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욱>


글 짓고 그림 그리는 몽상가. 2014년 장편소설 『표절』을 시작으로 단편소설집 『미노타우로스』, 중·단편 소설집 『허물』, 『핑크 몬스터』, 스마트소설집 『그림이 내게 와서 소설이 되었다』, 장편소설 『물북소리』 등을 펴냈다. brunch.co.kr/@kimmirra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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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파티의 추억

답답한 팬데믹에 숨이 막혀 창을 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들어올까 봐 걱정됐다. 코로나 19 변이 바이러스는 뱀파이어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사실 뱀파이어가 실존한다는 것도 사람들은 모르긴한다.

창밖을 바라보니 벚꽃 잎이 날렸다. 밤하늘에 날리는 함박눈 같았다. 사거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건물의 장식 조명이 반짝거릴 때마다 커다란 십자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손으로 십자가 불빛을 가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현기증이 나서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벚꽃 잎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무수히 많은 흰나비가 날개를 파닥이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내 가슴에도 나비가 날아올랐다. 나비처럼 춤을 추던 샬리가 떠올라 속이 쓰렸다.

루마니아에서 작곡 공부 할 때 주말마다 사람답게 변신하기 위한 포에나리 갱생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의 정체성을 버리는 과정이 혹독하여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때려치울까 말까 하던 차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자 바로 귀국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혈액 금단현상이었다. 환절기나 피로할 때 슬프거나 기쁠 때, 먹어줘야 하는 그것은 비타민과 같아서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결핍되면 생명에 지장을 준다.

금단현상을 해결하고자 궁리 끝에 나 같은 종들이 모여 서로 피를 음미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르는 사람을 덥석 물었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우리는 보통 인간들보다 더 치명적이다. 세계어디를 가나 사회적 소수자는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힘들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보름에 한 번 상생을 위한 모임을 열었다. 검은색 후드 티를 드레스코트로 정했다. 입장할 때는 내가 개별적으로 전송한 암호를 대야 하고 체온도 철저히 체크했다. 상가 지하 창고에 모여 둥글게 자리를 잡는 동안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다. 알코올 냄새를 맡은 촛불이 활활 타오를 때 상생 제례의 진행자는 주크박스를 열고 미국 매사추세스 공대 과학자들이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을 틀었다.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연주음악으로 변환한 작품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단백질은 약 1,2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고 표면 곳곳이 우리의 감춰진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그 부위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이빨과 같아서 백신 개발의 표적이다. 과학자들은 아미노산이 나선형으로 꼬여 있거나 일직선으로 뻗은 모양에 따라 고유의 음계를 부여했고 열에 의한 분자 진동에도 고유의 소리를 부여해서 악보를 완성했다고 한다. 연주곡은 조용한 차임벨 같은 소리로 시작해 경쾌하게 현을 튕기는 소리로 바뀌다 중간중간 천둥이 치는 소리도 났다.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구조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은 항체나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 부위를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송곳니를 목에 잘 꽂기 위해 긴장감이 필요 했으므로 단지 배경음악으로 틀었을 뿐이다.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을 들으며 원을 그렸다. 천천히 돌면서 눈빛을 주고받으며 짝을 맞추는 시간은 아주 피곤했다. 나는 보름마다 새로운 피 맛을 보는 자체로 만족스러웠는데 다른 회원은 짝을 찾는 취향이 무척 까다로웠다. 그러다가 샬리를 만나 달라졌다. 그녀의 피 맛은 생존 그 이상의 쾌락이었다. 회원은 항상 짝수로 구성했다. 한 명이라도 빠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달의 모임에선 제비뽑기하여 한 명을 탈락시켰다. 매달 새 회원이 들어왔다. 모이다가 서로 눈이 맞으면 나오지 않다가, 서로 피 맛이 싫증나면 다시 나왔다. 상생 제례에서는 서로 손을 잡고 지하창고를 도는 동안 짝이 정해지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이 멈추면 제자리에 선다. 진행자가 알코올을 묻힌 솜을 하나씩 나눠주면 각자 목을 닦는다. 다시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이 시작되면 짝끼리 끌어안고 서로의 목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끼워 넣고 피를 있는 힘껏 흡입한다. 그 순간만큼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이 감미로운 연주로 들린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이 끝나면 흡입을 바로 멈추고 서로 떨어져야 한다. 그날 나의 짝은 신입회원 샬리였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피가 머리로 쏠렸다. 그녀의 피가 얼마나 달콤하고 새콤했던지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악이 끝났는데도 끝난 줄 몰랐다. 그녀는 내 목에 박았던 송곳니를 뽑았는데 나는 빼지 못했다. 상생 제례에서는 꽂아야 할 때 꼽고 뽑아야 할 때 뽑아야 한다. 그녀는 나에게 많은 피를 내주고 쓰러졌다. 그녀가 나를 밀쳐내지 않을 때 나에게 끌렸다는 감이 왔다. 나는 회칙에 따라 회원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맞는 바람에 그녀의 피를 다 게워내고 말았다.

그날 이후 샬리는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샬리를 다시 만난 건 한 달 뒤 상생 제례에서였다. 그녀는 푸른색 스카프를 어깨에 두르고 엉덩이에 쫙 달라붙는 실크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그녀는 몸에 스카프 자락을 풀었다가 감으면서 춤을 췄다. 조명을 받은 스카프가 반짝거렸다. 스팽글이 잔뜩 박힌 스카프가 내 몸 구석구석 자극하는 것 같았다. 내 안의 덩어리가 팽창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 몸을 흐느적거리면서 달콤새콤했던 그 날의 피 맛을 떠올렸다. 그녀를 유혹해 멋진 밤을 보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샬리는 포르쉐를 타는 대학원생 제이하고 눈이 맞았는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멍청하게 생긴 녀석이 뭐가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제이와 그녀가 지하창고를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달려 나갔다.

“샬리, 오늘 밤 내 피 맛보고 싶지 않아?”

제이와 그녀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샬리가 제이에게 키스하고 말했다.

“난, 제이가 더 좋아.”

“너 후회하게 될 거야.”

제이가 샬리의 손을 잡아끌었다.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는다는 게 그만 스카프를 잡고 말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스카프를 풀었다. 그녀는 스카프를 버리고 제이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파티 장소로 돌아와 독한 위스키를 연신 들이켰다. 스카프 냄새를 맡다가 스카프를 목에 감고 위스키를 다시 따랐다. 정신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했다. 그러다가 어느 중년의 여자와 마주쳤다. 그녀는 누렇게 뜬 얼굴이었다. 눈빛은 석양의 빛깔처럼 우울했다. 나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그녀를 보자 허기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미치겠어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도 미칠 지경이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목에 송곳니를 박았다. 그녀의 피 맛은 위스키를 순식간에 게워낼 정도로 역겨웠다. 나는 송곳니를 바로 뽑고 그녀를 밀쳐버리려 했지만 그녀는 내 목에 두른 스카프를 움켜잡고 내 피를 계속 흡입했다.

“그만, 그만 먹어.”

“너무 맛있어. 조끔만 더 먹을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두통에 시달리며 거울을 봤다. 목에 감은 스카프는 피범벅이었다. 스카프를 풀었다. 스카프와 내 목에 송곳니 자국이 선명했다.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우리 종족은 목에 송곳니를 박을 때 마취제를 분비하고, 피를 흡입하고 송곳니를 뺄 때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엽록소를 분비한다. 이 모든 것들이 건강하지 않으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 병에 걸린 것이다. 설마 그녀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린 것은 아니겠지, 덜컥 겁이 났다. 회복하려면 신선한 피가 필요했다. 다음 상생 제례 기다리는 동안 끝없는 통증에 시달리다 냉장고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인공 피를 뜯어서 잔에 따른 다음 샬리를 위해 건배했다. 맛이…….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창밖에 뿌렸다. 세상은 피를 끼얹은 것처럼 고요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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