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런 방해도 없이, 단 한 시간만이라도 글을 써보자!"
- 집필을 위한 모임, 「Shut up & Write」

11월 9일 저녁 7시경. 8명의 남녀들이 이태원 경리단길의 어느 카페에 모였다. 이들은 두 테이블을 두고 둘러앉아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더러는 지나쳐가며 이러한 침묵에 의아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공동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그저 무릎 위의 노트북을 바라보며 열심히 타이핑을 할 뿐이다. 그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는 팻말 하나가 놓여 있었다.

「Shut up & Write」

닥치고 글 쓰라는 뜻이다.

'Meetup'은 이용자들이 각자의 목적에 맞춰 모임을 결성할 수 있다.
'Meetup'에서는 이용자들이 각자의 목적에 맞춰 모임을 결성할 수 있다.

■ “무엇이든 쓰러 오세요!”

“밋업(Meetup)”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곳에서는 단순 친목을 위한 사교모임뿐 아니라, 스포츠, 종교, 언어 교환 등 다양한 목적으로 그룹을 개설하여 만남을 주선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대중화되었지만,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

11월 초의 어느 날, 필자는 밋업을 통해 ‘글쓰기 모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룹 이름은 「Shut up & Write」. 다소 발칙해 보이는 이름의 그룹이다.
영어로 작성된 긴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준비하실 것은 오로지 글쓰기에 필요한 것 뿐입니다.”
“원고, 블로그, 대본, 에세이, 논문 등, 이곳에 초대된 분들은 어떤 것이든 쓰셔도 됩니다.”
“당신이 쓴 것을 함부로 보거나, 요청하지 않은 충고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가 신청을 한 필자는 11월 9일 수요일, 경리단길에 있는 어느 카페로 향했다.
약속 시간을 30분가량 앞둔 오후 6시 반쯤, 안경을 쓴 어느 외국 여성이 올라와 자리를 살폈다.

그녀에게 다가가 “혹시 오늘 Meetup 모임에 참가한 것이냐”라고 묻자, 그녀는 “그렇다. ‘Shut up & Write’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날 모임의 주최자인 Elle Doty 씨였다.

'Meetup' 에 업로드된 「Shut up & Write」페이지
'Meetup' 에 업로드된 「Shut up & Write」페이지

■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사람들

오후 7시가 되자, 2명의 외국인과 5명의 한국인, 그리고 뒤늦게 온 참석자까지 총 8명이 제각기 음료수를 사 들고 두 대의 테이블에 모여앉았다. 그리고 안내문대로 첫 15분간 각자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우리는 외국인들을 배려해 영어로 대화했다.

「Shut up & Write」에 모인 8명의 동기는 다양했다.

어떤 이는 작품을 쓰기 위해, 어떤 이는 논문을 쓰기 위해, 어떤 이는 옛날에 썼던 시(詩)를 다시 써 보고자 이 모임에 참여했다고 한다.

자기소개가 끝난 뒤에는 글을 쓸 1시간이 주어진다. 멤버들은 저마다 가방을 열며 글을 쓸 준비를 했다. 필자도 웹소설 원고를 쓰기 위해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시계를 보며 정확히 7시 15분을 기다리던 Elle 씨는, 마침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좋아요, 이제 다들 시작하죠.”

그리고, 다들 고개를 숙인 채로 말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Shut up & Write」의 메인 홈페이지.
「Shut up & Write」의 메인 홈페이지.

■ 「Shut up & Write」란 어떤 곳인가?

「Shut up & Write」는 비영리 단체(NPO)인 ‘Writing Partners’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일종의 창작 단체이다. 전 세계 53개국에 359개의 그룹이 있으며, 9만 7천명이 넘는 멤버가 이 모임에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가입과 탈퇴에 강제성은 없으며, 회원비를 납부해야 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이 모임을 주최한 Elle Doty 씨 역시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도 이전부터 Shut up & Write모임이 있었죠.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으로만 진행했었습니다. 이번 이태원 모임은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첫 모임이에요.”

Elle 씨는 자신을 작가이자 편집자라고 소개했다. 그녀에게 「Shut up & Write」의 취지를 묻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시간도 없고, 동기가 부족하기도 하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단 한 시간만이라도 글을 써 보는 거에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외롭다. 필자 역시 웹소설 작가이기에 그 기분을 안다. 홀로 원고와 씨름하다 보면 마음이 지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거나 주의가 흐트러져 집중되질 않는다. 

하지만 「Shut up & Write」 모임에서 원고를 작성해보니, 확실히 그 느낌은 달랐다. 

 

■ 함께 글을 쓴다는 것

Elle 씨가 ‘시작’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뒤, 모두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필자의 옆에 있는 S씨는 조그마한 12인치 맥북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詩)를 쓴다는 R씨가 그보다 더 조그마한 E북 리더기를 들고 문장을 곱씹고 있었다. 

주최자인 Elle 씨는 물론,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는 시나리오 라이터, 대학생, 그리고 반백의 중년인까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모두가 모니터를 노려보며 각자의 글을 써가고 있었다.

말이 없는 침묵 가운데 서로가 집필에 집중하는 모습은 왠지 조그마한 경쟁 같기도 하였고, 어떻게 보면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 같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서 필자 또한 말없이 손가락을 놀렸다.

1시간이란 시간은 ‘벌써?’라고 느껴질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필자는 1시간 만에 5천 5백 자를 쓸 수 있었다. 웹소설 원고 한 편에 달하는 분량이다.

[사진촬영=박민호] 필자는 이날 모임에 참가하여 1시간만에 5,500자를 썼다.
[사진촬영=박민호] 필자는 이날 모임에 참가하여 1시간만에 5,500자를 썼다.

앞으로 「Shut up & Write」 모임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Elle 씨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모임을 지속해나가며 (멤버 간의) 피드백을 할 겁니다. 다만 개인적인 작은 소망은 있어요.”

“말했다시피 저는 출판 쪽에서 일하고 있고, 편집자기도 해요. 이 모임을 통해 클라이언트, 작가,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오후 8시 15분. 「Shut up & Write」의 첫 서울 모임이 끝났다. 멤버들은 다음에 또 만나기를 기약하며 각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Elle 씨는 다음 모임 장소는 아마 홍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 모임에 매주 참석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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