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반수연의 고향은 통영이다. 강구안과 해저터널, 언덕 위 동네에 미로처럼 난 좁은 골목길이 있는 곳.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캐나다의 밴쿠버이다. 때론 곰이 출몰한다는 하늘을 찌르는 침엽수림과 바다 같은 호숫가, 거대한 설산들이 지척에 있는 곳. 그녀는 SNS에 가끔 저무는 태평양 연안이나 이틀 동안 운전해서 달려간 로키산맥의 장엄한 산들을 찍어 올린다. 다섯 시간 이상은 운전해서 갈 길이 차단된 섬 같은 이 나라에서 바라보는 그 기나긴 여정이 몹시 부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몇 날 며칠의 긴 여정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향 통영으로부터의 도망이란 걸. 아니 통영을 향해 달리는 사무치는 그림움의 질주라는 걸. 이 모순된 욕망의 발자국들을 그녀는 거미줄처럼 섬세한 모국어로 직조하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다는 걸. 경계인의 지문과 같은 소설들이었다. - 김이정 소설가

통영에서 출생한 반수연 소설가는 1998년 캐나다 벤쿠버로 이민을 떠났다.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메모리얼 가든>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2015년, 2018년 재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하고 2020년에는 단편소설 <혜선의 집>으로 재외동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반 작가: <통영>은 제가 2005년 <메모리얼 가든>으로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을 하고 16년 동안 쓴 소설을 모아서 낸 저희 첫 번째 소설집이고요. 16년 동안 제가 소설을 쓸 수 없었던 10년, 썼던 6년, 그 기간들이 다 모여져 있는 그런 소설 집입니다. 일곱 편이 다 해외 이민자들의 삶을 다루었고요. 그중에서 특히 <통영>이라는 소설은 귀항의 의미를 담고 있는 그런 소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고향 통영은 작가에게 어떤 곳이고 어떤 존재인가요?

 

반 작가: 통영은 제가 작가의 말에도 그런 표현을 썼는데, 이민을 가지 않았다면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것이고 또 통영이 제 고향이 아니었으면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제가 덧붙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는데요. 그 가난이라는 것이 물질적 가난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가난했고, 문화도 가난했고, 관계도 가난했고 모든 것이 가난했던 곳이었죠. 그래서 저는 통영을 떠나고 싶었고 또 통영을 떠났지만 결국은 다들 아시다시피 통영이 어떤 곳입니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결국은 긴 먼 길을 떠나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런 곳이 제 고향 통영입니다.

 

- 23년 이민 생활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반 작가:  아까 고향의 가난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고향에서의 시간은 저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면 이민은 제가 선택해서 제 발로 걸어간 곳이잖아요. 그래서 그곳에서 부닥치는 어떤 고난과 이런 것들은 모조리 저희 책임이었고 또 저의 선택이었고 했기 때문에 또 다른 종류의 고립, 아픔, 그런 것들을 겪어야만 했는데요. 제가 생각할 때 해외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은 거대한 불가항력의 상황 속에서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 이런 것들에서 당황스럽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을 초창기에 많이 보냈습니다. 저는 거기서 가자마자 아이를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는데요. 거기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햇죠. 물론 여성성도 포기해야 됐고, 개인으로서 나의 자존감이나 이런 것들도 포기해야 됐고, 하여튼 많은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굶기지 않고 먹여 살려야 된다는 그런 시절을 한동안 보냈고요.  그러다가 제가 좀 아팠습니다. 아프면서 생의 유한성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제 욕망을 집중해서 쳐다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런 기간을 가지면서 글을 썼고, 소설을 썼고, 등단을 했고, 그렇지만 또 생활에 밀려서 그런 것들을 실현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그런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제가 이민 생활을 무사히 지금까지 해오게 만든 아주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나의 말이 꿈결처럼 아득히 멀어졌다.

"니 이민 가고, 저거 엄마 돌아가시고 찾아왔더라. 어무이처럼 모시고 싶다꼬. 현택이를 이 땅에 못 살게 만든 건 지 탓도 있을 끼라고. 지를 현택이처럼 생각하라꼬. 처음에는 펄펄 뛰던 엄마도 나중에는 제법 잘 지냈다. 어무이, 어무이 하면서 명절 때나 어버이날이나 계절 바뀔 때마다 생선이고 뭐고 표 안 나게 많이 챙깄다···."

누나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자장가같이 달콤했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양팔을 벌리고 누웠다. 누나는 수건을 돌돌 말아 머리 밑에 받쳐주었다. 택아, 주먹 좀 펴고 자라. 자면서도 그리 주먹을 쥐고 자노. 누군가가 손을 만지작거린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어머니인지 누나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등단작, <메모리얼 가든>은 어떤 내용인가요?

 

박 작가: 제가 이제 이민 가서 첫 번째로 했던 식당을 3년 만에 완전히 망하면서 매일 아침에 식당은 손님들을 주기 위해서 신문을 항상 사서 넣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뭐 그날의 기사가 제가 뭐 어렵기도 하고 그렇게 재미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기사 뒤에 있는 부고를 읽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부고들이 죽음을 알리는 거지만 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었고, 또 우리가 시쳇말로 죽기 살기로 살아간다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끝이 이건데 그러면서 묘지 산책을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메모리얼 가든>은 이민을 와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자신이 묻힐 땅을 찾기 위해서 묘지를 사러 다니는 이야기인데요. 우리가 이민을 갈 때는 거기서 살려고 가는 거지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니까, 우리 모두가 다 죽는다는 건 뻔하고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국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노인의 마음은 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에서 접근해서 쓰게 된 작품입니다.

 

- 소설 속 '혜선'과 이민자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박 작가: 혜선은 <혜선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인데요. 이국에서 집이라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오롯이 내가 가꾸고 영위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혜선의 집은 혜선의 몸과 분리되지 않는 공간이고 그래서 그 늙고 병들어서 자기의 몸이 잠식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장악했던 공간에서 밀려나는 감정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제가 좀 써보고 싶었던 작품인데요. 혜선에게 또는 이민 온 여성들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뭔가를 그렇게 이루어 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냥 여행처럼 인생을, 삶을 살아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것이 가족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여행이었으면 좋겠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야 진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말씀 꼭 드리고 싶네요.

 

- 앞으로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박 작가: 저는 노년의 삶, 이민의 삶에 대해서 당사자가 될 것이고 또 당사자이고 그래서 당사자만이 쓸 수 있는 그런 목격자이자 또 그걸 견뎌내는 사람으로서 그걸 쓰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요. 인간이 생로병사를 겪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병들어 죽는 삶을 당연하다고 여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될 수 있으면 핍진성 있게, 진솔하게 써나가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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