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보호구역 전경
시인보호구역 전경

 

봄볕이 따사하니 여유로운 날입니다. 문득, 봄날 같은 인연들이 햇살처럼 떠오르네요. 시인보호구역에서 이루어진 인연, 각자 다른 날짜였지만 세 사람이 우연히 같은 무대에 선 적이 있습니다. ‘내일은 국민가수’의 박창근과 이솔로몬, 그리고 또 한 명은 야구선수 구자욱입니다. 오늘은 그 인연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진= 박창근 사진
사진= 박창근 사진

 

십 년을 훨씬 거슬러 2008년 늦가을 경북 김천에서 ‘그날들’의 박창근을 만났다. 지인의 결혼식 축가를 위해 대구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왔다. 그의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울림이 있어,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집에 실린 ‘오월의 신부’ 축가를 듣고 매료되어 음반을 찾아보았는데, 2006년 발매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가 있었다. 운전할 때마다 거의 매일 들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음반과 2015년 발매된 ‘바람의 기억’을 좋아한다. 눈을 감고 들으면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정도로 묘한 음색과 독특한 끌림이 있는 마력의 목소리였다. 이후에도 지인과 함께 종종 카페 공연에 가서 찾아뵈었다. 그는 관객이 많건 적건, 장소가 어디든 그가 필요한 곳이라면 그곳에 있었다. 대구 시내 국채보상공원에서도 문득 만났고, 아스팔트 위에서도 만났고, 남구의 조용한 카페에서도, 수성구의 문화공간에서도 만났다. 이런 인연으로 2016년 12월 31일 시인보호구역 그 무대에서, 박창근과 함께 새벽 이슥토록 여럿이 모여 노래부르며 파티를 연 적도 있다. 당시 가수 박창근은 뮤지컬 故 김광석을 모티브로 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4년여 동안 주인공 이풍세 역을 맡으며, 김광석 노래를 불렀다. 2016년 이풍세를 내려놓고, 작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다던 뮤지션으로서의 박창근을 우리는 2016년 연말에 만난 것이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17년 1월엔 서울 홍대 인근 D카페에서 ‘박창근×트루베르’ 듀엣공연을 시인보호구역이 직접 기획하여, 서울 원정(?)을 가기도 했다.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는 2007년 윤석정 시인과 래퍼 PTycal이 결성해, 시를 노래와 랩으로 불러왔다. 내가 아는 가수 박창근과 트루베르 모두 마음이 시인인 분들이다. ‘내일은 국민가수’ 작가가 “박창근이 하는 노래나 목소리를 알고 싶어하고, 궁금해 하는 대중도 있을 것이다.”라며 그를 설득했던 그 마음처럼, 나도 나름 야심 찬 기획이었는데 관객이 많지 않아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서울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2017년 2월 시인보호구역의 ‘촉촉한특강’에 다시 모셨다. 이후에 그는 전국적으로 활동을 한 듯하다. 대구와 서울에서 라디오 진행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창근은 필자보다 다섯 살 위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의 음악인생은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하기도 하거니와 음악에 대한 고집스러운 예술가적 기질, 그리고 어떤 장소든 관객을 마다하지 않는 뮤지션으로서, ‘형’이라는 편한 단어로는 그를 부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늘 마음 속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만의 선생님이고 소년이었던 뮤지션을 이제는 세상에 울림을 주는 뮤지션으로, 만인의 가슴 속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온 듯하다. 

사진= 구자욱
사진= 구자욱

 

야구선수 구자욱은 2018년 어느 즈음에 뵌 듯하다(날짜를 알지만, 비밀에 부치기로). 2018년은 구자욱 본인에게 야구 멘토인 이승엽 없이 치르는 첫 시즌이었다. 그해 봄은 구자욱에게 남다른 봄이었고, 2018년은 한해도 이런저런 일로 그에겐 의미 있는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팬들은 여전히 그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내주었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2018년 그를 다시 일으켜준 것은 팬들이 아니었을까. 그 팬들과 함께한 첫 만남이 시인보호구역에서의 팬미팅이었다. 지금도 ‘구자욱 팬미팅’을 검색하면, 별그램 외에 딱히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이후로 야구에만 전면하느라 공식적인 팬미팅은 갖지 않은 듯하다. 고맙게도(?) 인생의 첫 팬미팅을 시인보호구역에서 한 것이다. 그 당시 60여 명 넘게 오셨는데, TV에서만 보던 유명 야구선수가 시인보호구역에 팬미팅을 하다니... 그저 놀라웠다. 가족 단위 팬들도 여럿 보였다. 팬들은 스피드퀴즈, 악수하기, 포토타임, 사인회, 빙고게임, 기념케익, 가위바위보 등 행사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구자욱 선수도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참, 글을 쓸 때는 왼손으로 썼던 것 같다. 그날 그의 진정성은 말과 행동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이들을 대할 때, 팬들을 대할 때 너무나 착한 청년이었다. 팬들의 질문과 요청에도 늘 환한 미소 가득이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순수한 마음은 그 자체가 시인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그의 종증조할아버지는 문학교과서에 실려 있는 '초토의 시'를 쓴, 구상 시인이다. 구자욱의 이름도 구상 시인이 직접 지어주셨고, 어릴 때 함께 밥도 먹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구상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시인의 문학적 명맥을 잇고자 영남일보사는 2017년부터 구상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첫 팬미팅 장소가 시인보호구역이 된 게 우연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인연이 ‘내일은 국민가수’에서 출연한 이솔로몬이다. 박창근과 이솔로몬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었다. 그전에 프로듀스101이나 미스터트롯 정도는 들어봤고, 채널을 돌리다가 나오면 잠깐 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인연이 있는 두 사람이 ‘내일은 국민가수’에 나오니 안 볼 수가 없었고, 보는 내내 함께 마음 졸이며 기도하곤 했다. 

사진= 이솔로몬 사진
사진= 이솔로몬 사진

 

이솔로몬과의 인연은 시인보호구역 블로그에 밝힌 바 있다. 2016년 말인가, 2017년 초겨울이었나, 늦은 오후쯤으로 기억하는데, 한 청년이 홀로 와서 음료를 주문하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수줍은 듯 여린 미소로 시집을 읽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고, 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시를 쓰는 문학청년이었다. 그는 몇 편의 시를 보여주었고, 그날 시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훤칠한 키에 생각이 많은 듯한 표정의 그는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물론 이때 이미 가수의 꿈을 안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심지어 나는 손님이 없을 때 시인보호구역 그 무대에서 그의 노래를 단독공연(?)으로 듣기도 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그때 그 시간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이름이 참 특이해서, 그리고 시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서, 마음 깊이 자리한 청년이었다. 이후에도 시인보호구역 행사나 프로그램에 종종 참여해 함께 하곤 했다. 코로나에 버겁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서 다시 문을 열었었다. 그는 그때도 와서 즉석 축하 공연을 해주었다. 길고도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던 이들이 그의 노래로 위로와 힐링을 받았던 날이었다. 그리고 부득이 장소를 또 옮기게 되어, 이제는 대구 수성구 두산동에 자리를 잡았고, 문학카페와 출판사를 겸하고 있다. 이솔로몬은 ‘내일은 국민가수’ 신청 전까지 다녀갔다. 가수를 꿈꾼다는 이야기는 진작에 들었던 터라, 박창근이 떠올랐다. 노래를 하다 보면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겠구나 싶어, 박창근을 만나면 꼭 인사드리라고 말하곤 했다. ‘내일은 국민가수’ 경연 초반인 지난해 9월쯤, 통화를 했는데 최근에 처음 뵈었고 인사도 드렸다고 웃으며 말하던 기억이 난다. 그냥 일적으로 만났다고만 해서, 그게 ‘내일은 국민가수’ 프로그램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날 오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가 유명해지면 시집은 꼭 시인보호구역에서 내고 싶다는 말도 함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러나 유명해지면 소속사가 생기지 않을까, 본인 마음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더 고마웠다. 10월 경연은 점점 무르익어가고 치열해졌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어, 시인보호구역에서 대구고등학교 동창회 관계자분들과 만나 홍보 협조도 부탁드렸다. 또 대구시와 수성구청에 관계자를 만나 지역 출신 가수 3명이 TOP 7에 있으니, 현수막이라도 달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박창근, 이솔로몬 응원해달라고 했고, 여기저기 문자도 보냈다. 난생 처음으로 어떤 이의 팬 아닌 팬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일 밖에 없었다. 이 무렵 시인보호구역에서 펴낸 영호남문학청년들의 글을 엮은 작품집 『푸른 시간, 푸른 기억』이 출간되었다. 여기에 이솔로몬의 시가 실려 있어서 팬들이 보고 싶어하셨다. 참, 이솔로문 전자책인 『그 책의 더운 표지가 좋았다』에 내 이야기 한 꼭지가 있는데, 출간과 내용에 있어선 미안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시인보호구역은 10년을 맞게 되었다. 박창근, 이솔로몬 그리고 시인보호구역의 인연을 아는 분들이 두 분을 초청해 10주년을 함께 꾸미자고 했다. 나는 경연프로그램이 3~4개월이나 그렇게 길게 하는지 모르고, 눈치 없이 이솔로몬한테 부탁을 했다. 11월 말이면 방송이 다 끝나는 줄 알았고, 심지어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계속 방송이 이어진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다행히(?) 늦게라도 알아서 박창근 선생님한테는 말하지 않아 그나마 덜 민폐였다. 돌이켜보니 예민한 시기에 무리한 부탁을 했다. 또 미안하게 되었다.

사진= 시인보호구역 활동 사진
사진= 시인보호구역 활동 사진

간이역을 지나는데 역사가 앞니로 아이를 물었다
그러게, 조심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하니

- 이솔로몬 詩, ‘역사에서 시작된 역사’ 중에서

시인보호구역에는 작은 무대가 있습니다. 지난 시절에 박창근, 구자욱, 이솔로몬이 섰습니다. 참, 마지막으로 놀랄 만한 일이 또 하나 있네요. 바로 구자욱 선수와 이솔로몬의 인연입니다. 두 사람은 대구고등학교 동문이면서 나이가 같더라고요. 심지어 더 놀라운 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연은 늘 놀라운 일들의 연속인 듯합니다. 

돌이켜 보니 이 분들 외에도 많은 분들이 시인보호구역을 다녀가셨네요. 새삼 인연의 귀함을 되새기는 봄날이고 센치해지는 봄날입니다. 시인보호구역은 앞으로도 지역문화와 문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고, 공간을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이 있어 시인보호구역은 오늘도 숨을 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환하게 뵙겠습니다.

시인보호구역 대표시인 정훈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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