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입대를 환영한다, 아쎄이!”
“네가 선택한 OOO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특이한 단어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쎄이’, ‘긴빠이’, ‘악!’, ‘~인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등등...

이러한 말들은 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바로 해병대의 은어에서 따온 것이다.
신입을 뜻하는 말인 ‘아쎄이’, 훔치거나 빼돌리는 것을 뜻하는 ‘긴빠이’와 같은 말들은 물론이고, 무언가를 인내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했다는 글이 올라올 때면,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라는 농담조의 댓글도 흔히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남성의 절대 다수는 육군에서 군복무를 했기에 이러한 해병대의 은어들이 생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병대의 은어가, 일반인들에게도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원인의 중심에는, 바로 “해병문학”이 있다.

80~90년대에 유행하였던 '해병대 추억록'은 해병대원들이 직접 제작한다. 사진은 제작자 불명의 '해병대 추억록'
80~90년대에 유행하였던 '해병대 추억록'은 해병대원들이 직접 제작한다. 사진은 제작자 불명의 '해병대 추억록'

 

해병문학이란, 해병대 내부의 구타, 가혹행위와 같은 내무부조리를 소재로 삼아 짤막한 콩트로 엮은 일종의 풍자 단막극이다. 국내 최대의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2021년을 전후하여 급속히 유행하였으며, 현재는 일종의 밈(Meme)으로써 자리잡았다.

해병문학의 기원은, 해병대 출신의 전역자들이 인터넷 등지에서 기록한 회고록에 기인한다. 그 내용은 대개 해병대에서 본인이 겪은 내무부조리에 대해서 소개하며, 이를 버텨낸 것을 ‘해병답다’ 혹은 ‘이것이 해병대만의 문화’라고 미화하며 추억하는 회고록에 가까웠다.그러나 2021년, 디시인사이드의 어느 유저가 2016년경 ‘아르바이트 갤러리’에 쓴 글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해병문학’의 시대가 열렸다.

 

해병문학의 주인공 '황근출'
해병문학의 주인공 '황근출'

내용은 이렇다. 
글쓴이 A는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너무 지쳐서 포기하려는 와중, 해병대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황근출’이라는 선임은 A에게 과자를 억지로 먹이는 ‘악기바리’(식고문의 은어)를 시켰고, A는 악기바리를 버텨내지 못하고 과자를 토하게 된다. 그러나 ‘황근출’은 A의 가슴을 걷어차며 토사물까지 주워 먹을 것을 강요하고, A는 이에 따른다.

그날 밤 ‘황근출’은 A를 불러 담배를 쥐어주고, “바닥에 흘린 네 토사물을 아무도 대신 치워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도 마찬가지다.”, “실수하지 않도록 악으로 깡으로 이 악물고 살아야 한다”따위의 설교를 한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A는 ‘황근출’이 가르쳐주었던 ‘해병정신’을 되새기며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버텨낼 것임을 다짐하는 것으로 글은 끝난다.

이러한 ‘황근출’이란 캐릭터는 곧 해병대의 부조리이자, 잘못된 방향으로 미화된 ‘해병 정신’을 상징하게 되었고, 이에 상응하는 갖가지 소설들이 ‘해병대 갤러리’에 우후죽순 생겨나며 유행하게 되었다.

 

디시인사이드 해병대 갤러리의 유저가 합성한 '해병 유니버스'의 주인공들.
디시인사이드 해병대 갤러리의 유저가 합성한 '해병 유니버스'의 주인공들.

‘해병문학’ 의 유행이 급물결을 타기 시작하며 수많은 작품들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유저들의 손에 의해 ‘해병 유니버스(MCU : Marine Corps Universe)’라는 장르적 세계관까지 갖추게 되었다.

해병 유니버스 세계속의 해병들에게는 황근출, 박철곤, 무모칠과 톤톤정 등 마초스러운 이름이 주어지며, 심지어는 ‘손 으로하는수술은뭐든지잘해’라던지 ‘1q2w3e4r!’과 같이 정상적인 사람의 이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름까지 붙인다.

에피소드의 소재 또한 풍자 일색이다. 왕따 문화인 ‘기수열외’는 작중에서 “X끼...기열!”이란 대사로, 군인 간 동성 성폭행은 “전우애 실시!”로,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해병대 전우회 건물은 ‘해병성채’로 묘사되기 일쑤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D.P 개의 날>과 <해병 유니버스>

이러한 군대 내의 부조리를 다루는 작품은 또 있다. 작년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되었던 드라마, <D.P 개의 날>(이하 D.P)이 그것이다. 

드라마 D.P와 해병문학, 두 매체는 모두 군대 내에서의 구타·가혹행위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D.P는 군대 내에서 부조리를 겪었던 시청자라면 누구나 치를 떨 만큼 군대의 구타·가혹행위를 극한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매우 비극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해병문학은 다르다. 구타·가혹행위라는 소재를 다루는 것은 같지만, 해병 유니버스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하나같이 유쾌한 분위기에서 코믹한 결말을 이룬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해병대의 암적인 문화를 미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유저들은 ‘블랙 유머’로 받아들인다.

상술하였듯 해병문학의 기원은 해병대 전역자들의 회고록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일반적인 사회라면 용납되지 않을 행위들을 ‘해병대답다’며 미화하고, 해병대의 내무부조리를 ‘이런 게 해병대인거 다 알고 왔으면서 왜 불만을 가지느냐’라는 식으로 무마하던 것이 해병대 전역자들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인터넷이 발달하고, 대중들은 군대의 부조리를 시대착오적인 폭력적인 문화로 인식하며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해병대 특유의 악습 문화를 비판하는 방식이 바로 ‘해병문학’과 같은 블랙 코미디였던 것이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부 건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부 건물

물론 이와 같은 ‘해병문학’의 유행은 현실 속 해병대에게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해병대 사령부에서는 사령부 차원의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올해 초 1월 ‘오도해병 사이트 등 인터넷 정화활동 추진’을 전우회 협조 하에 진행하겠다는 공문이 유출되고 말았다.

이에 해병대 갤러리 유저들은 ‘해병대 사령부가 마음이 편치 않은가 보다’고 비꼬며, “그렇다면 해병문학이 아닌 해병 비문학을 보여주겠다”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직접 폭로하기 시작했다. 매년 해병대 지원율이 저조해가는 현재 상황에서, 해병대에 대한 혐오감이 날로 늘어갈수록 해병대 측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해병문학’이 과장되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2009년에 해병대에 입대하였던 B씨는, “해병문학은 어느 정도 사고사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측된다”고 인정하는 한편, “내가 복무할 당시에도, 해병대는 사령부 차원에서 내무부조리를 혁파하기 위해 노력하긴 했었다. 아직 구타나 가혹행위가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역할 때를 돌아보면 가시적으로 줄어들긴 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B씨는 “육군도 그러하듯 해병대도 부대마다 분위기가 다르기 마련이니, 해병문학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게 좋다.”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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