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한송희 에디터]
[사진 = 한송희 에디터]

그동안 `이극로 평전`(2005), `조선어학회 항일투쟁사`(2012) 등 출간할 때마다 문제작을 터트리더니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출판계에선 흔히 획기적인 성과를 낸 저서에 대해 `path-breaking`이란 수사를 써서 출간에 대한 예를 표하곤 한다.

기간의 책들도 그러하지만, 박용규 박사의 이번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인간과자연사) 또한 명실상부 패스브레이킹한 저서라 할 만하다.

글은 허위를 깨부수고 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민족사학자의 팽팽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다.

논리는 이렇다.

대한민국의 건국의 뿌리는 3.1혁명이다. 이로 하여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져 적통을 이었기 때문이다.

이 3.1혁명의 33인 중에 동학을 이은 천도교 대표가 15인이고, 그중의 9인은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이었다.

그런데도 건국 100년이 지났는데도 동학(혁명)의 대표였던 전봉준·최시형은 건국훈장은커녕 독립유공 서훈에서도 빠져 있다.

전봉준·최시형이 독립유공 서훈 대상인 이유는 국가의 서훈 대상자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라고 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일제의 국권침탈은 1894년 청군축출을 빌미로 들어온 일제의 경복궁 난입사태를 말하고, 이에 1차에 반봉건 성격을 띤 동학의 2차 봉기가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는데 이때 전봉준 최시형이 연합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한양으로 진격하다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 관군에게 패배하고 말았으니 이야말로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에 일어난 대표적인 항일 애국 민족운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얘기다.

난 사실 그동안도 몰랐거니와 이분들이 당근 일제와 싸운 항일독립유공자로 서훈이 되었는 줄 알았다.

대체 무슨 저의가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 대한민국에 일어나고 있다는 게 가슴 아프다. 100일 금주 약속을 했는데 첫날부터 깨질 듯 통증이 밀려온다.

하기야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친일부역행위가 명백한 문인들을 기리는 `망국적` 문학상이 아직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듣자하니 독일이 지난 나치 전범들을 혹독하게 대하고 국가적으로 사죄하고 포상하는 것은 그들이 선의지를 지녀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만큼 치열하게 찾아내 알리고 한나 아렌트처럼 인류 양심에 밝히고 고발했기 때문이란다.

여기, 국가 정책의 부당성을 준열하게(*매우 엄하고 매섭게) 비판한 역사비평서가 나왔기에 널리 알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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