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관 모습]
[덕수궁관 모습]

여러 장르의 예술은 서로 맞닿아 있다. 우리는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사진 같다고 하고, 멋진 사진을 보면 그림 같다고 말한다. 명작 영화는 영화 음악이 함께 있지 않으면 재미가 없고, 동화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만나야만 진정한 동화가 된다. 그런 만큼,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도 서로 통하는 것들이 많았다. 프랑스의 시골 풍경과 사과가 있는 정물을 그렸던 폴 세잔과 <목로주점>을 쓴 사회주의 작가인 에밀 졸라는 평생을 함께 한 친구였다. 2016년에는 둘을 소재로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이라는 영화도 나왔다. 또, <절규>를 그린 뭉크는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과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화가가 작가를 그린 그림들을 볼 때마다 늘 궁금해지곤 했다. 왜 늘 서양화가와 작가만 주목하는가? 우리나라의 화가들과 작가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우리나라의 문화,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관심보다 서구의 문화에 너무 집중했던 것이 아닐까, 반성했다. 

무지에 대해 반성을 했다면 이제 할 일은 몰랐던 것들을 배우는 것이다. 때마침 우리나라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배울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가 2021년 2월 4일부터 5월 30일까지 열린다. 

[덕수궁관 로비]
[덕수궁관 로비]

이 전시는 1930년대와 1940년대 경성을 중심으로 문학 작가들과 미술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겼던 암흑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고 그 문화를 바탕으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예술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각자의 방법으로 연대하며 교류하던 예술가들의 연결고리들이 여기에 있다. 

[제 1 전시실 전경]
[제 1 전시실 전경]

코로나 시대이기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 경쟁이 치열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제 1 전시실부터 사람이 꽤 있었다. 제 1 전시실은 ‘전위와 융합’이라는 제목으로 시인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 가장 앞서나갔던 이들의 교류를 담았다. 

[구본웅 – 친구의 초상]
[구본웅 – 친구의 초상]

가장 먼저 눈에 띈 그림은 강렬한 색채와 굵은 붓질로 그려진 초상화였다. 제목은 ‘친구의 초상’, 화가 구본웅이 그린 작가 이상의 초상화였다. 둘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으며 온갖 동고동락을 함께 했다고 한다. 사진 속 이상의 모습은 초상화와 다르다. 하지만 어떨 때는 사진보다 그림이 더 많은 것을 담아낼 때가 있다. 오히려 실제의 이상과 더 닮은 것은 사진 속 이상이 아니라 그림 속의 부리부리한 눈을 갖고 고개를 비뚜름하게 기울인 이상이 아닐까?

[제 2 전시실 전경]
[제 2 전시실 전경]

제 2 전시실 ‘지상의 미술관’에서는 결이 조금 다른 전시가 이어진다. 옛날 출판물에 기고되었던 소설과 삽화들이 다시 프린트되어서 사람들이 직접 읽을 수 있게 전시되었다. 기고된 소설들을 읽으며 지금과는 다른 한글들과 한자가 섞인 글들도 미술 작품의 하나인 듯 묘하게 낯설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수많은 복사본들을 전부 유심히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끌리는 것을 선택해서 보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였다. 요즘은 관객들이 작품과 만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미술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 읽는 공간]
[책 읽는 공간]

생활 속에서의 예술을 생각하면 디자인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어플리케이션 화면, 컴퓨터 화면, 웹사이트의 구성,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다못해 버스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까지도 디자인을 고려한 결과물이다. 책과 문학에서도 디자인은 큰 의미를 가진다. 

서점에서 책을 골라 들 때, 우리는 왜 하필임 그 책을 집어들까? 좋아하는 작가? 매력적인 제목? 모두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눈을 잡아끄는 요소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책 표지 디자인이다. 

잠깐 재밌는 일화를 말해주자면, 책 표지 때문에 필자의 동생에게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동생은 집에 있던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을 학교에서 읽으려고 들고 갔다. 2012년에 발간된 책이었는데, 책의 디자인이 워낙 올드하고 딱딱해서 동생의 친구들은 그 책이 소설이 아닌 오래된 종교 서적인 줄 알았다. 동생에게 혹시 갑자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느냐, ‘예수의 사랑’을 읽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곧 나왔던 개정판 리커버와 특별판 커버는 매우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표지였기에, 필자는 동생과 함께 아쉬워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표지로 리커버가 나오고, 특별판이 나온다는 것은 책의 표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을 사서 소장하는 사람들은 책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길 바라고, 그래서 표지도 예쁘길 바란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서점에서 눈에 띄는 표지의 책을 집어들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작가, 작품, 문체와 만날 수도 있다.

[책 초판본 표지 디자인]
[책 초판본 표지 디자인]

이렇게 중요한 표지 디자인인만큼, 초판본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다. 몇 년 전 정음사에서 윤동주, 김소월, 백석 등 유명 시인의 시집의 초판본 디자인을 그대로 다시 출판하여 인기가 높기도 했는데, 제 2 전시실에서는 여러 책들의 초판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처럼 디지털로 디자인되지 않아 글씨도 손글씨 같았고, 표지의 손그림, 판화 같은 느낌의 그림들도 아름다웠다. 생활에서 접해보지 못한 디자인이어서 그런지, 혹은 뉴 레트로, 뉴트로의 유행과도 묘하게 겹쳐 그런지, 독특하게 예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시 구절들은 자신들이 태어났던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색채와 색을 품고 관객을 만난다.

[윤동주 시집 표지 디자인]
[윤동주 시집 표지 디자인]

 

[꽃내달진 표지 디자인]
[진달래꽃 표지 디자인]

2층 제 3 전시실에서는 ‘이인행각’이라는 제목으로 전시가 이어졌다. 예술가들의 관계를 조명한, 진정한 종합예술의 공간이다.

[예술가들 관계도]
[예술가들 관계도]

벽에는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한 눈에 보여주는 관계도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점과 점을 이어놓은 그림은 현대 미술 작가 솔 르윗(Sol Lewitt)의 작품을 연상시켰다. 화가 김환기와 시인 서정주는 서로 교류하는 관계였다. 화가 이중섭은 시인 구상과 아는 관계였고, 김환기를 통하면 서정주와 아는 관계였다. 한국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화가 이쾌대 또한 김환기를 통하면 서정주와 아는 사이였다. 우리는 흔히 역사 시간에는 역사만을, 국어 시간에는 문학만을, 미술 시간에는 미술만을 따로 따로 배웠다. 누가 누구와 관계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뚝뚝 끊긴 과거만을 암기식으로 외웠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아는 사이였고, 함께 의견을 교환하며 작품을 했다고 생각하니, 이들의 작품 세계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토속적인 서정주의 시들이 고향을 그린 김환기의 몇몇 그림들과도 연결되어 감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갖고 있다. 화가들은 친한 가수들에게 앨범 커버를 그려주고는 한다. 또,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만, 교과서에도 실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으로 유명한 작가 박태원은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를 열광시킨 영화감독 봉준호의 할아버지이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에게는 스토리텔링의 유전자가 흐르는 것이 아닐까.

서정주의 시와 김환기의 그림

[서정주의 시와 김환기의 그림]
[서정주의 시와 김환기의 그림]
[장욱진의 글과 그림]
[장욱진의 글과 그림]

전체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제 3 전시실과 제 4 전시실의 전시 방식이었다. 시와 그림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서정주의 시와 김환기의 그림이 함께 걸려있었고, 화가이자 작가였던 장욱진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의 한 장면을 화가가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림의 세계를 시가 보다 구체화된 언어로서 설명해주고 있었다. 시와 그림들이 연결되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머리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합쳐지는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교류를 살펴볼 수도 있었고, 글에도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 다재다능한 예술가들의 능력을 엿볼 수도 있었다. 

[앉는 공간]
[앉는 공간]

관객들이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며 앉아서 시와 산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고, 그 옆에 그림 전시가 이어졌다. 기둥에 적힌 시와 그림이 걸린 조용한 공간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어떤 전시들은 관객보다 작품을 우선시한다는 느낌을 준다. 작품을 훼손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여전히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부담스럽고, 어떨 때는 피곤하고 힘들지만 앉을 만한 장소가 없어 전시 관람이 힘들다. 그러나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시집이나 잡지, 신문 기고글을 복사해서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넘길 수 있도록 하면서 관객과 작품의 거리를 좁혔다. 복사본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의자들을 배치해서 관객이 미술관을 하얗고 딱딱한 공간이라기보다 편안한 놀이터, 쉼터처럼 느낄 수 있게 했다.

[시집]
[시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고궁 안에 있기 때문에, 덕수궁 미술관에 온다면 실내 미술관과 야외의 고궁을 모두 즐길 수 있다. 문학과 미술을 한 공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드문 기회, 올해 봄이 지나기 전에 꼭 잡아보길 바란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Pratt Institute painting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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