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누구도 무장하지 않아, 생명들
그냥 그대로 잘 자라는 곳
 
사람들 오가지 않아, 식물들
저절로 천국 이루는 곳
 
통일이 되더라도, 동물들
그냥 그대로 살고 싶은 곳
 
눈 감으면 여기 초록 영혼들
우르르 남북 향해 달려 나가지
 
달려 나가 남북꽉 채우지
중립의 새ᄊᆞᆨ들로 가득가득 채우지
 
-이은봉 시인, ‘중립의 새싹들 ―비무장지대’ 전문.
 
 
대전문학관장 이은봉 시인의 열두 번쨰 시집이 발간됐다. 시집 “걸어다니는 별”은 전작 “생활”에서와 같이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실로 가득하다. 시를 찾기 위해 멀리 가지 않고 우리 곁에 있는 다양한 소재들에서 출발한 그의 시편은 혼란한 세상 속 단비 같은 쉼터가 되어준다.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꽃과 잎새, 새싹과 별 등 자연물이 돋보이는데, 이는 짙은 매연과 소음 가득한 도시의 모습과 대비되며 평화로운 자연에서의 삶이 부각된다. 시인의 시 속에서 서울은 짐짓 쓸쓸하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밤이 되어도 별 보이지 않는다 서울의 밤, 너무 밝고 환하기 때문이다
 
불 끄고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흐릿하게 빛나는 서울의 별……
 
끝내 별 보고 싶으면 밤 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늘 다시 맑아질 때까지, 서울 이루 캄캄해질 때까지
 
서울 사람들 온 천지가 캄캄해지지 않으면 별 키우지 않는다 기르지 않는다.
 
-이은봉 시인, ‘별 ―서울’ 전문.
 
이러한 시 세계는 오랜 교직 생활을 끝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시인이 살아가는 삶의 투영임과 동시에 현 시대 잃어버린 오랜 고향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시집 “걸어다니는 별”에서는 어느덧 찾아온 노화와 이를 받아들이는 화자의 정서가 두드러지는데, 이때 화자는 이를 거부하거나 자조하기 보다는 이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의 시편은 노화 그 끝에서 인간의 존재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것을 소멸이 아닌 순환으로 읽어낸다.
 
이번 시집에 특히 신경을 쓴 지점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은봉 시인은 “거시적인 자연관 아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그리려고 했다.”며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하나로 합쳐서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했다. 이와 더불어 “현실의 모순과 어긋난 점 등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도 들어있다”고 대답했다.
 
이번 시집에서 또하나 눈여겨볼 만한 지점은 물흐르듯 읽히는 그 능숙한 흐름이다. 난해한 시편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시집 한권을 내리 읽기가 퍽 힘들어진 요즘, 고즈넉한 공간에 앉아 “걸어다는 별”를 펴든다면 누구든 그 마지막 장을 보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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