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민족 대명절 한가위가 돌아왔다. 코로나 19로 예전 같지 않은 한가위 분위기지만, 명절 연휴를 앞두고 설레는 기분 만큼은 여전하다. 뉴스페이퍼는 추석 연휴를 맞아 쉬는 동안 읽기 좋은 책을 엄선해보았다.

이어지는 추천 도서는 시집과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었다. 뉴스페이퍼는 코로나 19와 함께 다양해진 명절 모습 속에서 저마다 어울리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길 바라며 이 가을에 어울리는 책 다섯 권을 소개한다.

사진=김보관 기자
사진=김보관 기자

올해 추석에는 고향을 찾지 않고 집에 남아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향 대신 캠핑장을 찾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연휴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시집을 소개한다.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는 권창섭 시인의 첫 시집으로 기발한 상상력과 치밀한 문장력, 통통 튀는 언어의 구사가 돋보인다. 

재기발랄한 언어의 사용이 눈에 띄는 표제작 '고양이 게스트 하우스'를 비롯해 ‘아이 미스 언더스탠딩’,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등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는 떠나지 않고도 새로운 세계를 여행 중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회기로, 회기를 회귀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달려가야만 하는데, 설마 끄고 나온 것이면 어떡하지, 가스불, 억울할 것만 같은데, 울컥할 텐데, 후회할 텐데, 끝도 없이 뒤바뀌는 생각, 한결도 같이 달라붙어 있는 두 발, 앞뒤를 자꾸 거스르는 시간, 돌아갈 수도, 돌아가지 않을 수도 없는 거리, 이렇게 멍하니 서 있다 보면, 바르샤바가 불에 타기 시작할걸, 걷잡을 수 없을걸, 그렇지만 여기는 회기역, 아무리 1호선을 타고 달려도, 바르샤바에 다다를 순 없을걸, 회기가 기회가 된다면, 기회가 위기가 될 수도 있을걸 (후략)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중에서.

사진=김보관 기자
사진=김보관 기자

추석과 함께 고향집 농촌의 정서가 그리운 이들이라면 '시인 친구'와 '농부 친구'가 주고받은 에세이집 "고라니라니"를 추천한다. 이소연 시인과 주영태 농부가 함께한 이 에세이집은 도시 시인과 시골 농부의 생태일기로 독자들에게 고창의 아름다운 들판을 건넨다.

2021년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 선정 작품이기도 한 “고라니라니”를 두고 정세랑 소설가는 “짚풀로 구워낸 서리태 맛이 난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고라니라니”를 펼쳐 든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논에 사는 우렁이와 쇠똥구리, 빨갛게 익은 홍시와 대추의 참맛을 특유의 정서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김보관 기자
사진=김보관 기자

추석이 있는 가을은 다른 말로는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불린다. 가을의 독서에 어울리는 소설 세 편도 소개한다.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는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하고 이를 엮어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로 2018년부터 시작되었다.

올가을을 맞아 출간된 “소설 보다: 가을 2021”에는 구소현 작가의 ‘시트론 호러’, 권혜영 작가의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이주란 작가의 ‘위해’가 실렸다. ‘소설 보다’ 시리즈에서 또 한 가지 맛볼 수 있는 재미는 젊은 작가의 소설은 물론이고 선정위원이 직접 참여 작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수록한 점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과 한층 더 가깝고 긴밀하게 연결된다.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는 결국 모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말도 때에 따라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고, 공격적인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을 때도 있고요. 한때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과 그만하라는 말이 꽂힌 적이 있었고요, 최근에는 집이 얼마인지 묻거나 결혼을 왜 안 하는지 묻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좀 불쾌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가끔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을 때는 왜 그 말에 반응했을까 지겨워질 때까지 생각해보는 편인데요, 나중엔 아, 내가 그것에 대해 이런 마음이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어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폭력적인 말과 그러한 말이 발휘하는 힘’에 대한 이주란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사진=김보관 기자
사진=김보관 기자

긴 연휴 동안 조금 더 긴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이라면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도 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5년 만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은 무려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이로 인한 무고한 희생에 관해 그린 작품으로 경하와 인선, 정심으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인간이게끔 하는 사랑에 대해 고찰한다. 

지난달 30일 예약 판매를 시작한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판 양장 한정판은 이미 매진된 상태이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 속에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짧지 않은 연휴 기간 오래 사색에 잠기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추천한다.

사진=김보관 기자
사진=김보관 기자

추석 연휴 기간 어디도 가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독자라면 이혜미 시인의 “빛의 자격을 얻어”가 제격이다. 이전 시집 “뜻밖의 바닐라”에서 ‘너’와 ‘나’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았던 이혜미 시인은 이번 “빛이 자격을 얻어”를 통해 관계의 맥락을 벗어나 홀로의 완전함을 지닌 존재로 나아간다.

독자들은 이혜미 시인의 시를 통해 그와 함께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여행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시 ‘롬곡’에서 특히 드러나는 이러한 정서는 기존의 관계 속에서가 아닌 혼자만의 모습으로 단단히 떠오르게 되는 ‘나’의 우주를 조우하게끔 한다.

심장을 보려 눈을 감았어. 부레의 안쪽이 피투성이 시선들로 차오를 때까지. 어항을 쓰고 눈물을 흘리면 롬곡, 뒤집힌 우주가 안으로 쏟아져 내렸어.

행성의 눈시울 라래로 투명하게 부푸는 물방울처럼, 빛을 질식하게 만드는 마음의 물주머니처럼. 흐르는 것이 흘리는 자를 헤매가 한다면 어떤 액체들은 숨은 길이 되어 낯선 지도를 그리겠지.

사랑하는 자는 흐르는 샘처럼 고귀하나 사랑받는 자는 고인 진창을 겪으니. 진공을 견디는 발목, 어둠 속을 서설이는 걸음들.

우주를 딛고 일어서는 힘으로
발끝이 둥, 떠올랐어.

-‘롬곡’ 중에서.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