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의 시인, 개발교육자, 문화역사가이다. 부자의 세계와 가난한 자의 세계를 잇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이론과 실천을 연계하기 위해 그들이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총체성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만들어내고, 고취시키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사회화와 변화 과정의 목표, 전략, 내용에 관심이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 잠비아대학교(UNZA)에서 교육 및 개발학 석사, 문학 석사, 교육학 학사 (BAEd) 등을 취득했고, 잠비아 외교 및 국제 연구 연구소(ZIDIS)에서 외교 실무, 의정서, 홍보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현재 유네스코 잠비아 국가 위원회에서 문화,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 선임 프로그램 담당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냔자어/체와어(Nyanja/Chewa) : 체와어(Chewa)는 말라위의 공용어이다. 니제르콩고어족에 속하며 냔자어(Nanja)로도 알려져 있다. 시인은 모어(母語)인 냔자어(Nyanja)/체와어(Chewa)로 이야기의 내용, 그 속의 인물들, 그것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 등의 이미지와 격언과 비유를 표현한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지니는 힘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몹시 영적인 아프리카인 부모님의 여덟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결과적으로, 나의 인격 형성기에 나의 자아에 대한 지식을 형성한 첫 사회적 제도는 가족과 교회였다. 이 지식은 언어와 문화를 통해 전해졌다. 그것은 전부 내 이름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 문화에서 아이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의 이름은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겨나기 전이나 후에, 혹은 딱 태어났을 때, 혹은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에 예언자의 계시를 통해 지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이름은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내게 부여되었다. 창가미어 음찌지. ‘창가미어(Changamire)’ 는 쇼나어(Shona)로 ‘지배자’, ‘주인’을 뜻한다. ʻ음찌지(M’zizi)’는 은데벨레어(Ndebele)로 ‘사자’를 뜻한다. 쇼나어와 은데벨레어는 잠비아와 국경을 공유하는 여덟 개의 나라 중 하나인 짐바브웨에서 사용되는 두 개의 주요 언어이다. 잠비아와 짐바브웨는 둘 다 영국에 의해 189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식민지화되었었다. 두 나라가 각각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것은 고작 1964년과 1980년의 일이다.

식민지 시대 동안 두 나라의 아프리카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손쉽게 각 나라를 오갔다. 그리하여 나의 조부모님은 결국 식민지 시대의 짐바브웨에 정착하여 일하며 살았고, 여러 해 동안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그러다가 짐바브웨에 있는 동안 유대-그리스도교로 개종했고, 할아버지께서 창립한 ‘아프리카 사도 신앙 선교회(The African Apostolic Faith Mission)’의 선교사 신분으로 잠비아로 돌아갔다. 그러니 비록 우리가 잠비아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우리의 이름은 우리 조부모님의 문화적 영향과 산 경험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창가미어 음찌지’는 이러한 문화적 유산과 다양성에 대한 찬사의 표시이다. 저녁 식사 후에 보통 난롯가에 둘러앉아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 이주와 공동체의 역사에 대한 강렬한 이야기는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중 하나는 스토리텔링의 힘, 그리고 들려진 이야기가 공유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보존하는 데 있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였다. 공유된 이야기, 공유된 역사 없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 배웠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런 모험적인 일에서 언어, 공유된 언어가 차지하는 역할이었다

이야기의 내용, 그 속의 인물들, 그것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 그런 이야기들에 동반되는 이미지와 격언과 비유가 모두 나의 모어(母語)인 냔자어(Nyanja)/체와어(Chewa)로 표현되었다. 몇몇 이야기는 쇼나어와 은데벨레어로도 전해졌다. 이 두 언어는 내가 중요한 영향을 받으며 꾸준히 배운 것인데, 특히 쇼나어가 그렇다. 내가 처음 짐바브웨를 방문했을 때 배운 것, 즉 두 나라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은 인생을 바꿀 만한 것이었다. 비록 나는 외국인이었지만, 공유된 언어와 문화 덕분에 그곳에서도 고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들었다. 바로 이 시기에 나는 ‘우분투(Ubuntu)’, 즉 ‘공동체 정신’을 경험했다. 우분투는 개인의 통일성이 전체에,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와 언어에 있다고 하는 아프리카의 철학이다. 비록 식민지 시대의 권력이 나눈 국경으로 분리되어 있긴 하지만, 나는 잠비아와 짐바브웨가 그 둘을 분리하는 것보다 공유하는 게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나라의 주요 언어들은 유사한 방언을 지니는데, 이는 그 언어들이 더 광의의 언어인 반투어(Bantu)에 속해 있다는 진정한 반증이었다. 나는 한때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이 두 나라가 미래에 한 나라가 된다면 사람들을 쉽게 하나로 모으고 결속시킬 공통분모는 언어와 문화일 것이라고.

이렇게 나의 인격을 형성하는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이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정체성과 소속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법,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나의 토착어로 하는 법을 배웠다. 나중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녔을 때, 나는 나의 이러한 사회적 양육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학 활동을 활발히 해 나갈 수 있었다.

교육 언어의 선택은 정체성을 발전시키는가, 아니면 약화시키는가?

나는 2005년에 잠비아의 일류 공립대인 잠비아대학교에 입학하고서야 내 다른 이름의 역사와 함의를 완전히 자각하게 되었다. 삼손. 히브리어에 기원한 영어 이름. 성경에서 따온 세례명.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내가 태어났을 때 쓰라고 남긴 이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현지의 이름 하나만 가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비아 사람은 내게는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이던 여러 가지 이유에서 또 다른 이름이 필요했다. 내 고국의 구석구석에 복음주의 기지를 설립한 유럽의 기독교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유럽식 이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토착민의 영혼 자체를 바꾸어 놓으려는 고의적인 절차였다. 그것은 마치 아프리카인이 토착어 이름을 지니면 저 유명한 천국에 들어갈 가능성이 극히 낮아진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식으로 문화적 학살이 시작되었다. 개인의 정체성은 하룻밤 사이에 변하고 산산조각 났다. 이름의 변화는 언어의 변화를 동반했다. 개종자들은 영어를 배워야 했고, 그들은 지금도 내  고국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냔자어/체와어와 다른 토착어들을 잘 구사하던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영어를 자신들의 제 2언어로 받아들였다. 몇몇은 자신들의 모어로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는데, 부분적으로는 영어로 말하는 게 대개 지능의 척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잠비아가 1964년에 독립을 이루었을 때, 새 정부는 학교와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육 언어로 영어를 채택했다. 또한 영어는 국가 공용어로 선언되었다. 민족 분쟁을 피하고 나라의 73개가 넘는 서로 다른 언어 집단을 결속시킨다는 이유로 정당화된 이러한 정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학교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과 관련된 나의 경험은 내게 언어와 정체성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 주는 두 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첫 번째 교훈은 학교의 교육 언어와 국가 공용어는 둘 다 절대 외국어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언어가 언어의 근원인 사람들의 가치, 창의력, 문화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모든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문학 활동이 어떻게 긍정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나는 잠비아로 돌아가서 나의 모교인 잠비아대학교뿐만 아니라 콰메
은크루마대학교와 물룬구시대학교에서도 강사로 일했다. 처음에 나는 교육자가 옷과 행동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서도 변화를 고취시킬 수 있다는 견해를 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 몇 년 동안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의 정치인들과 다른 지도자들은 다른 더 좋은 위치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고취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나의 고국이 처한 전반적인 상황에 불만을 느끼게 되었고, 내가 교실 너머에서변화를 고취시키기 위해 어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질문들이 내 마음속을
끊임없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하면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를 위한 전략을 짜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서 우리의 목적, 비전, 도덕적 목소리를 재발견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계획적인 국가로 작동하기시작할 수 있을까? 누가, 어떻게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 주의 깊게 반성하고 분석한 후, 나는 우리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생의 어떤 거점에서도 사회적 변혁을 이끌어 낼 능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일 우리가우리의 거점에 사람을 홀로 내버려 두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더 큰 국민적 이야기의 창조에 기여하고자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는 미디어(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교육
시스템(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대학교의 교실까지), 교회, 대중 엔터테인먼트(음악, 극장 등) 같은 온갖
종류의 플랫폼에서 그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다. 나라의 새로운 대본을 쓰는 일에 참여하는 다양한 토론의
장(그 주체가 전통적 지도자든, 정치인이든, 아이들이든, 예술가든 상관없이)을 규합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말이다. 몇 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러한 목적의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 이플랫폼들을 이용해 오고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은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사실을누구보다 먼저 인정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년 6월에 97세의 나이로 작고하신 잠비아의초대 대통령 케네스 카운다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결국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의 셀 수 없이많고 단절된 노력들의 총합이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마치 신자유주의 어젠다의 설계자들처럼 공익사업에 몸담으며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심한 계획이 필요한 모든 나라를 위한 새로운 대본을 쓰면서 말이다. 그런 노력은 합리적으로 반복 가능한 어젠다를 제공할 수 있는 인간적이고도 충분히 유연한 본보기를 제공해야만 한다. 그 노력은 교육적 배경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국민들과 매우 현상학적인 수준에서 공명할 수 있는 무엇이어야만 한다. 그 노력은 희망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모두가 함께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냉혹한 현실주의로 단련되기도 해야 한다. 나의 경험은 우리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었다.

변화를 위해 내가 하고 있는 문학 및 문화 활동 몇 가지

나는 문화 예술 지지자 협회인 ‘시 기사단(Poetry Knights)’을 이끌고 있다. 이 협회에서는 매년 ‘내면의목소리(The Voice Inside)’ 같은 일련의 문학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희망의 다리 재단(Bridge of Hope Foundation)’, ‘잠비아 국립 예술위원회(National Arts Council of Zambia)’, ‘잠비아 유네스코 위원회(Zambia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와 공동으로 운영 중인데, 이는 ‘잠비아 교도소 (Zambia Correctional Facilities)’ 수감자들의 갱생을 앞당기기 위해 예술이 지닌 변화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새마을 운동을 모델로 차용한 우분투(Ubuntu Adapted Models of Saemaul Undong)’ 라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과 문화의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새마을 운동과 우분투 철학 및 실천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잠비아의 토착 공동체들에게 문맥상 지속가능한 발전 체계를 제공하는 한편, 잠비아와 한국 간의 국제적 협력과 학문 및 문화 교류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 모델에 기초한 지역 초등학교가 2023년 1월에 잠비아 중부지역의 외딴 마을에서 문을 열 예정이다. 또한 나는 자원 봉사 차원에서 잠비아대학교에서 ‘잠비아 문학’과 ‘국가 무형 문화유산 연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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