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평안도 개천에서 태어났다. 2005년 8월에 탈북해 2006년 8월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2016년에 숭실사이버대학교를 졸업했으며 2017년 12월 ʻK-스토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 연장전』(2020),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2022) 등을 출간했다.

이명애
이명애

나는 북한 평안도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왔다. 고향을 떠나온 지 15년이 넘어 평안도 말을 거의 잊어버렸는데 아직도 남한 사람들은 내가 북한 사람임을 바로 알아봤다. 서울 말투에 동화되어 고향 말을 들으면 정(情) 답기도 하지만 뭔가 부끄럽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북한 사람 티를 내지 않으려면 말투부터 고쳐야겠다고 마음먹고 노력을 했다. 간혹 누가 물어보면 북한 평안도에서 왔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면서도 표준어에만 집착했지, 지역의 사투리를 소중한 언어 유산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

평안도어로 문학하기

평안도어로 문학 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평상시에 말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나오는데, 표준어로 창작 활동을 하는 내가 평안도어로 시를 창작한다는 게 어색하기도 했고 쉽게 나오지 않았다. 평안도 말을 안 쓰고 안 듣고 산 세월이 있으니 잊어버린 말도 많았고, 여기저기 평안도 사람들을 찾아 물어봐도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평안도 출신 시인을 대표하여 ‘토착어로 문학하기’에 참여한 만큼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평안도어를 다시 소환해야 했다. 나는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평안도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ㅈ’을 ‘ㄷ’으로 발음하고, 종결어미 ‘어요’는 ‘시오’로 발음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저기 - 더기’, ‘정거장 - 덩거당’, ‘장마당 - 당마당’, ‘갔어요- 가시오’, ‘오셨어요 – 왔시오’ 등이 있다. 이 밖에도 해석이 필요한 평안도 말로는 ‘자두 – 추리’, ‘가볍다 – 갑삭하다’, ‘철없다 – 헴없다’, ‘어림도 없다 - 텍도 없다’, ‘무안하다 – 메사하다’ 등이 있다.

내가 시인이 되어 시집을 출간하고 국제학술포럼에 참여해 평안도어를 설명하고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북한에서는 꿈꾸지 못했던 일이다. 나는 북한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지방 사범대학 문턱까지 갔지만 시험에서 떨어져 대학에서 공부하지 못했다. 이것이 마음에 한(恨)으로 남았는지 남한으로 건너오니 공부가 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이들이 두 명이 있어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온라인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 그만뒀다. 그 후 다시 사이버 대학에 입학해 조교의 원격 지원을 받아 수강 신청을 하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시작했다

시를 짓는 이유

사실 맹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 글쓰기를 배워볼까 생각했다. 사이버 대학에는 국문과가 없어서 전공을 고민하다가 아동학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2년쯤 공부를 하다 보니 방송문예창작학과 교과목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작법, 시창작, 현대문학의 이해 등등 문학 관련 강좌를 빠짐없이 들었더니 부전공으로 모든 과목을 다 수강할 수 있었다.

처음 사이버 대학에서 배울 게 있을까 의심도 했지만 배울 게 많았다. 북한에선 위인들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않았다. 심지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몰랐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남한에서는 초등학생들도 아는 세종대왕이 아닌가. 나는 역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한국사를 수강했고 흥미를 느꼈다.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것이 벅찼지만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에 대한 강한 욕구와 북한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나는 북한을 알리기 위해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시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쌓인 사연을 몇 날 며칠을 말해도 다 못하겠는데 소설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는 함축된 문장으로 많은 사연을 담을 수 있어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북한을 이탈해 남한에 정착하는 동안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관해 묻곤 했다. 내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북한에서의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더욱이 믿지 않았다. 결국 글을 써서 책을 내는 방법을 선택했고 일종의 사명감도 생겼다. 그래서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국문학과를 찾았다가 결국 사이버 대학에서 문학을 배울 수 있었다

평안도어로 소설 쓰기

평안도 말이 투박하고 예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북한에서 살았을 때부터다. 영화나 연극 무대에서 쓰는 문화어 평양말이 참 듣기 좋았다. 평안도나 평양이나 같은 북한이니 말이 비슷한 것 같지만, 평양말 억양이 평안도 말보다 좀 더 순하고 반듯하게 느껴지고 예절이 있어 보였다. 돌아보니 항상 부끄럽게 여겼던 투박한 평안도 말이 지금은 소중한 언어문화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소중히 여기면서 시 창작 활동을 한다. 이제 나는 내 고향 평안도 말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시를 창작하려고 한다. 더욱이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토착어의 보존을 위한 ‘토착어로 문학하기’ 사업을 한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번 계기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로 평안도어로 단편소설을 쓰는 것이다. 내 고향의 사투리를 잊지 않고 작품에서 사용하는 것이 토착어를 지키고 계승·발전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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