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1

전영규

  지금부터 불편하고 지겨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정확하게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 알 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말하지 않는 이야기. 아무리 말을 해도 바뀌지 않기에 언제부턴가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이야기. 아무리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만큼 지겨워진 이야기.  
  올해 초에 있었던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설문조사로 모든 이들을 경악하게 만든 어느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 평생 시만 쓰던 자가 추문에 휩싸여 5년간을 자택감금하고 살았고, 모든 명예를 잃은 상태에서 다시 시를 써 신간을 낸 어느 원로 시인.(90세) 그러자 그의 신간 출간과 사실에 가까운 ‘추문’을 비판하는 자들에게,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 ․ 출판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일이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여기며 항의하는 (원로 시인의 신간 작품을 출간할 만큼 원로 시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A출판사. 나아가 신간 출간을 비판하는 신문사를 상대로 다툼까지 한 사건. 
  두 번째. 위계폭력, 성추행 및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이 문예지를 창간하거나 문예지의 편집위원이 되는 문단구조를 지적하는 글을 쓰자,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의 판단은 잠시 유보하고, 문학잡지를 만드는 일이 정작 신성한 제의에 참여하듯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일이냐며 반론을 제기한 자. 나아가 성추행 가해자 관련 사건은 공중파에 방송되고 각종 종합 일간지에서도 다루어졌던 사건의 재료인 만큼 이를 알리는 일은 명예훼손은 물론 업무방해이자 범죄행위의 의도라고 하며 협박에 가까운 비난을 한 일.
  세 번째. 300쪽에 달하는 교정교열 편집 작업에 대한 고료를 받지 못해 이의를 제기하며 1인 시위에 나선 자에게, 고작 세 차례의 편집업무를 거든 것으로 그것이 마치 노동착취라도 되는 듯 해당 문예지를 폄훼하려는 이가 있으니, 더 이상의 불미스러운 사태를 빚거나 진정성어린 사과가 없을시, 그 모든 행위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간주해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공표한 해당 문예지 편집 일동.
  네 번째. 신인문학상 당선자를 비롯한 여성수상후보자들에게 따로 연락해, 나이, 학과, 대학, 사는 곳을 묻고 등단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시집을 계약해야 한다고 말한 어느 문예지 발행인. 이후 이 사태가 알려지자, 자신의 행위가 등단과 작품집 출간이 간절한 문학지망생과 신인작가들에게 가하는 ‘권력에 의한 위계 및 위력’이 아닌, 발행인으로서 오랜 관행이자 관례였다고 말한 일. 그와 함께 자신에 대해 폭로된 사안들이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판단되어 법적 조치를 취하기 전에, 위와 같은 사실을 말한 자들에게 공개사과를 요청한 일.
  위의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명예훼손입니다. 왜 그들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명예훼손이라고 여기는 것일까요. 그들이 지키고 싶은 명예란 무엇인가요. 무엇이 훼손되거나 모욕당하거나 폄훼받고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은 누구에게도 비난 받을 수 없다고 여기나 봅니다.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범죄행위이자 업무 방해라는 명목 하에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조치를 가하는 것을 본다면 말입니다. 흥미롭게도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자들에 해당하는 대부분이, 문제를 지적하는 자들에게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조치를 이미 취했거나, 취할 것이라는 협박에 가까운 경고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위 ‘명예훼손 같은 소리’를 하는 자들에게 명예훼손이란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가하는 더없이 좋은 가해입니다. 
  2016년부터 문화계를 중심으로 ‘○○_내_위계․ 성추행․ 성폭력 해시태그’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문단_내_위계․ 성추행․ 성폭력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였고요. 문단 내 부조리, 출판 권력, 문단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불공정한 관행이나 악습과 관련해 피해 당사자 혹은 목격자에 해당하는 ‘나’의 경험을 고백하는 목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목소리‘들’은 2016년의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 마침내, 참다 못해, 끝끝내 견디다 못해, 말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기에,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개선의 여지조차도 주어지지 않기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제야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이 목소리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요.
   본인이 유명한 시인/작가가 아니라서 미투에 걸리지 않았다며 다행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떠오릅니다. 본인이 보기에도 ‘미투에 걸릴 법한’ 자신의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를 포함해 유명한 시인/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옳지 못한 행동을 해도 공론화가 되지 않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여기는 걸까요. 그들에게는 ‘미투’가 유명한 시인/작가라면 한 번쯤 ‘당하게 되는 일방적인 추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들이 말하는 ‘미투에 걸리다’ 혹은 ‘미투를 당하다’라는 표현 안에 숨겨진 불편한 의미를 들여다봅니다.  
  문학 강습을 목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여성 미성년자 문학 지망생에게 지속적으로 언어폭력, 인격모독, 성희롱, 성폭력, 명예훼손을 가한 한 남성 시인의 재판이 5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발한 피해자에게 해당 시인은 역시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결국 이 재판은 피해자의 피해사실이 사실임이 입증되었고, 피해자 측의 항소로 해당 시인은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으며, 미성년자 성회롱과 관련한 두 번째 항소심 형사 재판에서 1년 8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를 시도하기도 했던 해당 시인은 1심 재판 중 자신의 치아가 여덟 개나 빠졌지만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손해배상금을 먼저 해결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바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가해자들이 지닌 공통된 습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반성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대단한 행위처럼 여기고 있는 것일까요. 기억나지도 않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피해자에게 가한 나의 가해가 가해인지 몰랐다는 것. 그래서 나는 피해자로 불리는 자들에게 고발당하며 미투에 걸렸고, 어쨌든 나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피해자가 원하는 사과를 기꺼이 ‘해줬다’는 것. 이후 나는 가해자라는 추문에 휩싸이며 명예를 잃고 한동안 칩거하며 나름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 본의 아니게 일하던 문학관을 그만두거나 문예지의 편집위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문학관련 행사활동이 제한되는 것은 몰론 자신의 작품집이 절판되거나 급기야는 자신에게 작품 청탁이 오지 않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 나아가 자신의 가해 사실이 공중파에 방송되고 각종 종합 일간지에서도 다뤄지고야 말았다는 것.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나의 가해로 인해 나의 명예가 실추되어 버린 것도 참아줬는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어 버린 나의 가해 사실을 또 알리는 일은, 자신이 피해자에게 가했던 가해보다 더 심각한 가해라고 여긴다는 것. 이미 나에게는 과거에 다를 바 없는 지난날의 잘못을 감히 거론하는 자들에게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명예훼손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자들이 지닌 나쁜 습성입니다. 내로남불을 연상하게 하는 가해자들의 죄의식 결여와 이기심, 과잉된 에고. 걸핏하면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는 허세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목소리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추문에 휩싸여 5년간을 자택 감금당하듯 살던 원로 시인은 추문과 업적은 별개라고 여기며 그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205명의 저명한 문화예술인 덕분에 헌정문집발간기념회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고작 세 차례의 편집 업무를 거둔 것으로 그것이 마치 노동착취라도 되는 듯이 우리의 문예지를 폄훼하려는 자에게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간주해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피해자에게 협박에 가까운 공표를 한 해당 문예지는, 이후로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위계 폭력, 성추행 및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 역시 문예지를 창간하거나 편집위원, 신인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발한 피해자들은 또 다시 문예지의 발행인, 편집위원, 문학 신인상을 뽑는 심사위원의 자리에 가해자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걸 보게 됩니다. 가해자가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와 같은 공공기관이나 사업단체에서 문학 관련 강의나 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절판된 가해자의 작품집이 가해자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된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오히려 목소리를 낸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가해자가 계속 활동하는 한 적어도 가해자와 관련된 공공기관, 강의, 행사, 문예지, 출판사의 범위 내에서는 피해자들의 창작 활동이 불가피하게 제외되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가 불편하고 지겹다고 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불편해지거나 지겨워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지치거나 무력한 마음이 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가 쉽게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들의 공론화 이후 위와 같은 제도상의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해 사실의 공론화 이후, 해당 작품집의 절판이나 창작 활동 제한을 포함해 가해자가 문단 내에서 작게나마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제외하는 것만이 피해자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까요. 제도상의 후속조치가 이루어진 후에도, 끝끝내 없어지지 않는 이 불편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앞서 말한, 징역 1년 8개월을 구형받은 (문단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바로 그)시인은 판결 후에도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과연 형평과 사법정의에 맞는 일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는 말을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습니다. 아마도 ‘끝끝내 없어지지 않는 이 불편한 마음’은,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지치거나 무력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억울함을 주장하는 가해자의 사고방식에서 오는 게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가해자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왜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왜 반성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이는 지능의 문제로 간주하겠습니다. 
  어느 글에서 그들은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자들에게 “소위 피해자로 불리는 일군의 짝패들”이라 부른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들을 걸핏하면 “명예훼손 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 있는 일군의 가해자들”이라 지칭하겠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의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마저 결여하는 한이 있더라도,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문학/예술/작가 공동체로서 한국문학이라는 거룩한 대의를 이루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요. 누가 봐도 옳지 못한 자신의 행위를 문학적인 사유의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를, 그러니까 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요. 그들의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이고 유해하고 범법적인 행위를 뒤로 한 채 그들과 함께 문학공동체를 이루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그들이 지키고 싶은 명예만큼이나 보잘것없습니다. 그들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불편하고 지겨운 이야기는 계속될 듯싶습니다.  
  최근에 저는, 나에게 “강의를 하려면 교수와 탁.탁.탁을 해야하는 여자 대학원생, 좇도 아닌 년, 레밍도 모르는 병신 같은 년, 술도 못 따르는 씨발년”이라 했던 어느 남성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이유로 해당 시인에게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죄라는 법적 제재를 받았습니다. 저 또한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2차 가해를 받은 셈이지요. 결국 그 사건도 ‘혐의 없음’ 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걸핏하면 명예훼손 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있는 당신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신들이 지키고 싶은 명예란 무엇입니까.   

  1.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2022) 시집 제목에서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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