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완 수필집 《양평가는 길》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은 정갈한 느낌에 젖으며 원고를 읽었다. '붓 가는대로'식의 안일한 글과는 달랐다. 격동기를 헤쳐 온 삶의 애환이 탄탄한 산문정신으로 배접되어 영상처럼 선명하다. 글 속에 투영된 지은이의 삶의 역정은 그의 개인사를 넘어선 보편성과 감동을 수반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 특히 먼저 가신 부군 유인호 교수님에 대한 애틋한 회상과 추모에서 그러하다. -한승헌 변호사

김정완 작가를 만나러 양평 가는 길에 만난 하늘 모습입니다. 짧은 여우비를 쏟아낸 하늘은 햇살과 빗방울로 만든 화폭 한 편을 연출했습니다. 김 작가의 자전 에세이 양평 가는 길과 많이 닮은 이 날. 하늘은 그가 겪었던 우리 네 근현대사의 압축판입니다.

 

맑게 갯던 하늘에 어느 순간 갑작스런 소나기가 쏟아졌고 그로 인한 빛과 그림자의 오랜 공존 그리고 어느 날 맑은 하늘을 되찾았지만, 이번엔 남편과의 영원한 작별로 1912년 이래 그의 가슴엔 늘 맑은 날에도 보슬비가 내립니다. <양평 가는 길>은 바로 그 보슬비로 꾹꾹 눌러쓴 팔십 성상 회상기입니다.

 

김 작가: 근 한 십 년 동안 내가 작품을 모아서 낸 책인데요. 괴테가 말하듯이 '모든 작품은 그 작가의 자서전일 뿐'이라고 말했듯이, 저도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예요.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아픈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좀 녹여서 그렇게 쓰라고 선생님이 그러셔서 그런대로 썼는데 남들이 읽을 때 좋은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뒤 약사로 활동하며 유인호 중앙대 교수의 아내이자 1남 3녀의 어머니로 일가를 이룹니다. 그의 남편 유 교수는 엄혹했던 유신시절 '행동하는 양심'의 표상으로 존경받던 경제학자였습니다.

 

김 작가: 중매로 만났어요 그랬는데 처음 보니까. 나하고 나이가 일곱 살 차이에요. 그때는 내 친구들도 차이가 많이 나는 신랑하고 결혼하려고 그랬는데, 그런데 특별히 늙어 보였어요. 그래도 좋다고 아저씨, 아저씨하면서 다녔어요. 그런데 이제 애들 기르면서 엄하고, 또 자기가 뭐 하려고 하는 것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또 그냥 허투루 끝까지 하는 게 아니라 더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김정원 작가는 1992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외로움을 달래려 칠십 가까운 나이에 습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2005년 <책과 인생>을 통한 등단과 2011년 한국 산문 문학 작품상 수상을 거쳐 마침내 등단 10주년을 맞아 2015년 첫 산문집 <양평가는 길>을 상재했습니다.

 

박상률 작가: 김정완 선생님의 수필집 <양평가는 길>은 가히 대한민국의 어떤 현대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연대기순으로 그렇게 했다면 수기나 일지에 그쳤을 텐데, 그것을 곡직한 묘사를 통하거나 또는 어떤 반전을 통하거나 어떤 유머코드를 숨겨놓고 있거나 해서 수필이라고 하는 장르 틀 안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쉽고요. 작가 자신의 어떤 자아 성찰된 부분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박서영 작가: 선생님의 수필 중에서 '남편의 영혼과 함께 나눈 런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먹먹합니다. 부군 되시는 유인호 박사님과 안식년을 보냈던 런던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선생님은 추억이 스며있는 곳들을 여행하면서 하늘나라에 있는 유 박사님과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보고싶다", "그립다" 이런 표현이 없어도 독자로 하여금 속울음을 삼키게 합니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구속된 남편의 옥바라지 이야기와 50대 중반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가슴 아픈 사연 등이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그런가 하면 6 25 전쟁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 남편의 원대한 뜻을 따라 양평군 개군산 자락으로 이사한 이야기 등이 문학적으로 농축돼 질곡의 시대를 경험한 많은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합니다.

 

김 작가: 남편이 가고 나서요. 또 산 일도 그렇고 해서 이제 글이래도 좀 제대로 한 번 써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그게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작품도 내고 책도 내고 또 문인사회도 알게 되고 그래가지고 지금은 문학의 길로 들어선 거죠. 그런데 아직 내가 문인이라고 생각도 못 해요. 어설퍼요.

 

일곡 유인호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남편을 기리는 한편 늦깍이 등단 작가로서 글감 사냥과 문장 조탁으로 김정원 작가의 일상은 늘 분주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여정에서도 2014년부터 4년 동안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장을 맡아 우리 문단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김 작가: <한국산문>이 내가 들어갈 때보다도 참 많이 커졌어요. 회원이. 우리가 코로나 때문에 지금 행사를 못해서 그렇지 한 삼백 명 이상이 돼요. 그래서 아무 장소에서 나 못해요, 우리가. 그래가지고 리버사이드 호텔, 그 큰 데서 하면은 또 외부 손님도 모시고 우리 회원들도 다 오고 그러면 굉장히 뿌듯해요 아주.

 

이 같은 그의 삶과 그의 문학이 오늘도 양평 남한강에 도도한 물줄기처럼 흘러 주변 문우들과 습자의 길을 망설이는 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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