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에 ‘시인의 꿈’ 이룬 박영종 작가 첫 시집

올해로 80세를 맞은 박영종 시인의 첫 시집. 이혜선 시인(문학평론가·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 평한 대로 이 시집은 ‘한 세기의 역사가 깃든 도서관’이다. 고교 교장이던 남편과 사별한 뒤 60대에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70대에서야 본격적으로 뛰어든 늦깎이 시작(詩作) 공부의 결실이다. 따뜻한 가슴으로 쓴 작품 60편을 담아냈다.

 

박 시인 :  저는 인천 숭의초등학교 13회로 나왔어요. 학교를 가려면 한 10분 정도 과수원길을 거쳐서 가는데, 수봉산 자락에 하얗게 핀 배꽃이 만발했어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그런데 1학년 때 6.25가 나서 오빠가 학도병으로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왔는데 시들시들 앓다가 내가 4학년 때 하늘 나라로 갔어요. 그래서 그때 생각에는 '내가 의사가 되면 고쳐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꿈이었어요.

 

박 시인의 첫 시집 <빨간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에는 우리네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간 인천의 옛 추억들이 생생한 시어들로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기차 소리

 

뻬에 엑 뻬에 엑

수증기 내뿜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

귀를 막고 뛰게 했던 증기 기관차

석탄 빨갛게 태운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퍼져 나갔다

칙 칙 퍽 퍽

큰 쇠바퀴 굴러간 뜨거운 선로 위에

엎드려 귀 대고 듣던 멀어져 가는 소리

나도 같이 서울로 가고 있었지

친목 위에 내 나이 엄마 나이 새다 보면

점점 희미해지던

인천에서 서울 가는 기차 소리

 

시집 <빨간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의 또 다른 주제는 남편 사랑입니다. 남편도 인천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자랐습니다. 26살에 결혼한 남편은 오랫동안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교장 발령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 시인 : 삼형제 아들한테는 자상한 아버지였어요. 그리고 제자들한테는 정말 참 스승으로서 굉장히 추앙받는 그런 선생님이었거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찍 가셨어요. 갑작스럽게 가셨기 때문에 내가 임종도 못 했어요. 안타깝죠. 

 

빨간 자전거

 

당신의 온기 묻어 있는 자전거

삼천리 레스포 자전거

닦고 기름칠하면 윤기 되살아나

나의 발이 되어 온 삼십육 년

건강한 마음 충만한 생활

오늘도 한몸 되어

패달 밟으며 하루를 채운다

달리고 또 달려

건강을 지켜준 당신의 선물

빨간 자전거

 

이혜선 시인 : 박영종 선생님은 제가 알기로 81세 나이를 18세로 거꾸로 사시는, 지금도 아주 이상과 꿈이 있는 또 열정이 있는 그런 여고생으로 사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박영종 선생님을 만나면서 저도 배우고 감동한 바가 큽니다. 제가 이번 시집을 통해 보면서, 아프리카 속담에 그런 게 있습니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 불탄 것과 같다.' 그런 말이 있는데 그걸 생각했어요. 박영종 선생님의 시집 속에 한 세기의 역사가 다 들어 있는 도서관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이 시집은 박영종 선생님 개인의 역사이면서 또 우리 민족의 역사, 민중의 역사가 깃들어져 있는 그런 도서관 같은 시집입니다.

 

김연숙 수필가 : 박영종 선생님의 시집 <빨간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 시집을 읽었습니다. 시인님은 1961년도에 인천여상을 4회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2007년도, 66세 나이에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과에 입학했습니다. 그 당시 젊은이들도 포기하기 일쑤인 이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도전정신과 열정들이 이 시집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80세를 기념해 펴낸 박 시인의 첫 시집. <빨간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행복, 때론 그리움', 2부 '사랑하는 손주들', 3부 '흑백사진의 추억', 4부 '웃음 보약'입니다. 이 중 1부 '행복, 때론 그리움'을 통해서는 남편과의 곡진한 사랑이, 2부 '사랑하는 손주들' 편에서는 화기애애한 가족 이야기가 또 3부 '흑백 사진의 추억' 편을 통해서는 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역사의 질곡 속에서 가난과 상처를 이겨내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인 4부 '웃음 보약'을 통해서는 노년의 삶을 행복하고 값지게 보내고자 하는 시인의 삶이 한 편 한 편 단아한 시어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박 시인 : 부모의 눈에는 자식들의 예쁜 부분이 크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삼 형제 의리 좋고, 금슬 좋은 게 참 행복합니다. 손주들 잘 기르고 여러 가지 일을 잘 해결해 나가는 우리 아들 며느리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코로나 있기 전에 우리 큰 손자가 할머니 일본 여행 시켜준다고 그래서 같이 여행을 했어요. 그 여행했던 게 지금도 남아 있어서 생각하면 참 행복합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혜선 시인은 '박영종 시인은 자서전을 쓰듯이 자기와 민족의 역사를 시로 재구성하여 보여주면서 자아성취감을 얻는 동시에 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는 일을 해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같은 평가 그대로 박영종 시인이 살아온 삶 자체가 문학이었습니다.


문학은 그가 어린 시절 꿈꿨던 의사 역할 이상으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을 정신적으로 치유하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빨간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 이 시집 한 권에 담긴 여러 처방전이 코로나 19로 지친 많은 이들에게 힘찬 활력이 될 것이라 기대해보는 2021년 가을입니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