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송희 에디터
사진=한송희 에디터

 

신덕룡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단월』이 출간되었다. 1985년 《현대문학》 평론, 2002년 《시와시학》 시부문으로 데뷔한 시인은 ‘낮게 공명하는 풍경’들을 문학이라는 공간 속에서 재현해 왔다. 평론집 『풍경과 시선』을 통해서는 시간과 공간과 사물의 ‘연결’을 기록했고, 시집 『소리의 감옥』부터 『다섯 손가락이 남습니다』로 이어지는 시적 여정을 통해서는 우리 주변의 낯선 것들로부터 낯익은 슬픔들을 발견해왔다

신덕룡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단월』은 자연과 삶에 대한 그의 철학을 담은 시집이다. 시집 전체를 통틀어 자연에 대한 미적인 묘사와 애정 어린 시선이 돋보인다. 그러나 신 시인은 시집에서 외로움을 언급하면서,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숙명적인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외롭다는 느낌과 감정이 시를 밀고 가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시인이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주변의 존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외롭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신 시인은 관계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가 느끼는 자연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기를 실천하는 생명 공동체다. 사람이 세입자라면 자연은 까다로운 집주인이다. 그렇기에 자연은 공들인만큼 대가를 주며 불청객처럼 내것이라 여겼던 것을 가져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인은 자연이 ‘함께 살아가기’를 가르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여겨진다.

신 시인은 광주대학교 교수직을 떠나고 부모님이 계시는 양평으로 이사해,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일상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있다. 초심자의 처지에서 보면 어울리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지만, 신 시인은 이것을 자신만의 시적 영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 신덕룡 시인 이미지 작업
사진= 신덕룡 시인 이미지 작업

 

그가 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에는 작고 외로운 하나의 개체가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동력이 되는 순간들이 담겨 있다. “지금은 너무 낮고 아득해서 잘 들리지 않지만, 그러나 결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길”(고재종) 앞에서의 작은 울림들이 신덕룡 시인의 시 세계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떨림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도 그렇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생명들도 마찬가지다.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에, 조금씩 다르지만 때로는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밀려드는 ‘바깥’을 받아들인다. 견딤과 설렘이 교차되는 순간에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그 떨림의 순간들이 신덕룡 시인의 시 세계 한가운데에 배치되어 있다. 지금 수많은 이유로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에게, 신덕룡 시인의 시집 『단월』은 우리가 다시 연결되어야 할 이유를 바로 이 작은 울림들을 통해 알려준다.

근대적인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모색

신덕룡의 시는 우리를 ‘인간’이 중심인 세계 너머로 데려간다. 그의 시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성찰함으로써 자연과 비인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변이 아닌 일상적 차원에서 행해진다는 것, 특히 ‘양평’이라는 공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감각이라는 사실이다. 시인은 한 지인(知人)을 “땅의 신자”라고 표현하는데, 이처럼 농사를 짓는 사람과 대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땅’에 대한 감각 자체가 전혀 다르다. 도시인들에게 ‘땅’은 아직 건축물이 들어서지 않은 미사용 공간이거나 평당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부동산일 뿐이다. 거기에는 생명에 대한 관심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반면 “우주적으로 모든 걸 다 품고 있는 이 땅에/바칠 수 있는 건 땀밖에 없다는 걸/숨을 쉬듯 그냥, 안다”(「성대 아재」)라는 표현처럼 농사꾼에게 ‘땅’은 지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직관적인 이해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냥, 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아닌 ‘몸’을 통해 감각되는 것이다. 신덕룡의 시에서 이러한 농경적 감각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사유로 제시된다.

뒤뜰의 풀숲이 수상해서
울타리를 쳤다

이쪽과 저쪽이 생겼다 이쪽은 안쪽이고 저쪽은 바깥이다 촘촘한 철망이라 바깥이 안쪽을 넘보거나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입 꽉 다문 채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것처럼 확실해졌다 서 있는 등 뒤 역시 바깥이라는 건 미처 몰랐다 오늘 아침, 처마를 받치고 있는 기둥 아래 햇볕 환한 섬돌 곁에 꽃뱀 한 마리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말끔하게 벗겨진 불안의 민낯이다 처음부터 마음먹지 말았어야 했다 안팎을 가르고 끙끙 앓는 것보다 터놓고 지내는 게 나을 뻔했다 너무 빨랐다
- 「이쪽과 저쪽」 전문(본문 16쪽)

사진= 시집 표지
사진= 시집 표지

 

신덕룡의 이번 시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경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다. 그것은 도시적 삶이 만들어 놓은 인간(문명)과 자연의 구분, 즉 인간이 주체이고 자연은 대상이라는 구분이 지워지는 경험으로 구체화된다. 가령 「아련이」의 화자는 자신의 집에 찾아와 먹이를 요구하는 들고양이를 보면서 “주인과 객의 경계는 벌써 넘었다”라고 진술한다. 또한 「건너뛰다」의 화자는 누군가 막아 놓은 물꼬를 터서 물길을 바꾼 후 “어디선가 쩝쩝거리는 소리가 나더니/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소리까지 보태졌다/기갈 든 어린모들이 내는 소리였다”라는 진술처럼 ‘모=생명’이 물을 흡수하는 소리를 듣는다. 전자에서 ‘경계’가 들고양이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의 문제라면, 후자에서 그것은 논과 논 사이에 존재하는 소유권의 문제이다. 두 작품 모두에서 시인은 기존에 존재하던 분할/경계가 해체되는 장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데, 전자에서 그것이 인간과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면서 상호 신뢰하는 종횡단적 아비투스로 이어진다면, 후자에서 그것은 모와 물의 결합(“기갈 든 어린모들이 내는 소리”)이라는 공동체적인 장면으로 연결된다. 다만 시인은 이 장면이 ‘꿈’이라는 단서를 달아둠으로써 경계를 횡단하는 일이 쉽게 성취되는 것은 아님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래는 신덕룡 시인과의 질의 응답이다.

사진= 신덕룡 시인 일러스트
사진= 신덕룡 시인 일러스트

 

질문 01
여섯 번째 시집이 출간됐습니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신)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대상을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해석해서 쓰는 게 아니라 그저 그것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또 함께 어울리면서 느끼는 것을 받아적는 일에 충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듣기와 받아적기 같은 것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에서 ‘나’라는 존재를 최소화하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읽는 이의 영역이 크고 넓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질문 02
시인님께서는 시인의 말에서 외롭다고 밝히셨습니다. 시집 전체에 걸쳐 자연에 대한 세세한 관찰과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셨기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시인님께서는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 제 시집을 받고 지인이 전화를 했습니다. 속표지에 있는 ‘시인의 말’을 읽어보니, 꼭 전화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순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습니다. 제가 너무 엄살을 떨었나 봅니다. 실제로 외롭다는 것이기보다는 일종의 비유로 썼는데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사실, 외로움은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숙명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고통이라기보다는 불쑥 찾아오는 통증 같은 것이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외롭다는 느낌과 감정이 시를 밀고 가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을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주변의 존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게 눈길을 보내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요. 그러다가도 문득 외롭다는 생각에 휘둘리기도 합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이지만, 이것 역시 실제의 행위로 이어지는 감정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보고 싶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일로 전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런 감정조차 즐긴다면, 더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쓸 필요도 없는 경지에 이른 건 아닐까 싶습니다. 시의 영역이 아니니 감히 생각할 수도 없고 또, 바람직한 것도 아니겠지요. 

질문 03
앞서 언급했지만 자연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눈에 띕니다. 전원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어 흥미로운데요, 시인님에게 자연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신) 자연을 문명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말씀하신 듯합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환경적인 것을 포함한 개념이지요. 저는 이것을 관계를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세입자라면 자연은 까다로운 주인입니다. 까다롭다는 말 속에는 까칠하다, 심술궂다, 간섭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너그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지금 제가 사는 곳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자연을 매우 너그러운 존재였습니다. 푸른 숲과 바람과 계곡의 맑은 물, 풍요로운 가을의 들판 등등이 언제든 나를 반겨주고 품어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막상 산골에 들어와 소박하게나마 농사를 지으며 겪어보니, 밖에서 보듯 품이 넉넉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연은 내가 땀 흘리고 공들인 만큼만 제게 그 대가를 주더군요. 「불편한 동거」 라는 시에서도 드러냈듯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내 것이라 여겼던 것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인색하고 심술궂다고 불평도 했지만, 이제는 이것도 자연이 ‘함께 살아가기’를 나에게 가르치는 방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연이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기를 실천하는 생명 공동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 역시 그 일원일 뿐이지요. 초심자의 처지에서 보면 어울리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이번 시집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묘사란 그저 느끼고 체험한 바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질문 04
광주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의 삶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질문2와 질문3을 포용하는 것 같은 실질적 삶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신) 광주에서 30년을 살았습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볼수록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더 그리워집니다. 퇴직 후, 부모님이 계시는 양평으로 왔습니다. 고향에 오니 제가 젊었다고, 웃말 반장이란 감투도 쓰고 동네에서 소소한 잔심부름을 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난생 처음으로 100여 평의 텃밭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봄이면 밭을 갈아엎고 고추, 오이, 가지, 호박 등은 모종으로 심고 시금치, 열무, 아욱 등은 씨를 뿌립니다. 시간이 흐르면 10여 종을 갖춘 일종의 작은 채소가게가 됩니다. 이어서 사과 복숭아 자두 등 과일나무 가지치기를 합니다. 초가을이 되면, 또다시 땅을 갈아엎고 축분을 뿌리고 계절에 맞는 모종과 씨를 뿌리는 일을 반복합니다. 물론 잡초와의 힘겨루기는 가을까지 이어집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낯설고 힘들지만 배우는 게 많습니다. 매일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들이 말을 걸어옵니다.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저들의 말을 시로 옮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슬렁슬렁 산책을 할 수 있고 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쫓기지는 않습니다. 제 능력이 미치지 못해 혼자 속앓이를 할 뿐이지요.  


질문 05
끝으로 뉴스페이퍼 독자들에게 전달하거나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 뉴스페이퍼를 알게 된 지 꽤 되었네요. 뉴스페이퍼에서 제가 의미 있게 생각했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다른 곳에서는 다루지 않거나 다루기 힘든, 다루고 싶지 않은 것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용기입니다. 오늘날의 문단 상황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일은 치켜세우고, 감추고 싶은 일은 터놓고 말하자는 태도와 실천에 박수를 보냅니다. 또 하나는 독자와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일입니다. 예전과 달리 문학이 소외되고 있는 형편에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문학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독자들이 격려와 성원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