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아야 할까.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생각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나와의 관계가 깊고 오래될수록 더욱.
 
전작 “날개 환상통”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서 김혜순 시인은 세상의 죽음을 탄식한다. ‘엄마’라는 지구와 함께 자신이 나아가야 할 궤도마저 잃어버린 시인은 비탄 속에 깊이 잠긴다.
 
나도 엄마처럼 노트북 가방에게 엄마 엄마 부르며 인간 취급해본다.
엄마는 알았을까. 결국 이렇게 된다는 것.
태어난 다음 결국 가방이 된다는 것.
어떤 가방의 우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가방에 얼굴을 넣고 아 아 아 아 하자 한참 있다가
아 아 아 아 메아리가 돌아왔다.
-‘체세포복제배아’ 중
 
시집은 총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 ‘지구가 죽으면’에서는 엄마의 죽음이, 2부 ‘봉쇄’에서는 코로나19라는 재난을 겪은 우리의 현실이, 3부 ‘달은 누굴 돌지?’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장소, ‘사막’을 헤매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격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처럼,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죽음과 마주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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