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저의 피, 땀 눈물입니다."

이경란, 대구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후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오늘의 루프탑>이 당선되며 데뷔하였다.

"BTS식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은 저의 피, 땀, 눈물입니다. 습작 기간을 거쳐 2018년 소설 <오늘의 루프탑>으로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요, 그 이후 8편의 단편을 문예지에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도합 9편의 작품이 들어 있는 책이죠."

"소설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요일 팬티 7종세트>, <페어웰, 스냅백>같은 코믹한 작품도 있습니다."


- 소설 곳곳에 빨강이 등장합니다. '빨강'은 작가의 의도된 배치였나요?

이 소설가 : 제가 소설을 쓸 때는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정해 놓고 씁니다. 그런데 막상 쓰다 보면 그렇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9편의 작품 중 <열여섯의 일>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 하나만 유일하게 첫 문장이 살아남았어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면, 글쓰기라는게 의도한 대로 꼭 흘러가진 않는다는 뜻이에요. 저는 제 책에 빨강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 있는지 몰랐는데, 다른 분들이 말씀을 해주셔서 알게 됐어요. 
 
그것이 저의 의도였던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빨강이 아니면 다른 색은 될 수 없었던 그런 작품들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표제작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 <메르센>인데요, 소설 <메르센>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 소설가 : 메르센은 수학자(마랭 메르센, 16세기 프랑스의 수도자이자 수학자 - 주) 이름인데요. 사실은 제가 수포자(수학 포기자)였어요. 수학을 굉장히 못 했던 저로써는 이 작품을 썼다는게 참 대견하기도 해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1과 그 자신의 수만을 약수로 가진 수가 소수잖아요. 근데 그 소수 중에서도 2의 n승-1로 정의될 수 있는 수가 메르센 소수 M(n) 라고 합니다.

이 메르센 소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토대, 즉 1이 되죠. 자기 자신만 가지고 있는 숫자입니다. 말하자면 사회 부적응자, 즉 심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지방 도시의 아파트에 있는 탁구 동호회가 배경인데요, 그 패거리 문화라고 하죠.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다수에 진입하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위협적일 수 있는지, 그럴 때 이 소수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태도인지. 이런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 이 소설집에서는 이 시대의 새로운 가족 관계와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작가는 현대인의 새로운 가족 구조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는지요?

이 소설가 : 1인 1직업 시대가 끝났듯, 1인 1결혼시대도 끝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인 1결혼시대가 끝나면 당연히 새로운 형태의 가족제도가 등장하게 마련이죠. 지금은 이게 많이 정착되어 있는 세태인 것 같아요.

전통적 가족의 형태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가족이 다 그런 삶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때로는 가족이 불행이 되는 삶 속에서 사는 고통은 다른 사람이 짐작하지 못하죠. 

그 가족의 형태만을 우리가 고수해야 하느냐, 이런 세태에서 다른 형태의 가족을 우리가 배척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따뜻함을 받을 수 있는 관계도 있잖아요. 그런 관계들이 인간의 삶을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단편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를 읽으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요?

이 소설가 : 읽으신 모든 분들이 힘들고 괴로웠다고 하시는데, 사실 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충분히 (심리적인) 거리를 확보해 둔 상태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이죠. 이런 작품일 수록 거리를 두지 않으면 작품 속에 작가가 매몰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왜 이 이야기를 끄집어냈느냐고 한다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여성들이 당한 적이 많기 때문이에요. 여성들이 성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건 남성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것을 굳이 끄집어내는 이유는,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소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예술이고, 예술품이라는 것은 내용 못지않게 형식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메시지를 깃발처럼 흔든다면 이건 소설이 아니라 어떤 이념의 선전 도구가 될 뿐이죠. 

- 현재 원고지 앞에서의 다짐을 듣고 싶습니다.

이 소설가 :  제가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을 썼어요. '내게는 한 번도 그분이 오시지 않았다'

소설을 못 쓰겠다, 라는 핑계는 저도 백만스물한 가지를 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죠. 그냥 묵묵히 쓰는 사람이 작가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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