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지난 12월 2일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예외자들의 보험료 추후납부 권리를 제한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제 개정 법률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대통령의 공포로 확정되어 시행되는 절차만 남아있다. 통상 추납제도라고 하는 이 제도는 국민연금 가입 중에 실업이나 파산 등으로 소득을 상실하여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한 ‘납부예외자’들에게 추후에 보험료를 납부하여 가입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이다. 기간의 제한 없이 보험료 추후납부(이하 ‘추납’이라 하겠다.)를 허용하던 것을 최대 10년 미만까지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사안일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노후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추납 대상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불안정 자영업자들이다. 그들은 가뜩이나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적어 국민연금 수급권이 없거나 턱없이 적을 텐데 앞으로는 국민연금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줄어들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 개정안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전격적으로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어 안타깝다. 비록 이 개정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할지라도 법 개정 이유로 제시된 내용의 타당성만큼은 정확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연금제도의 최대 당면 과제인 가입기간 확대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를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납제도는 보험료를 납부하다가 실업이나 파산 등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게 된 가입자들에게 추후 여력이 있을 때 보험료를 납부할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는 전업주부들에게도 추후납부의 기회를 더 확대해주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 제도를 지지했고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고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나서서 독려하던 제도이다. 최근까지 제도를 확대하고 제도 활용을 적극 홍보하던 보건복지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추후납부 권리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의 실태의 심각성과 노후빈곤 예방 기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역할의 무게를 고려할 때 가입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 변경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지금 국민연금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추납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가입기간을 확대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다른 제도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이런 때에 그나마 자력으로 가입기간을 늘릴 수 있는 보험료 추후납부 기회를 제한하려는 법 개정은 매우 우려스럽다.    

필자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사회보장 제도가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추진 된 점에 먼저 유감을 표시하고 싶다. 아울러 늦은 감이 있지만 그동안 공식, 비공식 경로로 문제를 제기했어도 받아들이지 않은 문제제기를 학자적 양심으로 다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추납제도의 법 개정 사유로 제시된 내용들이 타당하고 합리적인지 따져 보겠다.   
첫째, 추납제도는 중산층 이상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한 제도가 아니다. 
추납 대상기간을 제한하는 이유 중 가장 먼저 제시된 것이 ‘추납제도가 돈 많은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인가? 먼저, 추납제도가 재테크 수단이라는 비판에 대해 살펴보자. 

추납제도는 보험료를 면제하거나 감면해주는 특혜제도가 아니다. 
독일 같은 국가에서는 소득이 없거나 적은 가입자들에게 국민연금 보험료를 면제하거나 감면해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입기간 중 소득을 상실한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면제해주는 대신 납부 유예만 해주고 있다. 보험료를 추후납부하려는 자들은 보험료를 고의로 납부하지 않은 자들이 아니라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독일처럼 당시에 보험료 면제나 감면을 해 주었어야 할 대상들이었다. 전업주부들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보험료 혜택을 주어 제 때에 보험료를 낼 수 있게 하던지 추후에라도 보험료 납부가 가능하도록 저리 융자 등을 해주는 적극적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에도 보험료 납부와 관련하여 호의적인 제도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연금크레딧’ 제도이다. 사병으로 군 복무를 한 가입자에게는 본인의 보험료 납부 없이 6개월의 가입기간을 인정해 준다. 또한 실업자가 된 경우 자신이 25%의 보험료만 납부하면 75%의 보험료는 고용보험과 국가 일반재정에서 납부해주고 최대 1년까지 가입기간을 인정해 준다. 아이를 출산하는 것만으로도 둘째 이후의 아이를 둔 부모에게 최대 50개월의 가입기간을 보험료 납부 없이 인정해 준다. 더 나아가 기업체에 취업하여 소득이 있는 자들에게도 보험료를 국가가 대신 납부해주는 ‘두루누리 보험료 지원 사업’도 있다. 10인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한 소기업의 저소득 근로자들의 보험료를 국가가 대납해주는 제도이다.  
이런 제도들에 비해 추납제도는 납부할 여력이나 기회가 없게 된 가입자들에게 추후에 보험료를 납부할 기회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추납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여타의 제도들에 비추어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추납제도는 특혜는커녕 호의적인 제도로도 볼 수 없다. 

추납제도는 제 때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에 비해 수익비를 많게 해 주지 않는다. 
추납제도는 보험료 납부에 따른 연금액 계산에서 특혜적 요소가 전혀 없다. 국민연금의 급여 계산 산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납제도를 재테크 수단으로 비판하려면 먼저 국민연금제도 자체를 재테크 수단이라고 비판해야 한다. 납부한 보험료 총액 대비 받는 연금 총액의 비율을 수익비라고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 뿐 아니라 모든 공적연금의 수익비는 적게는 1.3배에서 많게는 6~7배에 이른다. 이런 점은 공적연금이 노후소득보장에서 가장 유리한 제도라고 홍보하는 이유다. 국민연금 홍보를 하는 강사들이 과장된 말로 ‘로또’라고 표현할 만큼 국민연금을 포함한 모든 공적연금들은 수익비 측면에서 재테크 수단이라 불릴 만하다. 민영연금 원리에서 보면 불합리한 이 제도가 공적연금에서는 사회적 적절성 차원에서 인정된다. 추납제도만 특별히 수익비를 높게 해 주는 것이 아닌데 추납제도만을 지적하여 재테크 수단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다.   

둘째, 추납제도는 제 때에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추납 권리를 제한하려는 이유로 제시하는 것 중의 하나는 보험료를 밀리지 않고 납부한 가입자들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 개정 이유에는 어떤 객관적 조사 결과나 논리적 설명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추론하건대, 추납 보험료를 낸 가입자는 정상적으로 보험료를 낸 가입자보다 이자의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험료를 추후 납부하는 자들은 다음에 설명하듯 보험료 납부나 연금액 계산에서 혜택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불리하다. 또한 특수직역연금에서도 휴직, 입대 등의 사유로 미납된 보험료를 추후에 납부하는 경우 이자를 붙여 내게 하지 않고 납부 당시의 소득과 보험료율에 의해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형평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추후 납부보험료를 이자 대신 납부 당시의 소득과 보험료율로 납부하게 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다.  
추후 납부자들은 과거보다 높은 보험료율을 적용하여 보험료를 납부한다. 
추후 납부자의 보험료율은 제 때에 납부할 경우의 보험료율보다 통상적으로 높다. 사회보험 보험료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오르는 게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낮은 보험료율로 납부할 수 있었던 가입자가 추납 시에는 높은 보험료율로 납부해야 해서 원 보험료에 이자를 붙여 납부하는 것보다 통상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된다. 
과거보다 낮은 소득대체율을 적용 받아 훨씬 적은 연금을 받게 된다. 
추후 납부하는 가입자는 보험료를 납부하는 시점의 소득대체율로 계산하여 연금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해가 지남에 따라 급격히 줄어든다. 따라서 보험료를 늦게 내는 추후 납부자들은 높은 보험료를 내고도 더 적은 연금을 받게 된다. 이른바 벌칙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0년도에 보험료를 낸 가입자는 소득대체율 60%로 계산된 연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를 20년 뒤인 2020년에 보험료를 납부할 경우 소득대체율은 44%로 계산하여 받아야 한다. 향후에는 더욱 낮아져 2028년에는 40%로 계산된 연금을 받게 되어 더욱 불리해진다. 이렇게 제 때에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에 비해 추후 납부자들이 불리한 점들이 더 많다. 형평성에서 오히려 불리한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추납제도의 도입, 확대 과정에서 한 번도 형평성 문제가 거론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정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제 때에 납부한 가입자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거나 “제 때에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이 상실감을 갖는다.”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미납보험료의 추후 납부제도가 정상 보험료 납부 가입자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추납제도만의 문제가 아닌 공적연금제도의 미납 보험료 추후납부 제도 모두가 지적되어야 한다.  

셋째, 보험료 추후납부 대상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소외되었던 국민들이다. 
추납제도의  적용을 받아야 할 대상자들은 대부분 과거에 해고, 파산 등을 겪은 사람들이다.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했던 가입자들은 더욱 그 열악한 기간이 길었던 자들이다. 국가가 그들을 돕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할 대상들이다.   
특별히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대상은 장기 보험료 미납 전업주부들이다. 소득도 없는 전업주부들이 한꺼번에 많은 보험료를 내고 연금 권리를 얻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지나치게 감정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전업주부들이 그렇게 장기간의 보험료를 추납하게 되는 것은 국민연금법이 그들을 의무가입 적용제외자로 묶어놓은 탓이다. 그리고 최근까지 추납할 수 있는 권리를 막아왔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추납제도가 제 때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에 비해 특별한 혜택을 주는 제도도 아닌데 그들을 모럴해저드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치다. 비난을 하려면 그들을 적용제외 대상자로 묶어놓고 추납기회도 주지 않은 법과 제도를 비난해야 한다. 그들은 신중하게 생각하여 추납을 결심한 자들이고 정부의 권고를 충실하게 이행한 국민들이다. 국민연금제도의 임의가입제도를 생각해 보면 그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을 다시 알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제도에는 임의가입제도라는 제도가 있다. 소득이 있는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들은 당연히 국민연금 의무 가입자들이지만 소득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허용한 제도가 임의가입제도이다. 소득이 없어도 보험료를 내고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은 가족의 도움 등을 받아 가입할 수 있게 허용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들이 가족의 도움으로 장기간 미납한 보험료를 추납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넷째, 10년으로 추납할 기간을 제한한다고 법 개정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다.  
10년 이상 장기 보험료 미납자의 최대 추납 가능 기간을 10년 미만으로 제한하면 정부가 제시하는 추납제도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게 되는가? 10년까지는 괜찮고 10년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은 논리상으로도 맞지 않고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 편으로, 보험료 추후 납부 최대 기간을 10년까지로 제한하겠다는 근거 중 하나로 독일 등의 예를 들고 있다. 그 국가들이 추납 허용기간을 10년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정책에서 국가 간 제도 비교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역사적 맥락과 실제 상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제도를 단순 비교하여 판단하면 제도의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독일은 공적연금 도입 역사가 100년 이상이 되어 연금수급자들의 평균 가입기간이 남녀 공히 40년에 가깝다. 장기간 제도 발전과정에서 가입자들의 권리를 확보해주는 조치들이 충분히 구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보험료 면제나 지원은 물론이고 실업, 군복무, 육아, 교육, 간병 등 소득단절의 상황들을 고려하여 충분한 가입기간을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나라의 가입자들은 장기간의 보험료 추납의 사유가 발생할 이유가 거의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제도가 전 국민에게 적용된 지 21년에 불과하다. 보험료 지원제도나 가입기간 지원 제도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이 20년이 못된다. 2050년이 되어도 24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더욱이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고 비자발적 조기 퇴직이 일상화 되어 있다. 따라서 사각지대 해소 대책과 함께 가입기간 확대가 국민연금제도의 최대 현안이고 시급한 과제이다. 국가 재정으로 가입기간을 인정해주는 연금크레딧 제도나 보험료 지원 사업 등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가재정을 무한정 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가입자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기회를 우선적으로 확대해 줘야 한다. 추납제도가 바로 그런 제도이다. 국가의 재정지원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가입자의 자조 노력으로 가입기간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도 향후 20~30년 후에 국민연금 수급자 평균 가입기간이 30년 이상이 확보된 이후에는 추납기간을 제한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보험료 추납 관련 법 개정은 단순히 제도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가 추납기간 제한의 이유로 제시한 내용들이 하나같이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충분한 논의 없이 시급히 법까지 개정해야 시급성은 더욱 없다. 문재인정부는 과거정부와 다르게 포용적 성장정책의 기조 하에 국민들의 공적연금 권리 강화를 공약했다. 그런데 이번 추납 권리를 제한하려는 법 개정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에 역행하는 조치이다. 따라서 이 법안은 단순하게 하나의 제도를 개정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노후빈곤 해소 의지를 약화시키고 공적연금의 개혁 방향을 다시 재정안정화 쪽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빈곤 해소’라는 시급한 사회적 당면과제 해결 이슈가 잦아지지나 않을지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재섭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 이재섭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는 영국 켄트 대학교에서 국민연금개혁의 정치를 주제로 사회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은 공적연금 전문가이다. 공무원연금공단 공무원연금연구소장을 지냈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회복지위원장과 공적연금개혁대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아울러 공적연금수급자유니온 위원장으로 공적연금권리찾기국민운동본부 준비단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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