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비극을 가지고 논다’고 표현한 이지아 시인. 2022년 박상륭상 수상 소감에서 “세상이 만들어놓은 개념과 시의 범주 사이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마음껏 쓰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이지아 시인의 시는 경계를 드나들며 범주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 안나가 말했다, 저 구름은 참 맘에 안 들어, 내가 신나서 말했다, 그럼 내가 치울까, 뭐? 하하하하, 안나가 말했다, 저 별은 더 싫어, 그럼 내가 영원히 삭제할게, 안나는 잠시 조용했다, 세상은 참 복잡하지 않니? 나는 물고기가 안나의 발을 물까 봐 걱정이 되었다,나는 고개를 숙이고 물속을 보았다, 안나가 울면서 다시 말했다, 넌 뭐가 되고 싶니? 어른이 되면,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물속에 비친 플라타너스를 보았다, 너가 좋어하는거, 그게 될 거야, 그 후 안나는 작은 고니가 있는 강에서 죽었다
-‘회전하는 편지’ 중
 
시집은 얼핏 보면 제목처럼 경쾌하고 발랄하다. 대사로 이뤄진 희곡 형식과 구어체 문장 등, 정형화된 시 형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들을 보면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 속 상황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시인이 시를 가지고 놀지만, 그것이 ‘비극’인 이유다.
 
줄기차게
세차게
 
소나기는 내 어깨를 자른다
-‘앵두와 몽롱과 비탈’ 중
 
이지아 시인은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부문과 2015년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으로 각각 시와 희곡 작가로 데뷔했다. 희곡과 시의 발판 위에서 극시 장르를 개척해 한국 시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2022년 제4회 박상륭상을 수상했다. 아래는 시인과의 인터뷰다.

 

 
 
 
질문 01
극 형식으로 쓰인 시들이 눈길을 끕니다. 희곡과 희곡의 형식을 빌린 시는 아무래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극 형식으로 시를 쓰실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질문 감사합니다. 네. 이번 시집에는 다양한 극 형식의 시들이 존재합니다. 짧은 극시도 있고 긴 극시도 있고요. 대사나 이야기로 되어 있는 장시, 서사시도 있습니다. 희곡은 공연을 목적으로 하지만, 희곡의 형식을 빌린 시는 공연을 전제로 창작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공연이 눈앞에 없을 뿐이지, 우리들의 마음과 상상에서는 공연되고 있지요. 그것을 이미지라고 할 수도 있어요. 제 시에는 그런 이미지들의 연결이 분열되거나 파편적이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첫 시집의 극시에 등장하는 ‘모직코트’, ‘클립’, ‘홍학’처럼 여러 주체들이 등장하여 시를 끌고 가고 있어요. 77편의 시들이 서로 연결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살로살로대뱀, 인공지능새 이순신, 소프트인간 씩, 나나 등은 짧은 시 안에 있기도 하고, 장편에 있기도 하고요, 극시 안에 있기도 합니다. 마치 이 인물들은 필요한 곳에 개성있는 말투와 행동으로 존재하고요. 시를 이끄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어요.  
 ‘이렇게나 뽀송해’ 시집은 첫 시집보다 극시 형식의 시들이 더 많이 출현해요. 처음엔 극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있었는데 극시를 창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문학이란, 무책임하고 공격적인 질문이 되어서는 안 되고, 더 많은 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대화는 제 시 속에서 부조리하게 연결이 안되고, 목적을 잃고 허무한 대화로 끝나거나, 혼잣말일 수도 있습니다. 대화의 조건이 무제한이다보니 그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도 당연히 무제한으로 설정되어요. 그래서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비영웅적인, 비합리적인, 비엘리트적인 인물들이에요. 인물의 이름은 발음의 결이나 성격, 기능, 직업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지만 몇 명이 되느냐와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그들의 정보나 배경을 파악하려다보면 무참해지고 또 무용한 일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그들의 캐릭터가 머릿속에 선명히 자리잡길 원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얼굴로 다른 형체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만들어가는 귀여운 일꾼처럼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헤겔도 시의 종류를 서정, 서사, 극시로 나누었다고 해요. 그처럼 시에서 극적인 요소를 얘기할 때, 위에서 말씀드린 대화도 있지만... 다음은 사건이 있어요. 하지만 이 극시들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모두 마치 돈키호테 소설 같은 사건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에요. 아주 작은, 이게 뭐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 하는 것들요. 예를 들어 애인에게 버림받은 남자를 위로하는 완두콩 커피콩의 수다, 현금지급기 앞에서 죽은 어떤 사내의 맨발과의 사건, 관찰자 키와 차렵이불의 진지한 일들...은 사건이나 담론으로 인정하기에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죠. 그리스 비극의 사건들과는 너무 대조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흐름들은 의도된 것들인데,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시쓰기는 기존의 방식을 무너뜨리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었고, 더 섬세한 부분과 놓치는 부분들을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쓰기의 바탕이 되는 ‘기쁨’과 ‘즐거움’은 ‘슬픔’이나 ‘고통’보다 더 큰 힘이 있어요. 슬픔이나 고통이 전제로 깔려 있지만 그런 감정들은 잘 보이지 않고, 살짝 털 하나만 삐져나와 있죠. 슬픔이 깔린, 기쁨과 즐거움이 함의된 시들은 담담해지고 담대해져요. 언어를 유연하게 건드리고, 그야말로 언어의 상투적인 기능을 벗어나, 그 자체로 살아서 질서나 관념을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길 바랬습니다.
 
 

질문 02
박상륭상 수상 소감에서 “억압, 고정관념, 폭력, 이런 고집쟁이 아이들의 너저분한 머리를 밀어주기 위해 저는 오랫동안 외로웠고 무서웠고 어려웠습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형식과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 시인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네. 질문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고전의 시간이 끝나고, 그러니까 신들의 세계가 끝나고 오래전 낭만주의가 도래했을때, 문학이나 예술에서 인간의 감정과 삶, 가치관이 존중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인간 중심의 체계들은 그 안에서 다른 권력과 억압을 건설했고, 전쟁과 탐욕, 자본 등은 인간에게 정말 많은 상처를 주었어요. 자세히 보면, 교묘히 삶의 곳곳에서 없어지지 않는 불평등과 위계들, 고정관념이 참… 현대인들을 더 좌절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저도 늘 위태로운 언덕 같은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휙 쓰러졌어요. 시의 세계는 늘 외롭고 무서운 곳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만약 자신을 놓치거나 타협해버리면 더 자신을 혐오할 것만 같아서, 세상에 귀를 기울이되, 제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뭐, 이런 생각을 해요. 이런 시를 쓰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를 하기도 하지만, 끝내 그런 걱정과 안식을 벗어나, 쓰고자 하는 것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당연히 자연스럽게 형식과 구조를 고민하고, 실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먼저, 의미의 문제인데요. 시인은 시를 통해 무엇을 얻기도 하지만 얻지 말아야 한다는 그 양팔 저울의 중앙에서 매우 위태롭습니다. 저는 위태로운 이 세계들의 미지를 잠시 엿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시인의 역할은 오로지 시 스스로 예술을 할 수 있게 시인이란 존재는 코치이자, 선수를 키우는 감독이지 않을까 싶어요. 시보다는 많은 경험과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기술과 시적 방법, 이론을 알고 있겠지만, 그 모든 게 아무 필요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시란, 의미는 시인에게 맡기고, 시 스스로 움직이는 시를 말하는 것인데, 저도 아직 그런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시인의 시를 통해 투영되는 감정회복, 반성, 언어유희, 진술의 발견, 현실비판, 현대성 등 그런 주제들 때문에 시는 오랫동안 주눅 들었고 눈치를 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시인이 마치 신처럼 이 세상을 다 이해하거나 시의 목적이나 표현을 장악했다고 해서 좋은 시가 탄생되기는 힘들다는 점. 
  이런 여러 고민들 틈에서 이 세상과 계속 불화하는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납득이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 많아요. 사랑이 그렇고 죽음도 그렇고 삶의 아이러니들이 참 인간을 상실케 합니다. 하지만 그런 지점들은 사람이 살게 만드는 어떤 힘이 됩니다. 
  어떤 형식논리를 벗어나, 넘어서는 방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제 시들의 시적 논리의 화법들은 다소 거칠고 매끄럽지 못한 표면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면 우리가 잘 만들어진, 굴곡이 심한 미끄럼틀을 탈 때 너무 빨리 바닥에 닿아버리잖아요. 저는 어떤 결론이나 목적이 빨리 해결되기를 거부하며, 그 목적과 결론을 시안에서, 아니 언어가 없는 빈 칸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또한 이 시집에서 얻고 싶은 것은, 아마 어떤 공명(共鳴)상태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시집을 읽고 책을 덮고, 어떤 것을 진짜 좋아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처럼. 시를 읽었는데 꽉 찼는데, 빈 것 같고, 마치 무중력 상태, 아무 단어, 아무 문장도 생각나지 않은데, 글자들이 없는 빈 종이(시집안)에서 어떤 울림이 계속 느껴지고 계속 들리게 하는 것입니다. 가령, 제 시를 읽고 어떤 이가 어떤 뜨거운 것을 느껴 어떤 뜨거운 일을 정신없이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는... 그것이 과거의 추억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일을 찾게 하는 것이에요. 그건 시도와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 안에서 여러 형식적 실험을 많이 했지만, 제 진심은 이런 걸 추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인은 이 세계의 어떤 형식과 구조를 파괴하지만, 파괴된 채로 두고 돌아서는 자가 아닙니다. 끝까지 그것들을 바라볼 책임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논리와 규칙을 단순히 파괴하고 항의하는 자가 아니라, 그것 전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창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 깊은 얘기, 더 진실된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질문 03
끝으로 뉴스페이퍼 독자들에게 전달하거나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기자님, 제 시집을 진심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반갑게 인사드리고 싶어요. 오늘 인터뷰 답변이 좀 길었던 건 아니었는지요. 여름이 끝나가고 곧 가을이 올 것 같아요. 날씨는 선선해지고 우리는 가을을 충분히 느끼지도 못한 채, 또 춥고 외로운 겨울을 꿈꿀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일들로 분주한 현대에서, 시집이란, 외로운 사람들의 등 같아요. 어떤 연인들 등을 지탱해주는 유리벽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남자, 여자는 서로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여기서 남녀는 저와 세상 같아요. 서로의 진심을 모르죠. 저는 참 세상이 서운하고 미웠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은 정말 사랑했던 것 같아요. 서로가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서로에 대해 억울하고 서로운 것만 생각하며,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지요. 하지만 저녁이 되고 시간이 더 지나면 유리벽(시집)을 통해 상대의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어요. 서로 돌아서 유리벽(시집)에 등을 대로 있는데, 상대의 체온을 느낍니다. 분명히 보이지 않는데, 상대의 감정이나 상태를 조금은 알게되고, 상대를 상상할 수도 있어요. 저는 많은 독자분들의 감정과 삶을 알 수 없지만, 시집을 통해 여러분들의 체온을 느끼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살아 있고 싶습니다. 

  시가 위로, 공감, 감상, 설명, 이런 단어들로 지금 여러분들을 안다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저 이 시집에 등을 맞대고 상대가 지금 울고 있구나, 웃고 있구나, 평안하구나, 멀리 나아갔구나, 외롭구나 이렇게 넓은 체온을 가지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시인이 할 테니, 시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분들은 시를 예술처럼,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그저 바라봐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어느 시인이 시는 온몸으로 쓰라고 했던가요. 저는 그것으론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온 세계를 걸어야 시는 나와요.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릴 때 비행기가 새인 줄 알았고, 강가에서 물속으로 계속 다이빙을 하다 보면 바보같이 물고기가 된다고 믿었거든요. 어느새 세월이 흘러 더 바보같고, 궁핍한 어른이 되었지만, 그때의 그 마술 같은 순간을 잊지 않고 지금 이 세상과 맞서며, 꿈을 잃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시와 함께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아픈 곳에 먼저 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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