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김지하 시인 <사진 = 김상훈 기자>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 시인이 지난 8일 강원도 원주의 자택에서 1년여 간의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고 김지하 시인은 박정희 정권 시기이던 1970년, 부패한 사회의 현실을 풍자한 시 ‘오적’을 사상계에 발표하면서 독재에 맞서는 저항시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일로 시인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였으나, 이후로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사형 선고까지 받는 등 독재 정권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1982년에는 대표작 ‘타는 목마름으로’를 발표하면서 민족 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1991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이어진 학생들의 연쇄 분신자살을 비판하는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를 조선일보에 발표하는데, 이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는 크게 반발하여 시인을 ‘변절자’라며 비판했고, 이후 시인은 민주화운동 진영과는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시인은 또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대선 과정에서 시인은 박 후보와 실제로 만나기도 했는데, 이때 안철수, 이정희 당시 후보를 비난하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모성애로부터 나오는 ‘여성 리더십’을 꼽았다.

김 시인은 이후에도  정지용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해 자신이 ‘여성성’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왔다고 밝히는 등 여성에 관한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드러냈다. 이날 행사에서 시인은 새로운 시대의 사상으로 ‘정역’, 화엄불교를 통한 생명학적 관점, 프랑스 철학자 뤼스 이리가라이의 종교철학, 칼 폴라니의 경제 이론 등을 소개하며 “뤼스 이리가라이는 여성신이 없기에 여성은 성자에게 육체를 주는 어머니의 역할로만 고정되어 있었다”며 여성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2015년도에는 고 황현산 평론가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게 (폴) 엘뤼아르의 표절인 걸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 묻게 된다. '타는 목마름으로'를 온전하게 살린 것은 이성현의 작곡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황현산이 얼급한 엘뤼아르의 시는 '자유'라는 작품이다.


내 학생 때 공책 위에/내 책상이며 나무들 위에/노래 위에도 눈 위에도/나는 네 이름을 쓴다//읽어본 모든 책상 위에/공백인 모든 책상 위에/돌, 피, 종이나 재 위에도/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마디 말에 힘입어/내 삶을 다시 시작하니/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네 이름 지어 부르기 위해//오 자유여’ - 엘뤼아르 '자유'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김 시인의 빈소는 원주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엄수되는 가운데 11일 오전 9시에 발인식이 엄수되었다. 유해는 화장을 한 뒤 원주시 흥업면 매저리 선영에 고 박경리 작가의 딸인 부인 김영주 씨와 함께 모셔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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