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 

, 나는1) 이미 김수영을 서구의 합리적 이지와 동양의 고전적 소양, 송곳style같이 날카로운 모던한 감각을 지녔으면서도 고유의 민중적 전통의 뿌리를 깊이 있게 의식했던 한국의 보기 드문 문화 검투사a cultural gladiator”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결코 그냥 한 헛소리가 절대 아닙니다. 나의 연륜과 학문과 철학적 예지라 할까요, 머 그런 이미지의 연쇄작용에서 어느 날 운이 닿아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머 음악의 황제 베토벤이짜자자 잔~”하고 운명이 지닌 영웅적 삶의 본질에 대한 음악적 리듬을 읽어내고, 이를 줄기차게 이어가먼서 그 차이와 반복의 형태로 운명의 세계를 웅장무비하게 즐기고 노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먼서 차이와 반복을 통해 더욱 깊이 있게 밝혀야 될 요소는 크게 세 가지인바,

첫째, 그것은 ‘서구적’ 이지의 맥락에서 본 시인 김수영의 위치입니다.

둘째, 동시에 ‘동양적’ 소양을 지닌 그로서의 위상에 대한 문제입니다.

셋째,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에 있어서 김수영이 어떻게 해서리 오늘‘한국적 ’사유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밝혀야 하는 문제입니다.

아무튼 나는 이 간단치 않은 철학적 이슈들을 해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문제 제기하고 있습니다.

부디, 천학비재한 놈에게 문창성文昌星2)의 가호가 있기를...


첫째, 김수영의 바다로 흘러들어간 서구적 지성의 강물

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1.

시인 김수영! 

그는 시인이되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많은 사람의 공감, 반발, 저항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뜨거운 상징으로 지금도 여전히 뜨겁게 살아있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인생론의 문제를 던지고 있는 치열한 화두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 올바른 의미에 있어서‘한국적’인문과학의 거벽巨擘입니다. 스스로“세계를 배경으로 한 나의 사상”(‘반달’)이라 자부했던 그였습니다. 그만큼 그가 몸담았던 한국적 현실에서 풀어놓은 가볍지 않은 시편들과 중후한 산문 텍스트들은 거장의 사유에 해당할 만큼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이들의 공감 이면에 우리는 또한 모던 취에서 벗어나지 모한 난해한 시를 선사하여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는 세간의 반발과 저항을 견뎌야 할 만큼 그의 시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또 좋은 선례라고, 대가의 글은 본래 애매하다고 맹목적인 찬사를 바칠 일도 아닙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의 시편들은 데이트룩을 입은 여자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적-이점 서사시 <금강>을 비롯‘동학년東學年 곰나루’,‘진달래 산천’,‘향그러운 흙가슴’등 그 상징적이고 순결한 농민생활에 젖줄을 댄 시인이먼서도 혁명적인 유전자를 지녔던 대표적인 민족시인 신동엽과 비교해볼 때, 그는 분명 근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도회의 아들임이 분명합니다-감각적인 시어들로 이채를 띠고 있으며, 무엇보다‘말’과‘사물’,‘기호’에 대한 도저한 철학적 사유로 그 특유의 광채를 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글쓴이는 그를 기호철학의 의미론3)으로, 초기의 대표작‘공자의 생활난’에 나타난 사물 이미지를 중심으로 좀 밀도 있게densely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무릇 모든 작가는 처녀작으로 돌아간다고 했거니와, 거기 거친 탁류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만든 작품에 그의 영혼만이 내뿜을 수 있는 시적 품격과 그만의 시각이 담긴 정신의 왕국의 흔적을 남겼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김수영의 시집을 펼치자마자 첫 장부터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거기 마치 고고학자의 전문적인 해독을 기다리고 있는 돌비처럼 알 듯 모를 듯 참으로 미묘한 수수께끼 같은 난해시가 우리를 도시 기호의 절벽에 밀어 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소크라테스’로 상징되는 전통 형이상학을 뚜드려 부순 니체 망치철학의 비밀이 처녀작 <비극의 탄생>에 있듯, 오늘 100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김수영 시정신의 온전한 비밀은 바로 처녀작‘공자의 생활난’에 있습니다. 비록 그 자신은 이에 대해“급작스럽게 조제남조粗製濫造한 히야까시 같은 작품”(‘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이라고 너스레를 떨고-이것은 그만큼 이 시가 어떠함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포즈가 아닌가-있지만 서울대 철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김상환4)이 크게 주목할 만큼 일대 문제작입니다. 하나의 묵시록처럼 그의 운명을 예고라도 하듯‘공자의 생활난’은 김수영 시세계의 처음이자 끝, 중심의 중심, 시꽃의 중핵을 이루고 있습니다.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作亂을 한다

나는 發散한 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反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事物과 事物의 生理와
事物의 數量과 限度와
事物의 愚昧와 사물의 明哲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1945>

최하림5)은 김수영의 일기(1960. 9. 20)를 통해 그의 문학론을 소개하먼서 “문학은 사회의 공기와 꿈”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전제로 본다면, 그의 시도 하나의 사회-역사적 상상력을 지닌 것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1945’처럼 그는 탈고 년, 월, 일을 꼭 박아두는 ‘시간’에 대한 남다른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시대적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이라는 문맥으로 보아도 좋을 충분한 근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인문과학적 태도에서 볼 때, 시도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고, 자기 나름의 의미를 지닌 진실한 대답이라는 성격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시를 쓴다는 행위를 단순히 센티멘털한 주관적 정서의 토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와 꿈을 지닌 문학으로서 시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요,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가 진술하는 언어가 형상적 언어보다는 개념적 언어, 그러니까 시적 동화同化보다는 철학적 이화異化의 진술에 더 의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철학 본연의 대자적 인식의 소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그의 언어는‘공자’에 대한 기호적 의미부여,‘국수’를‘마카로니’로 보는 자의적 접근,‘사물’등의 표지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기호철학의 가장 첨예한 주제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런 것들이 김수영의 시를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이유인 동시에 하나의 후광효과로서 그의 시를 또한 미신적 맹목으로 몰아가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먼 기호철학은 어떤 철학인가부터 보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현대 기호학의 선구자가 된 근대의 기호철학자는 소쉬르6)입니다. 그는 언어기호는 형태a form이지 실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말과 사물의 전통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대의 이른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의 기반을 이룬 형태론적 기호철학은 말이 그대로 실체라 인식되었던 고중세 시대의 실재론적, 반영적인 사고가 무너지기 시작하먼서 말과 사물의 유명론적, 반성적인 관계를 새롭게 인식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말은, 이 말을 반영했다는 언어기호는 사물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고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형태(꼴)라는 것입니다. 즉 언어는 사물에 이끌리지 않고 자율성을 얻으먼서 그 모던한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는데 소쉬르 기호철학의 근대적 의의가 있습니다.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중략)

-김수영의 '비' 중에서

여기 비가 어떻게 움직이는 비애란 말인지. 말(‘움직이는 비애’)과 사물(‘비’)의 전통적인 실재론적 상응관계는 끊임없이 미끄러지먼서 제멋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수영은 리얼리스트이자 리얼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어떻게 그 진실한 의미에서 비로서만 존재하는가 말입니다. 하나의 시적 낭만이라는 상상의 세계에서 비는 습하고 어둡고, 그리하여 우산이 없던 시절의 고절한 삶의 비애와 닿아 있는 것이니, 그런 시절을 연상시키는 실끈과도 같은 고절苦節한 그것이 '오고 있다' 했으니, 어찌 또한 ‘움직이는 비애’가 아니겠는가 말입니다. 진실, 이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시는 오히려 이렇게 말과 사물과의 오랜 일대 일 대응관계를 깨고 진실한 틈gap을 갖게 됨으로써-이것을 우리는 '해석학적 틈'이라 할 수 있습니다-전통 리얼리즘의 무거움에서 벗어난 모더니즘의 가벼운 상상력의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자, 글쓴이는 지금 일상어인‘비’와는 달리‘움직이는 비애’식으로 표현한 사례가 말과 사물 간의 오랜 일대 일 대응관계를 깨고 진실한 해석학적 틈을 갖게 됨으로써 상상력의 즐거움을 준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지 좀 더 보강을 시도해 보것습니다. 

여기,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래의 시인이 있습니다. 그는 신화시대, 신의 사자이자 권력(자)의 시종, 따까리로 그의 말씀을 열심히 받들어 뫼시던 시인詩人으로 고래로 종속적subordinated 신분을 벗어나지 모했던 사회의 눈 먼 맹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웅, 귀족의 권력은 사라지고, 그러니 그들을 받들어 뫼시던 전쟁서사로서의 또는 궁정의, 예찬의 노래의 형식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무엇이든 끌어다 붙이는 예의 수사법은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이 '메타포metaphor'입니다. 시는 유사성의 철학을 이미지화, 극화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단적인 사례로 특이한 제목을 달고 있는 조율의 시집을 통해-거기,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를 보고 있는데, 제목이 하나의 상징으로 그 무엇인가를 대표하는 간판 역할을 한다먼, 여기 조율의 시집 제목 또한 하나의 상징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오는데 사랑은 없는' 것처럼 치레와 형식만 난무하고 알맹이와 내용이, 감동이 없는, 코스프레만 있고 자기의 표정이 없는 만개한 속물사회snobcracy의 문법을 비틀고 있는 기호입니다-그리하여 전래의 문법을 '찢고' 있다는데 그의 시가 던지는 낯설게 하기로서의 현대시의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상의 지배적인 어법과 문법으로 볼 때, 그의 시가 김수영의 시처럼 좀 난해한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일상어에 가하는 조직 폭력(로만 야콥슨)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시가 난해하다는 건 그만큼 새롭고 문제적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그는 기성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적 방임'으로 전편을 수놓습니다. 시적 방임, 그것은 탈영토화의 기도입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비유이자 메타포를 통해 우리는 영토라는 근대적 범주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탈영토화로서의 시의 담쟁이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조율의 장기가 십이분 발휘되고 있습니다.

모서리 깨진 기와 한 장, 마당에 버려져 있다
한때는 하늘을 받쳐 들고
처마 밑에 제비도 키우던 검은 기와,
누가 모서리를 베어 먹었을까
햇빛을 갉아먹던 등이 검게 굽었다
나는 어금니에 금이 간 어머니를 의심했다

국수 같은 장대비가 지붕을 두드리던 날
어머니는 부엌에서 자글자글 기와를 구웠다
어머니의 기와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있었다
또 김부각이야? 내 목소리는 비 오기 전
제비처럼 꽁지 내리고 밥상 위를 낮게 날아다녔다

한 장 한 장, 접시 위에 기와 집이 지어진다
나는 젖가락으로 김부각의 모서리를 부서뜨리며
빗물에 내려앉은 천장을 걱정했다
지붕의 기와에 금이 갈수록 어머니는
어금니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월세가 밀린 어머니 품속에서
새끼제비처럼 입을 내밀고 묵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빛나는
김부각을 고독고독 씹어 먹는다
뱃속에 고래 등 기와집을 짓고 있나
어머니가 어머니를 먹는다
-조율의 '어머니가 기와를 먹는다' 

이 시의 기조는 엄정한 종결어미 '-다'로, 노트럴한 중성적 어조로 일관되어 있어 시인의 표정은 자못 절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어의 안쪽 표정은 이와는 사뭇 다른 속내를 전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지금 김부각을 굽고 있는 어머니를 시적 화두의 중심에 놓고 있는데, 어머니는 어금니에 금이 가 있고 월세가 밀려 생활에 금이 가 있어 마치 부서지기 쉬운 김부각처럼, 아니 모서리가 깨져 마당 한쪽에 버려져 있는 고독하고 쓸쓸한 기와로서의 깨어진 삶에 비유되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비유는 유사성의 기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하나의 시적 등가물로

'밀린 월세-부서지기 쉬운 김부각-금이 간 어금니-깨진 기와'

라는 이미지군群을 통해 우리는 삶의 중심에서 어긋나 변두리화 된, 모서리마저 깨진 자의 생의 실상을 매우 유니크하게 마주하게 되는데, 이들은 개별체들이 아니고 하나의 종족과도 같은 친연성을 지닌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깨진 자들이라는 하나의 ‘장발장식’동류의식으로서의-근대의 배타적인 의식이 아닌-타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데 이 시의 특별함이 자리합니다. 그것은 곧 '결핍deficiency' 모티프에 다름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너와 결코 다르지 않은 삶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통점이 있고, 공명이 있으며, 바로 거기에 비유의 가치가 있고 메타포의 힘이 있습니다.

메타포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끈끈한 연대를 전하고 있는 이 시에서 하나의 전복적 메시지로 결핍을 보충해주는 판타지(‘고래 등 기와집’)를 느끼게 되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습니다. 시는 신화가 작동하던 시대의 언어로 메타포이자 꿈으로 생명의 서사이지 죽음의 서사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시는 신화의 딸입니다 .거기 유사성의 철학으로서 생명이 깃들어 있고 연대의 언어, 메타포가 있습니다. 여기, 조율의 시편을 통해 낯설먼서, 그러나 거기 나를 넘어meta 너에게로 가phor 타자를 빛나게 하는 원초적 시의 일원적인 아름다움을 읽습니다. 어머니가 기와를 먹는다? 분명 상식 위반입니다. 그러나 이게 바로 시입니다. 현대시는 말과 사물의 오랜 미신적 융합을 깨고 언어에 대한 유명론적 비판을 담은 것이기도 하고, 말과 사물의 재-전복을 통해 새로운 문법을 창조해 나가는 유기적 항체an organic anti-body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전복적 상상력,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영토를 꿈꾸는 미적 범주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김수영은 그 전통적인 의미에 있어서 무조건 대상사물을 예찬(플라톤, <향연>)하는 종속적인 시인이, 보존하는 시인이 아니라 근대적 의미에서 말과 사물의 관계를 뒤집는 자유의 시인, 전복의 시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먼 하나의 차이로써‘비’를‘움직이는 비애’라며 이성적 주체로서의 시적 화자가 동일성과 유사성의 거짓 신화를 심드렁하게 비웃고 있기 때문이요, 말과 사물과의 그 오래된 수상한 근친관계에 종언을 고하고 고독한 왕자의 지위에 오른 자유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만 볼 때, 김수영은 신실재의,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이는 언어에 대한 불신言不盡意을 드러낸 왕필의 사상과도 닿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언어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보여준 소쉬르의 유명론적 기호학을 계승한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7)는 기호학을 아예‘거짓말이론’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기호학은 거짓말fakes에 대한 모든 주제의 과학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희극적 또는 비극적 비틂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루는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기호를 비틀어야 진실이 보인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기호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태리의 기호학자는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을 통해 그동안 진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통용되어 왔던‘장미’는 사실 헛된 이름에 불과하다는 유명론적 진실을 비극적으로 비틀어 놓았습니다. 

여기 소쉬르와 에코의 기호학 이론은 김수영의 처녀작을 해명하는데 하나의 훌륭한 해석 코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수영은 예의 현대 기호학의 지식으로 볼 때 하나의 약호code를 부여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시인이 새롭게 '약호맺기encoding'를 통해 의미를 부여한 기호대상에 대한 '약호풀기decoding'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자, 그렇다먼 하나의 기호적 의미로 대체 처녀작 '공자의 생활난'에는 어떠한 약호가 부여되어 있고, 시인은 여기에 대해 어떤 약호를 맺어놓았으며, 우리는 이 약호를 또한 어떻게 풀어내야 한단 말인지, 그 수수께끼 같은 미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약호는‘공자孔子’라는 기호입니다. 여기서 공자는 무슨 의미인가. 이것을 말 그대로 말과 사물이 일치한다는 의미에 있어서 전통적 실재론realism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선험적인‘그the' 공자가 맞습니다. 그러나 이걸 하나의 약호라는 새로운 기호적‘의미’의 문맥으로 본다먼-같은 고래지만 하나는 '어류'가 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포유류'가 될 수 있는 것이 문맥과 상황이 부여하는 것처럼-이는 단순히 역사적인 공자를, 중국(또는 '아시아적 가치')의 문화와 문명을 기초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곤 하는 그 공자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공자는 객관적인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 화자의‘생활난’과 연결된 주관적 문맥에서 새롭게 약호화 된 자의적인 기호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공자는 객관적인 대상으로 역사상에 나타난 성인으로서의‘그’공자가 아니라 주周 제국 말기 도덕규범이 해체되어 가던 춘추시대를 살다간, 그러나 자신의 이상을 제대로 펴보지 모하고 간‘불우한’지식인으로‘새롭게’의미 부여된 것입니다. 의미는 차이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렇게 위대하다는 공자가 과연 불우한 존재였을까요? 과연 그러했는지 그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진실을 동원하여 공자의 실상과 진상을 더듬어 보것습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욕망의 세계를 포착해 낸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8)이 있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소쉬르의 기호학을 박치기시켜 무의식도 언어처럼 근본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본 대단히 영리한 사람입니다. 라캉의 인식은 우리가 <논어>와 공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그야말로 결정적인 단서端緖가 될 수 있습니다. <논어>의 첫 장으로 유명한‘학이學而’를 보겠습니다. 

공자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로 익힌다먼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다먼,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날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먼 이거야말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여기서 무의식적 강박으로 계속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자의 발화 구조는‘不亦~乎’입니다.‘不亦~乎’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먼 이렇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발화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공자의 내면심리는 어떤 것일까요.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不亦~乎’는 한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숙어로, 말하는 사람의 반어적 어기語氣를 비교적 완곡하게 드러낼 때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亦’은 부사로 기능하며 약한 강세를 지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적으로 볼 때, 어떤 행동을 자주 반복한다는 것은 강한 욕망을 시사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공자가 어떤 내용을 갖다 붙이먼서 계속해서‘또한 ~하지 않은가’,‘아니것는가’라고 거듭 반복하고 있는 언어의 이면에는 공자의 무의식적인 어떤 강박이 그를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는 심리적 구조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학이學而‘의 발화구조에 나타난 공자의 언어적 심층에 깊이 자리 잡고 앉아 있는 무의식‘그것’은 무엇일까요? <논어論語>를 이해하는 열쇠는 사실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표현이‘가정을 동반한 반어反語’적 표현이라는데 있습니다. 가령, 어느 노래 가사처럼 ‘새라먼 좋것네 자유라먼 사랑이라먼’이라고 했을 때, 화자는 지금 새도 아니고 자유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라는 것이고, 역설적으로 화자는 구속 상태에 있다는, 따라서 이를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말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결국 당시 상황으로나 심리적으로, 아니 언어적으로 볼 때도 공자는 현재,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으며, 군자도 아니라는, 그러니까 자신은 현재 지배계급이 아니고, 불만스런 상태에 있으며, 자신이 매우‘불우不遇’한 존재라는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불우不遇’란 뭐 포부나 재능은 있어도 좋은 때를 만나지 모했다는 뜻입니다.

자, 그렇다먼 공자가 이렇게 불우한 존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전기적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는 우선 태생이 비천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야합(<史記>). 또한 그의 이상적 도덕론은 주周 제국이 붕괴되고 봉건도덕이 해체되어 가는 춘추시대라는 역사적 시공간에서 환영을 받지 모하였습니다. 상갓집 개(<史記>). 심지어 그의 사상은 후일 일시적으로 탄압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이런 일련의 사실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示唆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위대한 탄생은 불우의 산물이란 것입니다. 불우한 것은 그대로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를 격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우리를 발분망식發憤忘食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자는 청년시절 생계유지를 위해 장의사 도우미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남다른 각성이 있었는지 장례 절차를 통해‘예禮’에 대해 생각해보는 근본적인 자각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춘추시대라는 무질서와 야만이 뛰노는 난세에서 예禮를 통한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깨달음과 동시 사랑仁을 통한 도덕의 회복이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대로 공자의 사상사적 궤적의 문제가 되거니와 또한 한 인간이 미천한 신분에서 치열한 구도자로, 지식인 계급으로,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성공서사의 모델로도 부족함이 없는 감동적인 일대기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전환과 변용은 근본적으로 주체 내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 외적(역사적) 조건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 것입니다9). 그러니까 여기서 공자는, 김수영 또한 불우한 지식인으로서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해방 이후 도덕규범이 해체되어 가던 어지러운 시기의-자신을 빗대어 말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으로, 이것은 분명 하나의 약호맺기로서 어디까지나 시인이 새로운 코드로 박아 넣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의 김상환10)은 공자, 성인, 선비 등을 근거로 김수영을 유교의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오독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 사림들이 비록 청빈을 삶의 모토로 삼은 것은 원칙적 사실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조선 사회의 지배층인 그들士族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근거지인 서원書院을 끼고 ‘폐쇄된 학문이나 빛바랜 진리를 위하여 생애를 맡긴 자들로11), 그들은 닫힌 사회의 적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인식은 글쓴이가 보기에 현대시를 외적 현실과 절연된 것으로 보는 그의 메타 시론12) 
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자, 이왕 조선의 서원 얘기가 나왔으니 그 실상이 어떠했는지 생생한 장면을 참고해 보것습니다.

“본시는 서원이라는 것은 옛날의 성현들을 존경하기 위하여, 유인儒人들이 모여서 옛날의 성현들의 끼친 학문을 토구하며 성현들의 영을 제사하기 위하여 시작된 것이었다. 
  그 예절을 장려하기 위하여 서원을 유지할만한 전장을 기부받는 것을 허락하고, 그 서원의 서독書牘의 어떤 정도까지의 권한을 인정하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수백년 내려오는 동안 본의는 잃고 말의만 남아서, 조선의 온갖 추한 일은 모두 거기서 생겨나게까지 되었다. 
  이 서원의 횡포 때문에 당시의 백성들은 얼마나 괴로움을 받았나? 서원에 부속된 많고 많은 유의 선비들은, 모두 그 근처의 백성들의 고혈을 자기네의 당연히 먹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의 서원은 서원이라기보다 오히려 악도청이었다. 
  본本을 모르고 말末만 아는 선비들이...”

-김동인, <운영궁의 봄>, 대중서관

그러니까 조선의 똥막대가 된 서원書院은 후에 민심을 반영한 초기 개혁 시기의 대원군 이하응에 의해 저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몰수된 교회처럼 철폐될 운명에 있던 것이니, 오늘 유사종교의 폐해와 그 무엇이 다른가 말입니다.

김수영의 작품에 대한‘주의 깊은close' 접근이 요구되고 있는 것은 그가 결코 간단한 시인이 아닌 데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약호를 부여하고 있는 시어들이 외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자의적으로’직조되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가 김수영의 시에 공자, 성인, 선비 등 유교 관련 시어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해서 이를 그대로 시인의 정신적 뿌리가 공자로 상징되는 유교의 선비정신이라고 평가한 것은 대단한 착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자세히 보먼 도가(도교) 관련 어휘도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미리 말하건대, 김수영은 동양 전통의 도교적 성향을 지닌 민중시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관우關羽를 소재로 한 '묘정廟廷의 노래'는 관에 의해 신격화되고 민중종교화 한 도교를 소재로 하고 있고, 그의 시에는 이런 도교와 관련한 이미지로 이태백과 달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공자의 생활난’에는 앞으로 더 자세히 보것지만 명분의 헛됨을 비판하고 사물의 실상을 추구했던 노자의 숭본식말사상崇本息末思想이 바탕에 깔려 있으며, '달나라의 장난'에 등장하는 '공통된 그 무엇'에 대비되는 '스스로 도는' 팽이에 대한 비유는 권력의 세계에서 벗어난 도교적 민중상을 연상시킵니다.‘스스로 도는 것’은 생성을 본으로 하는 동양적 자연의 기본 모럴입니다. 이것은 서양의 실체적 사고에 대한 비실체적 사고로서의 도교적 인식을 잘 드러낸 것으로, 특히 권력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암시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시를 배반하고 산다'('구름의 파수병')고 했던 반시론적 태도도 동질적 세계에 흡수되지 않는 민중적 삶의 도교적 암시에 다름 아닙니다.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는 파밭 가에서의 깨달음에서는 “저 만물은 무성하지만 각기 그 뿌리로 다시 되돌아간다夫物芸芸, 各復歸其根”노자(16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듣는 듯 하고, '신귀거래' 연작(9편)은 아예 권력에 초탈한 도교시인 도연명의 김수영 버전이고, '거대한 뿌리'에 등장하는 '무수한 반동들'-요강, 망건, 장죽...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등 무수한 반동에 대한 경도는 그대로 4.19 이후 한국적 민중문화로 개화되고 있는 도교의 민중지향적인 취향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거기 '시꺼먼 가지'는 도교(또는 현학玄學)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상징적 표지입니다. 무엇보다 '풀'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차이와 반복으로서의 생성-소멸-재생의 회귀적 인식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로서의 민초적 삶의 도가적 패턴을 암시하고 있는 시적 에피스테메가 아닌가 말입니다. 

아니 이것마저도 아니라먼 그가 끊임없이 시를 쓰먼서도 반시를 주장했던 이유가 반역의 정신('구름의 파수병')에 닿아 있기 때문이고,‘이 땅의 시인으로 언어의 변화는 생활의 변화요, 그 생활은 민중의 생활을 말하는 것'('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이라던 그를 보자먼 그는 분명 저 피지배층의 종교적 심성을 대변했던 중국적 도교의 한국적 변용으로서의 민중 취향을 드러낸 것이라 아니 볼 수 없습니다. 이로 볼 때, 김상환의 주장은 제논에 물대기식 주관적 편향에서 벗어나지 모한 한계를 지녔습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김수영이 공자를 들먹인 것은 그를 본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건대, 공자는 사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주周 제국 말기 봉건적 도덕규범이 해체되어가던 춘추시대를 살다간 불우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김수영 또한 해방이후 가치가 실종된 시대를 살먼서 일정한 직업 없이 고단하게 살아야만 했던 불우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역사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동류로서의 공자에 빗대어 말하기 위해 차용한 것일 뿐이지 전근대적인 충. 효. 예. 의리 중심의 유교정신의 고취와는 거리가 멉니다.‘선비’또한 일정한 직업 없이 살먼서 글을 쓰고 번역을 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비유로 가져다 쓴 것이지 않은가 말입니다. 최근 이송우 시인의 첫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실천문학사, 2021)의 '유신의 기억2-부당이득 반환 명령'에는 김수영이 당시 혁명을 꿈꾸는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혁명의 교과서로 인식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보입니다.“꿈은 어디에서 죽는가/방 한 칸 낡은 책장에 숨겨둔 아버지의 꿈/1974년판 김수영 시집마저/빼앗아 가려 하는가”그러니까 김수영은 선비처럼 보존하는 성격을 띤 보수적인 시인이 아니라 폭파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 진보적 민중시인이었지 않은가 말입니다. 어찌 고루한 선비정신인가! 오, 오류의 위대함이여!

자, 앞에서 나는 김상환의 견해를 비판하는 가운데 김수영을 ‘도교적’관점에서의 진보적 민중시인-이것은 아직 연구된 바가 없는 것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기는 하지만-이라고 일차적인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선험적 지식의 더께에 갇혀 고개를 외로 돌리는 식자들이 적지 않을 테니 좀 더 보강을 해보것습니다. 김수영이 과연 도교적 관점에서의 진보적 민중시인이었는지 말입니다.

잘 알다시피,‘도교道敎’는 본래 노장의 도가道家 사상이 민중화 한 중국 고유의 전통문화이자 종교적 형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도가, 또는 도가에서 세속화 한 도교사상이 어티케 민중적 요소를 지녔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일별해 보건대, 진秦의 붕괴 과정에 나타난 진승, 오광의 난, <삼국지>를 통해 보았듯이, 후한後漢 말의 오두미도와 장각 형제들의 태평도 무리들의 황건적의 난은 너무도 흥미 있는 얘기거니와 이것은 도가의 민중종교적 형태로서 나타난 것이며, 송宋의 붕괴 과정에 <수호지>의 소재가 된 108 호걸들의 이야기 또한, 거기 권력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일탈의 군상들이야말로 변혁을 바라는 민중13)의 전형이며, 청淸의 붕괴 과정에 나타난 백련교도에 의한 태평천국의 난 등은-마치 조선후기 역사적 변혁기에 도교의 영향을 받은‘인내천人乃天’을 기치로 민중의 바람을 대변하며 들불처럼 일어났던 동학東學처럼-모두 변혁시대에 도가의 풍속화 된 형태로서의 도교의 민중적 변화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그러니까 도교는 하나의 서브컬쳐sub-culture로서 변화에 대한‘종교적 외피’역할을 해낸 동아시아의 민중사상인 것입니다. 유교가 중국의 지배사상이라먼 도교는 중국의, 아니 동아시아 민중의 변혁사상입니다. 그리하여 두 사상은 늘 부딪치고 영향을 주고받으먼서 역사의 강물로 흘러왔다고 볼 수 있는데, 또 그만큼 중국의, 아니 동양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해나간 기본 줄기로 지배문화와 피지배문화, 집단문화와 개인문화를 대변14)하는 문화의 형태로 하나의 문화적 띠를 이루먼서 패턴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흔히‘실재론’과 ‘유명론’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실재론realism은 명분과 실제처럼 말과 사물이 상응, 일치한다는 것이고, 유명론nomlnalism은 말과 사물이 교응하지 모하고 불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재론은 가령 “이승만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하먼 그대로 실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낳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언어를 신화화, 물신화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유명론은 실재론과 반대편에서 “이승만은 허수아비다”하는 것처럼 언어 현실을 비판적으로 본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기호학의 의미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국의 경우에는‘명실론名實論’이라는 논리학으로 춘추전국시대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의 명가名家 학파ecole와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먼 낡은 사회제도가 점점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제도가 부단히 건립되어 가는 과정에 있던 선진先秦시대 사상가들의 공동과제는 명실론일 수밖에 없던 것인데, 왜냐하먼 이같은 격동적인 변혁시대에는 사물들의 낡은 명칭名은 더 이상 새로운 내용實에 적용될 수가 없었으며, 동시에 각종의 새로운 구호와 명칭 또한 그 이름에 걸맞은 사회적 공인을 받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른바‘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언론이 100% 보장된 사회, 그러나 실제로는 모두가 사회적 공인을 받지 모한 데서 각 계층의 대변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의 실제적 권리에 대한 옹호에서 출발하여 모두 명과 실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하였으니, 그리하여 “선진시대 사상가들의 공통과제는 명실론”15)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명가가 분화하여 명名, 즉 명분을 중시하는 사상을 이어받은 철학자가 공자로 그는 정명론正名論의 주창자였습니다. 머 周제국을 본받아 얌전히 지내야 한다고 외친 자입니다. 이런 주장은 “주나라는 명실공히 받들어 모셔야 할 위대한 제국이다”란 명제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봉건제가 쇠퇴하고 지방의 제후들이 으르렁거리던 무렵의 춘추시대,“주나라는 더 이상 제국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던 자들에게 명보다는 실實, 즉 사물의 실제를 중시하먼서 무명론無名論이 생성되었는데, 이의 대표주자가 바로 노자, 장자로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순자 등 법가의 무리들로 이들에 의해 중국이 통일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자의 지배철학은 안정기의 인식론임을 알 수 있고, 노장의, 도교의 민중철학은 변혁기의 인식론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민중적 변혁의지를 암시하고 있는 <도덕경> 첫머리에서 “이름 지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다운 실재의 이름이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라고 했던 것처럼,“황제는 황제가 아니고 帝非帝 왕도 왕이 아니네王非王”(이문열, <삼국지>, 민음사)는 그대로 도가적 모토의 민중적 인식을 참언 형태로 드러냈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먼 김수영은 어떤 인식을 가졌던 위인인가요? 그는 해방공간의 혼돈 속에서 줄넘기 장난을 벌이고, 위험한 작전이 횡행하고, 말과 사물이 일치하지 않는 부조리하고 무질서한 위기적 현실을 생각하고는‘사물’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인식하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사회정치단체가 어지럽게 난립하는 가운데 토해내는, 즉 말과 사물이 겉도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역겨움은 분명 주周 제국의 해체기 가치질서가 혼란하던 무렵 무너져 내리던 기둥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불우한 시대의 공자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김수영이 공자를 옹호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먼 공자는 주 제국의 가치질서를 옹호하고 보존하려던 보수 세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김수영은 자신을 비록 공자에 빗대어 표현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앞에서 얘기한 대로 불우한 지식인으로서의 공자였지, 그가 정작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말의 실제적 가치, 머 정의가 실종된 엉망진창의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이었다는 것입니다. 주周 제국의 해체기 가치질서가 혼란하던 무렵 무너져 내리던 기둥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것은 노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 김수영의 관심사는 말과 사물 간의 불일치에서 오는 도교의 무명론적無名論的 인식에 대한 것으로, 이것은 공자처럼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성의 권력과 이를 나타낸 말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자처럼 물끄러미 피지배자인 민중의 편에 서서‘삐딱한’시선을 유지하고자 했다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생활난'은 분명 해방 이후 한국의 부패한 정치현실에 대한 민중의 정치적 무의식을 기호철학의 시각으로 드러낸 문제시편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언어가 제 뜻을 다하고 있지 모하고 사회의 질서가 망가져 가는 것에 대한 일종 거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으로, 시적 화자는 지금 이익을 위해 아무려나 신념을 팔고, 상식을 걷어차고, 주체성이 없는 지식인들의 행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불의injustice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먼 그는 해방공간의 이런 혼란과 무질서를 배운 자들의, 식자들의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머 탐관오리라니 배운 놈들이 더 쳐먹것다고 권력을 이용한 술수로 남을 속이거나 간사한 꾀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모리배의 부조리극에 대한 극렬한 구토 인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화자의 의식이 "저 꾀 있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작위하지 모하게 해야 한다使夫智者不敢爲也"(도덕경 3장)며 소위 봉건규범인 명교名敎16)의 지식인들을 비판한 저 위진현학자들의 스승 노자의 생각에 닿아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꾀知 없이 할 수 있것는가?"

愛民治國, 能無知乎?

-노자, <도덕경> 10장

그러니까 이것은 명교 집단의, 말名을 먼저 앞세우고 덤벼드는 지식 계급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드러낸 것으로, 즉 지혜를 버림으로써 오히려 사물實의 실상을 정확히 알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본 노자의 ‘숭본식말사상崇本息末思想’17)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어티케 근본을 저버리고 말단에 머물며 세상을 어지럽게 했을까요. 가령, 여기 그들이 자의적으로 만든‘간사하다姦’는 말이 있습니다. 머 그렇다고 실제로 여자가 셋이 모였다고 간사한 일만 일어날까요? 이것은 요즘 정서로 보먼 페미니스트들에게 맞아죽을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말(언어)에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권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말은 결코 노트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미 이명박 정부시절 <정의란 무엇인가> 파동을 겪은 바도 있지만 이런 기호학적 파동이 대두되었던 것은 기호와 대상, 달리 말해서 말과 사물이 불일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유명론적 반성으로 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도가사상이 혼란기와 변혁기에 기승을 부리고 득세하였다는 사실이 해방공간의 국외자였던 김수영에게 또한 지식savoir과 디스꾸르discours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준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는 궁극에 가서는 종교가 될 것”이라던18) 민중적인 도교의 영향을 받은 동학에 젖줄을 대고 있는 민족시인의 모습과 달리, 하나의 근대적 인식론으로 사색적인 도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 지식인의 초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3. 

자, 그렇다먼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불우한 시대의 자의식을 지닌 시인의 분신, 화자는 불우한 시대 현실에 대해 어떤 지식과 담론을 비판적으로 드러내고 있는지 구체적인 분석을 더 진행해 보것습니다. 화자가 제1성으로 터트린 언어는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作亂을 한다

는 것입니다. 개관에서 이미 말했듯이,‘1945’년에 썼다는 연대기적 지표는 이 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즉 해방전후사가 잘 말해주듯이, 이때야말로 해방은 맞이했지만 가치관이 극심하게 혼란이 일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여전히 가치관이 혼란하고 살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이 시대, 그의 시가 왜 아직도 기념비적이고 현재적인지, 왜‘김수영과 그의 시대’가 아니라‘김수영과 이 시대’인지를 해명하는 중요한 열쇠기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는 하나의 국가 건설기로서 무슨 무슨 당, 무슨 무슨 건설본부 등‘상상의 공동체’라는 국가 만들기nation-building를 위해 다들 분주할 때였거니와, 좌우의 이념 갈등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실존적 차원에서 당시는 가난이라는 천형을 어티케 해결할 것인가가 국민 대다수의 숙제였던 고투의 시대였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어려운 경제 현실에서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도‘실 가닥 같은’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던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모기와 개미’)이었기에 천형 같은 가난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주체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순응할 것인가 대응해 나갈 것인가, 아니 보존할 것인가 폭파할 것인가, 이에 지식인은 크게‘도구적’지식인과‘비판적’지식인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시에서 나는 화자이고, 너는 타자입니다. 다시 너는 도구적 지식인이고, 나는 비판적 지식인입니다. 그래서‘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줄넘기 작란을’하는 너는 바로 도구적 지식인이자 일제에, 권력에 붙어먹은 부일배를 암시합니다. 다시 말해 꽃이 열매의 상부에 필 수 없는 것이 원칙인데, 그렇다는 것은 뭔가 가치가 전도된 상황을 말합니다. 이럴 때‘줄넘기 작란을 한다’는 것은 근본을 저버린 행위를 암시하는 시적 기호가 아닌가 말입니다. 동시에 이런 말단적 행위에 대한 시적 단죄의 성격을 지닙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김수영이 양심의 법정과도 같은 도덕에 매우 강한 신념을 지닌 모럴리스트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사회참여적인 것이나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도 좋다...시인의 양심이 엿보이는 작품”(‘생활현실과 시’)을 기대했던 그였습니다. 

나는 發散한 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나대로 먹고 살기 위해 뽀대나는 생각을 떠올려보기도 했으나, 그러나 그것은 상궤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그러니까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살기 위한 생의 일 방편으로 여기저기 일자리를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새로운 구상을 시도해 보기도 하였으나 그것을 현실화 시킨다는 것은 작전처럼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겨야 하는, 뭐 양심을 벗어난 매우 위험한 것이었음을 그는 솔직히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작전 같은’이라는 시어를 통해 우리는 이것이 상궤를 벗어난 위험한 행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소심한 시인이 그렇게 위험한 일탈의 성격을 지닌 행동에 쉽게 나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화자가 하나의 페르소나로서가 아니라 가면을 벗은 맨얼굴로 자신의 내면을 직정토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작전 같은’이라는 시어에 담긴 기호적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보것습니다. 작전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조치나 방법을 강구한다는 일반적 의미도 있지만,‘작전’하먼 우리는 대개 군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전투, 수색, 행군, 보급 따위의 조치나 방법, 또는 그것을 짜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작전이라는 기호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전쟁 같은 비상한 행동이 요구된다는 점입니다. 대체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이것은 유명한 <손자병법>의 제1장 제1절이거니와, 전쟁은 과연 비상한 행동이 요구되는 것이니 신중하지 않으먼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쟁을 부추길 것 같은 교범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먼서 손자는 다시 말합니다. 전쟁은 속이는 것兵者, 詭道也이라고...자,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왜 화자가 하나의 모럴리스트로서 자신을 속일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여기서‘작전’은 화자를 위험에 빠뜨림은 물론 자신을 속이는 도덕적 배반을 암시하는 시적 코노테이션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국수-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反亂性일까

이런 가운데 국수, 당시 가난을 상징하는 국수를‘너’로 상징되는 도구적 지식인들은, 그러나 그 영혼을 바친 도덕적 배반의 대가로 값비싼‘마카로니’로 바꾸어 먹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밸이 틀어진 것일까.‘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하고 어디서 갑자기 마누라도 모르는 눈 먼 돈이 굴러 오먼 이상한 느낌을 갖는 것처럼, 불의한 시대 현실에 일시 영합하려는 마음을 지녔던 자신이 갑자기 미워 돌아간 것일까. 그리하여 슬픔과 분노, 노여움이 교차되는 일순간, 그러나 그는 도덕에 대한 지고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일까. 그리하여 정의의 죽순이 솟아오르고 외로운 고검이 빛을 발하는 발검의 순간, 정의는 실로 외로운 자를 지키는 숭고한 칼임을 엄숙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이게 아닙니다. 화자는‘국수’를 이태리어‘마카로니’라고 박아 넣었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언어기호는 자의적이라는 소쉬르의 유명론이 아닌가 말입니다. 유명론은 언어 비판과 밀접한 관계를 맺19)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국수를 이태리어 마카로니라고 비틀어 놓은 것은 자의적이고 고의적으로 힘센 자들에 의해 멋대로 명명되어 돌아가는 불의한 현실을 마주한 화자의 울분을 암시합니다. 가령,‘민족’이라는 언어가 그러하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누구나 민족을 위한답시고‘민족’의 깃발을 내세웠지만 정작 그 사실에 있어서는 가장 민족적이지 않은 반민족적인 파시즘적 행위를 자행한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던 시대, 그리하여 그는 하나의 시적 정의의 이름으로 거대한 분노의 시심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니, 이는 예비적으로 하나의 시적 명제가 탄생하기 위한 위대한 서곡overture에 해당하지 않았겠는가 말입니다. 그리하여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事物과 事物의 生理와
事物의 數量과 限度와
事物의 愚昧와 사물의 明哲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라며, 위기에서 자신을 되찾고 새로운 의미의 세계지평을 여는 희귀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 대목이 바로 김수영의 시적 운명을 내건 일대 명제의 탄생 순간이었습니다. 글쓴이는 그렇게 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동굴에 갇혀 있지 않고‘동무여’라고 외적 환기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화시키며 즉자적 주관을 벗어나 대자적 지평으로 넘어가는‘거대한 변환’의 언어의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며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인식의 창조적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의 기점으로, 이것은 그 푸코적20) 의미에서 문화적‘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생산적‘언표énonc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불의한 외적 현실에 대한 부릅뜬 대응이자 시적 폭발로 시인 김수영의 탄생은‘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는 인식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유의 시인이었지 노래하는 궁정시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나는 바로 보마’는 청년시인 김수영의 시작에 임하는 기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자의 생활난’은 일종의 서시 같은 작품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무엇에 대한 결연한 실천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 칸트적 의미에서 선과 양심에 따른 도덕적 실천의지를 내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칸트는 자신의 대표작인 <실천이성비판>에서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정언명령으로“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동하라.”라고 준엄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김수영에게 있어서는 시를 쓴다는 행위가 하나의 도덕적 의무이자 실천적 행위라는 자각으로 다가왔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과 양심에 따른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양심적인 것인지, 하나의 원리로서 칸트 식으로 보편적 법칙이 수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김수영에게 있어서 사물은 진리이지 단순한 사물이 아닙니다. 다시말해 그것은 하나의 참된 도리이자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에 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사물’은 벼룩처럼 들끓는 여론 속에 근거 없이 떠도는 터무니없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증명가능하고 투명한 과학적 진실이어야 합니다. 즉 사물은 ‘지식episteme’이지 ‘억견doxa’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여기‘동무여’는 우선 그 무엇으로 공통적이고 선언적인 것을 말하기 위한 주의환기의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이제 나는 바로 보마’입니다. 이것은 유사성의 기호가 아니라 차이의 기호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적으로‘이제’,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진실한 모습 그대로‘바로’보것다는 의지와 결단을 드러낸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보는 행위는 그를 통해 정말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보기 위해서만 보려고 하는 감각적인 의미를 일컫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상적 보기와 구별하기 위해서 화자는 지금부터 나는‘바로’본다고 부가적 의미를 더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진리의 파수병으로서 사물과의 대자적 거리를 지닌, 그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시간성을 지닌 현존재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동서문화사, 1992.
로서의 시인 김수영의 철학적 사유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부터 바로 보아야 할 대상이 바로‘사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에는‘사물’이, 우리가 이를 통해 세계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움직이게 하는 인식대상으로서의 사물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화자가‘인식론적epistemological’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자임을 떠올리게 됩니다. 해방 이후 급변하고 있는 정치 현실, 기대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막막한 사회 현실에 대해, 이 미친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언어로 직조된 의사擬似 사물들의 세계에 대해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판적 지식인인 그의 화두는‘사물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시인 김수영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회의주의자였습니다. 다시 말해 시인 김수영은, 엄격하게 말해서, 크다란 부엉이 눈깔을 달고 현실을 주시하고 있었던 사유의 시인이었던 것입니다. 즉 그는‘움직이는 비애’처럼 시적 직관을 놓치지 않으먼서도‘바로 본다’와 같이 사물에 대한 개념적 거리를 중시하는 철학자의 모습에 더 가까운 성찰의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물’이라는 개념이 분명 회의주의자였던 청년 시인 김수영의 인식론상의 대전환을 가져온 지배적인 이미지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사물의 모습은 매우 관념적인 것입니다. 김수영 시의 난해성도 사실은 이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책임하게 개념을 하나의 이미지처럼 시어로 써 먹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분명 ‘이미지’ 중심의 전통적인 리얼리즘보다는 ‘개념’ 중심의 모더니즘에 더욱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먼 모더니즘은 근대시민의 ‘자아’ 개념에 충실한 개인주의 모럴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 ‘모더니즘’이라는 주관적 철학을 정립한 철학자로 우리는 코기토cogito-‘코기토’는‘생각한다’는 뜻의 라틴어입니다-의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코기토의 주인이 신이라는 객체가 아닌 나, 즉 이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설정됨으로써 비로소 근대라는 시민주체의 철학적 인식론이 비롯되었던 것인데, 이런 인식론은 그러나 매우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것입니다. 이런 것은 영국의 경험론도 마찬가집니다. 비록 감각적 대상을 사유의 근거로 하고는 있지만 미인의 기준이 제각각인 것처럼 감각적 경험론 또한 주관적이기는 마찬가지이고, 이런 의미에서 근대의 주관철학에 젖줄을 대고 있는 모더니즘은 분명 개인주의의 모럴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철학에 대한 비판적 종합으로 독일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들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라고 내용 없는 사상들, 곧 프랑스의 합리론과 개념 없는 직관들, 곧 영국의 경험론을 비판한 것으로, 이는 참으로 위대한 종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지적 통찰에도 불구하고 칸트철학은 그 본질적인 면에서 사변적인 측면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니, 다시 말해 이런 모든 철학적 인식의 근저에 아무 개념도 가지지 모하는 초월적 객관으로서의‘사물 (그)자체Ding an sich’22)를 인정하고 말았던 것이니, 이것은 분명 근대의 주관철학을 종합한 것일 뿐인 것이자 중세의 형이상학을 완전히 떨쳐내지 모한 신학적 잔재라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자신을 철저히 인식하고자 했던 칸트적 순수 이성의 한계는 그대로 김수영의 한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먼 자신을 철저하게 인식하려 들먼 들수록 사물의 진상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어서, 인간의 예만 들더라도 ‘인간은 도구적 존재’라는 규정에서부터 수없는 분류의 나뭇가지가 있던 만큼, 하나의 도덕적 기초로서의 인식론적 기초를 세운다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김수영 또한 인간과 마주선 대상세계로서의‘사물’에 대한 인식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어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은 아직 요원한 것이니, 머 그것은 칸트의 ‘사물 (그)자체’처럼 끝없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로 밖에 돌아올 수 없는 사물 그 자체로서, 이것은 참으로 난해한 이미지이자 어려운 관념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청년시인 김수영에게서 ‘발산한 형상’의 얼굴보다는 마치 결핵환자와도 같이‘창백하고 핏기 없는’비현실적인 관념의 포즈를 취한 그를 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공자의 생활난’에 나타난 25세의 청년 시인 김수영의 도덕적 결단과 죽음의식은 그만큼 외부의 어떤 간섭도 불허하는 그 칸트적인 순수한 내적 동기로서의 결단의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런 결단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신념과 실천 의지는 죽음과 상응하는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것이라는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칸트의 도덕과 사물에 대한 인식이 초월적이고 형식적(~행동하라)인데 비해 김수영의 그것은 현실적이고 실천적(~보마)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를 통해 칸트를 넘어선 헤겔을 통해 칸트를 일별해 보건대, 

일찍이 의지의 인식은 칸트 철학을 통해서 그의 무한한 자율성의 사상을 토대로 비로소 확고한 근거와 출발점을 마련했거니와, 이렇듯 의지의 순수한 무조건적 자기결정을 의무의 근원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극히 본질적인 의미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칸트는 인륜의 개념으로 이행하지 않는, 한낱 도덕적인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그렇게 얻어낸 성과를 하나의 공허한 형식주의로, 그리고 도덕학을 의무를 위한 의무에 관한 설교 차원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헤겔, <법철학>, 임석진 옮김, 민음사

그러니까 하나의 모럴리스트로서 칸트 류의 인류애적 양심을 지닌 보편적 지식인으로, 그러나 공허한 형식주의와 도덕적 설교 차원이 아닌 하나의 도덕적 실천의지를 바탕으로 한‘시적 모험’(‘시여, 침을 뱉어라’)의 성격을 지닌 김수영의 사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서의 시적 결단과 확고한 실천의지는 이 땅에서 김수영 고유의‘온몸의 시학’으로 나타났거니와, 그것이 하나의 정치적 무의식으로서 그 하이데거적 의미에서의‘세계-내-사물’이라는 데에 김수영적 문제의식이 지닌 주체의 변증법으로서의 철학적 유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수영의 ‘사물’에 대한 발본적 인식이 헤겔의 말대로 공허한 형식주의와 도덕적 설교 차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김수영의‘문제적’사물이 하나의‘세계-내-사물’로서 그것이 푸코 식으로 하나의 생산적 언표가 되기 위해서는 헤겔의 교양을 또한 넘어서야 했습니다. 잘 알다시피, 프랑스 혁명을 이념화23)했던 근대철학자로서 당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였던 헤겔은 칸트의 관념을 넘어 교양을 속화하는데 기여한 독일의 국민철학자였습니다. 가령, 그는 독일의 역사적 사명을 절대정신의 실현의 역사로 보먼서 모든 개인을 자기 시대의 아들로 보먼서 국가를 신화화시켰습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철학을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한 것이라고 하먼서 “존재하는 것은 곧 이성”24)이라고 현실 권력을 합리화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은 곧 이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학을 권력의 시녀로 본 것으로 국가를 신화화하고 철학을 속물화한 데 대한 책임은 바로 헤겔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까 헤겔에 따르먼 모든 것은, 여기‘사물’또한 같은 의미에서 그 속물적 교양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지니먼서 자기만족이라는 하얀 이를 드러내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헤겔의 인간해방에 대한 옹호와 이성과 자유에 대한 근대 철학의 종합과 기여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신화화25) 와 특히, 일상성을 신격화26)하는 교양의 자기만족으로서의 속물화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했던 것으로, 이것은 예의 망치철학자 니체를 만나 균열이 가기 시작하먼서 일상의 신화화에 대한 헤겔 정신현상학의 그 관념철학이 지닌 현실순응적인 철학적 기만의 물결은 급류를 만나먼서 날개도 없이 흩어지며 추락을 면치 모하였던 것이니, 니체를 비조로 하는 탈근대적 비판철학의 흐름은 그대로 하이데거에게 이어졌던 것이고, 다시 일본을 거쳐 한국의 김수영에게 와 있던 것입니다.
4.

자, 그렇다먼 도대체‘사물’이 왜 문제란 말인지. 그것은 사물이 더 이상 줄넘기 장난 같은 말단도, 작전 같은 위험도, 마카로니 같은 자의도 아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의 이치로서 사물은 우연이나 충동, 일시적인 기분에 좌우되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근대국가형성을 앞두고 김수영에게 있어서 사물이 중요했던 것은 그것이 나만의 특수성의 세계를 넘어 너와 교호하는 가운데 작용하는 상호적 매개 관계를 통해 하나의 시민사회적 윤리라는 공통의 가치를 지닌 보편적 교양을 지닌 실질적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선험적 지식으로 우리는 장미를 보기 전에‘장미’라는 언어를 먼저 배우는 것처럼, 꼭 그처럼 우리는 자의적 언어로 만든 사물화 된 현실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가령,‘대한민국은 해방된 나라다’처럼 말입니다. 또한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언어로 재조직된 사물화 된 현실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미당은 최고의 민족시인이다’처럼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기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통사적 구조로서의 은유는 하나의 해석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자의적인 언어로 임의적으로 재조직된 사물화 된 현실의 모습이 어떤가 보것습니다.

해방이 김수영에게 가져다 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서울에 도착한 9월 초순에는 이미 여운형(呂運亨)이 조선 건국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15일), 미군의 일부가 인천에 상륙하여 미군 지프가 서울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으며 9월 2일에는 맥아더 사령 이름으로, 서울 상공에서 한 대의 비행기가 비라를 뿌리고 다녔는데, 그것은 한국민에게 해방을 축하한다는 내용은 한 줄도 없고,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군정(軍政)을 실시하게 되었으니, 미군정이 내리는 포고(布告)를 준수하고 일체의 파괴적 행위나 저항 행위를 금지하라는 경고였다. 연합군을 자유의 기사, 자유의 십자군으로 열렬하게 환영하고 있었던 민중들에게는 너무나 냉랭한 것이었다.

-최하림, <김수영평전-자유인의 초상>, 문학세계사, 1981.

여기! 해방이 김수영에게 가져다 준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해방이 해방이 아니고 자유의 기사, 자유의 십자군이 자유의 기사, 자유의 십자군이 아닌 모순과 역설의 현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철학적으로‘말’과 ‘사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근대의 유명론적 인식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니까 해방은 더 이상 해방이 아니고,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해방된 현실은 또 다른 억압된 현실로 다가오먼서 김수영을 비롯 민중들에게 당장 다가온 것은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언어의, 가치의 대혼란이었습니다. 

대체 해방공간이 가치의 대혼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객관적인 사정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기본적으로 해방공간이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하나의 위대한 건축학적 구조물, 또는 현실에 나타난 이성의 상형문자’27)로서의 국가를 우리 손으로 지어내야 했고 때문이고,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위험했던 까닭은 그러니까 당시는 바로 봉건 잔재와 일제 잔재의 청산을 통해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추진하려는 일종의 민족혁명의 시기였으며, 어떤 국가를 건설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혁명노선이 대립하는 기간28)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북이다 남이다 찬탁이다 반탁이다, 대한독립당이다 한민당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이다, 조선청년문학가동맹이다, 뭐다 뭐다...미군정이 실시되는 가운데 수많은 각 정당 사회단체 등이 난립하먼서 쇠통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눈앞의 현실을 더욱 어지럽게 하는 것은 바로 뭐가 뭔지, 도무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게 하는 가치전도의 언어현실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국수’ 대신‘마카로니’를 얻어먹은 궁정시인들에 의해‘미국米國’은 어느새‘미국美國’으로 미화, 분식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방’이라는 이름은 그 해방의 본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의미로 언어의 대혼란이자 무질서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다음도 마찬가집니다. 

‘문학주의’,‘예술주의’를 거부하는 사회주의적 사회참여정신은 또 그 필연적으로 민족주의까지를 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노예정책에서 약소한 우리 민족이 해방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 민족의 계급혁명정신과 일치하는 한도에서만 그렇게 주장해야지 계급혁명을 거부하는 민족주의는 안 될 일이라 하여, 순민족주의적인 모든 운동과는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서정주,‘사회참여와 순수개념’, <우리문학의 논쟁사>, 어문각

여기서 우리는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관점에서 사회주의 세력에 일침을 날리고 있는 미당의 간단치 않은 시론時論을 마주합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서정주가 아닌 논객으로서의 서정주를 봅니다. 이것은 부정하기 쉽지 않은 논설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전가의 보도로 예의‘민족주의’의 칼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시피, 민족주의의 입장에 선 그의 주장하고자 하는 입각점은 분명하거니와, 중요한 것은 그가 펼쳐 보이고 있는 논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그가 펼치고 있는 민족 우선의 논리에 동화되기 쉽습니다. 사실 계급 문제보다 민족 문제가 더 중요하고, 그러니 당연 계급적 평등보다 민족의 해방을 더 우선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를 부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참으로 이상한 형용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우리는 미당 서정주가 과연 하나의 시인이자 지식인으로서‘민족’을 그렇게나 중시하는 양심을 지닌 식민지 치하의 올곧은 식자층이었다먼‘마쓰이 오장 송가’등 어떻게 그렇게 많은 친일작품(11편)을 쓸 수 있었으며,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행동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국민의 복지나 안위에 대해서는 일 관심도 없는 그악한 위정자들이 말을 뗄 때마다‘국민’운운하는 것처럼, 꼭 그처럼 서정주를 비롯한 민족주의 진영에 서 있는 일군의 궁정시인들은 말로만‘민족’운운하였지 실제로는 반민족행위를 서슴지 않는‘개 같은’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미당을 김수영29)은 극도로 혐오하였습니다. 그 토속성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그 늘어지는 서정성이 둘째 이유이며, 무엇보다 그의 반동성이 역겹다는 것이 바로 그 셋째 이유인데, 그러고 보먼‘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줄넘기 작난을’한 도구적 지식인은 그 누구였으며, 그리하여 어지러운 틈을 타 자신을 배반하고 위험한 작전을 감행하먼서까지 민족을 배신한 값으로 ‘국수’를 값비싼‘마카로니’를 바꾸어 먹으며 호의호식한 인사는 그 누구였는지, 그러니까 미당을 위시한 반민족행위자들에게 있어 민족은 다만 둘러대기 좋은 구실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기호는 다만 기호가 아닙니다. 그렇다먼 그가 그렇게 주장해대는 민족주의는 사실 사회주의를 부정하기 위한 허튼수작이 아니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수영이 당대의 시인이기 전에 하나의 회의주의자로서 사물에 의심을 품고 이를 바로 보것다며 칼날 같은 시적 명제를 들이댄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김수영이 ‘국가’니, ‘민족’이니 하며 제멋대로 들이대는 소위 민족주의자연하는 반동적인 세력들에게 예의 비판적인 회의의 시선을 보낸 것은 그 속에서 그 오랜 관념의, 실재론의, 말과 사물은 일치한다는 형이상학적 명제의 허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머 사실 관념은 현실을 떠난 한가한 부르주아 철학자들의 정신작용이 낳은 붕 뜬 의식일 뿐입니다. 이것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나의 형이상학이라는 관념체계이자 철학으로 정립한 이후로 서구의 역사철학에서 정신은 항상 제일 순위에 놓여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철학자에 관해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던 몇몇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철학자들은 가상, 변전, 고통, 죽음, 신체적인 것, 감관, 운명이나 부자유, 목적 없는 것에 반항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30)는 전통적인 관념을 니체가 망치로 뚜드려 부수기 시작한 이후,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제일철학이라는 형이상학에 대한 반발의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이‘현상학적 환원’31)을 통해 현실이야말로 진실의 근거다 라고 선언한 이후 그들의 영향을 한 몸에 받은 하이데거32)이후, 해방과 전쟁을 맞은 한국에서 전후의 실존주의와 함께 하이데거가 대유행하였고(고은, <1950년대>, 향연), 김수영 또한 일본 유학파로서 일찍부터 하이데거를 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로 된 <존재와 시간>은 1992년에 가서야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수천년래 이어온 서구적 전통 형이상학의 종합으로서의 헤겔의‘정신의 현상학’은 하나의 반反형이상학으로서 하이데거의‘존재의 현상학’으로 대회전을 맞았던 것이니, 머 쉽게 말해서 나는 생각하므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라 반대로 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관념을 통해 현실을 설명하려고 기도하는 그들의 언어와, 이런 언어를 통해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은폐하먼서 현실을 통제하고 다스려왔던 근대의 지식체계에 근거한 현실권력체제의 본질에 대해 식자들은 서서히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니, 하이데거를 사숙했던 한국의 시인 김수영 또한 그를 통해 은폐된 진실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수선하고 혼란스런 해방 정국에서 언어와 사물 간의 ‘낯선’ 관계를 느끼던 의식 과잉의 김수영이 언어와 사물에 대한‘심각한’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은 말과 사물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사르트르식 구토의 감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뭐 자신을 구역질나게 하는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인 인사들의 ‘국가’와 ‘민족’이라는 말parole이 하나의 가짜신화로 한국의 로캉땡33) 김수영에게 또한 자신을 구역질나게 하는 커다랗고 흰, 불쾌한 관념 덩어리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What matters is that~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자의적으로 잘못된 분류 체계에 의해 사물화 된 지식들이 하나의 사실로 내 앞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 알다시피, 분류는 종차를, ‘난 그들과 다르다’는 구별심리를, 이를 통해 문화의 정체성을 인정받으려는 근대 부르주아의 그 우월한 개인주의 정서를 밑감으로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지, 근대 분류학의 세계에 일대 폭탄을 던진, 다시 말해 모더니즘의 종말을 선언한 <말과 사물>(미셸 푸코, 민음사)의 유명한 그 대목을 좀 보것습니다.

이 책의 발상은 보르쥬에 나오는 한 원문으로부터, 그 원문을 읽었을 때 지금까지 간직해 온 나의 사고-우리의 시대와 풍토를 각인해 주는 ‘우리 자신의’ 사고-의 전지평을 산산히 부숴 버린 웃음으로부터 연유한다. 그 웃음과 더불어, 우리가 현존하는 사물들과의 자연적인 번성을 통제하는 데 상용해 온 모든 정렬된 표층과 모든 평면이 해체되었는가 하면 오래전부터 용인되어 온 동일자와 타자 간의 관행적인 구별은 계속 혼란에 빠지고 붕괴의 위협을 받았다.(밑줄-글쓴이)

여기, 우리 시대와 풍토를 각인해 주는 동일자와 타자 간의 관행적인 구별은 바로 근대 부르주아의 개인적 구별심리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근대의 지배적 사고를 산산히 부숴버린 탈근대의 사고는 보르쥬34)에 나오는 한 원문으로부터 인용한 것인데, 이게 데카르트, 린네로부터 비롯된 분류학에 기반하고 있는 근대 기호학의 허구의 세계를 폭파시키고 있는 혁명적 의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황제에 속하는 동물 (b)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사육동물 (d)젖을 빠는 돼지 (d)인어 (f)전설상의 동물 (g)주인없는 개 (h)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광폭한 동물 (j)셀 수 없는 동물 (k)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기타 (m)물 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 (n)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이런 충격적이고 전복적인 사례를 통해‘탈중심’-이것은 무론 부르주아지 중심의 근대적 세계에 대한 반발을 암시하는 표지입니다-의 세계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보르헤스의 사상을 따르고 있는 기호철학자35) 푸코의 의도는 말과 사물 간의 일치라는 전래의 실재론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일방적으로-마치 로빈슨 크루소(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금요일에 만난 흑인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상대를 ‘프라이데이Friday’라고 명명했던 것처럼-설정해 놓은 개념이라는 범주를 통해 모든 것을 일정한 질서와 규율적 체계 속에 박아두려고 했던 질서강박이라고 볼 수 있을 일종의 ‘근대적 기획’에 구멍을 내고자 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구조주의 기호학자 푸코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어떤 토대 위에서 인식과 이론이 가능하게 되었는가를 재발견”(<말과 사물>,‘서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사례로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보것습니다. 소설의 머리에 학생 시절의 보바리 소년이 소개되고 있는데, 작가의 대리인인 서술자는 그를 '시골뜨기'라고 딱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실 민중을 극도로 혐오한 플로베르의‘작가의 계획writer's plan'에 따른 의도적인 분류입니다. 그러니까‘저 새끼는 시골뜨기야. 망하게 되어 있다고’하며 부르주아 독자의 머리에 하나의 부르주아적 안도감으로 분류의 쐬기를 박아 넣고는-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주독자는 현실에서 벗어나 삶을 즐기는‘한가한’부르주아 마담들이었습니다-그를 허영심이 가득한 미모의 엠마(마담 보바리)와 결혼시키고, 그녀를 외간 남자들과 간통에 빠지게 하다가 그와 그녀를 결국 죽음으로 이끌고 갑니다. 자, 그러먼서 성공서사의 주역인 부르주아를 상징하는 약제사 오메 '씨'는 승승장구, 끝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게 하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 됩니다. 이것은 부르주아의 종교인 과학적 실증주의에 기반한 ‘자연주의’의 교과서답게 낭만주의의 비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프랑스의 부르주아 독자라먼 어떨까요. 이건 그대로 부르주아의 승리의 서사를 주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지금처럼 즐길거리가 흔치 않던 당시에 하나의 부르주아적 오락물인 상업적인 읽을거리로서 연애도 실컷 즐기먼서 말입니다. 중요한 건 소설이 또한 하나의 교양물로서 이런 것이 가능키 위한 제1 조건으로 '부르주아적 안도감bourgeois's relief'이라는 모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 부르주아 중산층의 안도감이리는 모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모든 사물이 설명 가능해야 하며, 그래야만이 지배 또한 가능하다는 신념이 편안하게 내면화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부르주아적 안도감이 가능키 위해서는 또한 모든 게 신발장의 신발들처럼 가지런한 상태로, 질서 있게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대하고 있는 저 새끼는 시골뜨기야, 그의 마누라는 허영심이 가득하고...이런 놈들은 망하고 죽게 되어 있어...잘 배워 두라고...

이런 것을 하나의 지식36)으로 내면적, 미적 거리를 두고 읽고 있는 한가한 부르주아 독자들에게 있어 플로베르는 참으로 훌륭한 모범 작가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게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두먼서 이런 인식은 더욱 호의적인 반응을 얻습니다. 그야말로 부르주아 신화의 재생산입니다. 이런 것을 학교에서 호메로스처럼 공식적인 교과과정으로 가르칩니다. 쓸모 있는 지식을 가져야 하고, 낭만주의는 죽음이라고...그러니까 생명과 노동과 진실과 멀어진‘사물’화 된 실증적 지식은 이렇게 체계적으로 나의 의식 속에 주입된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실증주의는 말과 사물, 사실과 가치의 분리에 기초한 잔인한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저 새끼가 죽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무서운 사상입니다. 즉 근대의 이른바 부르주아의 모럴을 반영한 실증주의는 겉으로는‘인간주의humanism'의 얼굴을 하고 합리적인 지식체계를 이루는 근간이지만, 실제로는 노트럴한 이성에 기하고 있는 대단히 몰가치적인 반인간주의 사상입니다. 하나의‘운명’으로서의 죽음의 서사를 정당화하는 자연주의는 실증주의의 아들입니다. 

하나의 국가이데올로기 통제장치이자 문화재생산기제로서 학교사회는 이런 과학적 실증주의에 기초한 근대의 산물입니다. 과연 이 근대의 학교를 유지하는 제일 모토가 바로 지덕체입니다. 지식이, 분류학이 주체가 되어 이것과 저것을 나누고 가르고 구분하고 차별하고 배제하고 죽여도 좋다는 명령을 암시하고, 그리하여 근대의 학교체제 하에서 나는 이런 사회의 일부로 무의식 중에 타자에 대한 왜곡된 신념을 차곡차곡 쌓고 내면화 합니다. 가령, 한漢 왕조의 부흥을 담은 소설 <삼국지>나 그리스의 영광을 예찬하고 계몽 신화를 재생산하는 <일리아스>, <오디쎄이아>, 또한 영국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37)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테니슨의‘율리시즈’등 국뽕형(또는 식민제국주의형) 서사물이 하나의 교과서 역할을 함으로써 대중들은 풍속화 된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그러니 베트남과 알제리에 대한 지배도 하나의 빠롤로서 자연스러운 신화적 일상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대중기만적인 문화적 배경에서 하나의 사회적 관행이자 합의로 <이방인>의 아랍인 살인도 가능했던 것입니다38). 그러니까 하나의 대속적 개념으로 그들은 야만국이니 문명국의 보호-일제가‘을사늑약’을‘을사보호조약’이라고 명명했듯이-와 지배를 받아야 한다며 '백색 신화white mythology'의 쇳가루를 뿌려 놓습니다. 이런 자의적인 분류에 의한 인식 체계가 사회 모든 곳으로 침투해 들어갑니다. 상하관계로, 지배복종관계로, 뭐 오늘 한국의 갑질문화로, 이를 통해 근대의 이른바‘이성중심주의’사회가 잘 유지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의 분류 체계에 의해 인격적인 관계가 물러나고 사물적 관계가 전면화된 현실에 대한 반근대적 성격으로서의‘김수영적’비판의식은 하나의 시적인 문화유전자a gene of poetic culture로 후배 시인들에게 이어져 한국시의 지층을 더욱 두텁고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의 ‘그날’ 전문

기호는 물론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기,‘그날’은 우선 상식적으로 보아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될 불망不忘의 날들이 될 수 있습니다. 엄마 생신, 아버지 기일, 애놈들 생일...8.29, 3.1, 8.15, 6.25, 4.19, 5.16, 4.16...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그날, 3.1은 일제에 의해 독살된 고종의 인산일이었고, 그날, 그날은 이대로는 못살겠다며, 을미적 을미적하다가는 병신되어 못 간다는 한이 서린 갑오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날 4.16은 생때같은 자식들이 인당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우성을 눈뜨고 듣고서도 살아있어야 하는 참극이 빚어진 날이었습니다. 더 데이The day, 그날은 차마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러나‘그날’은 또한 이름 없는, 무명無名의 날이기도 합니다. 일상의 계곡에 파묻혀 그날이 그날 같은‘그날’은 어떤 날인가. 작품 속으로 기어들어가 보것습니다. 그러먼 거기 화면에서 벌레처럼 줄지어 기어 나오는 일상은 마네킹처럼 무관심이 지배하고 있는 나날입니다. 사람들은 개미처럼 흩어져 서로를 뜯어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주목받지 모한 채 바람에 찢겨진 깃발처럼 무의미한 기표로 펄럭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그가 본 것은 온통 죽음뿐인, 시체가 가득한 세상이 아닌지. 그러니 온통 죽음만이, 사물화 된 시체들만이 가득한 세상에 아 XX, 그 새끼가 죽던 말던...그리하여, 여기‘그날’은 죽음을 제사지내는 제전의 언어가 아닌지. 그리하여 여기 우리는 그와 함께 놀라운 전언을 마주합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김수영의 유전적 적자는 이렇게 인격적 관계가 사라지고 이성이 마비된‘사물화’된 지식 사회에서는 아무도 아프거나 신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찌르고 있습니다.‘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라고...


5.

기호는 항상 그 누군가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인 김수영을 말하기 좋게 민중 시인이라고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신화 만들기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시편들이 여전히 대중독자들이 접근하기에 상당한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 김수영은 왜 탁류와도 같이 혼탁했던 해방공간에서 사유의 막대기와도 같은 난해한‘사물’에 큰 관심을 보였을까요. 그것은 하나의 양심을 지닌 지식인의 책무로서 사물이, 근대 이성으로 직조된 계몽의 신화가, 하나의 대중기만적인 신화로서 모든 것을 사물화 된 체계 속에 밀어 넣고 기호로 대치하는 근대의 분류학이 인간 사회의 공기와 꿈을 가로막는 죽음의 서사였음을 예의 날카로운 눈으로 읽어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시인은 흔히 자유를 노래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타당한 것은 인간의 자유와 꿈을 가로막는 부자유와 억압의 체계는 결국 인간과 예술의 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분명 그 김현적39) 의미에서 자유를 노래한 시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이른바 노래하는 시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물화 된 권력의 실체를 간파하고, 그리하여‘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지’(‘달나라의 장난’)말라며, 국뽕 신화로 외피가 들씌워진 권력의 한계와 죽음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의사擬似 진실이 난무하는 해방 이후의 모순된 한국적 현실에서 사물화 된 기호의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넘어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꿈을 지키고 시적 정의를 가꾸어 나갈 것인지,‘무수한 반동’(‘거대한 뿌리’)과 결코 죽지 않는 불사로서의 풀(‘풀’)로 상징되는 민중을 의식했던 한국적 사유의 개척자였습니다.“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시여, 침을 뱉어라’)라고 했던 그가 아니던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는‘말’과‘사물’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이들과 비판적 거리를 둔 가운데‘물끄러미’그 말과 사물의 본질을, 기호의 거짓된 실상과 허상을 냉혹하게 투시한 자기 삶의 주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는 다만 대상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요 재구하는 것만도 아닌 주체를 형성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는 은폐되어 있다'고 보는 게 하이데거(<존재와 시간>)>를 사숙한 김수영 시작의 기본 태도였습니다. 사물들에 의해, 사물들을 지시하는 언어기호들에 의해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가려져 있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을 알지 않으먼 안 된다. 국수인지 마카로니인지 미국米國인지 미국美國인지 이당인지 저당인지 남인지 북인지...대체 무엇이 옳고 어느 게 맞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현실, 당대의 걸출한 지식인들이 대거 월북행을 놓았던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해방 이후 한국의 주체적이고 근대적인 국민국가 형성을 둘러싸고, 그러나 미군정 치하의 해방정국은 정치적 스펙트럼에 의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confused 사물 또한 오염된contaminated 가치전도-이런 와중에 일어난 엄청난 시대적 비극들이 전국적인 노동자대파업과 대구10월항쟁과 여수순천항쟁, 그리고 제주4.3항쟁이었습니다-의 세계현실이었습니다. 이에 김수영은 날카로운 촉수를 지녔던 회의주의 시인으로 '사물'에 대한 발본적인radical 탐구욕이 발동했던 것이니, 시인이자 입법자로서 언어에 대한 정의를 세워야 하는 시대의 사제이기 전에 그보다 먼저‘주체의 변증법’을 세우지  않을 수 없던 당대의 철학자이지 않을 수 없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인 김수영, 그는 사유하는 시인이었지 노래하는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자, 그렇다먼 김수영 그는 어티케 어지러운 현실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의 정신의 왕국으로서의‘주체의 변증법’을 세울 수 있었는지, 대체‘주체의 변증법’은 또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1) 늘샘 김상천, ‘모럴리스트, 또는 거대한 뿌리/김수영론’, <네거리의 예술가들>, 사실과가치, 2020
2) ‘문창성’은 학문을 주관하는 도교의 신을 일컫습니다.
3) 의미론은 단어와 문장의 뜻과 실제 상황에 나타나는 발화의 뜻을 연구하는 기호학의 한 분과학문입니다. 
4) 김상환, <공자의 생활난>, 북코리아, 2016.
5) 최하림,<김수영평전-자유인의 초상>, 문학세계사, 1981.
6) 소쉬르, <일반언어학강의>, 민음사
7)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이론>, 문학과지성사, 1985. 
8) 자크 라캉, <욕망이론>, 문예출판사, 1994.
9)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저자란 무엇인가’, 문학과지성사, 1989.
10) 한겨레, 거대한 김수영 100년,‘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핏줄에 흐르고 있던 선비정신’, 2021. 5. 31
11) 이이화, <허균의 생각-그 개혁과 저항의 이론>, 뿌리깊은 나무, 1980
12) 김상환, <공자의 생활난>, 북코리아, 2016.
13) 박정희 독재시대, 권력을 비판하고 민중의 소리를 듣것다고 ‘민음사民音社(1966)’를 창간한 사람이 박맹호이며, 그가 찾아낸 ‘오늘의 시인총서’ 1번이 바로 김수영이고,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한 것 또한 그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중국의 도교적 계열의 대하민중소설 <수호지>를 탐독한 데서 온 것입니다. 2017. 10. 28 경향신문 
14) 앙리 마스페로, <도교>, 까치, 1999
15) 加地伸行 著, <中國論理學史硏究>, 硏文出版, 1983
16) ‘명교名敎’는 사물의 실제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형식주의의 유교를 달리 이르는 말로, 부정적 뉘앙스를 지닌 도교식, 특히 위진남북조기의 현학식 표현법입니다.
17) 근본을 높이고 말단을 그치게 한다는 노자사상의 종지로, 왕필의 ‘노자지략老子指略’에 보입니다. “老子之書, 其幾乎可一言而蔽之, 噫! 崇本息末而已矣.”
18) ‘시인정신론’, <신동엽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19) 미셸 푸코, <말과 사물>, 민음사, 1980.
20)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2000.
21)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동서문화사, 1992.
22)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아카넷, 2006.
23) 헤겔, <정신현상학>, 한길사, 2005 “어쨌든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이며 새로운 시기를 향한 여명기임을 알아차리기간 어렵지 않다.”(서설)
24) 헤겔, <법철학> 서문, 한길사, 2008
25) 요하임 리터, <헤겔과 프랑스혁명>, 한울, 1983
26) 니체, <반시대적 고찰>, 청하, 1982
27) 헤겔, <법철학>, 한길사, 2008
28) 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베개, 2000
29) 창작과비평 2001 여름호, 고은 ‘미당 담론’
30) 니체, <권력에의 의지>, 청하, 1988
31) 에드문트 후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사, 2015
32) 참고로 하이데거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은 1927년에 공간되었으며, 10여년을 지나 1937년에 일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후, 해방과 전쟁을 맞은 한국에서 전후의 실존주의와 함께 하이데거가 대유행하였고(고은, <1950년대>, 향연), 김수영 또한 일본 유학파로서 일찍부터 하이데거를 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로 된 <존재와 시간>은 1992년에 가서야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33) ‘로캉땡’은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자의식 과잉의 예리한 관찰의 소유자로 부르주아의 위선과 무의미한 대화들만 주고받는 모든 인간들의 비진정성에 회의를 느끼는 순간에 갑자기 구토를 느낍니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그의 첫 소설의 주인공 로캉땡은 바로 존재론적 회의주의자 김수영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34) ‘보르쥬’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를 가리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만리장성과 책들>(열린책들)의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서 푸코가 인용하게 될 중국 백과사전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가짜로 늘어놓은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자의에 의한 분류가 얼마나 전횡적이고 황당한 것인지를 풍자, 비판하려는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35) 푸코는 <말과 사물>을 스스로 ‘기호에 관한 책’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36)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민음사)에서 소설은 ‘앎의 모럴’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37) 고부응, ‘영문학 속의 식민이데올로기’, <역사비평>, 1995 겨울호, 역사비평사
38)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문예출판사, 1994.
39) 김현, ‘자유와 끔’, <거대한 뿌리>, 민음사, 그는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라며, 그를 통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싸우는 예술의 긍정적 기능을 옹호했습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저자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