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송희 에디터 김완 시집
사진= 한송희 에디터 김완 시집

 

의사이자 시인으로 활동 중인 김완 작가의 새 시집 <지상의 말들>이 지난 3월 7일 시작시인선 0414번으로 출간되었다.
 
김완 시인은 2009년 <시와시학>으로 데뷔하여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너덜겅 편지>,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김완 혈심내과 원장을 지내고 있다.
 
의사인 그는 코로나가 휩쓴 우리 주변의 쓸쓸한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마찬가지로 의사이기도 했던 19세기 러시아의 문호 체호프처럼, 시인은 거제도, 선암사, 부석사 등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쓸쓸한 여행지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그려낸다.
 
보물 400호 승선교와 승선루를 지난다 치매에 걸린 환자의 붉은 기억들, 붉은 잎들은 왜 가을을 끝내 보내지 못하는지? 늦가을의 풍경이 슬픈 영화처럼 남아 있다 소리가 소리를 지워 새로운 소리를 낳는다 이상한 계절의 폭포수 소리, 연못의 이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드디어 소리가 먼저 비를 부른다.
‘십이월의 선암사’ 중.
 
시인은 하지만 그 속에서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의 소소하고 활기찬 모습들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송화마을 물빛 호수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한다
빠른 걸음으로 호수를 서너 바퀴 돌면
문장들 피어나고 잠든 세포들 깨어난다
추석 명절 아침인데도 공원은 사람들로 붐빈다
운동 중인 동네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옷을 입고 저마다 운동을 한다
‘열매 없는 나무는 없다’ 중.
 
그러면서 시인은 주변의 풍경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시선을 돌린다. 사람과 만나고 얼굴을 맞대며 소통하는 것이 어려워진 지금, 시인은 코로나로 인해 관계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었다며, ‘문門의 상대성’에서 “안에서는 잠긴 문을 열 수가 없다/바깥에서만 열 수 있는 문은 문이 아니다/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상호간 소통을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코로나19와 집중호우로 지친 마음 때문일까요
말복 지나 잠깐 폭염이 오더니 며칠 사이
그대 울음소리 더욱 맑고 크게 들립니다
‘그대 울음소리’ 중.
 
김수이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그간 쌓아 온 의사, 시인, 여행자의 트라이앵글 구조를 유지”하며 “고통과 치유의 여정으로 요약되는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추천사를 쓴 임동확 시인은 시인의 시에 대해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일상의 시간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경청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일상의 시간이야말로 그가 ‘편견 없이 살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선택한 ‘지상의 말들’이 자리한 ‘정신석 거처’”라며, 시인이 “‘등 굽은 농부의 곡괭이’질처럼 충실하고 정직한 ‘시간과 존재의 방정식’을 꿈꾸며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 ‘말’들을 찾기 위한 ‘여행’의 노상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질문 01
이번 시집에서는 ‘슬픔’과 ‘쓸쓸함’의 감정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시인께서는 일상의 어떤 모습들에서 이런 감정들을 발견하셨는지, 그런 감정들을 대하는 시인님의 자세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답변 01: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삼국지의 관우가 지켰던 형주(우한) 땅의 한 일가족이 걸리면서 세상에 처음 드러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유례없이 높은 전파력으로 불과 석 달 만에 전 세계를 강타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몇 번의 변이를 거쳐, 현재는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혹독하게 앓고 있는 이 지구를 현재 살고 있는 시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앓고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삶과 죽음이 여일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시집에 실린 「어떤 봄날」, 「일상 2」등이 코로나로 인한 여러 변화와 깨달음을 시화한 것이지요. 환경은 사물의 영혼입니다.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감염병 위기는 즉 자본주의적 생태 파괴와 균열의 대가인 것입니다.
 
 
질문 02
의사로서 현재의 팬데믹 시기를 보내시면서 많은 경험들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의료 활동을 하는 것이 시 쓰기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팬데믹이 의사와 시인으로서의 삶에 각각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02: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 2」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새삼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본다 코로나19가 우리 인류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더불어 사는 삶의 깊이이다”입니다. 의학은 질병을 직접적으로 치유하지만 문학(=시)은 간접적으로 병든 영혼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의학과 문학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학은 상처와 질병으로 인한 직접적인 통증을 완화시킬 수는 없지만 비인간화된 영혼에 구원의 빛을 던질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학의 ‘간접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위대한 문학가(=시인이나 소설가)는 메스를 들지 않는 훌륭한 의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사로서 늘 죽음을 지켜보고 죽음과 동행을 많이 했지만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생사여일’의 의미를 더욱 깊게 깨달았다고 해야겠지요.
 
 
질문03
임동확 시인은 시인님의 창작 활동에 대해 ‘오지 않는 말’들을 찾기 위해 “걷고 또 걷는 외롭고 드높으며 쓸쓸한 길의 수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시인님께서도 시인의 말에서 “오지 않는 말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살아 있는 시간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시를 위한 언어가 주로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지, 혹시 여행이 언어를 찾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03: 제 경험에 의하면 어떤 시는 단숨에 쓰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시는 좀처럼 첫 문장을 얻지 못해 오랜 시간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어 늘 생각하곤 합니다. 어느 순간 어떤 계기가 되어 방아쇠가 당겨지듯 발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시는 오래 묵은 김치처럼 잘 숙성되어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입니다. 여행을 통한 낯선 풍경과 환경에서 상상력이 풍성해지고 좋은 언어(=말)과 시상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04
끝으로 뉴스페이퍼 독자들에게 전달하거나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04:
1)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여 달려가는 노정입니다. 매 순간 긴장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많이 갖는 것, 높이 빨리 가는 것 대신 자신의 속도로 인생을 살면 아름다운 것을 수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시대의 나침판이다”고 합니다. 좋은 책 좋은 시를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좋아하는 일을 자신의 속도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독서를 권합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입니다. 다시 한 번 좋은 책, 특히 좋은 시집을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2) 문학을 하는 의사로서 코로나19 시대 의사의 윤리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계선 너머를 꿈꾸지 않을 때 정신은 늙어가기 시작합니다. 인간 정신의 숭고함은 언제나 코로나19처럼 비범한 고통을 통해 발현될 것입니다. 정신의 위대함이 없다면 역사는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히말라야의 브로드피크를 등정한 후 하산길에 실종된 김홍빈 대장은 결국 그 무심한 설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초극하려는 도전정신을 배웁니다. 좋든 나쁘든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코로나19를 새로운 주체의 탄생으로 이바지할 수 있도록 문학인들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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