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영

 

1969년 대한민국 서울 출생, 물리학 박사.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2019년 SF 초단편 공모전에 입선하며 SF 창작활동 시작.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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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특공대

김 달 영

내가 어쩌다가 이런 작전을 지휘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정세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20세기에 출판된 미래소설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완전 통일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상호간에 꽤나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꾸준히 교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통일도 제법 가능해 보였다. 내가 사관학교에 지원했을 때만 해도 해빙 무드가 최고조에 이르러서 나는 멋진 장교가 될 생각만 했지 이렇게 임관하고 몇 년 지나지도 않아 자살특공대를 지휘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평화협력 분위기를 깨어 버린 것은 역시나 외세였다. 21세기 초반부터 점점 대립이 격화되던 미국과 중국이 결국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고 북한은 중국 편을 들고 남한은 미국 편을 들면서 불과 1세기 만에 또다시 이 땅은 강대국들의 대리 전쟁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전쟁의 양상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개전이 임박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경제 규모 측면에서나 군사력 측면에서나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니까 오래지 않아 아군이 승리하고 한반도는 통일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전세는 아군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수도는 불과 며칠 만에 함락되었고 3주 뒤에는 총사령부조차 한반도의 끝까지 밀려버렸다. 군부에 똥별들만 모여 있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알면서도 겉으로만 큰 소리 치고 체제 안정에 급급했던 것인지 … 모르겠다.

나도 위관급 장교로서 계속 패주하는 군대 속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때문인지 죽을 것이 100% 확실한 이번 작전 명령을 받았을 때도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판사판 어차피 이거 아니어도 곧 전사하게 될 것 같았으니까.

우리는 한반도의 절반을 가로지르며 며칠째 야간산악행군을 계속해 왔다. 이 작전의 내용은 12개의 분대 규모 특수부대가 각각 1개씩 핵배낭을 가지고 최대한 적군의 눈에 띄지 않은 채로 상대편 후방에 침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낮에 행군하거나 평지로 행군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우리 같은 소규모 부대가 적 점령지 한복판에서 발각되면 결과는 전멸뿐이다. 들키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임무는 99% 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낮에는 우리끼리 ‘고치’라고 부르는 1인용 생존 유닛(unit)을 땅 속에 파묻고 그 속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땅 속에 밀폐되어 있어도 공기가 통하므로 호흡이 가능하고 배설물도 유출시킬 수 있게 장치된 물건이다. 밤에는 산길을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행군했다. 보행 속도를 높여주고 산길을 오를 때 반동력을 부여해주는 탄성군화가 지급되어서 일반 보병들 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행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발열 기능 섬유로 제작된 군복 덕분에 1월의 혹한 속에서도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지휘관으로서 내가 착용한 강화 세라믹 소재의 방탄 헬멧에는 위치 파악용 위성 GPS 장비가 내장되어 있다. 아무리 패색이 짙어진 군대였지만 죽으러 가는 놈들에게 그래도 장비 보급은 괜찮게 해준 편이었다.

흩어진 12개 분대들의 임무는 모두 똑같았다.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적의 심장부 목표지점까지 침투한 다음에 핵배낭을 터뜨려 적의 수도와 총사령부를 초토화 시키는 것이다. 그걸로 우리 편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는 못하겠지만, 상층부가 전멸하면 적군도 전쟁 수행 의지가 꺾여버릴 것이다. 아마도 휴전협상이 시작되겠지.

높은 산봉우리 또 하나를 넘고 나니 우리가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착했음을 GPS가 알려주었다. 아마 우리 부대가 제일 빨리 돌파를 이뤄냈거나 다른 부대들이 모두 실패한 모양이다.

여기가 내가 죽을 장소이고, 지금 2068년 1월 21일 새벽이 내가 죽을 시간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남자로 태어나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 내 한 몸 희생해서 내 나라가, 내 조국이, 내 전우들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군인으로서 영광 아니겠는가.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도망간다 한들 패전을 코앞에 둔 군대의 장교로서 얼마나 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반도의 절반을 걸어서 종단한 부대원들에게 최후의 휴식을 부여하고 나와 또 다른 장교 한 사람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했다. 배낭에서 핵폭탄을 꺼내어 기폭 장치를 조립했다. 아무리 죽을 각오를 했다지만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우리 두 장교는 이심전심 통했는지 각자 마지막 담배를 한 대씩 피워 물었다. 사형수에게도 허락된다는 그 최후의 담배 한 대.

결정적인 순간에 폭탄을 터뜨리는 것은 내 임무가 아니고 다른 장교의 몫이었다. 담배를 다 태우고 나서 나보다 더 사상이 투철하고 당성이 굳건한 정치 군관이 과감하게 장치를 들어 폭탄을 기폭 시키며 우렁차게 외쳤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핵 연쇄반응이 이루어지는 그 몇 초 동안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적의 심장부, 청와대의 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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