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만난’ 예술혼의 집대성...국내 최초 시화박물관 개관

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전라남도 진도에 시‧소설 등 문학 작품과 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최대, 최초의 ‘시에그린 한국시화박물관’이 지난달 18일 개관했다. 시화박물관은 이지엽 경기대 교수가 일평생 수집한 한국의 대표적인 시·서·화(詩·書·畵) 작품들이 집대성된 전시장이다. 여기엔 국내 대표 중진 작가 1000여 명의 자필 시와 그림들이 포함됐다. 그간 시화에 초점을 맞춘 행사는 종종 있었지만, ‘시화 전문 박물관’은 없었다는 점에서 문학‧예술계의 이목이 쏠리는 대목이다.   

이 교수는 지난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자신이 그동안 수집한 시화들을 전시한 ‘현대시 백년축제’ 행사를 개최했다. 당시 각각 천명가량의 시인과 미술가가 대거 참여한 대규모 시화전이었는데, 정부 예산 지원 없이 사비를 털어 기획한 행사였음에도 기대 이상의 관심과 인파가 몰려 성황리에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를 계기로 문학과 그림의 조합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시화박물관 건립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시화전을 준비하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음에도 행사가 크게 성공을 거뒀다”면서 “세종문화회관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폭발적 관심이 쏠리면서 언론들의 집중 조명도 받았던 거로 기억한다”고 회상하며 시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인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고 했다. 

이후 이 교수는 국내 소설을 그림으로 투영시킨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를 하나의 대중문화 콘텐츠로 활용한 시화박물관을 구상하게 됐다. 그는 전통적 형태의 행사를 넘어 일반인에게 친숙하고 접근성이 높은 랜드마크 문화 콘텐츠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스토리를 담아 전문성까지 갖춘 시화전으로 기획을 구체화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화 작품 자체가 지닌 융합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박물관 전시공간 하단에 수석(水石) 1200여 점을 배치해 시각적 효과까지 더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전문적이면서도 독특한 박물관 컨셉으로 구상하게 됐다. 이를테면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소설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그림과 같은 독자성 높은 작품들이 다 있다”며 “그림만 700여 점, 시가 1000여 점, 시화가 최대 800여 점가량 된다. 시화 작품들만 도합 2500여 점 보유하고 있다. 다만 전시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최대 400점씩 주기적으로 돌아가면서 전시할 계획”이라고 국내에서 시화 전문 박물관으로는 최대 규모라 부연했다.   
 
시에그린 시화박물관은 전남 진도군에 설립됐다. 이 교수가 시화박물관의 첫 터로 진도를 택한 까닭이 있었을까. 당초 이 교수는 박물관이 들어설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해남과 진도를 눈여겨보게 됐다. 이 교수는 “해남이 고향이라 제1 선택지로 생각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문화와 예술의 고장인 진도를 차선책으로 보고 있었는데, (주민)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면서 “당시 이동진 진도군수와 진도군청이 시화박물관에 큰 관심을 보이며 적극 지원에 나섰고, 마침 폐교가 있어서 박물관 입주가 가능했다”고 이 군수와 진도군청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박물관 이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시에그린’이란 일견 ‘시(詩)에 그렸다’는 가벼운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시에’가 사정이나 형편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인 만큼 민중적이고 지역민들과 같이 호흡해 나갈 수 있음을 함의하고 있다. 이 교수는 박물관 이름을 작명하는 데 있어 특히 문인화의 거장으로도 알려진 창인 박종회 화백의 예술철학을 담았다고도 했다. 

테이프커팅식죄로부터우담이부재,최한선교수,김윤숭지리산문학관장,길산김길록, 노정자 여귀산미술관 설립자, 이지엽,진도군수,전보삼이사장
테이프커팅식죄로부터우담이부재,최한선교수,김윤숭지리산문학관장,길산김길록, 노정자 여귀산미술관 설립자, 이지엽,진도군수,전보삼이사장

 

그는 “그야말로 박종회 선생은 ‘화중시화(畵中詩畫)’라 불릴 정도로 그림 속에 시를 담아내는 재능이 특출한 분”이라며 “대표적 일례로 시인 윤동주의 초상화에 ‘치심(恥心)’이라는 문구를 넣어 시화로 만든 작품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소개한 박종회 화백의 시화는 윤동주 선생의 시가 품은 주된 정서가 ‘부끄러움’이란 점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는 시에그린 박물관 설립의 근간이 된 한국 시화의 고유 매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국내 시화 작품들은 대체로 안정적이고 온화하면서도 후박한 정서가 잘 스며있다. 여기에 시의성이나 비판적 요소를 함축한 작품도 많아 다채로움을 갖췄다는 게 그의 견해다. 최근에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 등 신흥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아티스트들이 시화를 보다 역동적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시도까지 더해지면서, 시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첨언이다.

시에그린 박물관은 현재 예술인들의 영감 자극과 작품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지역과 문화의 융화를 강조한 이 교수는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문학인들을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의 방문과 참여를 기다리겠다”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지엽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지엽

 

한편, 시화박물관은 33세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 양두환 조각가를 기념한 ‘여귀산 미술관’ 기획전을 병행한다. 양두환 조각가는 진도가 낳은 세계적인 현대조각가로, 목조각의 선구자로도 불린다. 젊은 나이에 별세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그는 천재적 감성을 불태우며 한국의 토속적 분위기를 잘 담아낸 작품들을 다수 배태했다. 그런 그의 잊힌 예술혼을 되살리기 위한 ‘양두환 전국조각공모전’도 개최될 예정이다. 여귀산 미술관에는 양두환 선생의 작품을 비롯해 창현 박종회 작가의 문인화 작품 등 6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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