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기계 인간, 인간 기계 

이은


기계와 씨름하고 난 후 
돌아오는 새벽, 교차로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을 때 
눈물이 흘러내린 후 
태양의 아름다움을 가둘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턴가 
기계의 운율을 따라가자니 심장이 한 박자 더 뛰어야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천천히 기계를 설득하기가 너무 어렵다 

기계 앞에서 서성이며 숨을 고르고 
기계와 동맹을 맺어볼까 하다가
한 박자 놓치고 난 쌓이는 상자들을 감당할 수 없다

기계실 유리창에 내 모습을 비추어 본다 
나는 지금 내가 반복해서 하는 일을 모른다 
신도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겠지 

기계 인간이 되어 가는 밤
나는 나를 볼 수 없고 귀먹고 눈멀어 간다 

ㅡ『밤이 부족하다』(도서출판 달을쏘다,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이은 시인은 최근에 낸 제3시집에서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한다.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지만 기계에 종속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리라. 인공지능이 지금 만병통치약쯤으로 높게 취급되고 있지만 우리 인류가 처해 있는 수많은 위험에 대해 그 어떤 처방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은 시인이 말하는 기계 중 대표격은 자동차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아닌가 한다. 인류 중 1/10쯤은 지금 기계를 조작하고 있거나 운전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 않을까.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을 자연의 대표자로 보고 있는 시인은 인간이 자연을 외면하고 기계와 더불어 살아가다가는 큰일 날 거라는 경고를 「기계 씨의 하루」 「기계에게 젖을 물리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무한가속기」 「얼음이 천정에서 쏟아지는 밤이다」 「인간의 마음이 왜 기계를 닮아갈까」 「이게 기계인간」 「도착하니 로봇실이야!」 등의 시에서 끈질기게 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1936)에서 한 예언이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 우리의 몸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일거수일투족 기계의 감시를 받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실상 기계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 “나는 지금 내가 반복해서 하는 일을 모른다” “신도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겠지” “나는 나를 볼 수 없고 귀먹고 눈멀어 간다” 등의 구절을 보니 우리 인류의 미래가 암담해진다. 문제는 인간에게 있다. 지구온난화, 탄소 배출량의 증가, 빙하지대의 소멸이 다 동궤에 있는데 공장의 가동과 차량의 배기가스가 불가분의 관계에서 협조하고 있다. 또한 기계가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때는 미사일도 핵무기도 드론도 없었다. 인간의 못된 꾀에 기계가 장단을 맞추고 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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