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촬영=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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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해가 저물어 갈 오후 5시쯤,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E&L 갤러리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흔한 갤러리의 풍경 같지만, 전시관에 놓여진 그림들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유채화나 수채화, 조각 등이 아니었다. 어떤 캔버스에는 만화가, 어떤 캔버스에는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그린 일러스트가, 어떤 캔버스에는 적들을 베어 넘기는 무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웹툰, 만화, 일러스트, 유채화... 각종 장르를 넘나드는 그림들이 전시된 곳.
그렇다. 이곳은 이상하고 낯선 호랑이, 「스트레인지 타이거」가 접수했다.

■ “스트레인지 타이거”는 어떤 단체인가?

(좌)JAY 스트레인지 타이거 대표, (우)YAKSU 공동대표. [사진촬영=박민호]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대표는 두 명. 「카닌 드 루」로 데뷔하여, 「수라의 도시」 등을 연재하며 현재 현역 웹툰 작가로 활동 중인 YAKS(이하 약수) 작가와, 인디음악 레이블 「비트볼뮤직」 매니저 출신의 JAY(이하 재이)디렉터가 공동 창립했다. 이 둘은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하는 부부이기도 하다.

“스트레인지 타이거는 시각 예술을 기반으로 한 코믹스, 일러스트레이션의 레이블입니다.”

재이 대표가 말했다.

“저희는 물론 웹툰, 일러스트뿐 아니라 순수 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합니다.  같이, 다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로 결성한 것이 바로 ‘스트레인지 타이거’죠.”

스트레인지 타이거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약수 대표는 옛날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2015년도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였어요. 그때 아시아권에서 중국과 일본은, 창작에 대한 열망이 있는 예비 작가들을 보호하거나 도와줄 수 있는 에이전시, 출판사 같은 존재가 존재하고 있었죠. 하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좌측부터 YAKSU 작가의 「카닌 드 루」, 「수라의 도시」의 표지. [자료제공=스트레인지 타이거]

그는 프랑스의 미술대학교 크레아뽈(Créapôle)에서 애니메이션 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프랑스에 있었을 당시 그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만화/웹툰을 그려서 연재하고 싶어도 도와주거나 끌어줄 사람이 없었고, 저 역시도 뭔가 일을 따낸다거나 하는 도움을 받는 게 정말 너무너무 어려웠어요. 그때 생각했죠. ‘내가 정말 잘 되면, 서로 끌어주고 당겨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라고요.”

그렇게 2017년, 그는 처음으로 다른 작가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그땐 결과적으로는 잘 되지 않았지만,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다시 희망을 가지고 2018년에 크루 형식으로 다시 시작했죠.”

약수 작가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그가 밝히는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시작이다.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엠블렘 [자료출처=스트레인지 타이거]

“결성한 것은 2018년이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한 것은 2020년부터예요. 아마추어 작가를 데뷔시키거나, 타사에서 계약기간이 끝난 작가들을 영입한다던가. 그렇게 크루(Crew) 형태로 다시 시작하며 IP를 좀 더 축적할 수 있었죠. 2018년부터 결성해온 게 2020년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봐야겠네요.”

현재 스트레인지 타이거에 소속된 작가들은 11명과 명예 멤버 1명. 상기했듯 웹툰의 그림작가, 글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순수미술,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최대 인원은 20명 정도에요. ‘소규모 창작 에이전시’가 저희의 목표입니다.”

■ 온라인이라는 우주, 그 안에서 떠다니는 작품들

“한번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작가들의 작품들은, 온라인이라는 우주(Universe)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개회사에서 재이 대표는 말했다. 

“웹툰, 일러스트 등, 우리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작품들이 물성(物性)을 가진 형태로써, 전시회장을 통해 여러분께 다가가면 어떨까. 우리만의 색깔로, 많은 이야기를 담은 전시를 열고 싶었습니다.”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두 공동대표가 관객들 앞에서 개회사를 읊고 있다.[사진촬영=박민호 기자]

섹션별로, 품별로, 작가별로 나뉘어 있으면 이야기가 좀 더 전달이 잘 되지 않을까. 한 작가의 작품으로 한 구역을 꾸며놓으면,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것이 이 사람의 우주구나’ 라고 느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대표의 고민이 묻어나는 개회사였다.

이어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VFX 아티스트, Yann le roy(얀 르 후아)가 멀리 프랑스에서 보내온 축사와, 약수 작가가 프랑스 뮤지션과 함께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상영으로 이어졌다. 스타라이트 조명으로 반짝거리는 가운데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에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E&L 갤러리 대표 유성연 관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촬영=박민호 기자]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축사를 남긴 유성연 관장은 E&L 갤러리의 대표다. 그녀는 E&L에 대해 “젊은 청년 작가들에게 테마, 장르를 불문하고 무상으로 공간을 대여해주는 갤러리로써, 어떤 후원도 없이 비영리로 운영 중이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이날 참석한 박태준 만화회사의 이승형 PD 역시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대표들과는 긴 인연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였다.

■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작가들

‘소수정예’라는 스트레인지 타이거에 모이게 된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필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사람은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색안경을 낀 채로 갤러리를 배회하는, 마치 90년대 홍콩 영화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태산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촬영=박민호 기자]

“안녕하세요, 스트레인지 타이거 소속 작가 ‘태산’이라고 합니다.”

태산 작가는 판타지 사극 「고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마님이 되고 싶어」를 연재해온 웹툰 작가다. 대체역사물을 주로 그려온 태산 작가가 전시회에 내보인 작품은, 그의 첫 데뷔작인 「고란」이었다.

「고란」은 고려시대가 배경이지만, 반인반수가 존재하는 세계관과 복수물의 플롯으로 연재 당시 '기대되는 판타지 사극'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했다. 그런 「고란」을 전시회에 내건 이유는 무엇일까?

“첫 작품이었다보니, 진행하면서 아쉬움이 정말 많았습니다. 조만간 리메이크 작품이 나올 예정인데, 그 이전에 좀 더 나은 작품으로써,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 이렇게 내걸게 되었죠.”

태산 작가는 앞으로 어떤 장르에 작품을 그리고 싶으냐는 질문에, “딱히 구애되는 장르는 없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장르를 불문하고 그리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필자의 시선을 잡아 끈 그림이 있었다.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이 1964년에 그린 마스터피스, ‘사람의 아들’(Le fils de l'homme)을 패러디한 듯한 회화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회화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마담 SSO[사진촬영=박민호 기자]

“르네 마그리트를 한국에 초청했어요!”

스스로를 마담 쏘(Madame SSO)라고 소개한 그녀는, 일러스트와 웹툰 등 컴퓨터 그래픽의 작품이 가득한 이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캔버스에 유채물감으로 작품을 그려낸 회화 작가다. 마담 쏘는 발랄하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마그리트는 보통 검은 색깔 정장만 입고 있잖아요? 저는 색깔로 옷을 입혔고, 뒤에 보시면 경복궁도 있죠. 한국의 옷을 입힌 마그리트인 거죠.”

그녀는 마그리트뿐 아니라 프리다 칼로 등의 작품들에 자신의 색깔을 입혀 비틀었다. 마담 쏘의 말에 따르면, 작가들의 뮤즈(Muse)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초대했다고 한다.

“저는 작품이 유쾌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섹슈얼 아티스트거든요. 하지만 전시회에 함께 녹아들고자 섹슈얼이란 색채를 빼게 되었어요.”

마담 쏘는 자신의 포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섹슈얼 아티스트로써 정말 편하게, 제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다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저에게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

그녀의 작가관은 다소 발칙했지만, 한편으로는 틀을 깨는 예술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겨울의 글쓰기」의 작화를 담당한 임성민 작가. 글쓰기는 윤노아 작가가 담당했다. [사진촬영=박민호]

마지막으로 만나 본 작가는 곧 런칭될 예정인 「겨울의 글쓰기」의 그림작가, 임성민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유학 경험을 살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잔잔한 일상과 외로움을 이야기한 그래픽 노블 「Point Zero(푸앵 제로)」로 호평을 받은 작가다. 이번에 윤노아 작가와 함께 그리는 「겨울의 글쓰기」는 어떤 작품이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문예 창작과 학생들이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 그리고 대학 생활을 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원래는 그림뿐 아니라 스토리까지 포함해 혼자서 만화를 그려왔던 임성민 작가는, 본 작품의 스토리 작가인 윤노아 작가와 함께 협업하며 ‘합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몇 작품을 더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 스트레인지 타이거의 비전은?

스트레인지 타이거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떤 길일까. 비전은 무엇일까? 
재이 대표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앞으로 우리는, 에이전시·프로덕션의 역할과 더불어, 예술가, 창작자들의 러닝 메이트가 되는 프로젝트 또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업에 있어서 효율성을 높여줄 워크숍, 교육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약수 대표가 뿌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보니까 우리 스트레인지 타이거가 5년차가 되었더라고요. 앞으로도 우리 레이블에 있는 친구들이 좀 더 편하게,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서 해보지 못하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전시회에 참가한 스트레인지 타이거 소속 작가들. 이날 '다라'작가는 먼저 귀가하였다.
앞줄 : (좌측부터) 조윤영, YAKSU, JAY, 마담쏘, 태산
뒷줄 : 윤노아, 임성민  [사진촬영=박민호 기자]

■ 스트레인지 타이거 멤버 소개
- 대표 YAKSU(웹툰)
- 대표 JAY(디렉터)
- 김순태 (웹툰)
- YANN LE ROY(캐릭터, VFX)
- 마빈(웹툰/일러스트)
- 다라(웹툰)
- 조윤영(일러스트)
- 태산(웹툰)
- 마담쏘(회화)
- 임성민(웹툰)
- 윤노아(웹툰)
- 긴유(웹툰, 명예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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