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소 떼 몰고 간 왕 회장

박이도

어느 날 산신령이 나타나
왕 회장의 꿈을 해몽하니
금강산(金剛山)은 금광산(金鑛山)이로구나
왕 회장 노다지 캐러 갔네
소 떼 몰고 돈 지러 갔네
피양에선 
올래문 오라우
돈 지고 오라우
갚아도 되고 말아도 되는 돈이라면
돈 지고 오라우
가디요, 암 가야디요
일가친척이 그립고
동포애가 넘쳐
돈 지고 갈랍니다

모슬포에선 
돈 지러 간다는데
피양에선
돈 지고 오라네
부짓집이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왕 회장, 3년도 못 가 쪽박만 찼다네
금강산은 금강시산(金僵屍山)*이런가
햇볕으로도 녹일 수가 없구나.

* 강시(僵屍)는 뻣뻣하게 얼어 죽은 송장을 뜻하나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그림에 떡이 되고 말았다는 의미로 조어화 했음. 

ㅡ『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이네』(바이북스, 2022)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왕 회장은 현대그룹을 만들어 이끌었던 정주영 회장(1915〜2001)의 별칭이다. 정주영 회장은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통일소'라고 불린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강원도 북쪽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가 고향인 정 회장은 현대아산이란 회사까지 만들어 많은 대북 원조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 관계를 보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시인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왕 회장의 하염없는 원조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특히 그 당시 북한의 태도를 “올래문 오라우/돈 지고 오라우/갚아도 되고 말아도 되는 돈이라면/돈 지고 오라우”라는 말로 대변한다. 3년도 못 가 쪽박을 찼다는 말은 통일을 위한 물꼬를 틀 줄 알았던 ‘소 떼 몰고 간 왕 회장’이 3년 만에 사망했다는 말인 것 같다.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현대아산 회장으로서 이 사업을 총지휘했던 정몽헌 차남은 2003년 8월 4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 떼 희사 이후 금강산과 개성 관광,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 개성공단의 건설 등이 이루어졌지만 햇볕정책의 결과가 무엇이냐고 시인은 묻고 있다. 강시의 산은 아마도 그 이후에 일어난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때 사망한 우리 군인의 수를 가리킨 것은 아닐까. 선물을 받으면 기브 앤 테이크여야 하는데 북한은 지금까지도 왕 회장의 호의를 무시하고 있다. 

 시인이 작년에 낸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시로 이루어져 있다. 김지하의 「오적」 이후 이보다 더 강하게 현실정치를 풍자한 시를 보지 못했다. 시인은 여와 야를, 부자와 권력자를, 남쪽의 정치지도자와 북쪽의 정치지도자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비판한다. 특히 이 시집의 표본은 우리 선조들의 민담이다. 민담의 현대적 활용이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이네』이다. 민담에 담겨 있는 해학성과 골계미가 박이도 시인에 의해 부활하였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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