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문학상 기자회견 열려

 

12일 시민주권운동중점의 대표를 맡고 있는 구본기씨를 용산 삼각지역 한 카페에서 만났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이태원 희생자 추모 행사 및 정부 규탄 운동에 참여하러 간다는 구본기씨는 카페에서 밝게 웃으며 인동문학상이 제정된 취지와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민들이 동인문학상을 알았다면 이걸 내버려뒀을까요?”

구본기 대표는 조해진 소설가가 이번 동인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어떤 상인지 찾아봤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이 상이 친일파를 기념하는 상이라는 걸 알고 어떻게 이런 상이 계속됐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조해진 소설가는 53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다. 2004년 ‘산책자의 행복’으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단순한 진심’ 등을 썼다.

동인문학상은 1955년 제정됐다. '감자' '광염 소나타' 등의 작품을 쓴 김동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문학상이다. 동인문학상의 제정은 '사상계'가 시작했지만 1987년부터 조선일보사가 주관해왔다. 김동인은 생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으며 창씨개명을 해 가네히가시 후미히토라는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김동인이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을 옹호하고 조선 청년과 학생들에게 전쟁에 나가기를 종용한 일을 토대로 김동인을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김동인은 1944년 1월 19일부터 28일까지 '매일신보'에 '반도 민중의 황민화-징병제 실시 수감隨感'을 연재하며 이렇게 썼다. 

"내 몸은 이제부터는 내것이 아니요 또는 가족의 것도 아니요 황공하옵게도 폐하의 것이며, 지금 폐하의 어분부로 완적을 멸하려는 성검을 잡고 일어선 바라는 자각을 가지고 나서야 할 것이다." 

2010년 서울행정법원은 김동인의 아들이 제기한 친일행위결정 취소 청구에 대해 '친일행위를 한 점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22년 동인문학상은 53회 수상자로 조해진 소설가를 선정했다.

조해진 소설가. 사진 = 뉴스페이퍼 DB
조해진 소설가. 사진 = 뉴스페이퍼 DB

 

구본기 대표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일파인 김동인을 기념하는 상이 반세기 넘게 운영됐다는 걸 알렸다고 말했다. 구본기 대표는 대부분의 친구, 가족들이 이 상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친일파를 기념하는 행위가 어떻게 지금까지 있었는지 놀라워하며 반문했다고 전했다. 특히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동인문학상을 운영한다는 건 둘째치고 작가들이 어떻게 이 상을 여태 받아왔던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간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상을 막기 위한 작가단체의 시위와 행동은 있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구본기 대표는 그래서 ‘불매’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상을 받은 책을 사지 않거나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강연을 듣지 않는 방식 등이다. 구본기 대표는 SPC나 남양유업 불매 사례를 들며 시민들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비윤리적 기업은 결국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미 소비자로서 시민들의 윤리의식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고 특정 제품이나 회사를 불매하거나 거부하는 방식의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시민 불매 운동은 분명한 효과가 있다. 남양유업은 대리점 갑질 사건이 발생했던 2013년 이후 꾸준한 불매 운동의 대상이었다. 결국 매년 1조원 이상을 달성했던 남양유업의 매출액은 2020년 9000억원대로 떨어졌고 영업이익도 2020년부터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SPC는 노동자 사망과 그 후속 대처로 불매 운동의 타겟이 됐다. 불매 운동은 10월부터 본격화해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SPC 가맹점들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51회 동인문학상 시상식장을 막아선 경찰  [사진 = 이민우 기자]
제51회 동인문학상 시상식장을 막아선 경찰  [사진 = 이민우 기자]

 

구 대표는 동인문학상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대는 민족이나 국가 이런 것은 사실 이전 세대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김동인은 민족이나 국가를 배신한 것도 문제겠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현대의 시선으로 봐도 범죄자라는 거예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에 나가 죽으라고 바이럴 마케팅을 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걸 영광이라고 말하고 다녔고요. 이런 사람을 기념하는 건 너무 끔찍한 일 아닌가요?” 

구 대표는 SPC 문학상이나 히틀러 미술상이 있으면 받을 수 있겠느냐고 작가들의 윤리의식에도 의문을 품었다. 작가들의 윤리의식이 시민 수준을 맞추지 못한다는 거다. 

“동인문학상을 시민들이 알았다면 이걸 내버려뒀겠어요? 또 작가가 상을 탄다고 하면 그 작가의 작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정말 읽어주고 가치가 있다고 말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인문학상이 살아남은 이유는 시민들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면서 그냥 이 상 자체가 뭔지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요?”

구본기 대표는 그간의 동인문학상 폐지 움직임에 대해서도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동인문학상을 반대해왔지만 작가들 내부에서만 이야기가 오고 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조선일보가 친일파를 기리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그런데 작가들은 왜 거부를 안 했나요? 찾아보니까 작가 단체들이 낸 성명서가 있긴 있더라고요. 친일문학상은 문제지만 작가에게 강제는 하지 않겠다고요. 저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작가들이 작가의 도덕성을 규탄하는 건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게 구본기 대표의 생각이다.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2017년 10월 21일 한국작가회의가 발표한 입장이다. 

구본기 대표가 말하는 건 소비자 주권운동이다. 부도덕한 기업 대표나 기업을 불매하듯 작가의 작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시민과 독자의 손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spc 불매운동 이미지
spc 불매운동 이미지

 

시민들의 축제로 동인문학상 거부 상을 만들다.


인터뷰가 시작된 후 시간이 흐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카페 안으로 피켓을 든 다수의 시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피켓에는 ‘이태원 희생자 추모’라고 적혀져 있었다. 구본기 대표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그래서 이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일종의 축제를 생각했어요. 촛불집회, 촛불문화제처럼요. 모두가 즐겁게 웃고 노래하고 연대하면서 시민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구 대표는 그래서 동인문학상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1월 12일 추모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사진=이호작가
11월 12일 추모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사진=이호작가

 

“동인문학상의 수상 후보 작품들은 대부분 객관적으로 봐도 좋은 소설들이 많아요. 좋은 작품이고 좋은 작가인데 동인문학상을 거부하면 상을 못 받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하나 만들어 드리려고요.” 

구본기 대표는 동인문학상을 거부하는 상을 시민들의 손으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재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친구들이 모였다. 동인문학상을 거부한 작가에게 주는 상의 이름도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알릴지도 이들과 함께 준비했다. 

구본기 대표는 함께하게 된 단체들의 이야기도 꺼냈다. 11월 14일 동인문학상 수상 거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는 한국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이용빈 의원실이 포함되어 있다. 

인동문학상 기자회견 포스터
인동문학상 기자회견 포스터

 

“검색해보니 이 문제를 가장 많이 이야기한 곳이 뉴스페이퍼(본지)라는 곳이었어요. 제가 잘 아는 곳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가 개최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구본기 대표는 세미나가 열리기 전부터 모여 상을 만들 계획, 진행 방향 등을 서류로 정리했고 세미나 장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날짜를 잘못 알아서 한 주 전에 찾아갔지 뭐에요. 막상 행사장에 가니깐 아무도 없어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돌아왔어요. 이 운동을 오랫동안 했던 분들과 결합하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구본기 대표는 11월 5일 세미나 당일을 다시 떠올리며 말했다. 구본기 대표가 처음 마주한 것은 서울시청 앞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 시 낭송을 하던 시인들이었다. 

시인들이 추모 낭독회 [사진= 이민우]
시인들이 추모 낭독회 [사진= 이민우]

 

구본기 대표는 이런 분들이라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축제처럼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조선일보라는 큰 언론사를 상대로 하는 일이었기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또 오래된 부조리를 해결한다는 떨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이 동행할 사람들을 그날 찾은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시 낭송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문인들을 보고 구본기 대표는 마음을 다잡았다. “젊은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시는 분들이라면 저희를 지켜주기 위해 함께 해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구본기 대표의 말처럼 11월 5일 세미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한국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은 모두 이 일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기자회견(11월 14일)때 함께 해주기로 약속했다. “어르신들이 지켜준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몰라요. 어른들을 믿고 신나게 일을 치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구본기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한국작가회의 박관서 사무총장은 11월 5일 있었던 세미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무대에 올라가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이 필요했다”며 적극 지지 의사를 밝혔다. 

동인문학상 거부 상에 대한 설명을 박관서 시인이 하고 있다 [사진=이민우]
동인문학상 거부 상에 대한 설명을 박관서 시인이 하고 있다 [사진=이민우]

 

구본기 대표는 그 다음 단계는 시민의 힘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동인문학상 수상 거부 작가를 위한 상 이름을 공모하고 투표를 진행하자 삽시간에 참여자가 늘어났다. 11월 3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상 이름 공모전에는 658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구본기 대표는 민족문제연구소 분들은 ‘민족’이나 ‘실천’이 들어간 이름이 되길 바랬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 투표에서는 검은담비상, 바른작가상, 인동문학상이 많은 표를 받았다. 그중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이름은 ‘인동문학상’이었다. 구본기 대표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어르신들도 시민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상 이름을 이해하고 양보해줬다고 감사인사를 했다. 그렇게 동인문학상 거부자를 위해 시민들이 이름을 정해준 상은 인동문학상이 됐다. 

인동忍冬은 겨울을 견딘다는 뜻으로 저항 정신을 담고 있으며 동인문학상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별명인 ‘인동초忍冬草’ 역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의원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본기 대표는 상의 취지가 정해지자 이를 알리기 위해 국회 등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용빈 의원은 5·18 시민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시민들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단체인 시민플랫폼 ‘나들’을 만들어 이끌기도 했다. 구본기 대표가 연락했을 때 이용빈 의원은 젊은이들이 큰 사고를 내는 것 같다며 이런 일에 빠질 수 없다고 함께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말했다. 

구본기 대표는 인동문학상이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의 윤리성과 훌륭한 작품에 주는 상이 되길 원한다는 것이다. 동인문학상의 ‘안티테제’가 아니라 동인문학상이 사라지고 나서도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하나의 상으로써 역할을 다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본기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동인문학상을 받았다고 출판사들이 책 판매 마케팅에 이용하더라고요. 작가는 강연에서 자신이 훌륭한 작가라는 걸 증명할 때 동인문학상을 사용하고요. 김영하 소설가는 JTBC 비정상회담에서 여태 받았던 상 중 가장 자랑스러운 상으로 동인문학상을 뽑았어요. 그런데 김영하 소설가가 동인문학상을 받은 바로 그 작품은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 아니었나요? 김숨 작가도 최근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말하는 강연을 하고 있으면서 프로필에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소개하더라고요. 김동인은 위안부를 일본에 팔아넘긴 사람이에요. 저희는 앞으로도 이런 일에 대해서 단호하게 시민들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할 거예요.” 

동인문학상을 마캐팅에 사용하고 있는 출판사 스크린샷 [사진=네이버 갈무리]
동인문학상을 마캐팅에 사용하고 있는 출판사 스크린샷 [사진=네이버 갈무리]

 

구본기 대표는 올해 수상자가 된 조해진 소설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조해진 소설가도 더 이상 독자들이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인터뷰 기사를 봤었는데 조해진 소설가가 가지고 있는 윤리에 대한 고민에 많이 공감했어요. 우리가 이런 일을 기획하고 나서게 된 것에 대해서도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동인문학상을 포기하셔서 우리 다 같이 손 잡고 만세 한번 크게 외치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나간다는 구본기 대표는 시민들 틈으로 녹아들었다. 이날 많은 비가 내렸지만 사람들은 촛불집회 현장을 끝까지 떠나지 않고 지켰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집회측 추산 3만명이었다. 모두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켰다. 

추모행사 무대에서 대학생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민우]
추모행사 무대에서 대학생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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