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에 가다
- 미술전에서 새롭게 드러난 다자이 오사무의 비밀

[일러스트 = 한송희 기자]
[일러스트 = 한송희 기자]

일본의 근대소설은 한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만,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는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심심찮게 나오는 이름이 있다.

바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다.

「달려라 메로스」, 「사양」, 「유다의 고백」등 그의 모든 저서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유명한 작품은 바로 1948년에 출간된 「인간실격(人間失格)」이다.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을 여는 도입부는, 일본 문학사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소설은 ‘나’가 ‘오바 요조’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오바 요조의 삶은, 듣는 그 누구라도 경악할 만큼 밑바닥을 달린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의 위선과 계산적인 선행을 이해하지 못해 타인과의 대화조차 힘겨운 사람이다. 그래서 겉보이는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속이며 살아간다. 

인간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한 오바는, 중학생 시절부터 술, 담배 그리고 매춘부와 좌익사상과 같은 불온한 것들을 통해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도 근본적인 정신적 불안을 달랠 순 없었고, 불과 고등학교 시절 유부녀와 동반 자살을 결의하나, 이마저도 실패한 오바는 더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 딸린 여성, 스낵바(퇴폐적인 바)의 마담 등과 난잡한 여성관계를 맺고, 사랑하던 여성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거나, 마약 등에 손을 대며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가라앉는다.

인간에 대한 공포에 찌든 한 나약한 인간이 점점 피폐해져 가는 이야기가 바로 ‘인간실격’인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에 비치된 「인간실격」초판본. [사진촬영=박민호]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에 비치된 「인간실격」초판본. [사진촬영=박민호]

「인간실격」은 출간된 1948년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전후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GHQ에 의한 일본 대기업의 전범 심판, 일본의 농업국가화로 인해 불안과 침울함으로 가득찼던 일본 사회는, 인간의 추악함을 노골적으로 서술한 「인간실격」의 등장에 열광했다. 이는 일본 국내 출판 1,200만부의 판매량이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인간실격」은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영화화, 드라마화 되었으며, 소설을 넘어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에까지 그 강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도 10개 버전의 번역서가 있을 정도이며, 지난 2022년 6월에는 한국 판매량 30만부, 한국 출판 100쇄를 돌파했다는 아사히 신문 뉴스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미타카 역에 설치된 표지판[사진촬영=박민호]
미타카 역에 설치된 표지판[사진촬영=박민호]

이러한 다자이 오사무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쿄에 있었다. 필자는 다자이 오사무를 테마로 한 문학 살롱이 있다는 말에, 12월 11일 미타카로 향했다.

미타카는 도쿄도 타마 지역 동부에 위치한 시(市)로써, 도쿄의 중심 23구의 바로 동쪽에 위치해 있다. 미타카 역 남부 광장으로 나오자마자,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이 표시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불과 220m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필자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표지판이 이끄는 대로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5분쯤 걸었다.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의 입구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고, 그 위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살았던 마을, 미타카」라는 글자가 큼직큼직하게 씌여져 있었다. 

미타카 역 근처에 위치한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사진촬영=박민호]
미타카 역 근처에 위치한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사진촬영=박민호]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맞은편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년의 남성이 다가왔다. 
“외국인인 것 같은데, 어디서 왔나요?”라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그는

“다자이 오사무의 팬인가요? 그렇다면 부끄러워 하지 말고 들어가 보세요. 팬이라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니까.” 라며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문득 전날 탐방했던 나쓰메 소세키 기념관이 생각났다. 와세다 근처의 주민들은 나쓰메 소세키의 기념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곳 미타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의 마을에 살았던 유명 문인들을, 마을의 자랑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문학살롱 안에서[사진촬영=박민호]
문학살롱 안에서[사진촬영=박민호]

살롱으로 들어서자, 명패를 단 노년의 안내원과 중년의 여성이 맞아 주었다.
한쪽에 진열된 책들을 가리키며 “이 책들은 판매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곳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그에 대한 평론이나, 영향을 받거나 오마주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파는 것은 기념품과 커피, 약간의 디저트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작품, 그가 언급된 작품, 오마주한 작품만으로도 한쪽 벽면의 책장을 가득 채우다니. 기념관 만큼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놀라울 정도의 규모였다.

문학살롱의 직원들은 문학 기자라는 필자가 신기한 눈치였다. “여기까지 오는 외국 손님은 거의 없었습니다.”라는 반응이었다. 필자의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이곳도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다”라는 말에 놀라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초판본들이 전시되어 있다[사진촬영=박민호]
살롱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초판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사진촬영=박민호]

이에 안내원은 살롱 한가운데에 있는 어떤 방의 모형을 가리키며, “지금 미타카 역의 미술관에서 다자이 오사무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가 보셨나요?”라고 했다. 이것까지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필자는 이곳에서 기념품을 약간 산 후, 특별전시회의 포스터를 얻어 살롱을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다음에는 한국어 안내판 준비를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앞으로 찾아올 사람이 많아질 지도 모르니까요”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된다.

다시 미타카역으로 돌아왔다. 살롱의 안내원이 말한 대로, 미타카역 광장의 코랄 빌딩 5층, <미타카 미술갤러리>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간도 마침 10월 29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였으니, 거의 끝물에 방문한 셈이다. 

미타카역 남부광장의 코랄빌딩과, 5층 미술전시회의 안내판[사진촬영=박민호]
미타카역 남부광장의 코랄빌딩과, 5층 미술전시회의 안내판[사진촬영=박민호]

입장료를 얼마나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문학관이나 기념관과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임은 분명했다. 특별 전시회의 캐치프레이즈는, 「다자이 오사무로부터~ “친애하는, 히레자키 준에게”」 였다.

신발을 벗고 입장하자마자 보인 것은, 다자이 오사무가 미타카에서 살던 때의 작은 방이었다. 다다미가 깔린 방바닥 위에 재현된 그의 방은 꽤나 단촐했다. 그의 친필을 복사해 놓은 서집을 보긴 했지만, 꽤나 흘려 쓴 필체라 읽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방을 재현한 공간. 전시회 중 이곳만이 유일하게 촬영이 가능했다. [사진촬영=박민호]
다자이 오사무의 방을 재현한 공간. 전시회 중 이곳만이 유일하게 촬영이 가능했다. [사진촬영=박민호]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캐치프레이즈에도 적혀 있던 히레자키 쥰(鰭﨑潤, 1911~1989)이라는 사람의 존재였다. 일본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연구하는 문학가들은 이 히레자키 준에 대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 영향을 크게 끼쳤지만, 현재까지 그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히레자키 준의 기록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많지 않다. 다만 그가 구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화과 출신이며, 구 나카노 현립 노자와 중학교의 교사로 일했고, 고향 지인의 소개로 다자이 오사무를 알게 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의 친구 히레자키 준을 그린 유채화[출처=아사히 신문]
다자이 오사무가 그의 친구 히레자키 준을 그린 유채화[출처=아사히 신문]

이 전시회에서는 다자이 오사무가 히레자키의 초상화를 직접 그린 유채화, “히레자키 준”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문학가인줄로만 알았던 필자로써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외에도 다자이 오사무의 유채화 서너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독특한 점은 19세기말~20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했던 ‘야수파’의 사조를 매우 따라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야수파란 유럽에서 유행하였던 미술 사조 중 하나로, 인상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사조다. 가령 인상주의 이전 서양 미술이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사실주의가 주류였다면, 인상주의는 ‘있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래는 사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풍경이 주는 인상에 집중해서 그리는’ 사조에 가까웠다. 

야수파의 대표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1954)가 그린
「모자를 쓴 여인(Woman with a Hat, 1905)

 

여기서 야수파는 그림에 입히는 ‘색채’에 자신들의 감각을 실었다. 푸른 색 배경, 빨간 색 명암, 초록색 살갗 등, 본래의 자연색을 무시하고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이 야수파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같이 전시된 히레자키의 그림 역시 인상주의의 과도기에서 야수파로 넘어가는 미술사조를 보여주는데,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전시회에서는 다자이 오사무가 히레자키를 통해 미술을 배웠다는 추측을 담고 있었으며, 이는 둘이 교류했던 서간을 통해 유추한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방에 걸린 족자[사진촬영=박민호]
다자이 오사무의 방에 걸린 족자[사진촬영=박민호]

그 외에도 말년 성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히레자키 때문이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어 화제다. 다자이가 직접 해설하며 공부했다는 신약성서본 옆에는, 무교회주의 크리스천이었던 히레자키와 함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깊이 빠져들었다는 설명 또한 곁들여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뒤에는 기다리는 관람객들이 있었기에, 여유롭게 감상하며 내용을 다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다자이 오사무가 다시 인기를 얻어가며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는 추세이니, 조금만 기다리면 국내에서도 곧 ‘히레자키 준’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그렇게 미타카 미술갤러리를 떠났다. 안내원은 “외국인에겐 다소 어려웠을 내용인데, 찬찬히 즐겨 주셔서 감사하다”며 친절어린 인사를 잊지 않았다.

(제2부부터는 일본의 서점 탐방기가 연재됩니다)

■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
도쿄도 미타카시 시모렌자쿠 3초메 16-14
(東京都三鷹市下連雀3丁目16−14)

■ 미타카 미술갤러리
도쿄도 미타카시 시모렌자쿠 3초메 35-1 5F
(東京都三鷹市下連雀3丁目35−1 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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