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지난 1월 30일, 대중서사학회가 2021년 상반기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줌으로 진행된 금번 학술대회는 작년 10월에 개최되었던 대중서사학회의 기획 학술대회 ‘뉴미디어 시대, 장르의 재발견’에 이어 다시 한번 더 ‘웹장르와 플랫폼’을 주제로 하여 관계된 질문들을 더욱 확장하는 자리였다. 대중서사학회 박숙자 회장은 “한국 문화사에서 매체와 서사가 가장 예민하게 만나고 충돌하는 자리가 대중서사의 자리가 아닐까 싶다”며 ‘웹장르와 플랫폼’을 주제로 한 금번의 학술대회를 통해 대중서사의 외연에 대한 질문과 웹장르의 서사를 어떤 새로운 종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고 확장하겠다는 말로 학술대회의 포문을 열었다.

대주제인 ‘웹장르와 플랫폼’ 아래 1부에선 ‘로맨스판타지와 커리어포부 - 악녀의 탄생과 여성 인물의 주체성’(류수연, 인하대)과 ‘디지털미디어시대에서 OTT 플랫폼’(박세현, 경기대)이 발표되었고, 2부에선 ‘색의 마술사, 방탄소년단의 성장 서사’(장정윤, 육군사관학교)와 ‘포털에서 플랫폼자본주의로 - 웹툰 생태계를 중심으로’(서은영, 서울과기대)가 발표되었다.

[사진 제공 = 대중서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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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등장과 로맨스판타지
첫 발표자였던 류수연 연구자는 악녀의 탄생과 여성 인물의 주체성이 플랫폼상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조아라’나 ‘카카오페이지’와 같은 플랫폼에서 서비스 중인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웹소설에서 악녀형 주인공이 등장하는 현상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했다. “‘악녀’는 기존의 대중서사에서 사용되었던 ‘마녀’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악녀형 주인공의 등장이 제목 등을 통해 명백히 표명되는 현상은 그 자체로 기존질서에 대항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큰 골자가 되는 서사의 등장을 함의한다. 연구자는 이러한 현상이 2010년대 중반 도래한 ‘페미니즘 리부트’ 및 젠더 문제를 포함하는 PC의 문제와 연관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동시에 연구자는 2018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급증을 보인 악녀형 주인공의 등장을 로맨스판타지 장르가 견인하고 있음을 주지하며, 또다른 원인으로서 ‘차원 이동’ 모티프를 지적했다. “차원이동에 따른 이세계 로맨스에서 핵심 플롯은 생존과 정착”의 문제와 관련 깊으며,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기존의 착하기만 한 로맨스의 여주인공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혹한 이세계의 질서에 맞는 새로운 인물유형이 요구”되었고 그것이 바로 악녀형 주인공이란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악녀형 주인공은 로맨스판타지 장르 중에서도 특히 ‘책빙의물’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드러난다. 책빙의물이란 작품 속 작품으로 위치지을 수 있는 게임이나 책을 접한 인물이 해당 게임이나 책의 세계로 차원을 이동하는 작품을 일컫는 하위 장르명이다. 책빙의물에서 악녀형 주인공은 ‘2회차의 삶’을 살면서 ‘작품 속 작품’에 예정되어 있는 파멸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두드러지는 것은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로맨스 또한 주인공에게는 예정된 운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일종의 미션에 다름 아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악녀형 여주인공의 로맨스 상대인 남주인공은 그녀의 ‘커리어 포부’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을 배정받는다. 결론적으로 악녀형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로맨스 서사의 종결이라 할 수 있는 ‘로맨스의 완성’이라기 보다는 그 완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그것이야말로 로맨스판타지 장르 안에서 악녀형 주인공 소설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 된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OTT 플랫폼
두 번째 발표자인 박세현 연구자는 OTT 플랫폼의 현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발표를 진행했다. OTT는 영화, 드라마 등의 VOD 콘텐츠를 통합한 디지털 기반의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총칭한다. OTT는 ‘Over the top’의 약자로서, 기존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의미로 여기서 ‘top’는 ‘셋톱 박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PC 기반으로 한 인터넷 스트리밍 콘텐츠에서 모바일까지 포함하여 디지털 VOD 방식으로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지칭한다. 이러한 OTT 플랫폼의 급성장 요인으로 연구자는 통신망의 발달, 전반적인 환경의 디지털화, 스마트폰과 같은 디바이스의 발전, 콘텐츠의 세계화와 더불어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 또한 언급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이 실내에서 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면서 OTT 플랫폼에의 접근성이 무척 높아졌다는 것이다.

[사진 제공 = 대중서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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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플랫폼의 현황을 살펴보면, 먼저 해외에는 애플티비플러스(apple tv+), 훌루(hulu), 디즈니플러스, 넷플릭스, HBO 맥스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2016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으로 360만 회원 수를 보유한 넷플릭스와 2021년 한국 서비스 예정인 디즈니 플러스, 그리고 HBO 맥스를 눈여겨 볼만하다. 월트 디즈니 자회사로 합병된 훌루는 자체 콘텐츠보다는 지상파 콘테츠 서비스 중심으로 디즈니플러스와 중복되지 않는 TV 프로그램 중심의 서비스를 지향한다. 국내에는 티빙, 왓챠플레이, 웨이브, 쿠팡 플레이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 2012년 한국 영화 소개 및 추천 서비스 매체로 출발한 왓챠의 행보가 눈에 띈다. OTT 국내 이용자 현황에서 돋보이는 것은 중장년층 이용률의 증가이다. 발표에 따르면 50대와 60대의 OTT 플랫폼 이용률이 2018년 각각 18.8%와 7.4%였던 것이, 35.8%와 21.3%로 증가함을 알 수 있었다.

박세현 연구자는 OTT 플랫폼 서비스의 특징으로 먼저 ‘이용자의 능동적 시청 유도’를 꼽았다. 몰아보기, 다시보기, 이어보기, 잘라보기 등 이용자의 자율적 선택권에 따라 미디어 소비형태가 변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다양한 요금제 방식과 콘텐츠 선정의 다양화 및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로 인해 이용자의 만족도와 이용 편의성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모바일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영상 시청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특징적인 지점이다. 연구자는 발표 말미에 이러한 OTT 플랫폼 서비스의 시대에 ‘장르의 세계화’, ‘캐릭터의 세계화’, ‘스토리의 세계화’가 진행됨과 함께 콘텐츠의 로컬리즘이 해체되고 장르의 경계 또한 해체되었음을 주장했다.

[사진 제공 = 대중서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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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와 성장 서사
세 번째 발표는 장정윤 연구자의 ‘색의 마술사, 방탄소년단의 성장 서사’라는 제목의 발표였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들의 성장 서사를 분석하는 흥미로운 발표였다. 본 발표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본 방탄소년단의 성장 서사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첫 번째 시기에선 불이라는 강렬한 상징을 통해서 ‘강한 남성성’을 보여준다. 두 번째 시기에선 다양한 폭발의 형태를 직시하는 눈동자의 이미지가 등장하며, ‘공감의 남성성’을 보여준다.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세 번째 시기에서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인간’이라는 주제 아래 일종의 ‘하이브리드 남성성’을 보여준다.

첫 번째 ‘강한 남성성’의 시기에서 연구자는 <쩔어>와 <불타오르네>의 뮤직비디오에 주목한다. 연구자에 따르면 “두 작품 모두 사회비판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으며, 격렬한 춤 동작은 사회의 비난과 조소에 굴하지 않는 젊음의 특권과 열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들이 대당삼는 저항의 대상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며,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를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주변적 남성성’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자는 이 시기를 지나면서 방탄소년단이 “타인에게 미치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깨닫는 순간 더욱 강력하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거나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시작한다”가 주장한다. 즉, 그들의 남성성의 특징에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두 번째 시기는 <피 땀 눈물>과 <Not Today>의 뮤직비디오로 특징지어진다. 이 두 작품부터 방탄소년단은 단순히 자신의 노래와 주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매체를 전유하기 시작한다. 가령 <피 땀 눈물>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전유하고, 천사와 악마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선과 악의 개념을 앎과 무지로 확장시켰다. 연구자에 따르면, 뮤직비디오에서 자신들의 눈을 가리려는 사람들의 손을 끊임없이 치우려 노력하는 방탄소년단의 시도는, “알면서도 삼켜버린/ 독이 든 성배”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시기에서 방탄소년단은 강한 남성성에서 부드러운 남성성으로 변화하는 단선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강함과 연함, 소심함과 강인함 등 모든 이질성이 혼재하고 유동하면서 사회적 관계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된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비판하면서 끊임없이 그것에 동화되고자 하는 주변적 남성성에서, 공감을 하는 부드러운 남성성을 넘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는 하이브리드적 남성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자본주의와 노블코믹스
마지막 네 번째 발표에서 서은영 연구자는 웹툰을 중심으로 그것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떤 변화들을 거치면서 지금의 생태계를 구축했는지를 살펴보면서, 플랫폼이 어떤 방식으로 매체를 끌고 갔는지를 분석했다. 무엇보다 연구자가 주목한 것은 플랫폼자본주의 아래에서 기획되고 있는 ‘노블코믹스’다. ‘노블코믹스’란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을 일컫는다.

웹툰의 해외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매출액 규모 1조 원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이 도래를 견인한 것은 노블코믹스였다. 연구자에 따르면 “플랫폼사들은 국내외의 노블코믹스의 성공으로 웹툰의 구조를 기술기반에서 이야기-내용 중심으로의 이동에 부응했다. 이미 웹소설 시장의 잠재성을 확신한 업체들은 검증된 웹소설을 바탕으로 웹툰을 함께 창작하는 스튜디오 방식으로 바꿔 시장의 소비를 주도하는 데 주력해왔다. 웹소설에서 구축된 팬덤이 웹툰 수익구조에 안전성을 꾀하고, 웹소설과 웹툰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데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네이버와 다음은 사내독립기업인 CIC(Company-In-Company)를 설립해 자체적인 노블코믹스 사업에 주력한다.

연구자는 이 지점에서 기존에 논의되어왔던 장르물을 설명하는 ‘패턴화’라는 서술이 더는 적용되지 않음을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웹소설과 웹툰에서 소비되는 이야기는 구조화 자체를 거부하고 ‘관습에 의한 패턴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 플랫폼들이 수집한 유저의 취향의 데이터베이스가 패턴을 만든다. 결국 웹소설과 웹툰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구조가 아니라, 취향에 따른 데이터베이스의 조합이며, 이 조합으로부터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IP(지적재산권)의 확보가 작품의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에 덧붙여 “데이터베이스를 독점할 수 있는 플랫폼의 권력은 콘텐츠 산업의 독식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며, 이제 플랫폼은 “콘텐츠의 ‘제국’”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플랫폼의 맥락에서 웹장르의 분기와 확장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과연 모든 발표가 기획 취지와 의도에 맞는지는 다소 의문이었다. 특히 방탄소년단에 관한 발표는 ‘웹장르와 플랫폼’이라는 대주제에 포함되는 주제와 내용이 아니라는 인상을 다소 주었다. 그러나 웹소설, 웹툰, OTT 플랫폼 등 다양한 웹장르와 플랫폼에 다룬 점은 흥미로웠다. 토론자들의 문제의식도 날카로워 개별 발표 후에 자리한 토론 시간도 밀도 높게 진행되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학술대회는 50여분간의 종합토론 뒤에 연구윤리 교육을 끝으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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