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한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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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이 유행하는 이른바 ‘팬데믹’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가 지속되자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도 지쳐가고 있다. 특히 영화나 공연 등 문화 콘텐츠 부분에서 큰 타격이 이어지자 대중문화를 향한 관심도 남달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24일, 대중서사학회에서 ‘감염의 역사적 상상과 대중문화’라는 주제로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대중서사학회 박숙자 회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러브크래프트와 SF, 좀비, K-크리처 등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도 팬데믹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 등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대중서사학회에서는 지금의 팬데믹 현상과 대중문화를 연결하여 다채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를 예로 들면서 러브크래프트와 같은 코스믹 호러를 연결시킨 점이 흥미로웠다. 코스믹 호러는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문예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 러브크래프트를 통해 우주적 공포라는 단어를 탄생시켰고, 우주주의라는 철학적 개념까지 확장시켰다. 

[사진 제공 = 대중서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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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구)는 더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복도훈 교수는 이처럼 다소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했지만, ‘종으로서의 인간’이라는 단어와 함께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더이상 인간이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지배해 온 세계의 의미가 끝났다.”고 설명했다. 각종 질병들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고, 통제하기도 힘들다는 점이 그의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인간’을 ‘종’이라는 단어와 결합시킨 해석은 자연스럽게 러브크래프트와 같은 초자연적인 호러로 연결됐다. 러브크래프트는 기독교적인 신앙뿐만 아니라 인간까지도 유의미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이한 공포관을 형성했다. 이는 곧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하며 허무주의와 공유하는 듯한 우주주의를 탄생시킨다. 복도훈 교수가 밝힌 것처럼 우주적 무관심주의는 인간을 향한 그 어떠한 악의나 선의가 없는 공허함에서 오는 공포이며, 비인간주의와도 결부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이미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47년의 짧은 기간을 살았던 러브크래프트는 굉장히 가난한 삶을 살았고, 기괴한 글을 쓰는 바람에 당시에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러브크래프트식’이라는 수식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을 경외하는 창작자들이 많다. 복도훈 교수가 소개한 ‘러브크래프트 :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는 러브크래프트의 전기를 다룬 책으로, “러브크래프트는 그가 죽자 그의 작품이 되살아났다.”라는 문구가 있다. 그만큼 러브크래프트는 복도훈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하나의 일반명사가 되었으며, 아직도 우리는 ‘러브크래프트의 세기’에 살고 있다.

불행히도 러브크래프트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복도훈 교수는 그가 인종주의자였다는 점 때문에 2015년에 개최한 세계판타지문학상에서 매년 수상자에게 수여되던 러브크래프트 흉상을 더이상 수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때문에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러브크래프트는 그의 기괴한 문장만큼이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러브크래프트는 지금도 갖가지 대중문화 속에서 나타난다. 특히 대표적인 크리처로 꼽히는 크툴루는 영화 에이리언이나 이토 준지의 만화로부터 시작해 곳곳에서 그 콘셉트가 확연히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복도훈 교수는 Ebb Software의 ‘Scorn(스콘)’이라는 게임을 소개했다. PC 스팀으로 출시 예정이며, 엑스박스 시리즈 전용 플레이 화면을 공개한 바 있다. 에이리언의 디자이너인 H. R. 기거의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불쾌할 정도로 눅진한 사운드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게임이다. 더불어 빅터 라발의 소설 ‘블랙 톰의 발라드’와 맷 러프의 소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를 소개했으며, ‘러브크래프트 컨트리(2020)’는 HBO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특히 이번 주제에서는 한국 SF 작가들의 다시 쓰기(rewriting/rewrite) 시리즈인 ‘Project LC. RC(Project Lovecraft. Recreate)가 눈에 띄었다. 복도훈 교수는 이서영 작가의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와 은림의 ’우물 속의 색채‘, 김보영의 ’역병의 바다‘에서 나타나는 감염과 변이에 대해 집중 탐구했다.

[사진 제공 = 대중서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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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훈 교수는 앞서 러브크래프트의 다시 쓰기의 의미와 딜레마를 강조했다. 러브크래프트가 일반명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러브크래프트식‘의 게임, 영화, 소설 등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도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러브크래프트는 예의 바른 신사였으며, 뉴욕에 있을 당시 다른 인종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다양한 개체군을 낳게 한 주요한 동력이라는 표현도 덧붙였다. 저자라기보다는 독립적인 존재들, 캐릭터들, 공식들의 창안자라는 마크 피셔의 견해도 소개하였다.

그런 면에서 복도훈 교수의 ’러브크래프트식‘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다윈의 진화론을 돌연변이 기형학으로 복제한 듯한 비유와 더불어 러브크래프트만이 해당할 수 있는 기이한 설명이 추가되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는 오래되고 낡은 집의 지하의 축축하고 냉기서린 그늘에 서식하면서 생명체를 부패시키는 유독한 곰팡이와 지의류 등의 식물적인 크리처들이 등장한다.”

러브크래프트나 그 개체군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독파하고 나면 ’러브크래프트식‘의 설명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터무니없이 기이하고, 두렵고,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크툴루의 외형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보통 문어와 용의 모습이 뒤섞인 인간을 상상하는데 복도훈 교수는 서식지인 진흙과 그것의 특징인 악취, 덩어리, 거품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러브크래프트의 우주를 가장 잘 묘사한 문구가 있다. 미셸 우엘벡의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에 따르면 “혼돈으로 치닫는 형상. 우주는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인간은 사라질 것이다. 다른 종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질 것이다. 반쯤 죽은 별들의 창백한 빛이 빙하처럼 공허한 허공을 가로질러 갈 것이다. 별들의 빛도, 허공도 사라질 것이다. 모두 사라질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미셸 우엘벡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우주론과 생물학이 그의 인종차별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적인 증오가 저주의 문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Project LC. RC’는 ‘크툴루의 부름’, ‘현관 앞에 있는 것’, ‘인스머스의 그림자’을 가장 많이 참조하였다. 복도훈 교수가 앞서 언급한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는 새세계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이슬이라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백화점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악취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백화점이 1935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설계된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빈오재‘라는 미지의 존재를 파악하게 된다. ’빈오재‘는 암컷의 더러운 재앙이라는 뜻으로, 새세계 백화점이 미츠코시 백화점인 시절에 탄생한 지하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빈오재‘를 노동 착취와 차별에 시달린 여성들의 원한을 응집시킨 결과물로 해석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이 러브크래프트의 ’크룰루의 부름‘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우물 속의 색채‘는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를 다시 쓴 소설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때문에 황무지가 된 아컴에 여성 식물학자 호프가 돌아온다. 그곳에서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버섯 군락을 채집하던 중에 수백 개의 촉수에 둘러싸인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수도사업소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그곳에는 남자 둘이 있었으며, 오랫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복도훈 교수는 두 작품이 크툴루의 동물적인 이미지에 대한 여성주의적인 전유를 시도하였다고 평가했다. 크툴루가 뿜어내는 점액과 버섯, 포자와 같은 식물을 크리처로 비유한 시도가 이런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역병의 바다‘는 팬데믹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쓰였다. 조카와 함께 동해로 떠날 예정이었던 경호원 무영이 자가격리를 어기고 자경단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대의 세균에 전염된 ’동해병자들‘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복도훈 교수는 타임라인을 재배치한 형식이 꽤 신선했다고 평가했다. 이 소설은 ’인스머스의 그림자‘와 ’데이곤‘, 그리고 ’크툴루의 부름‘을 참고했다.

복도훈 교수는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주의 논란보다는 마크 피셔의 견해처럼 ’독립적인 존재들, 캐릭터들, 공식들‘에 주목했다. 그런 면에서 복도훈 교수가 소개한 러브크래프트의 편지가 흥미롭다. 그는 “나는 원숭이, 인간, 깜둥이, 소, 양 또는 익룡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밝혔다. 이 문구가 인종주의의 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겠지만, 그만의 기이한 분류법도 주목을 받는 것이다. 원숭이와 소, 양, 여기에 인간을 포함시킨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런 면에서 크툴루가 단순히 문어와 용이 뒤섞인 인간의 이미지라는 상상은 금방 포기할 수도 있다. 복도훈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단순히 남근적인 촉수를 가진 동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존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대학교 임태훈 교수의 주장대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러브크래프트 다시 쓰기가 상투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해 복도훈 교수는 불만족스러운 작품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러브크래프트에 비판적이면서도 넘어서려는 움직임들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외에도 이날 대중서사학회에서는 경희대학교 최성민 교수가 발표한 ’SF와 좀비 서사의 감염 상상력‘이라는 주제가 있었으며, 이화여대 김소륜 교수가 발표한 ’한국 현대 소설에 나타난 좀비-되기의 상상력‘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도 있었다. 또한 서울예술대학교 양경언 교수가 발표한 ’감염과 퀴어 서사의 상상력‘, 그리고 성결대학교 정민아 교수가 발표한 ’거리 두기 시대의 K-크리처 콘텐츠 : 공간과 이미지 정치학‘이라는 주제도 있었다.
이날 오후 1시에 시작한 대중서사학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오후 5시 40분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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