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민우 기자
사진= 이민우 기자

 

국내 문화산업에서 매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출판산업은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줄고 있다. 2021년 기준 출판산업은 연평균 매출액 21조원을 기록했다. 출판산업은 우리나라 문화산업 사업체 수의 24.2%, 매출액으로는 16.8%를 차지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건 독서량 감소에서 기인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실시한 ‘2021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교과서, 학습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은 2019년보다 8.2%포인트 감소한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3권이 줄어든 4.5권으로 나타났다.

독서율과 독서량의 감소는 문학도서 구매량의 감소로 이어졌다. 문체부의 ‘2021 문학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학책 구입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34%의 응답자만이 ‘그렇다’고 답했으며, 전년 대비 문학도서 구매량이 감소했다는 응답(29.9%)이 증가(10.3%)에 비해 3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서점들은 더 심각하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서점이 한 곳도 없는 지역은 총 7곳으로, 지역 인천광역시 옹진군, 강원도 평창군, 경상남도 의령군, 경상북도 군위군, 봉화군, 울릉군, 청송군이다. 서점들이 멸종하고 있다. 서점이 멸종 위기에 몰린 지역도 적지 않다. 또한, 강원도 고성군 등 6곳, 경남 함안군 등 2곳, 경북 3곳, 전남 9곳, 전북 6곳, 충남 2곳, 충북 2곳 총 29곳도 곧 서점들이 멸종할 장소이다.

단순히 문학의 위기는 숫자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불광문고와 반디앤루니스의 폐업 이어 유통망인 송인서적 부도까지 총체적인 출판시스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매해 도서 발행 종수와 출판사의 수는 늘어가고 있지만 총수익은 줄어들고 있다. 즉 출판사들의 생존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위기를 홍수로 확인할 수 있듯 출판의 위기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책과 사회 연구소 백원근 소장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성인들의 경우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한다. 학생들 역시 학업과 타 콘텐츠 이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백원근 대표는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자신의 인생에 감동받은 책을 만나지 못한 것도 주요한 이유로 뽑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문학책을 읽는다는 34%의 사람들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쉬운 일이 이다. 책을 구매하러 가는 서점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떠드는 장소가 아니다. 분명 독서인구는 존재하지만 이들은 마치 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처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뿐 만날 수는 없다.

여기 독서플랫폼 "그믐"이 있다.  그믐은 누구나 인터넷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으로 북클럽을 개설해 댓글로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독서 경험 공유 플랫폼이다. 다만 책과 관련해 댓글을 달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다. 29일이다. 그믐달이 뜨기 전까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다. 

뉴스페이퍼 사무실에서 만난 그믐 대표 김혜정 씨는 "영화나 드라마는 누구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며 "책에도 그런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는 인터넷 커뮤니티부터 오프라인 모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평을 공유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책과 관련된 커뮤니티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학동네나 특정 출판사들의 자사 책 독자를 모은 카페나 디시인사이드의 도서 문학갤러리가 유일했으나 그곳은 문학 독자를 포용하기에는 부족한 공간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 문학을 읽고 나누고 싶은 이들에게 그믐은 일종의 항구이자 기차역이다. 그믐은 책 이야기를 독자들 스스로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독서운동의 한 형태다. 

그믐 홈페이지 상단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그믐의 표어는 독서의 위기와 문학의 위기 타파 방식을 독자들의 눈높이로 가져간다. 출판계의 암흑 속에서 빛이 되어줄 그믐달은 세상을 바꿀 베스트 셀러도 백마를 탄 지식인도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독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문화와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표의 생각읻.

서평을 다루는 매체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2021년에 창간된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있다.  "신뢰받는 서평지"를 목적으로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와 김영민 정치외교학부 교수등 각 분야에서 유명한 교수 13명이 편집진으로 모였다. 주목받지 못한 좋은 책을 발굴하여 소개해주는 것으로 우리 선택의 지면이 늘어났다. 하지만 소수의 학자가 독자들에게 평을 건네주는 방식은 플랫폼이나 공론장보단 일종의 학교와 같았다. 반대로 오프라인 위주의 독서모임들은 독서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관계의 장이기에 책이 그 주인공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

김혜정씨가 그믐을 만들게 된 계기는 15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게 한 우울감과 탈진에서 시작된다.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고민 속에서 김혜정 씨는 가장 나를 위로해준 경험인 독서를 남들과 공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홈페이지
그믐 홈페이지

 

밝게 웃으며 인터뷰를 진행한 김혜정 씨는 독서 모임조차 수도권 중심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터넷 속에서는 공간도 시간도 제약이 없었기에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너무 가벼운 인터넷 동아리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김혜정 씨는 문학 치유의 힘을 믿는다. 그렇기에 너무 가볍지도 않으면서 휘발되지 않는 공간을 꿈꾸는 것이다. 그렇기에 게시글 포인트나 인스타와 같은 좋아요나 이모티콘 문화가 생기지 않도록 기능을 아예 넣지 않았다. 

종이가 아닌 웹에서, 등단작가나 시인이 아닌 일반 독자들 누구나 편하게, 하지만 진중하게 문학 이야기를 나눌 곳을 만들겠다는 것이 김혜정 씨의 목표다.

생존을 위해

독립문예지
독립문예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독립문예지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문학계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담론이 비어있는 부분을 빠르게 채워나갔다. 문예지뿐이 아니었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젤리와 만년필, 소녀문학, 창비의 문학플랫폼 문학3, 이듬시인의 이듬책방과 대구의 시인보호구역 일종의 플랫폼으로의 도전을 한 던젼까지  그 등장만으로도 빛나던 시도들이었다. 독립문예지의 독립이란 기존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이고 필요에 따라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이것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될 수는 없었다. 이미 기울어져 가는 서점 생태 속에서 생존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믐도 생존의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김혜정 씨는 당장은 유료수익화 모델이나 광고등의 수익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대신 그믐의 생존방식은 길게 그리고 오래 버티는 것이다.

그믐의 첫 시도는 최소 비용을 들이는 것이었다. 스타트업처럼 최소한의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과 모았다는 김혜정 씨는 일단 비용을 줄였다. 인터넷 플랫폼으로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예지처럼 인쇄비 감당해야 하거나 공간 임대료를 내야하는 서점과는 달리 온라인 공간은 긴 생존을 꿈꿔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한 이용자들이 생겼을 때 플랫폼은 그 자체로 생존을 할 수 있다. 현재 그믐의 회원은 5천명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믐은 최근 외연을 넓혀 나가고 있다. 시홍서가부터 다양한 서점 도서관 들과 만나고 북토크를 열고 도서관과 MOU를 진행하고 작가행사를 연다. 이러한 행위는 새로운 독자 중심주의적 문화 운동이다.

김혜정 대표
김혜정 대표 [사진=이민우기자]

김혜정 씨는 인터뷰를 끝으로 그믐에 대한 홍보를 잊지 않았다. 당신의 인생의 책을 물어보는 코너에는 동아일보 이지훈 기자부터 강덕구 사회평론가까지 다양한 사람의 인생의 책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혹 누군가에게 자신의 인생의 책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면 그믐에 들어가면 어떨까? 아니면 내 작품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지독히 외로웠던 작가라면 그믐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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