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천국

                                                      -양수리 감성돈 또는 최은주 
월요일은 분식집 쉬는 날
화요일은 중국집 쉬는 날
수요일은 떡&커피집 쉬는 날
목요일은 밥집 쉬는 날
그리고...
일요일은 떡볶이집 쉬는 날

도심에서 살 때는 그날그날 먹고 싶은 메뉴를 사서 먹었다. 
아, 오늘 이 가게가 쉬는 날이구나, 그럼 다른 데 가서 사 먹으면 되지.
먹고 싶은 메뉴에 따라 퇴근길 내 발걸음과 어플로 배달 주문을 했다.

지금 사는 마을은 요일에 따라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제한이 있다. 어떤 메뉴를 먹고 싶을 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확인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운영하는지 검색한 후 찾아간다. 만약에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그게 화요일이라면... 낭패다. 왜 하필 중국집 쉬는 날에 짜장면이 먹고 싶은 것인지, 내 식욕에 화가 난다. 이 마을에 올해 배달어플이 생겼지만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곳은 10곳이 안 되고, 그마저도 메뉴까지 정해서 결제해도 식당에서 승인이 나지 않는다. 가게에서 30분 이상 승인을 하지 않아서 주문이 자동취소되는 경우도 겪었다. 이럴 거면 배달어플에 등록은 왜 하셨을까... 잠시나마 핸드폰으로 배달 어플 붙잡고 먹고 싶은 것 고르던 내 손가락이 하찮다. 

어느 날, 산책하다가 먹을 것을 찾고 있을 때쯤, 아니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걷던 중 마땅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그나마 찾아간 곳은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유난히 심했다. 터덜터덜 처진 어깨로 걷고 있을 때 심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앞뒤 없이 쏠려서 매만지다가 잘 보이지 않던 내 앞길에 ‘천국’이 보였다. 유난히 그곳만 햇살이 가득했고, 잠시 현실감각을 잃은 듯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난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천국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김밥천국입니다” 
눈부시도록 따뜻했던 그곳에 밥 냄새가 가득했고, 메뉴판에 있는 메뉴들을 보고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 곳이 우리 마을인가? 아니지, 여기는 천국이지,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 마음도 놓였다. 늘 지나가면서 있던 곳인데, 왜 이제야 이곳이 보이는 걸까? 한 걸음 뒤에 항상 천국이 있었는데, 난 늘 먼 곳만 바라보았구나. 서운했겠네. 

나중에 책방을 차리게 되면, 꼭 책방 이름은 ‘모퉁이 책방’이라고 하고 싶다. 골목길, 또는 길의 끝에서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공간. 저마다의 두려움과 어두울수록 주변의 그림자는 무서운 모양새가 되지만, 그 모퉁이를 돌아서면 마주하는 따뜻한 공간, 그런 책방을 원한다. 정말 아끼는 건데,.. 우리 동네 ‘천국’에도 다정한 이름 하나 지어주고 싶다. ‘모퉁이 천국’ 보일 듯 말 듯, 때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이름을 보아도 기억에 남지 않는 공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곳을 난 이렇게 기억하고 싶다. 밥 냄새가 났다. 사람 냄새도 났다. 연중무휴, 그리고 물과 반찬은 셀프, 반찬은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천국’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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