風燈’(풍등) 중

토성이 토성이 아닌 것이 될 때까지

토성은 토성에
닿을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이름으로 도니까

- 김승일, ‘이름의 계’ 중

“누군가가 ‘나’를 어떤 이름으로 호명하는가”는 김승일 시인에게 중요한 문제다. 그는 ‘훔볼트 오징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가짜 문어라는 뜻의 ‘가문어’로 불리는 존재를 연민한다. 또 이름과 달리 토성에 흙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토성이 계속 토성이란 이름으로 자기 궤도를 도는 것에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김승일 시인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고 웃으며 “시인이죠”라고 농담했다.

김승일 시인(왼)과 주영헌 시인(오) [사진 = 배용진 기자]

김승일 시인과 주영헌 시인은 시를 표현하는 방식이 사뭇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다.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을 위로하려는 마음”이다. 김승일 시인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어’란 마음이 사람의 본질 아닐까”라며 “시를 통해 본질을 잘 끄집어내는 게 우리 역할 같다”라고 말했다. 주영헌 시인도 “시를 낭독했을 뿐인데 치유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라며 “앞으로도 계속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겠다”라고 다짐했다.
 
열다섯 차례 낭독회를 이어오며 두 시인이 청중을 일방적으로 위로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위로하고 싶어서 시를 읽었는데 오히려 우리가 더 위로받았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