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루이비통 가방 

박종구


상하이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아우성이네
아내는 사자 하고 나는 외면했네
카드만 건네주고서 저 멀리 사라졌네

하룻밤 자고 나면 상처는 더욱 커져
시간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명품이네
어쩌나 식사 때마다 아내가 보이질 않네

여행은 뒷전이던 마지막 날 면세점
종소리 쫓아가듯 가방 찾아 헤매던
고단한 여행의 전리품, 일 년은 편하겠지

ㅡ『시간의 촉감』(목언예원,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부부가 여행을 갔던 중국 상하이는 수많은 빌딩이 우뚝우뚝 임립해 있는 국제적인 도시다. 화자의 아내는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가격보다 꽤 쌌는지, 여행은 뒷전이고 루이비통 가방에 눈독을 들이고서 오로지 그것 사는 일에 골몰한다. 하긴, 세금이 감해지는 면세점에서 살 수만 있다면 후회할 일은 아닐 것이다. 

 만약에 아내의 가방 구매를 반대했다간? 뼈도 못 추릴 것이다. 한 달 소득이 날아가더라도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한다. 고단한 여행의 전리품인 루이비통 가방, 그것을 사주면 남편은 일 년은 편할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남편이여, 후환이 두려우면 아내에게 가방을 사 드려야 한다.

 이 시조는 두 가지 점에서 변별력을 갖는다. 하나는 일상성이요 하나는 현대성이다. 지금 이 시대의 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이렇게 써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소재와 주제와 표현에 있어 구태의연한 시조가 많다. 같은 시인의 작품인데도 “속울음 삭여 가는/깊은 밤 시름 너머//막둥이 끌어안고/밤새워 바느질하던//동그란 보풀꽃이 핀/할머니의 반짇고리”(「하현」)보다는 “바쁘다는 핑계로/역주행 시도하다/상대방과 삿대질하던/빨간 모자 사나이//해병대 기수 따지더니/서로가 사돈 됐네”(「기수가 뭐길래」)가 훨씬 낫다. 시조가 일상성과 현대성을 확보하면 더욱더 발전할 것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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