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작가들이 쫓겨났다(기사). 오정희 작가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선정된 것에 항의 방문한 이들이 폭력적으로 제압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사회적 논란이 됐다. 오정희 작가는 박근혜 정권 시절 동료 작가들을 검열하고 배재한 블랙리스트 실행자다. 그런 이가 한국을 대표하는 책 축제에서 홍보대사로 임명됐다는 것은 이명박 박근혜 시절 실행된 블랙리스트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행위로 해석됐다. 

문제는 누가 이런 행위를 했냐는 것이다. 

작가들을 폭력으로 끌고 나간 건 개막식을 찾은 김건희 여사의 경호원들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송경동 시인의 모습이나 취재가 막힌 문학 기자들의 모습은 오정희를 홍보대사에 앉힌 것이 윤석열 정부가 자행한 행위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출판문화협회(대출협)가 주최 주관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행사다. 

뉴스페이퍼가 7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신청한 정보공개청구에 따르면 문체부는 서울국제도서전에 국고보조금 9억700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대출협의 자부담 금액은 약 3000만원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문체부의 입김이 닿았다고 볼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대출협의 입장문은 혼란을 불러왔다. 대출협은 오정희 작가의 홍보대사 임명과 관련해 문체부의 외압이 없었다며 “오정희 작가의 선정 과정, 선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 해도 그것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책임지고 성찰하고 개선할 일”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를 옹호하는 듯한 대출협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마지막 날인 6월 18일. 개막식 때 끌려나갔던 작가들이 다시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았다.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는 이 자리에서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청했다.(기사) 하지만 60일이 지난 지금 그 누구의 사과도 재발 방지 약속도 없다.

오정희가 어떻게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쫓겨난 작가들과 취재가 막힌 기자들을 위한 재발 방지 약속도 없는 사이 새로운 사건이 벌어졌다. 7월 24일 문체부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출협이 ’서울국제도서전‘의 수익금 내역을 누락하고 반납 의무를 저버렸다고 발표했다. 대출협은 즉각 반발하며 문체부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고 문체부는 고발로 맞받아쳤다. 

문체부의 이런 행보를 보면 마치 출판계와 전면전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한국출판문화진흥원(출판진흥원) 이사회 구성은 수개월째 파행이며 한국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부실운영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논란에 문학나눔 지원사업 파행도 더해졌다. 특히 서울국제도서전을 중심으로 한 문체부와 대출협의 갈등으로 긴장감은 최고조를 이루고 있다. 

대출협은 결국 8월 17일 출판문화인궐기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오정희 사태 당시 서로를 감싸주려는 것처럼 보였던 이들의 갈등에 이번 사태가 혼란스러워보이기까지 한다. 출판계와 정부의 불협화음은 정말 갑작스러운 걸까. 

2023서울국제도서전 도서전의 얼굴3번째 오정희작가
2023서울국제도서전 도서전의 얼굴3번째 오정희작가

 


징후

2022년 11월 25일 출판진흥원의 거버넌스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표가 있었다. 

한국출판학회 제 42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는 출판진흥원이 특정 출판사 대표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돼 공공기관이 지향해야 할 공공가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출판진흥원 이사회는 상임이사(원장) 1명, 비상임이사 8명, 비상임감사 1명으로 구성된다.

정윤희 대표의 연구에 따르면 2017년부터 최근까지 임원들의 과반수가 대출협과 출판계 대표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윤희 대표는 저자,독자,도서관,지역서점 등 책문화생태계 속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차단된 상태로 대출협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책문화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출판 거버넌스 고찰

 

사실 출판진흥원이 이런 문제를 지적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21년에는 출판진흥원 노조가 성명서(전문)를 발표하기도 했다. 출판진흥원이 특정 출판단체의 목소리가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이 있어 원장 선출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문체부는 출판진흥원 이사진이 추천한 원장을 적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꾸준히 반대해왔다. 하지만 추천권은 오로지 이사진에게 있는 권리였기 때문에 출판진흥원은 원장 선출에 어려움을 계속해서 겪었고 결국 임시 대행이 선출될 정도로 순탄치 못한 운영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출판계 내부 일이었기에 사회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첫 단추

2023년 5월 21일. 문체부와 출판계의 불협화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사업때문이었다. 세종도서 선정사업은 ‘양서출판 의욕 진작 및 국민의 독서문화 향상 도모’를 사업 목적으로 하며 출판진흥원이 맡아 매년 교양부문 550종, 학술부문 400종의 우수도서를 선정해왔다. 연간 지원되는 보조금만 84억여 원이다. 

문체부는 세종도서 심사가 배점표, 채점표도 없이 부실투성이로 운영됐다며 도서 선정 기준이 불투명하고 심사위원의 자격요건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심사위원 후보자 풀이 유관단체의 추천으로 구성된다며 그 과정에서 특정 단체의 추천인이 과도하게 반영돼 실제 심사위원 선정 비율에도 왜곡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문체부가 오래 전부터 지적받은 “출판진흥원의 구조적 결함”을 처음으로 공론화한 일종의 무언의 압박이었다. 

특히 세종도서 사업을 지적하는 보도자료는 출판진흥원에 통보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됐다. 배포 시점은 일요일 아침 10시였다. 일요일에 정부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보도자료 배포는 드문 일이다. 

당시 출판진흥원 관계자는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세종도서 문제에 대해 이미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한 상태였고 제도 개선에 시간이 필요하니 TF를 구성해서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문체부에 보고했으나 보도자료가 선제적으로 배포됐다며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세종도서 사태는 문체부가 출판진흥원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7월 17일 결국 김준희 출판진흥원장은 사표를 제출했다. 문체부 산하 기관 경영 평가에서 최하 등급인 D등급을 받았다는 게 사임의 표면적 이유였지만 세종도서로 시작된 문체부의 압력에 김준희 전 원장의 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출협은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세종도서 운영의 민간 위탁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기간 이 요청은 수용되지 않았다. 서울국제도서전 시작 전부터 대출협과 문체부의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다.

문학나눔도서

문학나눔도서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 역시 세종도서와 연관됐다. 문학나눔도서 사업은 약 51억원 상당의 문학 도서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구입해 보급하는 사업이다.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문체부는 문학나눔도서 예산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확인한 결과 거취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문체부는 기재부 예산이 심사 중이기에 결정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별도 취재 과정에서 문학나눔도서가 지적받은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나눔도서는 2014~2017년 출판진흥원 세종도서 사업으로 통합 운영됐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문학 진흥 특화를 위해 세종도서에서 문학 부문을 분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을 맡았다. 이렇게 분리된 후 세종도서는 문학 분야 책을 선정하지 않기로 했으나 여태 세종도서 사업에서도 문학도서가 선정되어 왔다. 그렇기에 문학나눔사업은 세종도서와 다시 통합하거나 차별점을 둘 것을 요구받은 상황이다.

한국출판진흥원이 문학 도서 선정 행위를 멈추거나 문학나눔사업 추가 개선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출판카르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7월 24일 기자회견에서 이권카르텔이 출판계에 있다며 출판 약자에게 거칠고 높은 진입장벽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국제도서전과 관련해 대출협이 회계 보고 과정에서 수익금을 누락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세종도서 때와 마찬가지였다.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장관이 직접 공공기관 감사 상황을 발표한 건 이례적이다. 

 

8월 2일 문체부는 서울국제도서전의 회계보고서에서 수익금이 누락됐다며 윤철호 대출협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문체부는 윤 회장과 주 대표가 고의적으로 국제도서전 초과이익 반납을 회피했다고 보고 보조금법 위반, 사문서 위변조, 업무 방해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문체부는 2018~2022년 국제도서전 수익금 통장 사본에서 일부 내역이 삭제됐거나 숨겨진 것을 발견해 수익금 수억 원이 누락됐다고 판단했다. 

윤철호 회장은 모든 정산 보고서를 제대로 제출했으며 지난해 2억 원을 반환했다고 반박했다. 또 문체부의 수익금 반환 의무 및 범위 설정에 불만을 제기하며 보조금법상 개인정보 보호로 인한 블라인드 처리가 필요했으나 원본 통장을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대출협과 문체부와의 갈등은 서울국제도서전으로 터져나왔지만 이것은 출판진흥원 문제를 시점으로 뻗어나온 가지다. 

출판진흥원 임원추천위원회는 2022년 10월 31일자로 비상임 이사 4명과 비상임감사 1명에 대해 후보자 모집 공고를 냈지만, 현재까지 새로운 이사진들과 감사를 구성하지 않았다.

공공기관 경영공시 사이트(알리오)에 등록된 출판진흥원의 임원현황은 원장과 비상임 이사 4명뿐이며, 감사도 없이 운영되고 있다. 그마저도 원장이 사표를 냈기에 공석이 됐다.

결국 서울국제도서전 수사 의뢰 사태는 단순히 대출협이 국가보조금에 대한 의무를 지켰는지 여부와 같은 미시적 사건이 아니라 출판진흥원의 원장선출, 이사 선출, 세종도서와 문학나눔까지 복합적으로 엮여 있다. 

국가 예산과 출판진흥원을 둘러싼 권력 다툼인 셈이다. 

하지만 작가들과 블랙리스트 이야기는 어디로?

지난 8월 8일 블랙리스트이후,한국작가회의,문화연대가 공동주최한 오정희 사태와 예술권력 대응을 위한 공개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는 블랙리스트 문제와 예술 권력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가 열린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행사에 참여한 권위상 시인은 서울국제도서전 당시 다친 허리가 시큰거린다며 밝게 웃었다.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는 오정희 사태로 촉발된 블랙리스트 이야기가 어디에서도 논의되지 않아 자리를 직접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대현 평론가는 오정희 작가는 사회적 논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으로 동료 작가들을 검열 배제했던 인물임에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서  매월 180만 원의 연금을 받으며 각종 예술 정책과 사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는  “올해 11월 3일은 ‘블랙리스트 예술인 시국선언’ 7년이 되는 해이지만 지난 7년간 국가범죄 블랙리스트는 전 사회적으로 망각되고 정치권에선 정쟁의 도구로, 실행자인 문체부와 주요 산하 기관과 실행자는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으로 간주했다”고 말했다. 국가권력은 블랙리스트 방지를 약속했지만 실질적인 실천은 없었다는 비판이었다. 

또한 정윤희 디렉터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기 전 이미 윤철호 대출협 회장과 간부를 만나 오 작가의 홍보대사 해촉을 요구했지만 ‘도서전 주제를 상징하는 여성(연령별 대표 여성 작가)으로 홍보대사를 정했는데 해촉을 요구하면 어떻게 하냐’는 말까지 들었다”며 대출협이 문제를 알면서도 오정희 작가의 홍보대사 위촉을 강행했음을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서울국제도서전의 추가 수익금을 가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문제와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있었던 폭력적 사태에 대해서는 남의 일인 듯 아무도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두 집단의 힘겨루기 속에서 작가와 독자들은 어디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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