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할머니가 자신의 집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이민우기자]

지난해 12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의 ‘대한민국 인권상(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에 대해 정부가 이견을 냈다. 수여를 내년으로 미루자는 것이다. '일본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관계자는 “일본을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지난 6일에는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기금을 국내 기업 단독으로 조성하는 ‘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굴욕 외교’라는 비판의 여론이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만나 말했다.

그런 와중에 윤 대통령이 16일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일 정상회담에 참석해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나기 위해서다. 방일에 앞서 윤 대통령은 과거 부친과 함께 일본에 방문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반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아름답게만 보지 않았던 일본 작가가 있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다. 그는 상을 받으며 ‘애매모호한 일본과 나(Japan, The Ambiguous, and Myself)’라는 제목의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그에 앞서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소감 제목이 ‘아름다운 일본의 나(美しい日本の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교롭게도 가와바타의 노벨상 수상은 윤 대통령이 ‘아름다운’ 일본을 방문한 시기와 겹친다.

사진= 표지
사진= 표지

 

오에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에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4년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와 만나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고 한국의 땅과 사람을 일본의 것으로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적어도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은 평생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속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의 근본이다. 그 정신이 평화헌법 9조에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직후 천황이 주려던 문화훈장도 거절했다.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사 참배를 반대했고, 여러 차례 한국에 방문해 평화를 강조하는 연설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 오에가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한국작가회의는 지난 14일 ‘오에 겐자부로를 추모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그는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일본이 저지른 20세기 군국주의의 폐허에서 진정한 교훈을 배우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반핵을 표방하고 일본의 전후 역사 왜곡에 대해 비판”했다면서 “우리는 지금,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굴욕적 외교를 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짓밟고, 범죄 인정도, 사죄와 사과는 물론 책임자 처벌도 없는, 일본 정부와 일제 전범 기업들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친일매국 협상을 강행하는, 민주 없는 정부를 보고 있”다고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 정책을 비판했다. 이어 “오에 겐자부로의 국가주의를 넘어선, 깊은 시민적 연대와 평화를 향한 갈망과 실천에 깊이 감사”한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정부의 현재 대일 외교 정책이 ‘굴욕 외교’인지 ‘미래지향적인 대국적 결단’인지는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에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다”는 오에의 말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울리고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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