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키하바라가 너무 넓다면? 나카노로 오세요!
- 흘러간 옛 만화들을 만나는 오타쿠의 새로운 성지

[일러스트 = 한송희 기자]
[일러스트 = 한송희 기자]

흔히들 일본을 '만화의 왕국'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물품들을 구입하려 일본에 방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세상에선 그런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직 일본을 방문하지 못한 오타쿠들이 많다. 대개는 일본어를 배우며 일본 여행을 준비하고, 목표를 도쿄로 잡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모은 지식으로 당당하게 아키하바라를 향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키하바라는 넓다. 블로그에 나온 대로 유명한 샵들을 방문해 보지만, 어쩐지 해외 직구로도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나마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다 가는 경우가 많다.

또 지나간 2000년대 이전의 물건을 구입하고 싶어서 아키하바라를 열심히 돌아다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면 드넓은 아키하바라에서 헤메다가 시간을 날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나카노 브로드웨이다.

나카노 브로드웨이 정문 입구. 2018년 촬영.[사진촬영=박민호]
나카노 브로드웨이 정문 입구. 2018년 촬영.[사진촬영=박민호]

나카노 구는 도쿄에서 딱히 이름난 명승지가 있는 곳은 아니다. 
물론 철학 전공자들이 관심있을만한 철학당 공원도 있고, 나카노 역 바로 옆에 있는 코엔지 북쪽 출구에서 레트로한 카페나 다양한 디저트를 파는 거리도 있지만, 그 외에는 딱히 볼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카노 구는 번화가보다는 주택가가 더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주로 묵는 호텔도 도쿄 정반대쪽 우에노나 칸다 쪽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도쿄까지 와서 나카노에 머물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오타쿠라면 한 번쯤 들어본 명소가 바로 이곳에 있다. 바로 나카노 브로드웨이다.

1970년대의 나카노 브로드웨이[사진출처=]
1970년대의 나카노 브로드웨이[사진출처=中野区役所]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1966년 지어진 나카노역 근처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4층까지 상가였고, 그 이상 10층까지는 주거공간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마찬가지다.

60년대에는 나카노 구의 쇼핑 중심지였던 나카노 브로드웨이였지만, 70년대를 지나자 나카노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한 상권은 축소하기 시작한다. 동쪽에는 거대한 신주쿠가 버티고 있고, 서쪽에는 키치죠지라는 새로운 상권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만다라케 굿즈샵 [사진촬영=박민호]
만다라케 굿즈샵 [사진촬영=박민호]

위기에 처한 나카노 브로드웨이를 살린 것은 바로 1980년에 등장한 중고 만화 가게, 만다라케였다. 2평짜리 공간에서 시작된 이 만화 고서점은, 만화책뿐 아니라 피규어나 기념 카드와 같은 만화 굿즈(goods), 애니메이션 비디오 등을 판매하며 성장했다.

만다라케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버블경제가 꺼진 후 찾아온 헤이세이 불황이었다. 세간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만다라케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상가의 점포를 하나 둘씩 매입하는 식으로 만다라케는 점점 그 규모를 확장해갔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사진촬영=박민호]
나카노 역 북쪽 출구에 위치한 나카노 재래시장[사진촬영=박민호]

나카노역의 북쪽 출구로 나가면, 곧장 나카노의 시장골목을 마주하게 된다. 발 디딜 틈 없이 좌측 통행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 가면 나카노 브로드웨이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자 한다면, 시장의 큰길이 아니라 그 옆 골목골목에 자리잡은 가게들을 추천한다. 대개 이런 가게들은 최소 3~5년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일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왔다면 그리웠을 한국 프랜차이즈 음식점들도 이곳에 있다.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후문. 이곳으로는 좀 더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사진촬영=박민호]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후문. 이곳으로는 좀 더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사진촬영=박민호]

필자는 이곳에서 식사를 마친 후, 복잡한 시장길을 회피해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후문으로 들어왔다. 정문으로 들어가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그 규모는 매우 작지만, 한때 나카노 구민들의 쇼핑을 담당했을 정도로 많은 가게들이 입점해 있다. 

중고 가전이나 핸드폰 가게도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생활용품점도 있다. 만일 뭔가를 더 사고 싶다면 바로 옆 돈키호테로 가도 좋고, 아예 남부로 가서 나카노 마루이 백화점으로 가도 좋다.

나카노 브로드웨이 1층은 평범한 상점가와 다를 게 없다. [사진촬영=박민호]
나카노 브로드웨이 1층은 평범한 상점가와 다를 게 없다. [사진촬영=박민호]

하지만 필자는 이런 '평범한' 가게들을 보러 온 게 아니기 때문에, 곧장 윗층으로 올라갔다. 사실상 복층으로 이루어진 2층 게임센터를 지나쳐 3층으로 올라갔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로 진입하며 느낀 점은, 필자가 마지막으로 찾았던 4년 전과는 매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과거에는 어둑어둑한 마굴과도 같았다면, 지금의 만다라케는 상당히 채광과 조명에 신경을 기울인 광경이었다.


■ 만다라케를 먼저 들여다보자면...

[사진촬영=박민호]
만다라케 매입 창구 [사진촬영=박민호]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만다라케의 매입처였다. 이곳은 손님으로부터 옛날 만화책, 피규어, 각종 만화 애니메이션 기념품들을 사들이는 곳이다. 

만다라케 측은 사망한 유명 작가의 유작(遺作)이나, 특별 한정판으로 나온 피규어, 기념 카드, 심지어는 만화의 원본 원고까지 판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만일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이 이곳에 자신의 희귀한 콜렉션을 팔겠다고 결심한다면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열심히 모아온 만화책을 매우 싼 값에 매입한다며 일본인들 사이에서 악평이 자자한데다, 외국인일 경우 장기 비자 혹은 재류카드가 없을 경우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만다라케 혼텐 [사진촬영=박민호]
만다라케 혼텐 [사진촬영=박민호]

그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만다라케 스페셜'과 '만다라케 본점'이었다. 필자는 우선 만다라케 혼텐을 향해 들어갔다.
만다라케 혼텐은 거의 만화책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붉은 책장들 사이로 보이는 만화책들은 「슬램덩크」,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오! 나의 여신님」, 「우리들의 오렌지 로드」 같은 옛 90년대~200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작품들로 가득했다. 

만다라케 혼텐 내부. 붉은 책장이 인상적이다. [사진촬영=박민호]
만다라케 혼텐 내부. 붉은 책장이 인상적이다. [사진촬영=박민호]

하지만 「주술회전」, 「체인소맨」, 「스파이 패밀리」등 최근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책들 역시 공존하고 있었다. 

이렇듯 만화작품이 많다 보니 만다라케에서는 작품의 제목이 아닌 작가별로 카테고리를 만들어 진열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보듯, 만다라케 혼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간 지점은 슈에이샤, 코단샤, 쇼카쿠칸으로 묶인 "3대 출판사"의 차지였다. 

[사진촬영=박민호]
[사진촬영=박민호]

만다라케 혼텐 바로 우측에는 하루야 서점(明屋書店)이 있다. 그리고 하루야 서점 바로 오른쪽에는, 바로 작년 12월 신설된 새로운 가게가 있었다. 바로 '만다라케 라의 일족'(이하 라의 일족)이었다.

■ 여성향 독자들을 위한 공간, '만다라케 라의 일족'

[사진출처=만다라케 공식 트위터]
[사진출처=만다라케 공식 트위터]

상기한 만다라케 혼텐은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향, 여성향을 구별하지 않았다. 소년만화와 소녀만화가 함께 있었지만, 일본 만화시장은 남성향이 좀 더 우세해 만다라케 혼텐은 주로 남성향 독자들을 위한 공간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아무리 같은 오타쿠라고 해도 남성향이 강한 장소에 가는 것을 꺼리는 데다가, 만다라케 혼텐의 어둑어둑하고 칙칙한 분위기를 기피하는 여성 오타쿠들이 많았다. 

이케부쿠로 오토메 로드[사진출처=]
이케부쿠로 오토메 로드[사진출처=도시마구약소]

이 때문에 주로 이케부쿠로의 오토메 로드로 몰렸던 여성 오타쿠들을 위해, 만다라케에서는 '라의 일족'을 신규 개장했다. 입구에 걸려 있는 4명의 여성 만화가 그룹 CLAMP의 작품, '쵸비츠'의 초회한정판을 판매한다는 간판부터가 그러했다.

과연 이곳은 어떤 곳일까.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기에 필자가 직접 찍은 사진은 입구 바깥의 것 뿐이다. 하지만 대충 둘러보니 과연 여성 오타쿠들을 위한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다라케 라의 일족. 만다라케 혼텐과는 달리 책장이 파란색이라 대조를 이룬다. [사진촬영=박민호]
만다라케 라의 일족. 만다라케 혼텐과는 달리 책장이 파란색이라 대조를 이룬다. [사진촬영=박민호]

이곳의 테마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로는 로맨스물, 두 번째로는 BL이며, 세 번째로는 아이돌 관련 상품이다. 달은 것은 딱히 설명할 것이 없었지만, 아이돌 코너에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다.

아이돌 코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K-POP이었지만, 케이팝 하나가 모든 아이돌 매대를 독식하는 것은 아니었다. 태국이나 대만과 같은 아시아권 아이돌 매대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쇼와 시대(80년대)의 아이돌 관련 상품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사진출처=만다라케 공식 트위터]
[사진출처=만다라케 공식 트위터]

그 시절 아이돌의 팬이었던 사람은 지금쯤 40대~혹은 50대가 아닐까. 매장을 둘러보니, 매대 사이를 유심히 살피는 중장년층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자신의 취미에 있어서는 주변의 시선을 딱히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렇게 만다라케를 등지고 나와 다시 브로드웨이를 한 바퀴 돌았다. 

■ 좋아하는 것 깊이 파고드는 오타쿠 문화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있는 인디음악 전문 상점. [사진촬영=박민호]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아키하바라의 축소판이라고 할만큼, 오타쿠들을 위한 다양한 점포들이 즐비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삼국지 팬들을 위한 가게, 넨드로이드가 담긴 캡슐 자판기, 밀리터리 스토어, 시대극 마니아들을 위한 포스터 가게, 재즈 음반 가게, 그리고 성인용품점까지...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단순히 만화 팬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그 무엇이든, 자신의 취미에 깊이 빠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시간 날 때마다 기웃거리며 새로운 것들을 발굴해내는 기쁨을 누리는 곳이었다.

캡슐 자판기. 이 안에는 조그마한 사이즈의 넨드로이드가 들어 있다.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진촬영=박민호]
캡슐 자판기.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캡슐 안에는 조그마한 사이즈의 넨드로이드가 들어 있다.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진촬영=박민호]

필자는 나카노 브로드웨이를 떠나며, 필자는 문득 옛날 용산 전자상가가 생각났다. 과거 두꺼비상가와 나진상가에는 일본에서 직수입한 콘솔 게임기가 가득했고, 거기에는 같이 딸려오는 게임 매뉴얼은 물론 애니메이션 피규어나 프라모델, 서적들로 가득했다.

물론 이곳을 이용했던 사람들이라면 안다. 소위 '용팔이'라고 불렸던 악덕 상인들의 불친절함과 턱도 없이 높은 바가지 가격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사진촬영=박민호]
지난 8월경 촬영한 나진전자상가. 철거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진촬영=박민호]

물론 현재는 J 샵과 같은 전문 기업이 운영을 하고 정찰제를 도입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과거 한국의 아키하바라라고 불렸던 오타쿠 문화의 중심지, 용산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용산 전자상가의 몰락은 컴퓨터 부품 정찰제가 도입되고,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며 이루어졌다지만, 서울의 오타쿠 문화가 사라진 데에는 저러한 악덕 상인들로 인한 '오타쿠'들이 발길을 돌린 것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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