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소릉조少陵調

ㅡ70년 추석에

천상병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ㅡ『월간문학』(1971년 2월호)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천상병 시인(1930~1993)이 1967년에 일어난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독의 초청으로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장벽을 넘어 동베를린에 가서 국제회의나 예술제에 몇 사람이 비공식적으로 참여했을 뿐이지만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과 이응로, 학계의 황성모와 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 적화 공작을 벌이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재판 결과 사형 2명을 포함한 실형 15명, 집행유예 15명, 선고유예 1명, 형 면제 3명을 선고했다. 하지만 용두사미로 진행된 재판의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주모자로 인정된 서울대 상대 동기생이자 독일 유학생이던 강빈구는 가난한 시인이자 친구인 천상병이 딱해서 얼마 건네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강빈구가 동독에 다녀온 것은 사실이었기에 간첩으로 몰렸고, 친구에게 돈을 준 것이 공작금 전달로 비화되었다. 천상병이 6개월 동안 고문받는 과정에서 세 차례 전기고문을 받고 생식기능까지 상실했으니 당시 중앙정보부가 사상 문제에 대해 얼마나 서슬푸르게 굴었는지 알 수 있다.

 시인이 6개월 동안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나온 이후 넋이 나가 횡설수설했지만 시에는 사랑과 평화, 용서와 화해가 수놓아져 있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1970년 추석 때 부산에 가고 싶었지만 차비가 없어 못 간 것은 사실이었다. 천상병은 그 당시 원고료 이외의 수입이 전무한 고급 룸펜이었다. ‘소릉’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의 호다. 그러니까 이 시의 제목은 ‘두보의 시와 비슷하게’란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두보는 전란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하게 된 처지를 종종 슬퍼하였다. 1971년 2월호 『월간문학』에 발표했던 이 시는 한국문학사 전체를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생시에 나온 유고시집’인 『새』에도 실렸다.

 출옥 이후 계속 횡설수설하고 종종 술에 취해 거리에서 쓰러져 자곤 하던 천상병이 경찰관의 불심검문을 받는데 시인이라고 하기에 시를 한 수 읊어보라고 하니까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눈이 완전히 풀려 있는 것이었다. 떠돌이 정신병자로 간주한 경찰은 그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보냈다. 경찰이 가족의 연락처를 대라고 했지만 부산에 있는 가족의 전화번호를 그는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문단에서 천상병이 증발해버리자 친구들이 그의 시들을 모아 유고시집을 내고선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울고불고하였다. 신문에서 유고시집 발간 기사를 본 병원장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신문사로 전화해 병원에 있는 환자 중 시인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자기를 천상병이라고 하는데 동일인인지 확인해보라고 하자 신문사에서 시집의 발문을 쓴 김구용 시인에게 연락을 했다. 유고시집를 내준 친구들이 가보니까 바로 천상병이었다. 유고시집 발간 덕에 친구 목순복은 천상병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여동생 목순옥은 오빠의 이상한 친구를 남은 생을 바쳐 돌보기도 결심한다.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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