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출판, 문화와 산업을 비벼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전북혁신도시에 이전한 지 만으로 7년이 훌쩍 넘었다. 1)

 특별시민이었던 나는 어느새 전주시민을 거쳐 지금은 완주군민이 되었다. 완벽한 전북도민이다. 처음 전주를 돌아다닐 때는 전주시 곳곳의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는 흥과 어울림의 슬로건을 보며 비빔밥이 자연스레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전주 사람들은 비빔밥을 잘 안 먹는다지만 전주비빔밥은 생각보다 대단한 음식이다.

  통섭으로 유명한 최재천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비빔밥은 한국의 대표 음식이다. 생각해 보면 무슨 이런 음식이 다 있나. 멀쩡하게 밥과 반찬을 놓고 다 비빈다. 그런데 비비면 상상하지 못한 맛이 나는 것이다. 한술에 서너 가지 반찬을 이것저것 먹는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먹어야 하는 것을 접시에 하나 하나에 따로 담는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는 섞는 문화다. 정부가 맘대로 섞을 수 있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만큼 융합연구를 잘할 민족도 없다. 2)’라고 말이다. 비빔밥에 대한 이보다 더한 칭찬이 있을까. 

  우리 진흥원 기관명에도 비빔밥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무려 11글자다. 근무 중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으면 거짓말 조금 보태 숨이 찬다. 하지만 나는 ‘출판진흥원’이라고는 할 수 없어 차라리 ‘진흥원입니다.’라고 한다. 기관명조차 줄이기 힘든 건 ‘한국’‘출판’에 ‘문화’와 ‘산업’이 각각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책이란 만들 때의 가치 이상으로 널리 퍼지고 실제 읽힐 때 의미가 있다. 읽을만한 책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인 게 문제인 세상인지 이미 오래다.

  2012년 진흥원 출범 당시 문체부는 최대 10명까지 자리하는 진흥원 이사회에 언론인 출신 초대 원장을 의장으로, 문체부 국장이 당연직으로, 공공기관인 출신 감사 외에 7명의 비상임이사를 꽉 채워 선임했다. 3)
 출판사 대표 4인, 대형 서점 대표, 저작권 수출입 전문가, 변호사도 1명씩 있었다. 이후 문체부는 감사는 세무회계, 법조계 인사에게 맡기고 언론, 유통, 인쇄, 학계 출신을 비상임이사에 골고루 선임해왔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 출신(이후 ‘출판계’) 이사는 언제나 절대다수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가 되더니 2022년 12월 말 현재, 진흥원 9명의 이사진 중 출판계가 무려 6명이다. 당연직인 문체부 담당 미디어정책국장과, 의결권이 없는 감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1명의 신문방송학 분야 교수뿐이다. 이제 곧 2023년이 되면 이사회에는 5자리가 비게 된다. 다양한 분야 출신의 이사진이 골고루 자리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다.

[사진제공 = 전국언론노동조합 자료]
[사진제공 = 전국언론노동조합 자료]

 

  10년 갓 넘은 진흥원 이사회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2016년 말, 진흥원 2대 원장이 사임한 이후, 2017년 상반기 내내 이어진 원장 공석 시기에 출판계 이사진의 과반을 넘던 이사회는 출판계 이사에 직무대행을 맡겼다. 그러면서 원장추천위원회를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로 수정 의결한 이후, 더 이상 문체부가 직접 선임하지 않고 현직 비상임이사를 과반수 이상으로 포함하는 임추위 제도로 추천받은 이사 후보 중에서 선임하게 되었다. 임추위가 추천한 첫 이사는 공석이던 원장이었고, 그해 여름, 복수의 추천 원장 후보 중에서 문체부가 임명한 새 원장은 출판사 대표를 겸하던 문예창작과 교수였다. 4)


  원하는 이들로 이사진을 교체해가는 것은 이미 과반을 넘기고 있던 출판계 이사들에서는 일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같은 해 2018년 가을, 거침없는 이사회는 연 2회 개최하던 정기이사회를 연 12회 개최로 개정했고, 2022년까지 4년 넘게 이사회는 특별한 의결 사항이 없는 달에도 열리고 있다. 이사회는 의결 사항으로, 진흥원 사업실적을 분기별 담당자가 직접 이사회에 참석해 보고하게 하고, 당연직 이사인 문체부 국장이 참석하지 못하면 담당 과장이라도 참석하게 한다, 5)
 물론 대리 참석자에게는 의결권은 주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6)
  

  우리 진흥원에는 매년 수십억 원의 국고로 출판사에 직접 선정 도서를 구매해주는 세종도서 사업이 있다. 이 세종도서 사업을 민간 단체가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는 주장에 문체부는 민간단체 주도 진행은 불가하고, 진흥원 내에 세종도서 운영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7) 이어진 이사회에 세종도서 운영위원회 규정 제정이 상정되자, 의결을 앞두고 출판계 이사 2명은 이에 반발하며 이사회 도중 퇴장해버리기도 했다. 8')
 위에 언급된 내용은 2017년부터의 이사회 임원 현황과 이사회 의사록이 모두 게시되어 있는 공공기관 알리오 누리집(https://www.alio.go.kr)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2월 부임하여, 3년 임기 중 이제 1년을 채운 진흥원 현 원장 역시 과거 대형 출판사 대표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9) 출판계가 5년 넘게 이사회의 과반을 넘겨온 현재 진흥원 이사회 구성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냐는 노조의 질문에, 원장은 의사결정 기구에서 한 것이기에 이렇다 저렇다라고 하는 평을 받는 건 적절치 않고, 추천과 임명의 절차 안에서 최대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원장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취지에서 임추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출판계 이사가 원장 직무대행을 할 때는, 비상임이사 자격이라며 임추위 위원으로 들어가 위원장까지 맡았던 사례가 있기는 하다. 10)
 임추위는 비상임 이사인 내부 위원과 그들이 결정한 2분의 1 미만의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는 항상 출판계 이사가 임추위 위원장이었고, 당연직(문체부)을 제외하면 출판계 위원이 언제나 과반수 이상이었다. 출판계 이사를 계속해서 추천할 수 있는데, 굳이 비출판계 인사를 추천할 이유란 없다. 물론 임추위는 후보자 추천만 할 뿐이다. 선임은 문체부의 몫이다. 추천한 후보자가 마땅치 않으면 ‘적격자 없음’ 통보를 내릴 수도 있고, 그랬던 적도 있다. 물론 그런 상황이라면 문체부도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책을 만들고, 책을 나누고,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을 위해’, 진흥원의 오랜 슬로건이다. 그렇다. 진흥원은 책을 나누고, 책을 읽는 사람들과도 함께 해야 한다. 임추위가 용단을 해서 이사진에도 출판사 대표가 아닌 이사(이하 ‘비출판계’)를 좀 다양하게 포진시켜주길 바란다. 영 불안하다면 초반에는 친출판계 성향을 가진 비출판계 인사라도 좋다. 도서관, 서점유통, 인쇄, 언론, 법조계, 인문학, 사회학, 기술 과학 등 늘어놓기만해도 하세월이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전문 분야의 특장점을 반영한 의견을 내고 의결에 참여하지 않겠는가. 마냥 출판계의 의견 거수기 노릇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불안할까? 큰 그림을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일궈놓은 알토란같은 텃밭이라며 출판계는 아쉬워 할까?

  개인적으로 1년간의 육아휴직이 거의 끝나간다. 아이들 먹거리 준비하고, 또 먹이는 것이 가장 큰 일과다. 간편하게 밥 한 번 비벼 먹일라치면 밥에 버터, 간장 정도만 넣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들 건강을 생각하면 나는 전주비빔밥같은 밥을 먹이고 싶다. 재료 하나하나 골고루 선별해 넣은 만큼 그 어떤 음식 못지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밥이 비빔밥의 기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백미에 흑미, 현미, 찹쌀까지 넣는대도 그건 어디까지 탄수화물 덩어리, 그냥 밥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매콤한 고추장도, 날음식 육회도, 물컹한 황포묵도 섞인 영양 가득한 음식을 먹이고 싶다. 몸의 양식처럼, 책이라는 마음의 양식에서도 그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회가, 그리고 출판계가 알아주길 바란다.

 

 

주석)

1)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북혁신도시 이전 (2015.7.31. 전북일보)
http://www.jjan.kr/556356
2) “비빔밥은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음식” - 최재천 『통찰』 (2012.12.14. 채널예스)
https://ch.yes24.com/Article/View/21119
3)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신임 원장에 이재호 씨 임명.(2012.7.18. 문체부 보도자료)
https://www.mcst.go.kr/kor/s_notice/press/pressView.jsp?pSeq=12225
4)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에 김수영 씨 임명 (2018.7.11. 문체부 보도자료)
https://www.mcst.go.kr/kor/s_notice/press/pressView.jsp?pSeq=16778
5) 2018년 제1차 정기이사회(2018.2.23.)
https://www.alio.go.kr/item/itemReport.do?seq=2018030901550214&disclosureNo=2018030901550214
6) 2018년 제2차 정기이사회(2018.12.17.)
https://www.alio.go.kr/item/itemReport.do?seq=2019072401871145&disclosureNo=2019072401871145
7) 출협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사태 책임규명 공정성에 의문" (2019.1.7.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10717034329956
8) 2019년 제4차 정기이사회(2019.4.10.)
https://www.alio.go.kr/item/itemReport.do?seq=2019072401871141&disclosureNo=2019072401871141
9)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에 김준희 씨 임명 (2021. 12. 28. 문체부 보도자료)
https://www.mcst.go.kr/kor/s_notice/press/pressView.jsp?pSeq=19302
10) 2018년 제1차 임시이사회(2018.1.8.)
https://www.alio.go.kr/item/itemReport.do?seq=2018012301530931&disclosureNo=201801230153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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