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 문종필
장소: 복합문화공간 해시
날짜: 2021년 10월 9일 토요일 1시
좌담 패널: 김정현, 김산, 김학중, 조은영, 이기현, 주향수

2021년 10월 9일 토요일 1시 인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해시’에서 7명의 문인들이 ‘지금, 이 순간 동물을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좌담은 세부적으로 1부 동물과의 만남, 2부 반려문화와 자본, 중성화수술, 안락사, 3부 동물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으로 나누어진다. 뉴스페이퍼에는 1부 만을 수록한다. 2부와 3부는 ≪인천문화현장≫ 45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잡지는 2021년 12월 31일에 발행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김정현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서 황인찬 시인에 대한 「너는 이제 ‘미지’의 즐거움일 것이다」란 글로 등단했다. 현재 인천에서 발행되는 《학산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중이다. 공저로 『한국 근대시의 사상』이 있다. 

김산  

거북이, 자전거, 걷는 것, 자는 것을 좋아한다. 세 번째 시집을 정리하면서 봤는데 온통 ‘슬픔’에 관한 기록들이다. 그런 내가 참 미쁘고 대견하다. 

김학중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창세, 청소년 시집으로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이 있으며 제18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조은영 

2020년 가을 《시인수첩》으로 등단했다. 글 쓰고 강의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강의안을 만드는 것도 시 쓰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시고르자브종 채널을 매일 구독하고 아직까지 우표 수집을 하고 있다. 시를 쓰고 나면 혼자 낭송한 녹음 파일을 밤새 듣는다.

이기현 

시를 쓰고 있고 인천에서 고양이 하루와 함께 살고 있다.

주향수 

강진에서 태어났다. 2021년 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했다. 사람과 생활, 사물에 대한 시를 계속 쓸 것이다.

문종필 

본지 편집위원. 2017년 계간 《시작》에 「지독한 괴물과의 싸움」을 2021년 《지금, 만화》 13호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문학과 영화를 넘어 당당히 지금, 이곳에」를 발표하면서 문학과 만화 평론을 시작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문종필: 안녕하세요. 『인천문화현장』 45호 ‘지금, 이 순간 동물을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라는 주제로 사회를 맡은 평론 쓰는 문종필입니다. 다섯 분 모두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인디언의 격언을 읽는 것으로 이 좌담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남은 성스러운 신임을 받는 것이다.
이 특별한 은혜에는 신성한 책임이 있다. 
나무, 물고기, 숲, 새
지구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가 받은 은혜를 뛰어넘는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그들을 돌볼 의미가 있다.1)


  위의 글은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 노블 『개』(2021)의 첫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디언의 격언으로 첫 문장에서 ‘인간’이 등장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많은 은혜와 혜택을 받은 존재이니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나무, 물고기, 숲, 새” 등을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일반적으로 상위 포식자이기도 하니, 비건(vegan)으로 살아가며 숲 속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가족처럼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동물을 사냥할 때나 나무가 필요할 때, 함부로 행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더 짙게 배어 있습니다. 
     2009년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Avatar)>에서는 이러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하루 빨리 지구 밖 판도라 행성에서 에너지를 얻어야만 하는 인류는 그곳 원주민인 ‘나비족’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했습니다. 인간은 공감의 과정속에서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걷지 못하는 해병대원 제이크가 첨단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 일을 돕습니다. 아바타와 한 몸이 된 제이크는 나비족과 생활하며 그들의 습관과 전통을 ‘인간’들에게 전달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기다리지 못합니다. 좀 더 느리게 그들에게 다가가 ‘인간’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해 무력으로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획득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이크는 나비족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느끼게 됩니다. ‘네이티리’라는 나비족 일원과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제이크는 보다 더 나비족의 입장에서 세상을 쳐다보게 됩니다. 끝내는 ‘나비족’의 편이 되어 막무가내로 에너지를 얻으려는 ‘인간’과 싸움을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비족’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제이크는 실수로 판도라 행성의 동물들을 화내게 하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네이티리는 동물들로부터 제이크를 구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죽이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네이트리의 언어는 주목할 만합니다.

아바타(00:37:45)
아바타(00:37:45)

 

제이크: 놈들을 죽여 줘서 고맙다고
네이트리: 감사는 됐어. 감사할 일이 아냐 
         슬픈 일이지. 아주 슬픈 일이야. 

제이크: 알았어 미안해. 내가 뭘 잘못했든 사과할게. 
네이트리: 전부 네 탓이야. 너 때문에 죽었어. 
제이크: 내 탓이라고? 날 공격했잖아
네이트리: 네 탓이야! 애처럼 징징대고 아무것도 모르지

옥자(1:47:20)
옥자(1:47:20)

 

 

누군가는 판타지 영화이기 때문에 현실이 부재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비족’의 구성원들은 동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인디언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인디언의 격언처럼 “나무, 물고기, 숲, 새” 등은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 그 자체인 것입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2017)에서는 보다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이행하는 인간의 모습이 다뤄집니다. 무수히 많은 ‘옥자’를 사육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은 자본과 결탁한 과잉된 식욕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다소 과장된 영화로 보이지만, 식욕이 과잉된 형태로 동물들을 소비하는 현상은 당대의 ‘먹방’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으니, 인간의 습관을 반영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로 맛을 극대화 시킨 특정 브랜드의 치킨을 먹을 때, 시원한 콜라와 함께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고는 하는데, 이런 작품과 만나게 될 때면 잠시 주춤하게 됩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우리는 이러한 문화 속에 깊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김금숙의 그래픽 노블 『개』(2021)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텍스트 역시 동물에 대해 다룹니다. 이 책은 반려견을 입양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질문합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중성화 수술’, 공장에서 ‘생산’되는 동물들의 환경, 더 나아가 개고기 문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텍스트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키우던 개를 즙으로 만들어서 먹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웃는 표정을 기억해 그렸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차이로 볼 수 있으나 ‘애완견’이 아닌 ‘반려동물’의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소 ‘섬뜩’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던 장면이었습니다. 기존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만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개』 127쪽.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관계’를 통해 결이 쌓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정이 든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금숙의 이 텍스트는 반려견과 함께 보낸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창작된 텍스트로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질문합니다.
   반면에 라미의 『은돌아, 산책갈까』(2019)는 시간의 단절 속에서 반려 동물을 응시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라미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요. 라미는 사회가 만들어낸 미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혹사시킵니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을 보내던 중, 자신을 응시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나’의 리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라미는 사회적인 기준을 과감히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게 됩니다. 성장 서사라고 하면 성장 서사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는 시간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만리장성처럼 견고한 자신을 지우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이 시기에 가족도 친구도 아닌 반려 동물인 ‘은돌이’가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은돌이’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미는 ‘은돌이’를 애도하는 방식으로 책을 짓게 됩니다.       
      하지만 제게 이 책이 특별했던 것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애도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인 반려동물 문화 자체에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라미가 문제 삼았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순종’ 개념입니다. 인간들은 작고 귀여운 동물을 키우기 위해 동물을 이기적으로 교배시켰고 교배 과정에서 만들어진 만족스러운 동물을 ‘순종’이라고 정한 후, 이 품종의 수요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사실상 순종 같은 것은 없는데 말입니다. 또 하나는 비싼 병원비로 인해 버려지는 유기 견에 대한 내용입니다. 위의 사진은 어느 한 시인이 기르는 반려 고양이 ‘밤이’의 병원비 영수증인데 상당히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재정적인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반려동물을 유기합니다. 더 이상 쓸모없거나 감당하지 못할 경우, 동물들은 인간에 의해서 폐기廢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 의해 버려진 동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소영의 글 「이름 없는 동물의 보호소」는 좋은 참고가 됩니다. 아래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비교적 운이 좋은 동물들은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민간 동물보호단체의 보호소에 입소한다. 그러나 2019년 기준 한 해에 13만 5000여 마리의 동물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첫 번째 도착지가 가지고 있는 규모의 한계는 분명하다. 

2. 두 번째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직영 또는 위탁 보호소다. 그러나 2019년 말 기준으로 전국 동물보호센터 284개소 중 지자체 직영은 단 39개소뿐이다. 또한 한 동물보호단체가 전국 222개 지자체에 정보 공개 청구를 하여 분석한 전국 지자체 유기동물 보호소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동물에 대한 치료비 예산이 없으면, 당연히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다. 기껏 구조된 동물들이 고통 속에 방치되다 자연사 혹은 고통 사하게 되는 것이다. 

3. 세 번째는 개인의 힘으로 운영하는 사설 보호소이다. 그러나 아직 까지는 사설 보호소에서 생활하는 동물에게 먹고 자는 것 이외에 다른 보호 및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4. 버려진 동물이 갈 수 있는 최악의 도착지는 ‘식용’이나 ‘생산’ 등을 목적으로 개인업자에게 재판매되는 곳이다.2)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최근 문단에서는 포스트휴먼담론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당대의 흐름은 인간 이후에 대해 질문하자는데 대부분의 문인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인간과 인간 이후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묻게 됩니다.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식의 회전입니다. ‘인간은 말 그대로 과거에 인간이 옳다고 믿었던 인식認識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성이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이 100년도 채 안되었다는 점에서, 과거 인간이 옳다고 믿었던 믿음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직감할 수 있습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지금 다루고 있는 좌담 주제인 동물! 좌담 주제는 아니지만 노동자, 소수자 등등. 더 나아가 지금 현재 그 누구에게 언급되지 못한 채, 호명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대상들이 인간 이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 이후를 나누는 또 다른 기준인 기술입니다. 인간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기존에 품고 있던 습관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설계합니다. 사진, 인쇄술, 기차, 전기, 아이폰 등과 같은 기술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서 어색하지 않지만 새로운 기술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충격의 형태로 역사 속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 충격의 형태는 서서히 마모됩니다.

저희 좌담은 이 두 경향 중, 인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 가치관을 보다 더 확장해 타자를 품는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대상이 바로 동물입니다. 동물에 대한 생각이 쓸모에 갇혀 있지 않고 쓸모를 넘어 존재 자체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인간이후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안과 밖으로 동물과 관련된 텍스트3)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심너울의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4)에서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하는 행위 자체를 비판했습니다. 김애란의 노찬성과 에반」5)은 노찬성이라는 어린 소년이 반려동물을 안락사安樂死 시켜야만 하는 어쩔 수 없음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동물과 관련된 작가들의 공동 작업입니다. 출판사 아침달에서 출간된 고양이를 소재로 묶은 두 시집6)이 최근에 출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절멸도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받으며 출간되었습니다. 어느 잡지에서는 저희와 비슷하게 동물 좌담7)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런 텍스트를 주목했던 이유는 묶여서 나왔다는 행위 자체였습니다. 무엇인가를 묶는다는 것은 담론을 만든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공저를 묶을 때, 여러 필자들의 입장()을 모아 선포하는 것인데, 이 행위가 정치적인 목적을 띈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정치는 몫이 없었던 존재들이 자신의 몫을 찾는 여정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절멸선언문선언문 해설은 인간중심주의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동물을 주체로 상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객체나 도구였고 기껏해야 가여이 혹은 어여삐 여긴 정도였죠. 이유는 인간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세계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시각에 대한 반성과 도전이 일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자는 주장이 그것이죠. 탈인간 중심주의의 강력한 도전장은,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 중심적인 학문, 인류학에서 나왔습니다. 아마존 원주민을 연구하던 브라질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는 아메리인디언들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에 주목하게 됩니다. 원주민들의 사고 체계에서 신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그들은 신화를 ‘인간과 동물이 서로 구분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로 여긴다는 점입니다.8)

     영화 〈켄테이젼(Contagion)〉(2011)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면 인간이 무슨 이유로 코로나19에 감염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동굴 속에 있어야 할 바이러스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절멸』의 필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작가들은 동물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경고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의미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대상을 작가들이 대신 말해주는 과정에서 소외된 존재들은 그때서야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들의 이러한 행위는 인간을 보다 인간적으로 만듭니다. 반면에 우려되는 지점도 있습니다. 타자를 이해하고 보살피고 그들과 함께 비를 맞는 행위가 유행에 물드는 순간 실존은 휘발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작품은 힘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대상에게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는 ‘유행’에 힘입는다고 해도 무용하지 않습니다. 

  이서하 시인의 시집에 수록된 시9)입니다. 시인은 그림이 움직이는 게 꿈이라고 고백합니다. 화자는 반려견을 잃었고 잃은 마음에 반려견을 그렸던 것입니다. 꿈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한때 반려견과 보낸 시간이 참 좋았다고 추측해 봅니다.

    

개들에게 물어볼 수 없다 정말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인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앉아서 새가 내는 소리와 공사장에서 공사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말 미안한 일이 있었다
어릴 때 생활이 어려워져서 

 

키우던 개를 시골 할머니 댁에 두고 온 적 있었다
할머니는 검은 개를 묶어 키웠다 

 

검은 개가 죽고 나서 나는 대학에 갔다
겁이 많은 아이였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검은 개가 죽었다는 것은 전화로 들었다
검은 개를 두고 올 때 차를 타고 떠나며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도

 

너를 두고 왔다 겁이 많은 너를 돌아보지 않았다
개가 짖으니까 다른 개들이 같이 짖는다

 

잊지 않을 거라는 말을 거짓말이 된다
가끔씩 생각날 거라는 말은 진심이 된다
나는 순수했던 적 없다는 말도

 

검은 새가 대신 울어주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될 수 있다
개들에게는 물어볼 수 없다

 

아침이라 공사가 재개되었다

 

간밤에는 정말 미안한 일이 많았다10)

홍지호 시인의 첫 시집에 수록된 「검은 개」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이 키웠던 검은 개와 이별할 때, 뒤 돌아보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행위는 검은 개에게 “정말 미안”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화자가 철이 없었을 수도 있고, 너무나 미안해서 쳐다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물과 맺은 결이고 이 흔적이 화자를 오래도록 쫓아다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는 대상의 높고 낮음으로 나눌 수 없는 각별한 존재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담론에 힘입어 ‘지금, 이곳’에서 동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한송희 에디터
사진= 한송희 에디터

 

1부 동물과의 만남

     문종필: 이번에 저희가 할 작업이 좌담이다 보니 지면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주어지는 것 같아요. 작년에 작업 한 것을 기준으로 그러니까 한 이 정도입니다. 작년에 같이 하셨던 분들과도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생각보다 저희 글이 많이 읽혀지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가장 핫한 주제였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검색이 될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유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2021년에는 주제를 ‘동물’로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사회를 보게 된 문종필 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은영: 네 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 《시인수첩》으로 등단한 조은영입니다. 멀리 분당에서 왔어요. (웃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왔어요. 반갑습니다.

주향수: 저는 시 쓰는 주향수 입니다. 조은영 시인이 인천에 오신다고 해서 잠시 얼굴 보려고 들렀습니다. 커피만 마시고 가려고 왔다가 한번 와보라고 해서 이렇게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경청하며 참여하겠습니다. 올해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김정현: 안녕하세요. 저는 평론 쓰는 김정현이라고 합니다. 오늘 좌담을 위해 모이신 분들이 대부분 시인이신데 저는 평론가여서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왔습니다. (웃음)

김학중: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김학중입니다. 의정부에서 왔고요. 눈도 안 좋고 먼 길을 가게 되니 고생을 할 것 같아서 아내가 차를 태워주었어요. 그런데 아내도 초보 운전자여서 이곳에 오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이기현: 안녕하세요. 저는 2019년에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기현 입니다. 지금은 인천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동물 관련해서 좌담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서 좋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김산: 네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김산이라고 합니다. 이 공간은 처음은 아니고요. 3번 정도 온 것 같습니다. 본가가 인천 쪽이라서 오랫동안 살았고, 그래서 그런지 어색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동네가 먹자골목이거든요. 술도 자주 먹고 했었습니다. 오랜만에 오는 것 같아요. 반갑고요. 재미있게 마무리 잘 마무리하고 막걸리집이나 갔으면 좋겠습니다. 

문종필: 방금 김산 시인이 이야기 해 주셨는데 이곳에 ‘갈매기’라는 유명한 식당이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함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되시는 분은 함께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김산 시인이 그러는데 좋은 물고기가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김산: 물고기가 아니라 아까 사장님에게 연락을 했더니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고급 어종을 때왔다고 해요. 그곳이 그거 잘하거든요. 고급 어종인 민어. 오픈 된 장소가 아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니 괜찮으시면 그곳에서 막걸리 한잔 드시고 모두들 귀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따가 제가 좌담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문종필: 네. 고맙습니다. 제가 좌담 전에 질문지를 드렸잖아요. 굉장히 긴 질문지였는데 이 질문지의 흐름 속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정현: 아 그러면 최종 발표되는 원고가 좌담만 들어가는게 아니라, 선생님이 쓰신 이 글도 서두에 함께 들어가는 것인가요? 

문종필: 네 아마도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 또한 막판까지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좌담 내용은 3회나 4회 정도 주고받을 예정인데 패널 분들께서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수정을 해 주시거나 첨가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저희가 약간 리듬을 타기 위해 짧게 워밍업을 했습니다. 크로나―19 시대의 풍경을 기록할 겸, 요즘에 작업하고 계신 것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주시면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이기현 시인은 어떠세요? 

이기현: 저는 집과 집 주변 카페에서 시를 쓰고 있고 고양이 ‘하루’를 길에서 만나 함께 살게 된 지 4개월째 된 초보 집사입니다.

김산: 저는 가끔 생각날 때 시를 써요. 일주일에 두 번 시 수업을 하고 있고요. 거북이를 키워요. 잠시 후, 말씀드리겠는데 육지 거북이를 키웁니다. 요즘에는 전기 자전거에 빠져서 자전거로 어디든 쏘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무리가 된 상태이고 정리 중입니다. 

문종필: 김학중 시인은 최근 무엇을 작업하고 계시는가요? 

김학중: 비슷하죠. 두 번째 시집 준비하면서 계속 시 작업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에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요. 그 외에 연구하고 비대면 및 대면 수업으로 학생들 가르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웃음) 

김정현: 저도 음, 비슷합니다. 일상의 반복이기도 한데요. 수업 하고 그 다음에 논문 쓸 때에는 논문을 쓰고, 그리고 평론 원고도 이래저래 쓰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나오는 문예지인 《학산 문학》에서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구요. 코로나 때문에 다들 비슷하시겠지만 누구를 만나거나 하기가 참 애매한터라, 그래서 주로 집에 있습니다. (웃음)

조은영: 저도 시를 쓰고 있고요. 온라인, 오프라인 국어 강의를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줌(zoom) 요가를 하고 있는데요. 함께 요가하는 사람들 중에 환경 문제와 동물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과 소통하면서 저 또한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요.

문종필: 저도 패널 선생님들과 비슷하게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곳과 저곳을 이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큰 변화를 주기위해 만화를 읽고 있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취미이지만 안으로든 밖으로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웃음)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좌담을 시작 하겠습니다. 저희 좌담 패널 구성이 반려 동물을 키우시는 분들과 그렇지 않는 분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자의 입장을 들어보면서 좀 더 나은 ‘동물’에 대한 생각이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김산 시인은 「‘현존’이라는 거북이」라는 글에서 “홀로 사는 나에게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큰 위안과 동시에 책임감을 갖게 한다.”11) 김산, 「‘현존’이라는 거북이」, 『시와 사람』, 가을호, 2020, 151~153쪽. 
라고 말한 것처럼, 반려 거북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이기현 시인의 경우는 저와 인스타 팔로우여서 종종 반려 고양이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양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더 귀엽고 예쁘고 할 것 같습니다. 두 분은 어떤 방식으로 동물과 만나게 되었나요?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어떠셨나요? 반려 동물을 키우는 분들에게 마이크를 우선 넘겨 보겠습니다. 

김산: 저는 뭐 우선 다들 동물들을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요. 있을 수는 있죠. 보통은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우잖아요. 저는 어릴 적에 같이 자랐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죠. 시골에서 자랐는데 학교만 갔다 오면 매일 같이 놀고 그랬는데 어느 날 사라졌어요. 할머니가 그 친구를 솥단지에 팔팔 끓였던 것이죠. 소고기 국이라고 해서 두 그릇이나 먹었어요. 그 이후로 상처를 받고 옛날 시골집 곳간에서 이틀간 안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개나 고양이는 좀 많이 살갑잖아요. 그래서 조금 부담스럽고 손도 많이 가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친구가 제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거북이 키운다고 생각하면 물 거북이를 많이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물 거북이는 공격적이고 살아 있는 생물을 잡아먹어요. 저는 그래서 채식을 하는 육지 거북이와 지내고 있었요. 이 친구는 잠을 엄청 많이 자요. 지금 다섯 살인데 두세 살까지는 24시간 중에 22시간 가까이 잤던 것 같아요. 지금은 20시간을 자요. (모두 웃음) 그래서 오래 산대요. 제가 키우는 종이 레오파드 육지 거북이라고 하는데 그게 지금 사이티스(CITES·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 2급이에요. 국제 멸종보호종으로 1급 2급 3급으로 나뉘는데 1급은 못 들여와요. 2급의 경우는 서류 작성을 해서 행정 절차가 필요하고 3급부터는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걱정이 많습니다. 거북이가 80년에서 100년을 사는데 지금 5살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 집에 두 평짜리 텃밭이 있어요. 이 친구가 얼거리, 치커리, 호박, 채소는 다 먹어요. 자극적인 거 예를 들어 양파 같은 것은 본능적으로 먹지 못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 과일을 주는데 너무 좋아해요. 특히, 딸기와 수박을 주면 환장하지요. 

조은영: 얼마나 커요? 

김산: 엄지손가락만 했을 때 제가 데려와서 지금은 제 얼굴보다 크죠. (모두 호응) 아마 다 크면 지금도 크고 있으니까 대략 50~60 센티는 자랄 것 같아요. 다큐에서 갈라파고스 거북이는 200년에서 300년 정도를 살거든요. 그 친구들은 2미터도 넘어요. 제가 키우는 것은 중형인데 저는 뭐 키운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워낙 이 친구가 자기 생존력이 없어서 당연히 밥을 안주면 챙겨주어야 해요. 그런데 제게 좀 잘 맞는 것이 거의 손이 안 가요. 며칠 집을 비워도 큰 걱정도 되지 않고요. 이 친구는 그냥 자요. 그래서 오래 사는 거 같아요. 걱정도 없고 배고프면 자고. 얘는 아프리카가 고향이어서 30도가 항상 유지되어야 해요. 쿨존과 핫존이 있는데 2도에서 3도 차이에요. 쿨존은 27도에서 28도 핫존은 30도에서 31~2도 예요. 거북이는 변온동물이라 컨트롤을 못해요. 그래서 왔다 갔다 하면서 램프만 잘 관리해 주시면 되지요. 

문종필: 거북이를 키우는 김산 시인의 경우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네요. 거북이의 경우 80년을 산다는 했을 때, 거북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고양이나 개의 경우 인간 보다 수명이 짧아 일찍 이별을 하게 되는데 반해 거북이의 경우 사람이 반려 거북이 보다 더 오래 살기는 힘들 것 같아서요. 이 포인트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산: 저도 그 부분이 신경 쓰입니다. 사회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 외국에서 거북이는 100년 정도 키워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자식한테 물려주고 자신이 손주한테 물려주고요. 어릴 때부터 거북이를 선물 받았다면 거의 100년이라고 치면 요즘에는 사람들이 오래 사니까 같이 살수도 있겠죠. 그런데 대부분은 물려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보다는 당연히 오래 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종필: 김산 시인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군요. 네. 알겠습니다. 이기현 시인의 경우 고양이를 키우게 된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갓 입양한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어떤 계기로 고양이를 키우게 됐는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해 주세요. 

이기현: 저는 처음 하루를 만났을 당시에 친구랑 같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어요.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서 다가가보니까, 플라스틱 박스에 배변 패드랑 사료랑 같이 아기 고양이 네 마리가 버려져 있었어요. 평소에 길에서 고양이들을 만나면 자주 지켜보곤 했는데 이렇게 유기된 경우는 처음 마주해서 당황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다가 친구랑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한 마리라도 내가 데려가서 키워야겠다. 이런 결심이 들었어요. 당시에 저는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었고 어떻게 고양이를 키워야 되는지에 대한 사전적인 정보도 없어서 밤중에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다행히 친구가 전화를 받아줘서 집으로 데려가면서 핸드폰으로 고양이에게 필요한 용품들을 주문하고 그랬어요. 
      막상 친구가 가고 집에 고양이랑 둘이 있는데 그때부터 두려움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제대로 충분한 준비도 없이 이렇게 데려온 게 어떻게 보면 고양이에게 안 좋을 수도 있고 앞으로 잘 책임을 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또, 데려오면서도 그 와중에 경제적인 여건이나 환경을 고려하다 보니까 나머지 세 마리는 그냥 두고 왔다는 게 뭐랄까, 괴로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유기동물보호소에 유기된 동물들을 신고하게 되면 보호소에서 데려간다고 알고 있어서 다음 날 신고하려고 갔는데 그 자리가 깨끗하게 다 치워져 있는 거예요. 고양이들도 없고 플라스틱 박스도 없고 누가 데려갔는지 아니면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어서 지금도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요. 그렇게 이제 하루를 데리고 와서 동물병원도 다니고 유튜브로 수의사분들이 운영하는 채널에서 고양이 습성이나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처음 두 달 정도는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하루가 상당히 활발하고 호기심도 많아서 집안을 많이 돌아다니고 울기도 많이 울고. 저는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지내와서 혼자 있는 시간이 되게 익숙하고 또 저는 이어폰을 밖에서나 안에서나 항상 꼽고 살거든요. 그래서 외부 소음에 대해서 민감한데 줄만 보면 달려드는 하루 때문에 집에선 이어폰을 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느꼈던 건 하루가 돌아다니거나 우는 소리가 저를 생생하게 건드리는 것이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어요. 집안 청소도 부지런히 하게 되고 밥도 주고 화장실 청소도 해주고 그러다 보니까 무료하게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저에게 생활이라는 게 생겨서 좋았고 제일 의미가 있었던 것은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과 내가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문종필: 사랑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말처럼 유기 고양이였던 ‘하루’를 우연히 만나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삶과 생활 습관이 바뀌게 된 이야기를 해 주신 것 같아요. 저희가 지금까지 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의 입장을 들었는데요. 동물을 직접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패널 분들께도 동물에 대한 생각을 여쭈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정현 평론가님부터 이야기 해 주세요. 

김정현: 저는 제가 사실 이 주제에 맞는 패널인가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요. (웃음) 음, 저는 어렸을 때 집이 지방에 있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김산 선생님하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없어진 개를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동물을 키운 경험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어렸던 초등학교였을 때에 갑자기 키우던 개가 사라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기르기 어려워서 근처에 계시던 친척 어르신들께 맡겼는데, 나중에 말씀하시기로는 개가 도망갔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 도망친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한테 속아서 개고기를 염소고기라고 알고 먹었던 기억도 있구요.(웃음) 
 그런 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사실 지금의 저를 생각해 보면 아마 앞으로도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결국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게 어떤 형태든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이 중요한데요. 제 자신도 건사하기 힘든데 과연 다른 동물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는데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이렇고, 사회적이나 문화적인 현상에서 봤을 때 결국 반려동물 문화가 커지는 것은 어떤 면에서 좀 1인 가구 증가라던가 하는 사회적 변화 현상이랑 관련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여튼 저는 아마도 키우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 주변에 평론하시는 선생님들께서 그나마 덜 부담스러운 식물을 키우신다는 분이 꽤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종필: 아까 김정현 선생님께서 매정하다고 해주셨는데 어떻게 보면 매정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방금 얘기해 주신 것처럼 책임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동물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고요. 걱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보면 동물을 생각한다는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1인 가구 증가와 반려 동물의 관계성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현: 문화 자체가 달라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집 마당에서 그냥 키우며 먹다 남은 음식을 주고 하면서, 어찌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기르긴 했었잖아요? 어른들의 이야기지만 지금은 이제 그런 문화가 아니고. 같이 함께 살아야 되는 존재로 바뀐 것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문종필: 김정현 선생님의 말처럼 변화하는 문화와 ‘동물의 관계성’은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김학중 시인은 어떠세요? 

김학중: 네 저도 저는 동물 주제로 생각을 해서 반려로 좁혀서는 생각을 별로 안 해봤네요. 물론 여기 질문지와 관련된 얘기가 있는데, 저 같은 경우도 어릴 때 집에서 개를 한 마리 기른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도시에도 시궁쥐들이 많이 있었어요.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곘지만, 80년대말까지는 ‘쥐 잡는 날’이 있었어요. 정부에서 독려하면서 동네마다 포스터도 붙이고 그랬죠. 그래서 그날에 맞춰 일시에 쥐약이나 쥐덫을 놓았거든요. 이명박 정권 때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쥐 잡는 날’의 포스터가 이 기억을 환기하는 장면을 다룬 적이 있는데, 당시 이 장면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게 아니냐고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죠. 왜 그런 해프닝이 있었는지는 대충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날에 쥐만 죽는 게 아니라 개나 고양이도 많이 죽었어요. 저희 집 개도 옆집 고양이랑 사람들이 설치해 놓은 쥐약을 먹고 죽었어요. 쥐를 유인하기 위해서 음식에다가 쥐약을 섞어 놨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그날 강아지가 무척 괴로워하면서 뭔가 도움을 요청하듯이 짖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요. 그때 저는 어렸고 무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몰랐죠. 단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뿐이에요. 어른들은 강아지를 집밖에선 목줄을 풀어놓지 않았고 낮에 집에서 돌보는 동안엔 별일이 없었으니 영문도 몰랐죠. 다음날 옆집 고양이도 죽고 우리집 강아지도 죽었어요. 쥐 잡는 날 밤에 고양이와 우리집 강아지가 함께 돌아다닌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아무튼 그때 가족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죠. 그 이후로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았어요. 그후에 가족들이 분가해 살게 되면서 몇 번 정도 반려동물을 키워보려고 시도한 적은 있는데, 병사하거나 다치는 사건들이 생겨서 결국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 집안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운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 외에도 개와 관련되어서는 좋지 않은 기억들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동생이 옆집 개한테 물리는 걸 본 적이 있고요. 제법 큰 개가 공격해서 문 거라 그걸 본 적도 충격이 있었어요. 저도 개에 물린 적이 있고요. 대학원 시절에 제가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돈을 벌기 위해 괴외로 여러 동네에 다녔어요. 그때 한 수험생 집에서 과외강의를 하다가 그 집 반려견에 물렸어요. (웃음) 마르티즈 계열의 작은 개였는데 제 손을 제대로 물렸죠. 그 친구가 과외수업 중에 반려견을 안고 있어서 사실 가르치는데 좀 어려움이 있었어요. 아무튼 그 사건에서 강아지들이 주인의 어떤 정서적인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외롭고 힘들 때니까 반려견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거 같은데, 그 영향이 느껴졌어요. 강아지가 너무 짖어서 내려놓고 수업하자고 하다가 개한테 물렸거든요. 주인을 다그친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요. 아무튼 반려견에게 물려도 아픕니다. (웃음) 개 이빨에 독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광견병 주사도 맞아야 했고요. 사람 피맛을 보는 게 강아지한테 안 좋다고 하는 애기도 들었어요. 그때 치료비도 못 받고 다 제가 부담해서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네요. (웃음) 제가 저시력 장애가 있어서 보행 중에 동물들을 잘 보지 못하는 것도 문제고 그래서 솔직히 동물이랑 친하게 지내기가 어렵네요. (웃음)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죠. 
       저는 반려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는 이유에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합니다. 1인 가구의 증대도 궤를 같이 한다고 할까요. 특히 여성들이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관계에서 배신에 대한 스트레스가 여성들에게 상대적으로 많다는 걸 반려동물에 대한 여성들의 발화에서 느낍니다. 물론 제 주위의 경우이긴 하지만요. 여성들이 동물들은 배신을 안 한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남자들은 바람피고 배신을 하는데. 동물들은 안 그런다는 거죠. 믿을 사람 하나없다는 생각이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다는 거죠. (웃음) 그 외에도 우리가 공동체적인 위안들을 잃어가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 위로와 온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부분이 있어요. 
      또한 코로나19로 격리된 사회 속에서 살면서 이 문제가 더 심화되는 것 같아요. 사실 1인 가구라는 건 지금 개념으로 거의 격리죠. 1인 가구가 증가한 상황에서 각 개인이 민간끼리의 유대가 만들어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가진다면 당연히 반려가 늘어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들이 지금 우리가 오히려 동물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러한 현상 자체가 증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문종필: 김학중 시인께서는 1인 가구 증가와 코로나19로 인해 멀어지는 인간의 단절이 ‘동물’이라는 존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하나의 증상적 ‘징후’라고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김학중: 아무래도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다보니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어 이런 말씀을 드린 것 같네요. (웃음)

문종필: 네 고맙습니다. 조은영 시인은 어떠신가요?  

조은영: 저는 지금은 기르고 있지 않아요.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마당 있는 집에 살았는데 그땐 동물을 많이 키웠어요. 마당에서 개 두 마리 키웠고 또 잠깐이었지만 집 안에서도 두 마리 키웠어요. 토끼, 고양이도 키웠네요. 근처에 사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는 거북이를 7~8마리 기르셨어요. 걔네들은 크기별로 따로 기르지 않으면 서로 물어뜯는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는 장면도 봤어요. 어릴 때 기억에 저희 집 시고르자브종 주변에 검은색 쓰레기 봉지 같은 게 있어서 치워주려고 다가가니 순하던 개가 막 짖는 거예요. 할머니가 새끼 낳고 있는 거라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조금 있다가 보니 꼬물꼬물 새끼 강아지들이 태어났어요. 새끼들을 다른 곳에 보내기 전에는 잠시 총 열두 마리 개를 키우기도 했네요.
사실 저는 그냥 예뻐만 했어요. 기르는 건 부모님이 하신 거였죠. 아플 때 병원에 데러가거나 밥을 주거나 똥을 치우거나 이런 거는 거의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저는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예뻐만 한 사람 그러니까 어떤 책임엔 거리가 멀었던 거죠. 
 아파트에 이사 와서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부모님께 졸랐지만 층견 소음 문제도 있고 털이 날리는 문제도 있어서 기르지 못했어요. 매번 조를 때마다 ‘동물을 키우려면 많은 책임이 필요한데 너는 예뻐만 했기 때문에 쉽게 말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나요.

문종필: 네 고맙습니다. 패널 분들 모두 각자 자기만의 동물에 대한 추억을 갖고 계신 듯 합니다. 주향수 시인께서는 게스트로 오셨는데 아까 들어오시면서 동물을 싫어한다고 이야기 해 주신 것 같아요. 게스트이긴 하시지만 이야기를 조금 해 주시죠. (웃음)

주향수: 식물 보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식물은 좋아하는데 동물은 마음에서부터 다가가기가 쉽지 않네요. 왜 그렇게 꺼리는 마음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 옆에 사람 말고 움직이는 무엇이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면서 한편으로는 동물을 좀 무서워하는 것도 같아요. 주로 제 주변 동물은 사람보다 약한 존재인데 동물을 무서워하는 제 자신이 이해가 안 되기도 하네요.(웃음) 저희 아이가 중학생인데 얼마 전에 개를 키우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부모 입장에서 애들 키우기도 힘들어서 키우는 걸 반대했거든요. 근데 아이들은 대부분 동물을 갖고 싶어 하잖아요. 왜 강아지를 키우고 싶냐고 물었어요. 강아지를 키우면 공원에서 사람들하고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요즘은 대부분 사람들이 산책 나올 때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잖아요. 사람들끼리 먼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강아지를 매개로 해서 말을 걸게 되고 서로 이야기하잖아요. 강아지 산책시켜주면서 그렇게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나봐요. 그 아이 시선에서 볼 때 이제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면 자기도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죠. 그냥 자기 혼자 돌아다니면 사람들과 얘기 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렇게 좀 하고 싶었나 봐요. 저는 그 생각이 독특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강아지를 키우는 건 생각도 못해 봤는데 이번 기회에 아이에게 강아지를 사주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만 조금 했었네요. 

문종필: 무엇보다도 강아지를 ‘매개媒介’로 인간과 인간이 ‘목적’을 품고 만난다는 것이 이색적입니다.

주향수: 네, 그러면 아이가 밖에 나갔을 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한 거죠. 더구나 코로나 시대인 요즘 학생들은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집에서 주로 핸드폰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든요. 친구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꽤 줄어들었구요. 그것보다는 강아지를 키워보고, 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나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강아지를 키우게 되고, 그 강아지를 끝까지 책임지는 쪽으로까지 생각하면 허락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문제라 생각되네요.

문종필: 인간과 반려동물의 오묘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네요. 

주향수: 특히나 사람과 가까운 강아지는 더 그런 거 같아요. 공원에 나갔을 때 자기가 누구에게 다가가기가 힘드니까 강아지를 매개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좋아요. 특히나 요즘은 공원에 가도 어떤 시간대에는 사람보다는 강아지들이 더 많을 때가 있거든요.강아지랑 같이 산책하는 건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한번 관계를 맺은 동물에 대해서 이후에 키우며 따르는 여러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키울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종필: 선생님께서 동물을 싫어하신다고 발언한 이유에는 이런 의도가 숨겨져 있군요. 중요한 얘기를 해 주신 것 같고요. 일단은 그러면 이제 1부에서 세 번째 질문인데 이게 어떻게 보면 저희가 이제 좌담에서 중요한 핵심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최태규의 「동물원에서의 죽음」12)이라는 글 초반부에 인간이 동물을 해하거나 죽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동물 권리론을 톰 리건이 정리해서 책으로 낸 것이 1983년이고, 한국 사회에서 동물권이라는 말이 회자된 것이 2016년이라고 해요. 정말로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담론인데요.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무슨 이유로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희가 이렇게 인연이 되어 모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인 것 같아요. 조은영 시인부터 이야기 해 주세요. 

조은영: 일상에서 산책을 나가더라도 반려동물을 많이 마주쳐요. 특히 반려견이 많은 것 같은데요. 이제는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함께 사는 세상이 되었어요. 이젠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최근에 본 신문기사에서 ‘코로나 시대에 층견 소음 문제’가  많다고 해요. 집콕족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반려견 짓는 소리가 갈등의 원인으로 떠오른거죠. 반려견한테 물리는 사례, 배설물 처리 문제, 외출 시 입마개를 씌우지 않은 문제 등이요.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만 하더라도 ‘반려견 배설물 처리’를 당부하는 플랜 카드가 붙어있어요. 반려인들은 동물을 키울 때 페티켓을 지켜야 해요. 비반려인들은 ‘사람보다 개가 더 중요하냐’ 식으로 함부로 말해서도 안되고요. 반려인들 입장에서는 가족이잖아요. 처음 이 좌담을 초대를 받았을 때 나는 반려인이 아닌데 패널로 참여해도 될까?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문종필: 네 알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저희가 조금 더 이야기 해 볼게요. 김학중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학중: 네. 이 동물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저도 생각을 해봤는데요. 서구에서 이런 개념들이 이제 구원됐다고 얘기가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민주주의 국가가 성립될 때 법 위에다가 국가 시스템의 기반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다룰 때도 법의 차원에서 사유하는 것이 근간이 되게 생각의 기초가 변환된 것이죠. 그래서 법적 차원 내에서 동물권이 사유된 것이 서양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라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동물에 대한 권리가 내포하고 있는 윤리적 차원에 대한 부분은 이미 동양에서 상당히 많이 논해졌었다는 생각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동물권에 대해 후진적인 위치에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동물권의 함의하고 있는 근본적 지점은 동양에서 이미 상당히 오랜 세월 논해져 왔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예전에도 동물 관련된 논의들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한 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학생들하고 이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하다가 이규보의 「슬견기」라는 에세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여기서 이규보는 개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장면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겼다고 말하는 객에게 이 잡는 장면과 견주어 얘기를 하잖아요. 이도 절제 동물이기 때문에 동물이거든요. 우리는 벌레까지는 동물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데 여기까지가 다 동물이거든요. 개념적으로 카테고리 안에 다 들어가요 근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던 게 인도의 사유풍토에선 더 많잖아요. 벌레 하나도 밟지 않기 위해서 자이나교 승려들은 빗자루로 길을 쓸면서 걷잖아요. 그런 점에서 동양 역사에서는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살생의 의미, 특히 생명의 가치와 관련된 사유가 굉장히 자연스럽고 생활 속에 들어가 있었어요. 동물권이라는 개념으로 동물의 권리를 얘기할 때 본질적으로 이러한 동양적 사유의 경게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좀 얘기를 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 부분은 서양적 사유에서 동물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는가 질문하는 부분과 연관되거든요. 이 문제가 저는 무척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얘기하다가 학생들하고 얘기했던 게 이 부분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신 사람이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마다가스카르 시리즈는 꽤 인기가 있어서 3편까지 나왔어요. 그 애니메이션이 재미있는 게. 이게 주요 등장. 인물이 전부 동물이에요. 육식 동물들 나고 펭귄 나오고 이러는데 여기까지는 전부 다 의인화가 돼요. 그래서 서로 의사소통도 하고. 유대감을 가지는 캐릭터가 그려집니다. 이들은 뉴욕의 센트럴파크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에요. 그 중에서 호랑이가 극의 중심갈등을 만드는데, 그 요소가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죠. 어찌저찌 사연이 생겨서 이들 동물들은 배에 실려 이동하게 되는데 사고가 생겨 마다카스카르에 난파하게 됩니다. 난파로 인한 동물들의 소동극 속에서 재밌는 장면이 나오는데, 호랑이의 육식거부에 대한 팽귄들의 해결책이 나오는 장면이에요. 팽귄들이 생선을 잡아서 요리를 해주는 장면이 나와요. 그러니까 여기서 물고기들은 의인화가 되어 나오지 않는 거죠. 이게 재밌는 게 채식주의자들 중에서 생선섭취를 허용하는 게열의 이데올로기를 들여오고 있다는 점 이외에도 동물에 대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환대할 수 있는가가 그것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동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생각을 하고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를 사유하는 거에 대해서 근본적인 차원에서 점검한다면. 결국은 동양적 사유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동물에 대한 관심은 근대시스템에 대한 반성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근대 시스템 속에서 자연상태의 요소들을 인간 중심적으로 정돈하고 그것을 지배해 왔는데, 이제 이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동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되는 거죠. 인간지배에 의해 생기는 문제들 하나 하나에 대해서 점검하다가 이제 동물권이라는 지평에 도달한 거예요. 그 지점에 이미 먼저 와 있던 사유가 있다는 점은 종종 간과되는데, 그 부분을 우리가 짚어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물권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배제되는 동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권리를 인정을 해주는 행위에 의해서 이 권리가 우리 앞에 현실화되기 때문이에요. 법적 사유와 권리 기반 사유는 포함과 배제의 형식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서 얘기한 예시에서와 같이 우리의 사유가 멈추는 자리에서 동물권에 대한 범주가 멈추게 되면 거기서 셈해지지 않은 동물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오늘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종필: 예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동물권에 대한 범주가 멈추게 되면 거기서 셈해지지 않은 동물이 나올 수 있다”는 발언은 곱씹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동물권과 관련해 문제(?)적인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걸 진단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김정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정현: 그러니까 저도 김학중 선생님과 약간 비슷한 의견일 수도 있는데요. 동물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문제가 아까 선생님이 법적 관리의 부분이나 동양과 서양의 사고 시스템 차이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는데, 그런 부분도 당연히 고민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 결국 동물권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일단 떠오르는게 인종전시입니다. 사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서구에서도 한 20세기 초반까지 인종 전시를 하면서 살아있는 원주민들을 전시하거나 혹은 박제해서 보여주는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동물원의 기원이 그쪽일 텐데, 이런 현상을 놓고 봤을 때 이건 결국 타자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느냐의 문제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동물권에 대해 어떤 철학적인 질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타자로서 생각한다는 것은 타자를 어떻게 규정하냐에 복잡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게 동물로만 한정될 수 있는 문제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예컨대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수 있지만 갑자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외계인이 등장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대할 수 있는가, 이런 맥락이 중요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웹툰이나 웹소설 같은 것도 보는데요. 요새 좀 흥미롭게 보고 있는 작품이 <마계인섬>이란 웹툰입니다. 내용이 뭐냐면 갑자기 어느 날 대한민국 어딘가에 마계에 살던 사람들이 차원이동을 해서 나타나요. 그럼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할 것이냐. 이제 그들도 여기에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마계인들이 원래 살던 세계에서 가지고 있던 마력이 지구엔 없으니까 마법을 쓸 수가 없어져요. 그래서 약간 남은 마력을 가지고 쇼를 할 수 있으니까 그들이 그 능력으로 테마파크를 만들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 세계에 적응하게 되요. 사실 이세계의 존재에 대한 상상력은 영화 쪽에도 매우 많고 <디스트럭트9>같은 영화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결국 외계인이 됐든 동물이 됐든 규정될 수 없는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이고. 이 측면에서 한 가지 더 짚어보면 타자에 대한 환대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측면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란 존재를 규정하기 모호하고 특히 인간성이라는 개념도 더더욱 애매모호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유기체적 육체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규정한다면 그에 걸맞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맥락에서 보면 타자를 환대하는 보다 나은 인간성이 우리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할 것 같습니다. 동물권으로 시작해서 외계인이나 다른 차원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셈입니다만(웃음). 저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사실은 결국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복잡한 문제지만 어쨌든 타자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사실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조금은 원론적이죠. (웃음) 

문종필: 요즘에 포스트-휴먼이 등장하잖아요. 포스트 휴먼 자체가 인간 이후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도 보다 더 나은 인간에 대한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는 것은 의미있는 것 같아요. 

김정현: 그 인간성에 대해서까지 설명을 해 봐야 되는 문제가 아닐까란 생각도 더불어서 들어요. 동물을 키운다고 얘기했을 때 아까도 말했지만 예전에는 그냥 먹다 남은 밥을 주면서 개를 키우고 했었잖아요? 지금의 반려동물 문화로 바뀌었고, 이제 그렇게 키운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어요. 개념 자체가 바뀌는 거고 인간이 타자를 대하는 방식 자체도 바뀐 거라고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럼 또 그 이전의 문화는 어떤가. 그리고 그걸 지금의 가치로 판단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가 또 생겨나게 됩니다. 사실 동물들을 키우게 되는 게 어떤 목적성을 가진 행위였을텐데요. 예로 들면 경비용이라든가 쥐를 잡는다든가 하는 것들요. 이런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서 시작된 일인데, 지금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문화가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때의 문화와 지금의 문화의 차이는 뭘까 또는 그것을 각각의 기준으로 잣대를 댈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이야기가 좀 복잡해지기는 했습니다만 결국 저는 이 문제가 차이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담을 준비해보면서 타자와 다름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문종필: ‘동물’ 개념 자체를 다르게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시대와 시간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타자’와 ‘인간’ 관계를 어떻게 규명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동물권이 이슈화되는 것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담론의 형태로 쳐다볼 수 있지만, 김산 시인과 이기현 시인은 직접 키우는 입장이니 이슈가 되고 있는 ‘동물’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기현: 저는 몇 해 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의 영상들을 접하곤 했어요. 반려동물 하면 떠오르는 강아지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뱀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부터 개구리, 거미, 앵무새, 사마귀, 구피 등등의 다양한 동물들과 지내는 영상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지내고 있고 그렇다면 당연히 동물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실제로 함께 지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요새는 ‘랜선집사’라는 단어처럼 영상을 통해서 동물을 애정하게 되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반려동물이 집에서 동물군마다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 키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리 실제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면 이제는 SNS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사는 곳 어딘가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이제는 동물을 좀더 인간과 공생하는 관계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문종필: 네 알겠습니다. 김산 시인은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산: 동물권에 대해서 제가 얼핏 들은 바는 있지만 깊이 있게 잘 알지는 못하고요. 제가 봤을 때는 저희가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그냥 인간의 입장이잖아요. 모든 것들이 지금 인간의 입장에서 자본 경제 시대에 따라서 돌아가잖아요. 아까 그 먹이도 말씀하셨는데 저도 너무나 공감하는 게 옛날 시골에서 따로 뭘 준비하지 않았죠. 먹던 거를 나눠 주고 함께 공생했죠.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풍부해졌지만은 의식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면서 계속 더 좋은 비타민부터 해서 영양제도 따로 나오고 있죠. 사료들도 그래서 이왕이면 좋은 사료를 먹이고 싶은 것이고 동물들도 또 빈부가 생겨나고 어떤 친구들은 그런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하는 그런 기본 의식주의에 대해서도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유기를 하기도 하죠. 또 만약에 병이 걸리게 되면 자신이 좋은 거를 먹이지 못해서 이런 자책할 수도 있고요. 예전에는 그런 문화가 거의 없었죠.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에 예전에 동물권이 없었냐? 그건 아니라고 봐요. 산업화가 되면서 대체로 다 과잉의 시대가 된 거 같아요. 동물과 인간을 소통해 주는 기술도 그렇구요.  

이기현: 돌물의 언어를 번역해주는 거죠? 

김산: 네 맞아요.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짐작을 하는 거죠. 저는 엉뚱하지만 그런 거 말고 진짜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문종필: 그렇죠. ‘진정성’ 있는 대화 같은 거요. 

김산: 저는 거북이를 키우지만은 제가 키웠다고 해서 그 동물의 심리를 제가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거예요. 서로의 입장이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저한테 맞춰서 몇 년간 살았을 수도 있거든요. 같이 맞춰가면서 사는 거죠. 

문종필: 우리가 챙겨준 것이 아니라는 거죠. 

김산: 그렇죠. 그냥 잘 먹으면 좋아하니까 먹어주는 거고 자도 예쁘고 가끔 뭐 이렇게 손 흔들면 좋아하고 그러니까요. 두 가지만 분리하면 될 것 같아요. 좀 큰 틀에서 그 예전부터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길들였잖아요.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지금 사회적으로 너무 약하죠. 공격적인 것들이 많이 순화됐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더 많은 동물들이 지금 야생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길들여 진 것들은 지금 야생에 나가게 되면 거의 도태 되죠. 특수한 경우도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거북이를 키우지만은 거북이는 완전히 길들여진 게 아니에요. 육지 거북이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게 10년 남짓밖에 안 돼요 그래서 아주 큰 거북이들은 없어요. 아직까지 완전히 길들여지지는 않았지만은 자본의 자본 경제 때문에 어딘가에서 계속 지금 부화되고 있어요. 폐사율이 높은 새끼 때는 농장에서 키우고 아성체 정도가 되면 세계 각지에 분양을 하고 있는 시스템이죠. 

문종필: 자본의 경제 때문에 부화되는 거북들이 안타깝습니다. (우울) 이야기해 주신 선생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일단 좀 쉬고 2부에서는 반려문화와 자본, 중성화수술,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김금숙, 『개』, 마음의 숲, 2021, 5쪽.

2)이소영, 「이름 없는 동물의 보호소」, 『동물』, 민음사, 2021, 194~197쪽.

3)천선란, 『천개의 파랑』, 허블, 2020.

4)심너울,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아작, 2020, 67~93쪽.

5)김애란, 「노찬성과 에반」,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20, 41~81쪽.

6)출판사 아침달에서 출판된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ㅡ고양이와 함께한 시간에 대하여』(2020)와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2019) 두 시집을 참고할 수 있다. 이 두 시집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동물담론의 영향으로 기획된 것으로 추측된다.

7)길상호, 신미나, 이용한, 이혜미, 「여름날의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시와 사람』 88호, 2018, 시와사람사, 25~51쪽.

8)이동시, 「선언문 해설」, 『절멸』, 2021, 126쪽.

9)이서하, 「다시 찾는」, 『진짜 같은 마음』, 민음사, 2020, 82쪽.

10)홍지호,「검은 개」,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문학동네, 2020, 34~35쪽. 

11)김산, 「‘현존’이라는 거북이」, 『시와 사람』, 가을호, 2020, 151~153쪽.

12)최태규, 「동물원에서의 죽음」, 『동물』, 민음사, 2021, 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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